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73
▣ 173화. 용황제의 꿈 (2)
‘내가… 세뇌당해 있었다고?’
카롤루스는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만큼 카인트 에인헤랴르의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원래 카롤루스는 황권 강화에 관심이 많았다.
옛날에는 강력한 황권을 휘두른 황제들도 있었지만, 요즘 황제들은 실권 없이 단지 군림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러 황제파 귀족들이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귀족들이 ‘나야말로 황제를 가장 공경하는 충신이다.’라고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자기 영지에서는 왕처럼 군림하고 있으며, 그 기득권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그들을 굴복시키고 기득권을 빼앗아야 한다… 그것이 카롤루스의 오랜 생각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수르고뉴 공작이 나타났지!’
수르고뉴 공작은 카롤루스에게 말해 줬다.
자신의 정체는 에인션트 드래곤이며, 인간과 드래곤의 진정한 화합을 실현할 수 있는 위대한 군주를 찾고 있었다고.
그리고… 현재 생물적 한계에 도달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드래곤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존재로 카롤루스를 선택했다고.
‘수르고뉴 공작은 나야말로 유약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세계 전체를 지배할 만한 그릇이라고 말해 줬어!’
드래곤과 용귀족을 거느리는 ‘용황제’가 되어 막강한 힘으로 제국을 지배하면 된다.
귀족들은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저항하겠지만, 막강한 힘으로 찍어 누르면 된다.
애초에 귀족들은 앞으로 시작될 중앙집권 제국에서 별로 필요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충성을 맹세하는 일부만 남기고 다 숙청해 버리면 된다.
그렇게 공포정치를 펼치면서 카롤루스가 용황제로서 제국을 지배하면 된다…라는 것이 수르고뉴 공작의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팔라딘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
한 가지 위화감이 느껴졌다.
왜 자신이 이 시점에서 아버지를 살해했는지, 그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제위를 이을 날까지 기다리지 않고, 성급하게 황제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찬탈하려 한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대체 왜 그랬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아까 카이트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카, 카이트 에인헤랴르!”
카롤루스는 수르고뉴 공작과 대치 중인 카이트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내, 내가 세뇌당했다고 했나? 이성이 마비되어 그릇된 판단을 하게 되었다고?!”
“카롤루스 전하.”
하지만 대꾸한 건 카이트가 아니라 수르고뉴 공작이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 충성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하, 하지만, 내가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 잘 생각이…….”
“피로하신가 보군요. 하긴 암리타를 많이 드셨으니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암리타.
평범한 용귀족들이 먹는 것보다 훨씬 좋은 ‘진짜’ 불사의 영약.
거사 이후 카롤루스는 계속 암리타를 복용해 왔다.
그 누구보다 강한 힘을 손에 넣어 용황제로서 군림하기 위해.
“카롤루스.”
그때 카이트가 입을 열었다.
“에인션트 드래곤은 너한테 일방적인 충성을 바치겠다고 했나?”
“뭐?”
“충성엔 대가가 있어야지. 너에게 충성을 바치는 대신 에인션트 드래곤은 무엇을 받아 가기로 했지?”
“그건, 그야…….”
카롤루스는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입에 담으려 하니 어째서인지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그건, 그건…….”
두통이 느껴졌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 왔다.
“끅, 끄윽, 끄아아아……!”
머리를 부여잡은 채, 카롤루스는 눈앞이 핏빛으로 물드는 것을 느꼈다.
* * *
비명을 지르며 웅크리는 카롤루스를 보며, 나는 혀를 찼다.
‘세뇌가 풀리려고 하면 머리가 망가지도록 되어 있었던 건가.’
어쨌든, 카롤루스는 이제 중요치 않다.
나는 눈앞의 수르고뉴 공작… 수룡 브리트라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일단 본체는 아니군. 분신이야.’
에인션트 드래곤만의 강대한 느낌이 없었다.
본체는 황궁 깊은 곳에서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을 것이다.
‘이놈을 쓰러뜨리고 안쪽까지 들어가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브리트라를 공격하려 했을 때.
“이것 참… 그렇게 여러 번에 걸쳐 자극하면 정신이 망가지게 되지요. 재조정이 필요해집니다.”
브리트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카롤루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충성심 같은 건 조금도 담겨 있지 않은 시선이었다.
“카이트 공자, 쓸데없는 짓을 하시면…….”
“말했을 텐데.”
앞으로 발을 내딛으면서, 그 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최고 위력의 검강을 사용해, 브리트라의 목을 날려 버린 것이다.
“굳이 너하고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다고 말이다.”
“……!”
이렇게 순식간에 당할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지, 브리트라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직후, 브리트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한데 말입니다.”
콰직.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를 부여잡고 웅크리고 있는 카롤루스에게서 들리는 소리였다.
‘뭐지?’
웅크리고 있던 카롤루스의 몸이 갑자기 솟구쳤다.
아니… 부풀어 올랐다.
“브리트라, 카롤루스의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지?”
“크흐흐…….”
카롤루스뿐만이 아니었다.
주위에 있던 귀족들도 몸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사, 사람 살려……!”
조금 전까지 나와 대화를 나눴던 유바르 후작부인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자신의 몸을 보면서 절규하고 있었다.
“이게 뭐죠?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카, 카이트 공자, 살려 주세요!”
“유바르 후작부인, 혹시 뭔가 이상한 걸 먹었습니까?”
“이, 이상한 건 먹지 않았어요! 그냥 오늘 아침에 처음으로 불사의 영약을 받아서… 아아악!”
콰직, 콰직, 콰직!
마치 뼈와 살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그녀의 몸이 거대화되었다.
얼굴도 흉측하게 일그러져 원래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카, 카이트 형님! 다리를 보세요!”
“…….”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유바르 후작부인의 두 다리가 서로 달라붙더니… 하나의 꼬리가 되었다.
게다가 살결에 비늘까지 돋아나기 시작했다.
‘뱀의 꼬리인가?’
반인반사(半人半蛇).
유바르 후작부인을 비롯한 귀족들은,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뱀인 괴물이 되어 버렸다.
“이게, 뭐지? 수르고뉴 공작, 아니, 브리트라!”
한편 카롤루스는 아직 완전히 괴물로 변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조만간 변화가 끝날 것 같아 보였다.
“다들, 용귀족이 되는 것, 아니었나? 저건 뭔가, 이상한데……!”
“저것도 용귀족입니다. 소량이나마 암리타를 복용했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긴 수명과 전투 능력을 획득한 상태죠.”
“그, 그러니까, 왜 저런 괴물 형태로…….”
“괴물이 아닙니다. ‘나가’라고 하지요.”
“나, 나가?”
나가.
저것이 저 괴물들의 이름인가.
그리고 암리타라는 영약을 복용해서 저렇게 되었다는 건…….
“그렇군. 이게 진짜 목적인가.”
나는 무수절맥공을 사용해 나가로 변해 버린 귀족들을 살폈다.
그들에게서는 그동안 상대했던 용귀족들보다 더 정순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일반적인 마력보다 에테르에 가까운 기운이었다.
“카, 카이트 형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이게 에인션트 드래곤들의 진짜 목적이다, 이바르.”
아까 귀족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렴풋이 눈치채긴 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에인션트 드래곤은 이 제국을 자신들의 ‘먹이’를 확보하기 위한 사육장으로 만들 생각이다.”
에인션트 드래곤들은 에테르를 대체할 힘을 손에 넣어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드래곤 혹은 용귀족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에인션트 드래곤들은 자기 부하들이었던 드래곤이나 용귀족들을 모조리 몰살시켰기 때문에, 다른 먹잇감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을 대상으로는 생명력을 흡수해 봤자 에테르를 대체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바로 인간들에게 불사의 영약을 먹여서 용귀족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 귀족들이 먹은 불사의 영약은 에인션트 드래곤들의 먹잇감이 되기 좋도록 조정된 개량품일 거야. 말하자면 ‘사료’인 셈이지.”
“사, 사료……!”
귀족들은 자신들이 불사의 영약을 먹고 용귀족이 되어 권세를 누릴 거라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결국 그들은 에인션트 드래곤에게 잡아먹힐 뿐이다.
그리고 귀족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카롤루스라는 꼭두각시 황제가 공포정치를 실시하면서, 전 국민을 에인션트 드래곤의 먹잇감으로 사육하는 것… 그것이 에인션트 드래곤들의 음모야.”
“……!”
왜 놈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황제를 죽이고 제국을 장악하려 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놈들은 평범하게 인룡대전을 시작할 생각이 없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국가 체제를 장악한 뒤, 모든 인간을 가축으로 전락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건 에인션트 드래곤들의 관점에서 상당히 효율적이야.”
“그, 그렇겠군요. 인류의 국가 체제를 이용하는 것이니…….”
인간들의 국가를 장악하여 대륙 전체를 사육장으로 만들어 버리면, 앞으로 먹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황제가 알아서 먹잇감을 만들어 진상해 줄 테니까.
에인션트 드래곤들은 느긋하게 앉아서 생명력을 빨아먹기만 하면 된다.
“꼭두각시 황제가 강력한 힘으로 귀족 세력을 짓밟아 놓으면,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을 테고 말이지.”
“아, 그래서 중앙집권을…….”
황권을 강화하고 싶었던 카롤루스의 심리를 이용한 술책이다.
카롤루스는 지방 귀족들을 굴복시켜 중앙집권제를 실현하고 싶었겠지만, 그건 결국 에인션트 드래곤의 지배에 대항할 세력을 전멸시키는 일이다.
결국 사람들은 카롤루스에게 저항하지 못한 채 영원히 사육당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우리가 들이닥쳤으니, 놈들의 음모는 완전히 틀어졌어.”
그렇다.
우리가 북쪽에서 계속 머무르며 사태를 지켜보고만 있었다면 위험했을 것이다.
카롤루스가 정식으로 황제로 등극하여 귀족들을 장악한 뒤, 몬스터와 어보미네이션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북부로 밀고 들어왔다면 대항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신속하게 남쪽으로 진군했기 때문에, 카롤루스는 충분한 준비를 해 두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가 황궁에 들이닥치는 걸 허용해 버렸고, 모든 게 틀어졌다.
“카롤루스를 쓰러뜨리고, 그를 조종하던 에인션트 드래곤까지 쓰러뜨리면 모든 게 끝난다.”
“네……!”
카롤루스는 다른 나가보다 거대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암리타라는 불사의 영약을 더 많이 복용한 탓 같았다.
“나가들의 왕인 나가라자… 상대해 보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브리트라의 분신은 완전히 소멸했다.
하지만 본체는 황궁 깊숙한 곳에 있을 것이다.
“다들, 상황 파악은 끝났겠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렇게 괴물로 되어 버린 귀족들을 구제해 줄 수는 없을 거다. 빨리 숨통을 끊어 주는 게 자비로운 일이라고 생각해라.”
“알겠습니다!”
기사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아직 움직임이 굼뜬 나가들을 각자의 기술로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이바르, 카롤루스는 내가 상대하겠다. 너는 주변의 나가들을…….”
“형님, 저 검은……!”
그때 내 옆에 있던 이바르가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새 카롤루스의 손에 검이 한 자루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성검이라 불리는 신화병장, 뒤랑달입니다!”
“……!”
카롤루스의 검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을 발하는 힘이 있는 신화병장인 걸까.
“다들, 다들, 나에게 복종해라……!”
다른 나가들과는 달리 나가라자가 된 카롤루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건지, 광기에 찬 목소리였다.
“나야말로 용황제… 전 세계를 지배할 진정한 황제란 말이다!”
파아앗!
카롤루스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우리를 덮쳤다.
하지만 이미 나는 검막을 전개한 상태였다.
‘상당히 강하군.’
검막으로 방어하면서 나는 뒤랑달의 빛을 분석했다.
공격 범위는 좁지만, 위력은 드래곤의 브레스와 비슷하다.
카롤루스가 원래부터 이 정도 위력을 낼 수 있었던 걸까, 아니면 암리타를 복용해 나가라자가 되었기 때문일까.
“모여들어라, 용황제의 기사들이여!”
그때 카롤루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주위 벽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팔라딘……?!”
하반신은 똑같이 뱀처럼 변해 있었지만, 상반신에는 화려한 제복을 입은 나가들이 벽을 부수고 난입해 왔다.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움직임이 민첩했다.
“형님, 팔라딘입니다! 황제를 지키는 성기사들입니다!”
“브리트라가 대기시켜 놓았던 모양이군.”
하나하나가 최소 용후작 이상의 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자세를 보니 인간 시절의 검술 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나의 기사들이여!”
광기에 사로잡힌 채 목소리를 높이는 카롤루스를 보며, 나는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금방 해방시켜 주마, 카롤루스.”
브리트라의 표적이 되지 않았다면…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아가 되는 일도, 저런 기괴한 괴물이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불행에서 해방시켜 주는 방법은 목을 쳐 주는 것뿐이다.
“팔라딘, 돌격!”
달려드는 팔라딘들 앞에서, 나는 칼라드볼그를 들고 수라청벽검을 펼쳤다.
푸른 번개가 반인반사의 괴물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