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64
▣ 164화. 마룡을 토벌하라 (1)
크라시우스 후작을 격파하고 남부로 진입한 뒤.
우리는 파타니스 백작의 영지로 향했다.
프레데군다 대공비가 학창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프레데군다 님의 편지, 잘 읽었습니다.”
편지를 소중히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파타니스 백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카이트 공자님, 솔직히 저는 에인헤랴르 측에 의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레데군다 님의 편지를 읽으니… 최대한 협력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감사합니다, 파타니스 백작.”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감사를 드려야죠. 일부러 남쪽으로 내려와 역적 처단을 위해 움직여 주고 계시는데 말입니다.”
파타니스 백작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저희는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움직일 수 있는 병력도 많지 않은 데다가… 반란군의 위세가 엄청나서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네, 스피어 마스터로 유명한 칼테나이스 공작이 다른 귀족들과 함께 토벌군을 조성해 메로베우스로 진군했지만… 하루아침에 전멸했다고 하더군요.”
이건 새로운 정보였다.
스피어 마스터라면 9서클에 도달한 창의 명수일 텐데, 그런 사람을 앞세운 토벌군도 하루아침에 전멸했단 말인가?
“팔라딘들이 전부 제1황자에게 붙은 것 같습니다.”
“제1황자라면…….”
“카롤루스 전하… 아니, 이제는 전하라는 경칭을 붙일 필요도 없겠죠. 하여간 카롤루스는 원래 팔라딘들의 리더였습니다. 그래서인지 팔라딘들이 다 카롤루스를 지지하는 것 같더군요.”
카롤루스는 이번 반역의 주모자다.
아버지인 황제를 죽이고 메로베우스를 점거하고 있다고 한다.
“파타니스 백작, 대체 카롤루스는 무슨 생각으로 반역을 저지른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성명 같은 것도 없어서…….”
“본인이 제위에 오르겠다든가, 그런 것도 없는 겁니까?”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메로베우스를 점거하고 있을 뿐, 외부에 어떤 메시지도 발신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
수상한 얘기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반역을 저질렀으면 어떤 명분으로 행동했는지 세상에 알리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수도를 점거한 채 그냥 침묵만 하고 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은 건가?’
나는 에인션트 드래곤들이 모종의 대법(大法) 같은 걸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카롤루스가 제국 최대의 도시인 메로베우스를 점거한 채 침묵하고 있다면… 그 안에서 뭔가 비밀스러운 일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귀족들 사이에서 카롤루스를 지지하겠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아무런 성명도 없는데 말입니까?”
“네, 어차피 카롤루스가 차기 황제가 될 테니… 미리 줄을 서 둬야 된다는 생각이죠.”
“약삭빠른 사람들이군요.”
무슨 생각인지 이해는 된다.
지금 카롤루스가 침묵하고 있는 중이긴 해도, 어쨌든 황제를 죽였으니 자기가 다음 황제가 되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 미리 카롤루스 지지를 선언하면 훗날 자기들한테 유리할 거라는 생각이다.
“일부 귀족들은 아예 병력을 움직여서 메로베우스 주위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카롤루스를 수호하기 위해서 말입니까?”
“네, 어처구니없는 얘기죠. 카롤루스는 한마디도 안 하고 있는데, 자진해서 카롤루스 수호를 위해 움직이고 있으니…….”
“…….”
어쩌면 폴리모프를 한 에인션트 드래곤들의 짓일지도 모른다.
혹은 배룡주의를 신봉하는 귀족들이 드래곤 측의 지령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카이트 공자님.”
“네, 백작님.”
“정말로 역적들을 쓰러뜨릴 자신이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련한 소드 마스터인 아그나르 경을 비롯해, 우수한 기사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다들 북부에서 치열한 싸움을 경험한 실력자들입니다.”
“으음, 카이트 공자님도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하여 많은 드래곤을 쓰러뜨렸다고 들었습니다만…….”
“지금까지 수십 마리 정도 쓰러뜨린 것 같군요.”
“허어…….”
파타니스 백작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인지 잘 이해를 못 한 것 같았다.
‘역시 소문대로 남부 귀족들은 드래곤이 어느 정도로 위험한 존재인지 잘 모르는 것 같군.’
남부 사람들은 태어나서 드래곤을 볼 기회가 거의 없다.
드래곤이 남부까지 날아오기 전에 북부에서 에인헤랴르 등이 알아서 토벌해 주기 때문이다.
‘하긴 무림에서도 비슷한 게 있었지.’
무림에서 마교 세력은 주로 서쪽에서 활동했다.
그렇기 때문에 동쪽 지역의 명문 정파들은 마교의 위험성을 얘기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서쪽에서 마교 세력 때문에 여러 문파가 괴멸되는데도 원군도 보내지 않고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게 이것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드래곤 한두 마리 정도는 남부로 보내 놓을 걸 그랬나?’
어쨌든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에인션트 드래곤보다 카롤루스의 반역을 명분으로 남하하는 편이 귀족들의 협력을 얻기 쉽다.
물론… 남부 한복판에서 에인션트 드래곤이 본색을 드러내 엄청난 파괴를 불러일으키면 귀족들의 생각도 바뀌겠지만 말이다.
‘에인션트 드래곤이 얼마나 강대한 존재인지 목격하면, 귀족들도 위기감을 가지겠지.’
그러면 힘을 모아 에인션트 드래곤들에게 대응하는 것도 수월해질 터.
결국 내가 놈들을 유인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백작님, 협력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제 영지를 지나가는 동안에는 최대한 편의를 봐 드릴 테고, 근처의 다른 영주들에게도 내가 편지를 써 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북부로 귀환할 때도 이쪽 지역을 지나야 할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 * *
파타니스 백작의 영지를 통과하여, 우리는 더욱 남쪽으로 내려갔다.
여러 귀족과 접촉했지만, 태도는 각기 달랐다.
크라시우스 후작처럼 우리를 공격해 오는 귀족도 있었고, 파타니스 백작처럼 협조적인 태도로 나오는 귀족도 있었다.
함께 싸우게 해 달라는 귀족도 있었지만, 결국 거절했다.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중소 귀족들은 생각보다 군사력이 약해. 머릿수도 적고, 훈련량도 부족해서 오히려 아군에게 악영향만 될 거야.’
칼테나이스 공작처럼 제대로 된 군사력을 지닌 대귀족이라면 함께 움직였겠지만… 중소 귀족들의 도움은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보급 등의 후방 지원만 부탁하게 되었다.
‘좀 더 지방으로 내려가서 여러 귀족을 설득하고 다닌다면 병력을 충원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메로베우스에 도착하는 게 우선이지.’
우리들의 소식을 듣고 뜻있는 대귀족들이 자진해서 움직여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카이트 님! 전방에 이상한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바이콘을 타고 생각에 잠겨 있었을 때, 앞서가던 어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봐주셨으면 합니다!”
“왜 그러지?”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앞으로 나아갔다.
어윈이 서 있는 언덕 위로 올라서자, 내 눈에도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몬스터의 부화장 같습니다.”
“그렇군…….”
부화장은 몬스터들이 태어나는 웅덩이다. 지독한 악취를 발생시키는 연녹색 액체가 가득 차 있다.
다만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건 지금까지 봤던 부화장하고는 규모가 달랐다.
“크기가… 최소 10배는 되어 보이는데.”
“저도 저렇게 큰 부화장은 본 적이 없습니다. 엄청나게 커다란 몬스터가 태어나는 곳일까요?”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자, 니얼이 다가와서 고개를 내밀었다.
“확실히 크군요. 하지만 부화장의 크기하고 몬스터의 크기는 관계가 없을 텐데…….”
“니얼, 그러면 저 부화장은 왜 저렇게 큰 거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저렇게 평야 한복판에 커다란 부화장이 있는 것도 이상합니다. 근처에 마을도 있는 것 같은데.”
니얼 말대로 이상한 일이긴 했다.
저렇게 눈에 확 띄는데, 그동안 아무도 저 부화장을 파괴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다면… 에인션트 드래곤들의 짓이겠군.”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남부에 침투한 에인션트 드래곤이 여기다가 몬스터의 부화장을 만든 것이다.
“저 방향은 어느 귀족의 영지였지?”
“저쪽은… 루스바겐 백작의 영지군요. 특이사항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귀족이라면 저런 게 영지 한가운데에 나타난 시점에서 조치를 취했겠지.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걸 보면 뭔가 있는 모양이야.”
일단 가까이 가서 조사를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언덕을 넘어 부화장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중간에 있는 마을을 지나치려고 했을 때…….
“카이트 님.”
“디트리히?”
그동안 별도로 움직이면서 에인션트 드래곤 측의 동향을 조사하던 디트리히가 나타났다.
디트리히도 부화장을 살펴보고 있었던 걸까.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지?”
“마을에 살아 있는 인간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
살아 있는 인간이 한 명도 없는 마을이라.
그것하고 비슷한 광경을, 나는 영구동토에서 본 적이 있다.
“설마… 에인션트 드래곤에게 흡수당했다는 얘기인가?”
“아닙니다. 에테르를 대체하기 위한 에너지를 확보하려면 평범한 인간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용귀족이나 드래곤들만 가능하죠.”
“그러면 어떻게 된 거지?”
“부화장에 채워 넣을 유기물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
“저 마을뿐만이 아닙니다. 이 근방의 마을은 다 똑같습니다.”
디트리히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주의 저택도 텅텅 비어 있더군요.”
“그렇단 말이지…….”
눈살이 찌푸려지는 얘기였다.
에인션트 드래곤들이 정말로 남부에서 사악한 음모를 진행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디트리히, 혹시 저 부화장이 어떤 건지 알 수 있나?”
“저 부화장이 무엇을 탄생시키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렇게 거대한 부화장을 만들 수 있는 에인션트 드래곤은 알고 있습니다.”
“어떤 놈이지?”
“마룡(魔龍) 아지다하카입니다.”
마룡 아지다하카.
지난번에 니드호그한테 들었던 이름이다.
요르문간드 등과 함께 폴리모프를 사용해 남쪽으로 침투한 에인션트 드래곤 중 하나였다.
“아지다하카는 수없이 다양한 마법적 능력을 지닌 에인션트 드래곤입니다. 최소 천 개 이상의 능력을 지녔다고 하더군요.”
“저런 부화장을 만드는 것도 아지다하카의 능력인가?”
“네, 영구동토에서도 저것과 비슷한 부화장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남부로 내려와서 에인션트 드래곤의 행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하지만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다.
“일단 파괴하는 편이 좋겠군.”
부화장에 차 있는 연녹색 액체는 불을 붙이면 폭발한다.
몬스터를 생산하기 전에 없애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부화장 쪽으로 가려 했을 때… 이변이 발생했다.
‘이 느낌은……!’
부르르르르!
부화장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냄비에서 물이 끓어오르는 것처럼 수없이 많은 거품이 올라오고 있었다.
“갸아아아……!”
“……!”
그리고 부화장에서 몬스터가 출현했다.
처음에 예상한 것처럼 거대한 몬스터가 출현한 건 아니었다.
도마뱀 같은 몬스터였는데, 크기는 드레이크와 비슷했다. 드레이크와는 달리 두꺼운 비늘은 없고, 표피가 끈적거리는 점액으로 뒤덮여 있을 뿐이라 방어력은 그다지 높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숫자가 문제였다.
“세, 세상에!”
“왜 저렇게 많이 기어 나와?!”
배후에서 부하들이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몇 마리일까. 수백 마리? 수천 마리?
저 부화장은 대량의 몬스터를 단숨에 생산하기 위해 저렇게 거대한 크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디트리히.”
나는 눈썹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만약 아지다하카가 저런 부화장을 이곳 말고도 여러 군데 설치해 놨다면… 어떻게 될까.”
“…….”
디트리히가 침묵했다.
그런 디트리히를 내버려 둔 채 나는 앞으로 나섰다.
“에인션트 드래곤들은 이 세상을 지옥처럼 만들고 싶은 모양이군.”
갸아아, 갸아아, 갸아아아.
수없이 많은 몬스터가 울음소리를 내며 우리를 향해 돌진해 왔다.
배후에 있는 부하들이 다급히 전투 준비를 하는 걸 느끼면서,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거다.”
발뭉과 노퉁.
극음과 극양의 신화병장을 들고, 에테르를 끌어올렸다.
수라무극신공이 펼쳐져 거대한 빛이 몬스터들을 휩쓸었다.
“내가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마룡 아지다하카.
다음에 쓰러뜨려야 할 에인션트 드래곤이 정해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