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62
▣ 162화. 우리가 역적을 토벌한다 (1)
이 대륙의 최고 권력자는 ‘황제’다.
형식상으로는 에인헤랴르 대공도 황제의 신하다. 피어너 공작도, 크레스니크 공작도 마찬가지다.
자치권을 인정받고 있어 평소에는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황제가… 갑자기 발생한 반란으로 목이 날아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니얼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책사인 니얼도 이런 사태는 예상 못 했던 모양이다.
“제국의 중심부는 매우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황제파 귀족들은 이름대로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귀족들이라, 반란 같은 게 일어날 리는 없었습니다. 만약 반란이 일어나도 ‘팔라딘’들이 황제를 지켰을 텐데…….”
“팔라딘?”
“옛 기사도의 전통을 지키는 성기사(聖騎士)들입니다. 여러 명의 소드 마스터들이 소속되어 있죠.”
팔라딘이라…….
“대체 누가 팔라딘들을 제압하고 황제를 시해한 겁니까?”
“그것이… 팔라딘들이 직접 황제 폐하에게 검을 들이댔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이번 반란을 주도한 것이 팔라딘 서열 1위인 제1황자 카롤루스 전하라고…….”
“……!”
제1황자 카롤루스.
그 이름은 예전에 한번 들어 본 적이 있다.
남부를 대표하는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으로 황실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비전서를 터득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황자가 자기 아버지인 황제를 죽였단 말인가?
“산중교단에서 전해 온 정보는 이게 전부입니다. 자세한 건 차후에 알려 주겠다고…….”
“그래, 알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는군. 이건 누가 봐도 자연스럽지 않아.”
“그렇지요.”
아그나르가 내 의견에 동의했다.
“이 타이밍에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는 건, 에인션트 드래곤들의 개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귀족 사회에 침투하여 분란을 일으킬 거로 보였는데, 아예 황실을 무너뜨리기로 방침을 전환한 걸까요?”
“그동안 우리가 니드호그의 얘기를 듣고 예상했던 것하고는 좀 다르게 돌아가고 있군요.”
“계획을 앞당겼을 수도 있습니다.”
니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카이트 공자님이 영구동토에서 귀환하는 것도, 요르문간드를 쓰러뜨리는 것도 놈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그래서 놈들도 계획을 앞당긴 거죠.”
“원래는 좀 더 단계적으로 진행했을 거라는 얘기입니까?”
“네, 놈들도 카이트 공자님의 전격적인 행보에 놀라서 성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거죠.”
니얼의 추측에도 일리가 있었다.
놈들은 에인헤랴르가 자신들의 계획을 방해하는 걸 우려하고 있다.
이번에 요르문간드가 침공해 온 것도 우리가 영구동토에 있는 사이 에인헤랴르의 본거지를 파괴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그러면 우리가 한발 늦은 겁니까?”
헤스테인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네?”
“놈들이 당초 계획을 수정해서 다급히 움직였다는 건,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였다는 것과 마찬가지야.”
“……!”
“우리가 파고들 구석이 있다는 얘기지.”
우리 상대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에인션트 드래곤이다.
놈들이 지혜를 모아 철저한 준비를 했다면 상대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놈들이 계획을 앞당겨 다급히 일을 진행하고 있다면, 분명 빈틈이 있을 터.
“이바르, 헤스테인, 프리드레이프.”
일단 나는 동생들을 불렀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대공비 전하를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해라. 그리고 친분이 있는 남부 귀족들 전부에게 편지를 작성하게 해.”
“큰형님, 아까 어머니의 편지를 보내 봤자 너무 늦다고…….”
“편지를 보내는 게 아니야. 우리가 들고 가는 거지.”
“네?”
헤스테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병력을 이끌고 남하한다.”
“……!”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다 눈을 크게 떴다.
“황제를 시해한 반역자 토벌을 명분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는 거다. 지금 당장.”
“카이트 형님, 아직 상황 파악도 안 되었는데 섣불리 움직이면…….”
“꾸물거리는 사이 놈들의 계획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너무 늦어. 정보는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계속 수집하면 되는 거니까.”
프리드레이프의 우려에 대답한 뒤, 나는 계속 말했다.
“현재 남부 귀족 사회도 혼란스러울 거야. 패륜을 저지른 황자를 단죄하겠다고 일어서는 귀족도 있을 테고, 새로운 황제에게 붙어서 충성을 바치겠다고 하는 귀족도 있겠지. 하지만 귀족의 대부분은 아직 방침을 정하지 못한 상태일 거야.”
만약 놈들의 계획이 좀 더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면, 여러 귀족을 포섭하여 사전 준비까지 끝내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군단을 이끌고 남하하면서, 각지의 귀족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할지 묻는 거다.”
“아, 그러면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 달라고 하는 건…….”
“그들을 설득하기 위한 무기 중 하나가 되겠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에인헤랴르에 있는 사람 중에서 남부 귀족들하고 말이 통할 만한 사람은 프레데군다 대공비 한 사람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북부에서 싸움질만 하던 사람들이니까, 남부에 인맥이 있는 그녀가 나서 줘야 한다.
“우리는 반역자를 처단하겠다는 명분으로 남하한다. 우리를 가로막는 귀족이 있다면 반역에 동조하는 세력이라고 처단하면 되겠지. 우리에게 동조해 주는 귀족들과 함께 제국 수도 메로베우스까지 내려가서 황자와 에인션트 드래곤의 음모를 저지하면, 우리들의 승리다.”
“……!”
에인션트 드래곤들이 황자를 움직여 황제를 시해한 덕분에 우리한테도 명분이 생겼다.
반역자 처단을 부르짖으며, 대대적으로 진군하여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묘수입니다, 카이트 공자님!”
니얼이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쪽 귀족들은 대부분 아직 태도를 결정하지 못했을 테고, 우리가 남쪽으로 진격하면서 분위기를 조성하면 됩니다! 잘하면 우리가 귀족들의 맹주가 될 수도 있겠죠!”
니얼의 말대로, 뒷수습까지 잘하면 에인헤랴르가 패권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아직 먼 얘기니, 굳이 지금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바로 준비를 시작하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남쪽으로 진군하여, 우리가 역적을 토벌한다.”
* * *
“이런 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아이들하고 의논하면서 작성해 봤습니다.”
프레데군다는 나에게 가죽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에는 프레데군다의 친필 편지가 가득 들어 있었다.
“제가 남부에 유학을 갔을 때 친분을 쌓았던 분들에게 편지를 써 봤습니다. 만나게 되면 전달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대공비 전하.”
프레데군다는 상당히 지친 표정이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마음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카이트, 저는 솔직히 드래곤들과의 싸움이 어떤 건지 잘 모릅니다. 다만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안주인으로서, 드래곤과의 싸움에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
“대공 전하가 쓰러지신 이상 전장에서 가장 앞장서야 하는 건 카이트, 당신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프레데군다가 고개를 숙였다.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공비 전하.”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대공 전하를 대신하여 드래곤을 쓰러뜨리는 검 역할을 하고 오겠습니다. 그러니 대공비 전하는 대공 전하가 돌아오시면 곁에서 보살펴 주셨으면 합니다.”
“카이트…….”
“대공 전하가 눈을 뜨셨을, 때 대공비 전하가 곁에 계시면 기뻐하실 겁니다.”
“그, 그럴까요?”
프레데군다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붉혔다.
‘어쨌든 프레데군다는 시구르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단 말이지.’
시구르드는 첫 번째 아내였던 브륀힐다에게 배신당한 기억이 있다.
그 탓에 두 번째 아내인 프레데군다에게는 냉랭한 태도였지만… 프레데군다는 진심으로 남편을 사모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들도 셋이나 낳았고 말이야.’
내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 프레데군다가 미심쩍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건가요?”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로 이상한 아이라니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프레데군다가 투덜거렸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대공비 전하.”
“아, 잠시만요.”
자리를 뜨려고 하자, 프레데군다가 나를 불러 세웠다.
“왜 그러시죠?”
“그동안 기회가 없어서 말을 못 했는데…….”
프레데군다가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바르의 다리를 고쳐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
“20년 넘게… 이바르 생각에 가슴 아프지 않았던 날이 없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프레데군다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바르는 마음껏 뛰어다니며 검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카이트.”
상당히 늦은 감사였다.
하지만 프레데군다도 나름대로 고민을 오래 했을 것이다.
우리 사이가 워낙 서먹서먹했으니까.
‘언제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을 했겠지.’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프레데군다와의 관계가 개선되면 내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니까.
‘새어머니라고 해서 언제까지고 어색하게 지낼 수는 없지.’
시구르드를 아버지라 느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프레데군다를 보면서 어머니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만 가족으로서 사이좋게 지내서 나쁠 건 없을 것이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대공비 전하.”
별것 아니라는 둥 겸양을 떨지는 않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떴다.
프레데군다의 방을 나오자 바깥에서 동생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엿듣기나 하고… 형제가 함께 뭐 하는 짓이냐.”
이바르는 살짝 울먹이는 표정.
헤스테인은 상당히 감격한 표정.
프리드레이프는 부드럽게 웃는 표정이었다.
나하고 프레데군다가 화해를 한 거라고 생각해서 저러는 걸까.
“그냥 필요한 대화를 나눴을 뿐이니까, 확대해석하지 마라. 가자.”
혀를 차면서 복도를 걸어가자, 세 사람은 바로 내 뒤를 따라왔다.
“카이트 형님.”
“뭐냐.”
프리드레이프가 나한테 다가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슬슬 어머니라 불러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깐죽대는 막내를 한번 째려본 뒤, 나는 대공궁 밖으로 향했다.
“카이트 님!
“공자님!”
대공궁 바깥에는 이미 수많은 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황룡기사단과 적룡기사단, 그리고 여러 기사대의 정예 기사들로 구성된 토벌대였다.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기사 제군.”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기사들을 둘러보며, 나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남쪽으로 내려간다. 황제 폐하를 시해한 대역죄인을 단죄하기 위한 것이다.”
“…….”
“하지만 오해하지 마라. 우리는 황제 폐하의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을 듣고, 몇몇 기사들이 흠칫 놀랐다.
관점에 따라서는 매우 불경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우리는 이 대륙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
“현재 이 대륙에 미증유의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남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모르는 척하는 건 무책임한 얘기다. 거대한 혼란이 북부까지 파급된 뒤 다급히 대처하려고 해 봤자 너무 늦다.”
남쪽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북부하고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북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전력을 다해 이번 원정에 임해야 한다.
“또한… 이번 원정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에인션트 드래곤들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
“구체적인 것은 불명이지만, 에인션트 드래곤은 남쪽에서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 정황상 이번 반란도 그 음모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 그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남부로 내려가 반란군과 싸워야 한다.”
그렇게 말한 뒤,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봤다.
내 동생들… 이바르, 헤스테인, 프리드레이프가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현재 부재중인 에인헤랴르 대공을 대신하여, 에인헤랴르의 대표로서 말하겠다.”
동생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채, 나는 기사들을 향해 선언했다.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남쪽으로 진군한다.”
평소 에인헤랴르는 북쪽을 향해 움직였다.
이번에는 반대 방향이었지만 해야 할 일은 차이가 없다.
우리는 그동안 했던 것처럼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모조리 쓰러뜨릴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용살검가 에인헤랴르가 어떤 가문인지, 북부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는 자신감을 공유한 채.
용살검가 에인헤랴르가 본격적인 진군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