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68
▣ 168화. 마룡을 토벌하라 (5)
좌측에서 날아온 브레스와 발뭉이 격돌했다.
발뭉에서 발현된 에테르가 흑색의 냉기가 되어 브레스의 열기를 중화시켰다.
우측에서 날아온 브레스와 칼라드볼그가 격돌했다.
칼라드볼그에서 발현된 에테르가 청색의 번개가 되어 브레스를 산산이 흩어 버렸다.
중앙에서 날아온 브레스와 그람이 격돌했다.
그람에서 발현된 에테르가 백색의 빛이 되어 브레스의 기운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그리고 브레스를 뚫고 솟구친 세 자루의 검이 각자 아지다하카의 머리에 박혔다.
* * *
“…….”
한계까지 내공을 사용했기 때문에, 온몸이 무거웠다.
파프니르의 드래곤 오브에서도 에테르의 힘을 최대한 끌어낸 상태라, 여기서 만약 다른 드래곤이 공격해 온다면 대응할 수 없을 것이다.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텐데 말이야.’
성장이 더딘 것에 아쉬움을 느끼면서, 아지다하카에게 시선을 향했다.
세 개의 머리를 치켜들며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던 아지다하카는… 지금 땅에 쓰러져 있었다.
“…….”
브레스의 힘을 흡수한 그람에 의해 중앙의 머리는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좌우 양쪽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두 번 다시 일어서는 일이 없을 것이다.
“너의 승리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오른쪽 머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등한 존재라고 얕보던 인간에게… 이렇게 패배를 맛보게 되는군.”
“…….”
“이제는 내가 하등한 존재인 것인가……?”
그 질문을 듣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생명으로서의 상하 관계는 존재하지 않아.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다 같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필멸자에 불과하지.”
“필멸자라… 그렇군.”
오른쪽 머리에서의 목소리는 그걸로 끊겼다.
그 대신 왼쪽 머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내 패배가 우리 에인션트 드래곤들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브리트라의 계획은… 지금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 테니까.”
그 이름을 듣고,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브리트라가 이번 작전을 주도하고 있는 거군.”
수룡(水龍) 브리트라.
물을 조종하는 힘을 지닌 에인션트 드래곤으로, 먼 옛날 전 세계의 강물을 말려서 대대적인 가뭄을 불러일으켰다는 전설이 있다.
니드호그의 말에 의하면 브리트라가 메로베우스에서 모든 것을 지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아지다하카, 너희는 제국 황실을 장악해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그것까지 말해 줄 수는 없지…….”
아지다하카가 작게 웃었다.
“하지만… 아무리 네가 강하다고 해도, 브리트라의 계획을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
“인룡대전은… 우리들의 승리로 끝난다.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아지다하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슬슬 왼쪽 머리도 한계에 도달한 듯했다.
“너희들이 가축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이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구나…….”
“…….”
“그러면 나도 이제… 사명에서 해방…….”
왼쪽 머리에서 들려오던 목소리도 끊겼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아지다하카의 전신이 모래처럼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파프니르, 요르문간드와 마찬가지로 사체를 남기지 않고 소멸하기 시작한 것이다.
“…….”
신비로운 광경에 주위의 기사들이 숨을 삼켰다.
이윽고 아지다하카는 완전히 사라져,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정말로… 소멸한 건가?”
“에인션트 드래곤을 쓰러뜨린 거야?”
“카이트 님이, 에인션트 드래곤을 해치우셨어!”
“와아아! 카이트 님, 만세! 만세……!”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나는 에인션트 드래곤을 두 마리 쓰러뜨렸지만, 이렇게 기사들 눈앞에서 쓰러뜨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에인션트 드래곤이 쓰러지는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봐서… 다들 실감하게 된 모양이군.’
에인션트 드래곤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검으로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다.
그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앞으로의 전투에서 더욱 자신감 있게 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카이트 님이 있다면, 에인션트 드래곤도 두렵지 않다!”
“그래, 카이트 공자님을 믿고 함께 싸우는 거다!”
모르트와 슈데르츠 등이 목소리를 높이는 걸 들으면서, 나는 아지다하카가 쓰러져 있던 자리로 걸어갔다.
역시 아지다하카의 드래곤 오브는 거무튀튀한 색으로 변질되어 있었고, 내가 손을 대기도 전에 깨져 버렸다.
지난번 요르문간드 때와 마찬가지였다.
‘이래서는 드래곤 오브를 추가로 얻기 어렵겠군. 제대로 된 드래곤 오브를 얻으려면… 영구동토의 니드호그를 쓰러뜨리는 수밖에 없나?’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니드호그의 용공작인 디트리히가 다가왔다.
“역시 드래곤 오브가 불안정하군요. 대체 에너지를 흡수한 에인션트 드래곤들은 다 저런 상태일 겁니다.”
“그런 모양이야.”
그렇게 대꾸한 뒤, 나는 디트리히의 얼굴을 쳐다봤다.
“디트리히.”
“네?”
“아까 아지다하카가 이상한 표현을 쓰더군.”
내 말을 듣고 디트리히가 눈을 깜박였다.
“소멸하기 직전, 아지다하카는 인간이 ‘가축’으로 전락할 거라고 말했어.”
“……!”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정보를 생각하면… 조금 위화감이 있단 말이지.”
디트리히가 숨을 삼켰다.
“나는 단순히 놈들이 인간을 모조리 갈아 버려서 그 생명력으로 에테르를 대체하려는 거라 생각했어.”
“…….”
“근데 ‘가축’이라 표현하는 걸 보면 그게 아닐 것 같단 말이지.”
모든 인간을 몰살시켜서 생명력을 흡수하려는 거라면, 가축이라 부를 이유가 없다.
“디트리히, 무슨 뜻이라 생각하지?”
내 질문을 듣고, 디트리히가 입술을 깨물었다.
* * *
제국 수도 메로베우스.
대륙을 지배하는 제국의 중심지로서, 신성불가침의 존재인 제국 황제가 군림하는 곳.
기사도의 전통을 이어받은 팔라딘들이 수호하는 기사의 도시이자, 매일같이 무도회가 열리며 귀족들이 우아한 대화를 나누는 사교의 도시.
하지만 현재 메로베우스는…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다.
사람들로 가득하던 거리에는 개미 새끼 하나 지나다니지 않고 있었으며, 귀족들의 저택이 모여 있는 주택지도 조용하기만 했다.
심지어 성벽을 지키는 경비병조차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그나마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은… 도시 정중앙에 위치한 황궁뿐이었다.
“…….”
조용한 황궁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주름살이 가득한 노인으로,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옷을 걸치고 있었다.
정문을 지키는 경비병들은 그를 가로막지 않았다.
공허한 눈으로 한번 쳐다봤을 뿐, 한마디 말도 걸지 않았다.
“…….”
황궁 안으로 발을 들이자, 비로소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다들 높은 지위의 황제파 귀족들이다. 아니, 황제파 귀족이었던 인간들이다.
그들은 온갖 감언이설을 입에 담으며 접근했지만, 노인은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침묵을 지킨 채, 곳곳에 핏자국이 있는 복도를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알현실 앞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화려한 예복을 입은 기사들이 알현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메로베우스가 자랑하는 성기사(聖騎士) 팔라딘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긍지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알현하겠다.”
“네.”
팔라딘들이 알현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화려하고 웅장한 내부가 드러났다.
곳곳에 핏자국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현실의 위엄이 손상되는 것은 아니었다.
“밤에는 좋은 꿈을 꾸셨습니까, 폐하.”
“폐하라고 부르지 마라, 수르고뉴 공작.”
옥좌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한 건, 은색 머리카락의 청년이었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녔으며, 균형 잡힌 체구의 소유자였다.
“나는 아직 제위에 오르지 않았으니까.”
“실례했습니다, 카롤루스 전하.”
카롤루스.
제국의 제1황자로서, 아버지인 황제를 살해하고 메로베우스를 점거한 남자.
그는 황제만이 앉을 수 있는 옥좌에 앉아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만있자. 그러면 나도 너를 정확하게 불러야겠군.”
“개의치 마십시오, 전하.”
“아니, 이제는 딱히 숨길 필요도 없으니까 말이다.”
카롤루스가 몸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나, 브리트라?”
브리트라.
황제파 귀족의 중진인 수르고뉴 공작으로 위장하여, 카롤루스와 함께 이번 반란을 주도한 에인션트 드래곤.
그가 카롤루스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습니다.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북쪽에서 소란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던데.”
카롤루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북부대공의 아들…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기사단을 이끌고 남하하고 있다던데 말이다.”
“소문을 들으셨군요. 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가?”
“북쪽 변방의 야만인들 따위가, 팔라딘들이 수호하는 이 메로베우스를 위협할 수 있겠습니까.”
“흐음…….”
“게다가 바깥에는 우리를 지지하는 귀족들이 사병을 이끌고 진을 치고 있습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여기까지 쳐들어올 리 없으니, 걱정 마십시오.”
“걱정? 누가 걱정을 한단 말이냐.”
카롤루스가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만에 하나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쳐들어온다고 해도, 내가 쓰러뜨리면 된다.”
“…….”
“솔직히 나는 그놈하고 한번 싸워 보고 싶으니까 말이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고 하니.”
카롤루스도 소드 마스터다.
황실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전서의 내용을 완전히 습득하여 9서클에 도달했다.
그 실력을 바탕으로 팔라딘의 리더 자리를 맡고 있었으며, 팔라딘의 리더만이 휘두를 수 있는 ‘성검’ 뒤랑달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브리트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내가 그 녀석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카이트 에인헤랴르라고 해도… 카롤루스 전하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나?”
“물론입니다.”
고개를 숙인 채 브리트라가 대답했다.
“전하는 진정한 불사의 영약… 암리타를 복용하여 지상 최강의 힘을 손에 넣으셨으니 말입니다.”
“지상 최강이라, 가슴 설레는 말이군.”
카롤루스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허황된 소리는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브리트라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희 드래곤들은 오로지 카롤루스 전하만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을 구원해 주실 분에게 어찌 허황된 소리를 하겠습니다.”
“흐음, 그런가?”
“저희들은 카롤루스 전하야말로 인간과 드래곤의 영원한 화평을 실현시킬 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계속 고개를 숙인 채, 브리트라가 말했다.
“카롤루스 전하는 드래곤을 거느리고 모든 인간들을 지배하는 존재… 용황제(龍皇帝)가 되실 겁니다.”
용황제.
그 이름을 듣고 카롤루스는 크게 웃었다.
“좋다. 너희들만 믿겠다, 브리트라.”
“전하가 이 세계의 정점에 오르실 때까지, 저희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대답에 만족하면서 카롤루스는 미소를 지었다.
깊게 고개를 숙인 노인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