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67
▣ 167화. 마룡을 토벌하라 (4)
아지다하카가 만든 ‘시공의 상자’에 갇혔을 때는 솔직히 좀 난감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상한 공간에 나 홀로 격리된 상태가 되었으니까.
1천 개의 마법을 쓴다는 소문대로 정말 기상천외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무림에서도 비슷한 게 있긴 했다.
‘사람을 가두는 진법(陣法)은 여러 번 경험해 봤으니까.’
물론 이렇게 좁은 공간에 완전히 가둬 버리는 진법은 무림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리 내지는 개념은 일부 공통되어 있을 터.
그렇다면 파훼하는 방법도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 진법을 파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지.’
언제 어느 때나 통하는 방법.
그것은 진법을 펼친 사람이 상정하지 못한 위력의 공격으로, 진법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진법이라도… 극강의 무공 앞에서는 무용지물인 법이다.’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공간에 갇힌 상태였지만, 정신을 집중하고 사방에 기를 뻗으니 취약한 부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곳을 향해 에테르의 힘을 끌어낸 공격을 가했더니, 공간 전체가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상자 속에 가둔 거니, 상자를 부수면 탈출 가능한 거지.’
그렇게 상자에서 탈출한 뒤, 계속 부화장 속에 있었던 노퉁으로 아지다하카를 기습했다.
그리고 허를 찔린 아지다하카에게 수라백강검을 전개한 분노검 그람을 휘두른 것이다.
“크아악……!”
찬란하게 빛나는 칼날이 아지다하카의 육체를 파고들었다.
파프니르의 드래곤 오브에서 끌어낸 에테르의 힘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아지다하카의 방어 마법을 뚫고 그 육체에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폴리모프로 인간 형태가 되었다고는 해도, 육체의 강도까지 인간하고 동일해진 건 아니야.’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바로 두 동강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지다하카의 육체는 너무 단단했다. 수라백강검을 사용한 상태에서도 베는 게 쉽지 않았다.
‘요르문간드보다 더 단단해. 육체 자체를 마법으로 강화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고는 해도, 벨 수 없는 건 아니다.
나는 전력을 다해 아지다하카의 육체를 절단하려 했다.
“이 따위……!”
아지다하카가 목소리를 높인 순간.
내 머리 위에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어서 내 배후에서도 무수히 많은 마법이 전개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죽어라, 카이트 에인헤랴르!”
내 육체를 노리고 다양한 마법이 쏟아지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소용없습니다!”
파앗!
디트리히가 휘두른 오러 블레이드가 내 머리 위에서 쏟아지던 벼락을 방어해 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돕겠습니다, 카이트 님!”
팟! 파팟!
어느새 달려온 아그나르가 내 배후를 덮치려던 빙창(氷槍)을 모조리 격파해 줬다.
‘고맙군.’
마음속으로 감사를 표하면서, 나는 전신의 힘을 극대화했다.
그람이 아지다하카의 몸을 더 파고들었고, 마침내 심장 근처까지…….
“으으으윽!”
갑자기 아지다하카의 육체에서 흉흉한 기운이 솟구쳤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숨통을 끊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 기운에 휘말리면 내 몸이 견디지 못한다.’
즉각 거리를 벌렸다.
요르문간드와 싸울 때 경험해 봤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는 알고 있었다.
“카이트 님!”
“다들 물러서라.”
몬스터들을 쓰러뜨린 기사들이 집결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손짓을 했다.
“에인션트 드래곤이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까.”
“……!”
쿠쿵!
부화장의 잔해를 짓밟으면서, 전신에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황색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집은 요르문간드보다 훨씬 작고, 파프니르와 비슷한 정도였다.
하지만 특이한 부분이 있었는데, 머리가 세 개라는 점이었다.
“하등한 인간 주제에, 내 몸에 상처를 입히다니……!’
저것도 이구동성(異口同聲)이라 해야 할까.
세 개의 입에서 동시에 목소리가 나왔다.
“이 굴욕은… 너와 네 부하들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으로 해소하도록 하겠다!”
아지다하카가 여러 개의 마법을 동시에 준비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아지다하카.”
“뭐냐……!”
“그 몸에 새겨진 문양이, 네가 사용하는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건가?”
그 질문을 던진 순간, 아지다하카가 거대한 몸을 움찔했다.
* * *
아지다하카는 귀를 의심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예상 밖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네놈, 무슨…….”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던 거지만, 너는 근접전에 약하더군.”
“……!”
“내가 네 몸을 썰어 버리려 하고 있을 때도, 가까운 거리에서 발동하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마법을 전개하여 나를 덮치도록 했지. 혹시 네가 사용하는 마법은 거리 조절이 어려운 거 아닌가?”
카이트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아지다하카의 공격용 마법은 항상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개되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전개된 마법은 방어용 마법 정도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지. 네가 사용하는 마법은 유효 거리나 범위 등을 조절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정해져 있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
“그런 상태에서 네 몸에 잔뜩 새겨져 있는 문양을 보고, 불현듯이 떠오른 거다. 옛날에는 그런 식으로 마법을 육체에 저장하여 사용하는 방식이 있다고 들었거든.”
“네놈… 마법에도 조예가 있었나.”
“마법을 전문으로 연구하던 사람한테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을 뿐이야.”
귀살마가 크레스니크를 통해 들은 것일까.
확실히 그곳이라면 이 ‘마법 각인’ 기술의 정보가 있을 법도 하다.
아지다하카는 다른 드래곤이나 인간 마법사처럼 매번 술식을 구성하여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육체에 이미 각인되어 있는 술식을 활성화하여 마법을 발동하기 때문에, 마법의 유효 거리나 범위 등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없다.
“내가 듣기로 마법이라는 건 원래 신화시대의 신들이 사용하던 힘으로… 인간도, 드래곤도 그걸 흉내 내고 있을 뿐이라고 하더군.”
카이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화시대의 마법은 대부분 소실되어, 현대인들은 자연의 힘을 끌어내는 마법 등 극히 일부 마법만 사용할 수 있는 상태지. 이건 드래곤들조차 큰 차이는 없다고 하고.”
“…….”
“하지만 너는 다양한 마법을 사용하고 있지. 그 비결은… 신화시대의 마법을 그 육체에 그대로 새겨 놓은 상태이기 때문 아닌가?
카이트의 추측은 정확했다.
아지다하카는 1천 개 이상의 마법을 사용한다. 다른 에인션트 드래곤들이 망각해 버린 ‘고대 마법’도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신화시대의 온갖 마법을 육체에 각인해 놨기 때문이다.
“어째서 너는 다른 에인션트 드래곤과는 달리 그런 몸을 갖고 있는 거지? 그 각인은… 스스로 네 몸에 새긴 건가?”
“대체…….”
아지다하카는 동요하면서 질문했다.
“왜 그런 것에 관심을 갖는 거냐.”
준비하던 마법조차 중단한 상태였다.
묻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너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정보다. 혹시 너는 신화시대의 마법에 관심이 있나? 신화시대의 마법을 쓰고 싶은 건가?”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딱히 신화시대의 마법을 쓸 생각은 없어.”
“그래, 너한테는 정말로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다. 나를 쓰러뜨리는 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무의미한 얘기를 하려는 걸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희를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지.”
“뭐라고?”
“에인션트 드래곤, 너희들이 이 세상에 왜 존재하는지,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지… 그런 걸 알아내서, 너희들을 이해하고 싶은 거다.”
이해하고 싶다.
그 말은 아지다하카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는 말이었다.
“너에게 우리는 반드시 쓰러뜨려야 할 적이다. 그런데… 우리를 이해하고 싶다는 건가?”
“그래.”
“…….”
이게 정말 하등한 존재인 인간의 발언이란 말인가.
아지다하카는 정말로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이 카이트와 대등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하등한 인간 따위하고는… 말을 섞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했었는데…….’
아지다하카는 카이트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다.
카이트는 이제 더 이상 아지다하카에게 하등한 존재가 아니었다.
대등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상호 이해를 진행할 만한 존재였다.
“…….”
하지만.
아지다하카는 자신의 욕망을 억눌렀다.
저 남자와 교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
“나는 더 이상 너에게 해 줄 말이 없다.”
아지다하카에게는 사명이 있다.
자신을 포함한 에인션트 드래곤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여기서 카이트와 대화를 나눠 상호 이해를 증진시켜 봤자, 사명을 수행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너희 인간들, 우리 드래곤들… 양자(兩者)는 서로 양립할 수 없다. 서로 간의 존중, 서로 간의 이해는 성립할 수 없다.”
“…….”
“그렇기에 나는 너와의 대화를 거부한다.”
아지다하카는 전신의 마법 각인을 활성화시켰다.
최대한 많은 마법을 사용해,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죽일 생각이었다.
에너지 소비가 격심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네 결론인가, 아지다하카.”
“그렇다.”
“그러면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도 없겠군.”
카이트가 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지다하카는 수백 개의 마법을 동시에 전개했다.
최후의 공방이 시작되었다.
* * *
무수히 많은 마법이 나에게로 쏟아졌다.
나는 모든 마법을 방어 혹은 회피하면서 아지다하카에게 접근했다.
아지다하카에게 각인되어 있는 공격 마법들은 대부분 원거리전을 대비한 것일 테니,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나에게 유리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지다하카가 나한테만 공격을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군.’
만약 아지다하카가 후방의 기사들한테까지 마법을 난사했다면 인명 피해가 엄청났을 것이다.
하지만 아지다하카는 나를 쓰러뜨리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 것 같았다.
‘전력을 다해 줘서 고맙다, 아지다하카.’
나 또한 전력을 다하면서 아지다하카에게 쇄도했다.
공격 마법의 장막을 뚫고 접근하자, 아지다하카가 여섯 개의 눈을 부릅뜨는 모습이 보였다.
‘파프니르와 마찬가지로, 높이 날아올라서 거리를 벌리지는 못하는군.’
아마 아지다하카도 한계에 가까워진 상태일 것이다.
빠르게 움직일 수도 없을 테고, 내 돌진에서 거리를 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바로 그때.
“카아아아……!”
세 방향에서 포효가 터져 나왔고.
아지다하카가 모든 턱을 동시에 벌렸다.
‘드래곤 브레스!’
머리가 세 개니, 드래곤 브레스도 동시에 세 번을 날릴 수 있는 걸까.
아지다하카의 체내에 남아 있던 에테르가 모조리 머리로 집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내 몸에 강제로 새겨진 각인들과는 별개의 힘! 원룡(原龍) 티아매트에게서 이어받은, 우리 드래곤들만의 권능!”
아지다하카가 여섯 개의 눈을 부릅뜨고 포효했다.
“우리 드래곤들의 미래를 위해, 내 모든 존재를 걸고 너를 소멸시켜 주겠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브레스의 방출을 알리는 빛이 번쩍이는 것과 동시에.
나는 아까 한계까지 힘을 끌어낸 노퉁을 제외한 세 자루의 신화병장… 그람과 발뭉, 그리고 칼라드볼그를 일제히 사출했다.
세 개의 브래스와 세 개의 신화병장이 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