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71
▣ 171화. 제국 수도 공략 (3)
오룡 타라스크는 디트리히에게 빙의한 니드호그의 분신이 맡아 주기로 했다.
헤스테인에게 어보미네이션들을 맡긴 뒤, 나는 측근들과 아그나르만 데리고 메로베우스 성내로 돌입했다.
“여기가… 제국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였던 메로베우스?”
니얼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로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도시 자체는 고틀란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발달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도시의 주민들이 보이지 않았다.
주택가도, 상점가도,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카이트 공자님, 영구동토에 있던 용귀족들의 도시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래, 비슷하군.”
“그때는 전부 에인션트 드래곤의 에너지원이 되기 위해 끌려갔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디트리히의 말에 의하면, 평범한 인간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하지. 그러니 에인션트 드래곤에게 흡수되었을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어.”
“그러면… 부화장을 채우는 유기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놈들에게 희생당했다고 봐야겠지.”
도시의 크기를 생각하면, 상당히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는 건가.
“정말로 악독한 놈들이군요.”
나를 따라온 아그나르가 치를 떨었다.
“카이트 님, 이런 대량 학살을 저지른 놈들을 반드시 단죄해야 합니다.”
“그래, 에인션트 드래곤도, 제1황자 카롤루스도 말이야.”
우리는 도시 중심부로 시선이 향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황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에인헤랴르의 대공궁보다 훨씬 크군. 덕분에 길 찾기가 어렵지는 않겠어.”
황궁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딱히 우리를 습격해 오는 적은 없었다.
“카이트 공자님, 황궁 쪽에 경비병들이 있습니다.”
“그래, 숫자가 제법 되는군.”
성내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만난 건 황궁의 경비병들이었다.
하지만 얼굴에 생기가 없고, 눈빛도 공허했다.
“느낌이 이상한데요? 에인션트 드래곤에게 세뇌당해 있는 걸까요?”
“아니, 그건 아니야.”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전부 시체야.”
“네?!”
그들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소위 ‘강시’처럼 시체를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드래곤들이 시체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기가 별로 없긴 해도 살아 있는 사람 같은데요?”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강제로 시체 병사로 만든 거겠지.”
내 추측을 듣고, 아그나르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로지 명령에만 복종하는 꼭두각시를 만들려고 했던 거겠죠. 세뇌 같은 것보다 확실합니다.”
“어떻게 그런…….”
“안타깝지만, 전부 해치우는 수밖에 없겠군요.”
빨리 목을 베어 주는 게 더 자비로운 일이다.
우리는 검을 뽑아 들고 정면에서 공격을 시작했다.
“…….”
경비병들이 우리를 인식하고 덤벼들었지만, 역시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다만 근력은 생전보다 강해진 것처럼 보였다.
“한계 이상의 힘을 발휘하도록 되어 있는 것 같군!”
“그래도, 우리의 상대는 못 됩니다!”
“그렇지!”
어윈과 모르트, 슈데르츠가 검기를 펼치며 경비병들의 목을 날렸다.
순식간에 경비병들을 정리한 뒤, 슈벤이 앞으로 나섰다.
“문은 제가 열겠습니다!”
닫혀 있던 정문을 도끼로 찍었다.
2갑자 내공이 실린 도끼질에 결국 정문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돌입한다.”
“네!”
황궁 안으로 진입하자,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파프니르의 궁전처럼 널찍하지는 않았지만, 우아하고 화려한 분위기였다.
“사람이 없군요. 시종 한 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바르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역시 이곳도 생존자가 없는 걸까요?”
“아니, 그건 아니야.”
“네?”
“안쪽에 사람들이 있어.”
앞장서서 걸어가자, 다들 나를 따라왔다.
한참 복도를 걸어간 우리 앞에 펼쳐진 건… 넓은 연회장이었다.
“……!”
다들 숨을 삼켰다.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광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파, 파티?”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이런 상황에서 파티가 열리고 있다고?”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탁자에는 산해진미가 차려 있었고, 곳곳에서 시종들이 공손한 태도로 귀족들을 접대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쪽 구석에서는 악대들이 발랄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와, 저 음식들 봐…….”
“모르트, 침 흘리지 마라! 상황을 생각해!”
“하, 하지만 지금 상황이면 우리가 더 이상한 모양새 아닙니까? 저 사람들은 느긋하게 파티를 즐기고 있는 상황인데…….”
“으, 으음, 그건 그렇지만…….”
모르트와 어윈의 대화대로 우리 모양새가 더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
나는 입을 다문 채 검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귀족들이 흠칫하면서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들, 이런 촌극에 어울려 주느라 고생할 필요 없다.”
“……!”
귀족들이 움찔하며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태연하게 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 줘라… 그런 명령을 받았겠지.”
“……!”
“너희는 내심 겁에 질린 채 태연한 척 연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귀족들이 잔뜩 긴장한 채 억지로 연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 됐으니, 그냥 물러서 있으면 된다.”
“크, 크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소.”
그때 흰머리가 가득한 노인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파티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일단 이쪽으로 와서 자기소개부터…….”
“이제 됐다고 말했을 텐데.”
가볍게 검을 휘둘러 기를 뻗자, 노인 앞에 있던 탁자가 두 조각 났다.
“흐아악!”
“사, 살려 줘!”
노인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들도 비명을 질렀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눈앞의 위협에는 견디지 못한 것이다.
“누가 너희한테 이런 일을 시켰지?”
“이, 이보시오…….”
“드래곤들이 굳이 이런 일을 시키지는 않았겠지. 카롤루스가 시킨 건가.”
“……!”
카롤루스의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 귀족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 말이 틀렸나?”
“그, 그런 건…….”
“맞는 모양이군.”
나는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봤다.
바깥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파티다.
굳이 이런 걸 연출하여 우리를 맞이하려 한 것만 봐도, 카롤루스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쨌든 다들 물러서라. 이런 촌극에 동참해 줄 필요는 없으니까.”
“…….”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눈치를 봤다.
그러던 도중,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 카이트 공자시죠!”
살집이 많은 여인이 나를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 저는 학창 시절에 프레데군다 님과 친했습니다! 혹시 유바르 후작부인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지 못했는지요?!”
“유바르 후작부인?”
“아, 리스트에 있었습니다.”
옆에서 이바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데군다가 편지를 써 준 사람 중 한 명인 것 같았다.
“저,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유바르 후작부인, 자세한 걸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우, 우리는 그저 새로운 황제에게 충성을 바칠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바르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자, 그녀는 울먹이면서 말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 강제로…….”
“유바르 후작부인!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오!”
어떤 귀족이 목소리를 높였다.
“카롤루스 전하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하지 않았소! 그 맹세를 잊은 것이오?!”
“하, 하지만, 설마 드래곤의 영약을 먹고 용귀족이 되라고 할 줄은…….”
“어허, 새 황제가 되실 카롤루스 전하의 뜻을 거스르겠다는 말이오?!”
귀족들 사이가 소란스러워졌다.
“다들 정말로 용귀족이 되는 것에 동의한 것이오?”
“우리 파벌은 대대로 수르고뉴 공작을 따라왔으니, 이쪽 길로 갈 수밖에 없소!”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소. 나는 배룡주의자라면 질색이었는데…….”
“배룡주의자라니! 카롤루스 전하께서는 드래곤들까지 지배하려고 하시고 있는 거요!”
“우리는 이 제국을 더 위대하게 만드는 초석이 되어야 하오! 수르고뉴 공작이 다 계획을 세워 놨다지 않소!”
“하, 하지만 인간의 몸을 버리는 건 아무래도…….”
“그러면 어쩔 거요? 에인헤랴르에게 도움을 요청할 거요?!”
갖가지 얘기가 튀어나왔다.
다들 본의 아니게 이 자리에 있는 줄 알았는데, 자진해서 참가하고 있는 놈들도 있는 것 같았다.
“카이트 형님…….”
옆에서 이바르가 속삭였다.
“이상한 소리가 많이 나오는군요. 카롤루스가 드래곤들까지 지배하려 한다든가, 다들 용귀족이 된다든가…….”
“그래,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군.”
그렇게 대답하면서 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래도 이제 슬슬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네?”
뚜벅, 뚜벅.
소음 속에서 당당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소란스럽군.”
금발의 남자가 나타났다.
이목구비는 뚜렷했고, 체형도 균형 잡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갑론을박을 벌이던 귀족들이 다 같이 무릎을 꿇었다.
“화, 황자 전하!”
“카롤루스 전하……!”
“이것 참, 이렇게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카롤루스 제1황자.
그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파티 중에 그렇게 인사하는 사람이 어딨지? 다들 분위기 망치지 말고 일어나.”
“죄, 죄송합니다!”
귀족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까 대놓고 카롤루스에게 충성을 바치겠다고 떠들던 귀족들조차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카롤루스를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분위기가 영 그렇군. 악사들이 밝은 음악을 연주해 줬으면 좋겠는데.”
“아, 알겠습니다!”
음악 연주를 중단했던 악사들이 다급히 연주를 재개했다.
확실히 밝은 곡이긴 했지만, 악사들은 다들 겁먹은 표정이었다.
“기껏 준비한 파티인데, 다들 즐겨 줬으면 좋겠군. 이런저런 일들은 신경 쓰지 말고 즐겁게 파티에 임해 줘.”
“네……!”
귀족들이 다시금 아까처럼 파티를 즐기는 척 연기를 시작했다.
유바르 후작부인 등이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긴 했지만 말이다.
“자, 그러면…….”
이윽고 카롤루스가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에인헤랴르 대공가의 장남, 카이트 에인헤랴르.”
“…….”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건… 차남인 이바르 에인헤랴르인가? 어쨌든 두 사람 다 황궁에 방문한 것을 환영하지.”
카롤루스가 손뼉을 치자, 곧바로 시종이 달려왔다.
그는 시종이 들고 있던 쟁반에서 술잔 두 잔을 집어 들더니 우리에게 내밀었다.
“이번 기회에 대화를 나눠 봤으면 좋겠군.”
“…….”
대공 가문의 아들인 나와 이바르한테만 술을 권한 것 같았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술을 권하는데 거절할 수는 없지.”
나는 성큼성큼 다가가서 술잔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이바르도 다가와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술잔을 받았다.
“우리의 뜻깊은 만남을 위해.”
카롤루스가 시종에게서 받아 든 술잔을 높게 치켜들었고, 우리도 호응해 줬다.
그리고 나는 주저 없이 술잔에 입을 댔다.
‘독은 없군.’
특별한 것이 없는, 포도주였다.
이바르가 마셔도 별문제 없을 것이다.
“…….”
나는 말없이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술맛은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쪽 세계에 와서 마신 술 중에서 가장 좋았다.
“역시 황궁에서는 좋은 술을 마시는군.”
“나중에 술통째로 선물하지.”
카롤루스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그러면… 카이트 에인헤랴르,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는 걸 선호할 듯하니, 본론부터 얘기하지.”
“그래 주면 고맙지.”
“나는 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
“무슨 제안이지?”
“내 신하가 되어 충성을 맹세하라는 거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카롤루스의 진지한 눈빛이 내 얼굴을 향했다.
“처음에는 네가 찾아오면 그냥 내 손으로 직접 쓰러뜨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지만, 생각이 바뀌었어.”
“…….”
“너는 아주 유능하더군.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빨리 메로베우스에 도달할 정도로.”
카롤루스가 고개를 돌렸다.
“황제파 귀족이랍시고 으스대는 어중이떠중이보다는 네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재미있는 얘기를 꺼내는군, 카롤루스.”
나는 카롤루스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네 부하가 되면, 무슨 이득이 있지?”
“이득?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카롤루스가 피식 웃었다.
“절대적인 존재에게 충성을 바치는 건데, 이득을 따져야 하나? 나는 너한테 기회를 주겠다는 거야.”
“어이가 없군.”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 순간, 카롤루스의 눈동자가 금색으로 번뜩였다.
“나는 이제 곧 인간과 드래곤을 동시에 지배하는 용황제(龍皇帝)로 즉위한다. 나에게 복종하는 것이 네가 유일하게 살아남는 길이다.”
용황제.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입을 벌렸다.
헛웃음이 나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