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7
▣ 17화. 파죽지세 (1)
대공령에서 지원 병력이 왔다.
용살검가의 막내, 즉, 프리드레이프 에인헤랴르가 이끄는 기사대였다.
“드디어 기사대를 이끌게 되었군.”
“네, 형님 덕분입니다.”
프리드레이프의 기사대는 오십 명 정도였다.
기사대라고 해도 전투밖에 못하는 건 아니다. 행정 등에 경험이 있는 베테랑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 유르고스 남작령을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윗대가리들은 족치는 건 다 끝났지만, 그다음부터는 우리 셋으로는 역부족이라서 말이다. 뒷일은 맡기도록 하지.”
“정말로… 다 뒤집어엎으셨군요.”
프리드레이프는 유르고스 남작령의 상황을 점검하며 감탄했다.
스칸센과 페루스는 이미 처단했고, 집사 등 측근들은 심문을 마친 뒤 투옥시켜 놨다.
병사들도 무장을 해체한 채 대기하고 있어서, 프리드레이프의 기사대는 뒤처리만 해주는 되는 상태였다.
“알겠습니다, 형님. 뒷일은 맡기시고, 이제는 다음 명령을 수행하십시오.”
“다음 명령이라.”
“아버지는 형님에게 배룡주의자의 뿌리를 뽑으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프리드레이프는 명령서를 꺼냈다.
“보내주신 정보에 의하면, 스칸센 유르고스는 크란켈 자치도시에서 아카샤니그두의 하수인과 접촉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렇다고 하더군.”
크란켈 자치도시는 이 근방에 있는 상업 도시라고 한다.
특정 귀족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치령인데, 상업뿐만 아니라 유흥업도 발달되어 있어 범죄가 다발한다는 것 같았다.
“집사 등의 증언에 의하면, 스칸센과 페루스는 크란켈 자치도시에서 제일가는 유흥업소인 프레이야 클럽에서 아카샤니그두의 하수인을 만나 왔다고 했어. 항상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프레이야 클럽 내부의 사람인 것 같다고 하더군.”
“자치도시는 워낙 무법지대니까, 배룡주의자가 숨어 있기 좋은 곳일 겁니다. 문제는…….”
프리드레이프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프레이야 클럽이 배룡주의자들의 소굴이라고 해도, 우리가 크란켈로 군대를 보내 토벌하는 건 어렵습니다. 황제 폐하가 인정한 자치권을 침해하는 거니까요.”
“같은 귀족인 남작을 척살하는 건 문제가 없으면서, 귀족이 없는 자치도시에 쳐들어가는 건 안 된다는 건가?”
“자치도시는 황제 폐하에게 직접 세금을 바치고 있습니다. 귀족들끼리 싸우는 건 그냥 세력 다툼이지만, 자치도시로 쳐들어가는 건 황제에 대한 도발 행위죠.”
“정치적 문제인가. 복잡하군.”
“네, 그래서…….”
“일단 내가 먼저 들어가서 살펴보라는 얘기군.”
시구르드의 새로운 명령.
그것은 자치도시 크란켈로 들어가서 배룡주의자를 색출해 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도 너무하시군. 유르고스 남작 문제만 해결하면 기사대를 만들게 해 준다고 하시더니.”
“아, 그건…….”
“그냥 해 본 소리다. 신경 쓰지 마라.”
크란켈에 기사대 수준의 병력을 투입하면 정치적 문제로 발전할 위험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투입하는 것이다.
나한테 기사대를 맡기겠다는 약속도 뒤로 미룬 채.
“형님.”
“뭐냐.”
“아버지가 형님을 상당히 신뢰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프리드레이프가 복잡한 심정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만약 이게 저였다면 아버지가 이런 명령을 내리시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것이지.”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건 신뢰라기보다는 이해의 문제야.”
“이해의 문제라고요?”
“아버지는 내 성질을 이미 이해하신 상태지.”
내가 이쪽 세계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시구르드는 나한테 어떤 일을 맡기면 좋을지 빠르게 파악한 것 같았다.
“적당한 곳에 던져 놓으면 알아서 칼춤을 춰 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겠지.”
“형님…….”
“현시점에서 아버지는 나한테 그것만 기대하고 계신 상태다. 실제로 남작령 뒷수습은 내가 아니라 너한테 맡기셨지.”
카이트 에인헤랴르는 얼마 전까지 밥만 축내던 놈이었다.
그런 놈에게 이런 임무를 연달아 맡긴다는 건, 적어도 이런 임무만은 제대로 할 수 있는 놈이라고 시구르드가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라는 뜻이다.
“아버지가 내 칼춤을 기대하고 계신다면, 자식 된 도리로서 그 기대를 충족시켜 줘야겠지.”
칼춤을 추는 것 외에도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차차 보여 주면 될 것이다.
* * *
프리드레이프에게 유르고스 남작령을 맡긴 뒤, 나는 자치도시 크란켈로 향했다.
어윈과 모르트도 계속 나를 수행하게 되었다.
‘번잡한 도시군.’
크란켈에 발을 들이자, 도시 곳곳에서 시끌벅적한 호객소리가 들려오는 걸 알 수 있었다.
상인들의 호객만이 아니다. 주점, 도박장, 사창가 등 유흥업에 종사하는 자들의 호객소리가 도시 곳곳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윈, 모르트, 여기에 와 본 적 있나?”
“저는 없습니다.”
“예전에 휴가 때 동료들과 몇 번 와봤습니다. 질펀하게 놀기 좋은 곳이죠.”
모르트가 웃으면서 말했다.
“크란켈은 카이트 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예전부터 자주 다니셨다고 아는데요.”
“모르트, 말조심해!”
“어이쿠,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카이트는 여기까지 와서 유흥을 즐겼던 것 같다.
여기서 고틀란드는 꽤 거리가 있고, 남들 눈을 신경 쓰지 않고 놀려면 여기가 더 나을 것이다.
‘고틀란드에는 볼 수 없었던 큰 가게도 있고 말이다.’
고틀란드에도 유흥가는 있었지만, 다들 고만고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가게 하나하나가 크고 요란했다.
특히 도시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휘황찬란한 가게가 인상적이었다.
‘기루가 생각나는군.’
중원에 있을 때, 기루에도 종종 방문한 적이 있다.
자진해서 놀러간 일은 거의 없었고, 주로 임무 때문이었다.
흑사련과 연결되어 있는 기루가 많았으니까.
“아, 저기가 프레이야 클럽입니다.”
모르트가 손을 치켜들고 말했다.
“크란켈에서 가장 큰 가게인데… 저희는 회원 자격이 없어서 들어갈 수 없겠군요.”
“그런가?”
“카이트 님이야 이미 회원이실 테니 자유롭게 드나드실 수 있겠죠. 쩝, 부럽습니다.”
카이트 놈이 유흥을 즐겨온 덕분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건가.
“카이트 님, 일단 오늘은 적당한 숙소에서 묵으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너희들도 쉬어야 하니까.”
어윈의 제안을 받아들여, 우리는 근처 여관에 들어가 말을 맡기고 짐을 풀었다.
나를 알아봤는지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 * *
늦은 밤.
옆방에서 모르트가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옷을 챙겨 입었다.
최대한 가벼운 차림이었지만, 그래도 허리에 칼은 찬 상태였다.
그런 모습으로 나는 여관을 나와 대로로 향했다.
목적지는 여기서 가장 큰 유흥주점… 프레이야 클럽이었다.
“어, 카이트 님 아닌가!”
길을 가던 도중, 말을 걸어온 한량이 있었다.
이미 술에 취한 듯 얼굴이 붉게 물든 상태였다.
“크란켈에 오는 게 얼마 만이지? 반갑네!”
“누구였더라?”
“아이고, 벌써 잊어먹었어? 하긴 내가 요새 머리 스타일을 바꾸긴 했지!”
남자가 앞머리를 넘겨 이마를 까면서 웃었다.
“나야, 아스타스 상단의 오케아스!”
“오케아스, 너였나.”
대충 아는 채를 해봤다.
“근데 오늘 말투가 왜 이리 딱딱해? 뭐 안 좋은 일 있었어?”
“그런 게 있었지.”
“쯧, 그러면 확 풀어 버려야지!”
오케아스라는 남자는 나에게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낀 듯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내 어깨에 팔을 올려놓았다.
“프레이야 클럽 갈 거지? 안 그래도 나도 오늘은 프레이야 갈 생각이었으니까, 같이 가자고.”
“그러지.”
나에게 오케아스는 난생처음 보는 상대였지만, 말을 맞춰 주면서 프레이야 클럽으로 향했다.
커다란 건물 입구에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들이 서서 출입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카이트 님, 오케아스 님.”
그들이 우리를 보자마자 깍듯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말단 종업원들까지 알아보는 걸 보면 확실히 우리가 단골이긴 한 모양이다.
“오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카이트 님, 어떻게 할 거지?”
“평소대로.”
“평소대로 3층에 자리 만들어 줘. 릴리네와 소피느 불러주고.”
알아서 척척 진행해 줬다.
번거로운 일을 다 처리해 주니 편했다.
“안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안쪽으로 들어가니, 어떤 구도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1층에 커다란 원형 경기장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경기장을 둘러싸고 3층까지 객석이 만들어져 있었다.
좌석의 밀집도를 보면 위로 갈수록 상급 고객들을 위한 자리 같았다.
‘꽤 늦은 시간인데도 손님이 많군.’
우리는 3층의 명당자리를 안내받았다.
고개를 내밀어 보니 1층 경기장에서는 청소부들이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바닥에 흩어진 살점과 핏자국을 치우는 중으로 보였다.
“방금 전에 경기가 끝났습니다. 곧 다음 경기가 시작될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다음 경기?”
“카이트 님이 좋아하시는 이종 투기입니다.”
종업원이 공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음 경기에는 베테랑 검사가 리자드맨과 싸웁니다. 재미있으실 겁니다.”
“…….”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탁자 위에 술과 안주가 차려졌다.
가짓수만 적었지 유르고스 남작령에서 대접받았던 것보다 질적으로는 훨씬 나아 보였다.
그리고 어느새 종업원은 사라지고, 노출도가 높은 의상을 입은 여자들이 우리 옆자리에 앉았다.
“어머, 오케아스, 오늘도 또 왔어요? 카이트 공자님도 오랜만에 오셨네요?”
“후후, 그럼 저는 카이트 공자님 옆에 앉아야겠네요.”
그녀들은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하며 각각 우리 옆자리에 앉았다.
경기를 관람하는 동안 술시중을 드는 역할인 것 같았다.
“그런데 공자님은 오늘 표정이 좀 딱딱하시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글쎄.”
“에휴, 안 좋은 일이 있으셨다면 평소처럼 술 마시고 다 잊어버리세요! 그리고 위로 올라가서 푹 쉬고 가시면 되는 거죠!”
그렇게 말하며 내 옆에 앉은 여자가 술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술에 입을 대지 않았다.
“네가 마셔.”
“네?”
“그 잔, 네가 마시라고.”
여자가 눈을 깜빡였다.
“왜, 왜요? 공자님 드시라고 따른 술인데.”
“난 됐으니, 네가 마셔라.”
“아니요, 저는…….”
나는 술잔을 그녀 앞으로 밀었다.
“마셔.”
“고, 공자님…….”
접대부가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했다.
또 다른 접대부도 그 모습을 보며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당황한 표정을 지은 건 다름 아닌 오케아스였다.
“카, 카이트 님,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오케아스.”
나는 오케아스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아까부터 말이 짧다.”
“뭐, 뭐?”
“다시 말해 봐라.”
이 녀석이 미쳤나.
그렇게 말하고 싶은 듯이 오케아스가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내가 가만히 노려보면서 살기를 드러내자, 그 표정이 창백해졌다.
내가 과거의 카이트와는 다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왜, 왜 이러시는… 것이옵니까?”
“글쎄, 왜 이러는 걸까.”
나는 술잔을 손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너희들이 더 잘 알겠지.”
“……!”
술을 따를 때, 접대부의 손톱 밑에서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손톱의 때일 리는 없고… 내 술잔에 타기 위한 약이 분명했다.
“그동안 나한테서 많이 뜯어먹었던 모양이군.”
“……!”
뻔한 얘기였다.
돈 많은 호구인 카이트가 찾아오면 오케아스가 3층으로 데려간다.
그러면 오케아스와 손을 잡은 접대부들이 찾아와서 약을 탄 술을 먹인다.
카이트가 약에 취해 정신을 잃으면 비싼 술과 안주를 잔뜩 주문시킨 뒤, 마지막으로 위쪽 방으로 올려 보내 하룻밤 여자를 품고 자게 한다.
결국 카이트는 엄청난 금액을 계산하고 떠나게 될 테고, 매상의 일부가 성과급으로서 접대부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래서, 너희 둘 중에 누가 오케아스 애인이냐?”
“……!”
단순한 금전 관계로 이런 짓을 함께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생각으로 물어보자, 오케아스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두, 둘 다요…….”
“이런 썩을.”
저절로 욕설이 나왔다.
술병으로 오케아스 머리를 한 대 치고 싶었다.
“애인들 매상 올려 주려고 이랬던 거군.”
“카, 카이트 님, 이건…….”
“제발 가게에는 비밀로…….”
“공자님…….”
“너희 셋.”
나는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리고 실로 꿰매는 시늉을 했다.
“조용히 있어라.”
“…….”
세 사람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이 녀석들은 나한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 관심사는 오로지 프레이야 클럽뿐이니까.
이 녀석들은 내가 이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한 소도구 역할만 해 주면 된다.
“술이 달군.”
내 손으로 자작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어느새 경기장에서는 인간 검사와 리자드맨이 나와 검투를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