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78
▣ 178화. 신역의 힘 (1)
브리트라가 어떤 공격을 해 올지 경계하면서, 나는 발뭉과 노퉁을 양손에 들었다.
극음과 극양을 합쳐서 무극의 힘을 만들어 내는 수라무극신공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한 가지 말해 주지,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때였다.
정체불명의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던 브리트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내 능력은 단순히 물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다.”
예상외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내 능력의 본질은 가두는 것이다.”
“가둔다?”
“물을 조종하는 것은 그 부차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신화시대의 내 역할은 물을 가두어 이 세상에 가뭄을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신화시대의 역할.
그 말을 듣고, 문득 나는 마룡(魔龍) 아지다하카가 생각났다.
아지다하카의 몸에는 신화시대의 주문을 저장한 마법적 각인이 있었다.
나는 그 각인을 스스로 새긴 건지 다른 이가 새긴 건지 물어봤지만, 아지다하카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혹시… 신화시대에는 에인션트 드래곤들에게 어떤 역할을 강제한 존재가 있었던 걸까.
“신화시대에 나는 신까지 가둔 적이 있다.”
“신?”
“신들의 왕 노릇을 하던 뇌신(雷神) 인드라였다.”
“…….”
“나는 그런 위업까지 가능한 존재였다. 그리고 수많은 인간에게서 에너지를 흡수하여 그 시절의 힘을 되찾은 상태지.”
브리트라의 눈빛은 냉정했다.
신까지 가둘 수 있었다는 말이 허세는 아닌 것 같았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본래 우리는 초월적인 존재다.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대항할 수 없다.”
“…….”
“그동안 네가 다른 에인션트 드래곤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전성기 시절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르문간드가 전성기 시절의 몸집을 재현할 수 있었다면, 너는 요르문간드에게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깔려 죽었을 것이다. 크기에서 너무 차이가 났을 테니까.”
만약 요르문간드가 훨씬 컸다면… 확실히 쓰러뜨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수라백강검으로 기를 뻗어도 한계가 있었을 테니까.
“지금 나는 전성기의 능력을 재현할 수 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영역에도 도달하지 못한 네가 나를 쓰러뜨릴 수는 없다.”
“글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하지 않을까.”
“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런가?”
“그렇지.”
그 순간.
나는 심상치 않은 압박감을 느끼고, 수라무극신공의 힘을 개방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너는 갇혔으니 말이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발뭉의 음기와 노퉁의 양기가 어우러져 태극을 넘어 무극에 도달하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새 어둠이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신들의 왕조차 가두어 버리는 내 권능에… 고작 인간이 대응할 수 있을 리 없다.”
인지(人智)를 초월한 힘.
예전에 내가 갇혔던 아지다하카의 마법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초월적 존재의 권능.
“모든 것을 가두는 이 브리트라의 권능 속에서 절망하도록 해라.”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어둠.
어둠.
그리고 어둠.
나는 끝없는 어둠 속에 있었다.
상하좌우의 감각이 없었다. 내가 지금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 빠져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무서운 것은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도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극한의 폐색(閉塞) 속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생각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힌 채, 내 정신조차 서서히 어둠에 침식되어 갔다.
이대로 계속 시간이 흐르면 내 의지 같은 건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상태에서 브리트라가 나에게 새로운 생각을 심어 넣으면, 그걸로 세뇌가 완료되는 것이다.
세뇌 같은 것은 당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 놓이면 어쩔 수 없다.
이대로 나는 어둠에 완전히 침식되어, 브리트라의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다.
아지다하카의 마법에 갇혔을 때와는 달리, 내공을 끌어올려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했으니까.
그렇게 나는 무력감에 휩싸인 채, 깊고 깊은 어둠에…….
“정신 차려라, 카이트 에인헤랴르.”
새카만 손길이 어둠 속을 뚫고 들어와, 나를 끌어 올렸다.
* * *
“윽……!”
익사 직전에 구출된 듯한 기분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치켜들자, 익숙한 광경이 보였다.
눈으로 뒤덮인 벌판이었다.
“또 여기야?”
무림에서 검마 이서원이 마지막 싸움을 치렀던 설원이다.
천룡회 사람들의 시체가 쓰러져 있는 것도 동일했다.
“세 번이나 되니 좀 질리는데.”
“삭막한 내면세계군.”
무뚝뚝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동안 이곳에서 만나 왔던, 천룡회 총관의 목소리하고는 달랐다.
“…….”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돌리자, 처음 보는 남자가 있었다.
머리는 흑발이었고, 입고 있는 옷도 검은색이었다.
눈빛이 매서웠고,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너는 누구지?”
“모르겠나?”
“너 같은 사람은 만난 적이 없는데.”
“너는 나와 만난 적이 있다. 다만 이 모습과는 만난 적이 없지.”
“……?”
대체 누굴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사람은 만나 본 기억이…….
‘잠깐.’
이런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 흑색의 존재를 만난 적이 있다.
“파프니르?”
“그렇다.”
파프니르.
내가 처음으로 싸웠던 에인션트 드래곤인 악룡(惡龍) 파프니르가, 인간의 모습을 취한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폴리모프를 한 모습인가? 인간의 모습을 취하는 건 싫다고 했던 것 같은데.”
“먼 옛날, 잠시 인간의 형태를 취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모습인 것 같군.”
파프니르가 자신의 몸을 훑어보며 말했다.
“말해 두지만, 내가 의도해서 이 모습을 취한 것이 아니다. 이 공간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것 같으니까.”
“아니, 그것보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내가 이곳에서 만났던 총관은 내 기억 속의 총관이다.
기억 속에 있던 총관의 외모와 인격이 재현되어 나타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파프니르의 인간 형태를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정신세계에서 마주할 정도로 파프니르와 깊은 인연을 맺은 적도 없다.
대체 왜 파프니르가 여기에 있는 걸까.
“감이 무뎌졌군. 브리트라의 어둠에 침식당한 탓인가?”
파프니르가 비웃듯이 말했다.
“너는 그동안 계속 나를 품에 넣고 다녔을 텐데.”
“…….”
그 말을 듣고, 나는 비로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했다.
“파프니르의 드래곤 오브인 건가?”
“정확히 말하자면 오브에 남아 있던 잔류 사념이다.”
파프니르를 쓰러뜨린 뒤, 나는 에테르가 저장되어 있는 구슬 하나를 손에 넣었다.
드래곤 하트와 비슷한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파프니르의 인격이 남아 있었단 말인가?
“내 영혼 자체는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 잔향(殘響)이 오브에 남아 있었지.”
“세상에…….”
“그렇기에 나는 파프니르이면서 파프니르가 아니다. 파프니르의 흔적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어쨌든 놀라운 얘기였다.
그동안 내가 계속 들고 다녔던 구슬에 파프니르의 인격이 남아 있었을 줄이야.
“나도 설마 너와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가 동시에 브리트라의 권능에 사로잡힌 탓 같군.”
“그래… 지금까지 너한테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딱히 말을 걸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어차피 나는 파프니르의 잔류 사념일 뿐이고, 사라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쨌든, 도와줘서 고맙다.”
나는 파프니르에게 감사를 표했다.
“네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어둠에 완전히 잠식될 뻔했어.”
“됐다. 감사의 말을 들으려고 구해 준 건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파프니르는 근처 바위에 걸터앉았다.
“오히려 조롱의 말을 던지기 위해 구해 준 거라 할 수 있겠지.”
“조롱이라.”
“주제를 모르고 전성기의 힘을 회복한 에인션트 드래곤에게 덤벼든 너를 조롱하고 싶었다.”
파프니르가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너는 나를 포함해 많은 에인션트 드래곤을 쓰러뜨려왔지만, 다들 에테르가 부족해 본래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
“하지만 브리트라는 달랐지. 에테르를 추가로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유사 암리타를 복용시킨 인간들을 대량으로 흡수하여 전성기에 가까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였다.”
파프니르는 즐거워하는 목소리였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네 힘으로는 상대가 될 리 없지.”
“변명의 여지가 없군.”
그렇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로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브리트라의 권능은 내가 대응할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육신은 브리트라가 만든 어둠의 감옥에 완전히 갇혀 버렸다.
“브리트라가 사용한 힘은 내가 지금까지 알던 것하고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어.”
원래 나는 무공을 쓰는 무림인들하고만 싸워 왔다.
그렇기에 이쪽 세계에 와서 오러, 마법, 브레스 등을 접하면서 매번 놀라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밀리는 일은 없었다.
힘이 발현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고 하나, 결국 무형의 기운을 운용하여 어떤 현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건 동일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공으로 무공을 펼쳐서 상대방 이상의 힘을 발휘하면 승리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브리트라의 힘은… 그런 것들하고는 다른 범주의 힘이었다.
“파프니르, 대체 브리트라가 사용한 힘은 어떤 원리인 거지?”
“어떤 거라고 생각하나, 카이트 에인헤랴르.”
“글쎄, 일단 내 생각으로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에테르, 혹은 그에 준하는 힘을 사용해… 이 세상의 이치에 간섭하는 것 같았어.”
“세상의 이치라.”
내공을 쓰든 마력을 쓰든 기본적으로 세상의 이치를 이용해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브리트라의 힘은 달랐다.
“세상의 이치를 아예 조종하고 개변하여 구현되는 것으로 보이던데.”
“정확하다. 슬슬 감이 살아나는 모양이군.”
파프니르는 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카이트, 마법으로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하지. 웬만해서는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을 만드는 건 가능하지만 말이야.”
“그렇다. 더 강한 힘으로 파괴하면 얼마든지 빠져나올 수 있지.”
지난번에 나는 아지다하카의 마법적 감옥에 갇혔다가 에테르의 힘으로 탈출한 적이 있다.
“아무리 강한 힘이라도 더 강한 힘 앞에서는 꺾이게 되어 있다. 그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다.”
“하지만 브리트라의 힘은 다르다는 건가?”
“세계의 법칙을 아예 바꿔 버리는 것이지. 그러면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감옥이 성립된다.”
그동안 나는 아무리 대단한 공격이라도 더 강력한 힘으로, 혹은 더 빠른 속도로 맞서면 얼마든지 파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브리트라의 공격은 그런 이치를 초월한 것이었다.
아무리 강해도, 아무리 빨라도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상대를 가둬 버리는 힘이었으니까.
“본래 이런 힘은 ‘신역(神域)의 힘’이라 한다.”
“신역의 힘?”
“세계 법칙에 관여하는 힘을 발휘할 경우, 신의 영역에 도달했다고 보는 것이지.”
브리트라가 신들의 왕인 뇌신 인드라를 가뒀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신화시대에 존재했던 수많은 종족 중에서, 세계 법칙에 관여하는 힘을 처음부터 보유하고 있던 건 신족(神族)뿐이었다. 그래서 신역의 힘이라 부르게 되었다.”
“너희 드래곤들은 처음에는 그 정도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역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건가?”
“그렇다. 나도 전성기 때는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었지.”
“…….”
“만약 그 시절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너 같은 것에 쓰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파프니르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역의 힘이라면… 신화경(神化境)과 일맥상통하는 말 아닌가?’
나는 현경보다 높은 경지인 신화경 내지는 자연경(自然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연경은 에테르 같은 자연지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경지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화경은 어떤 것인지 아직 감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신역의 힘이라는 게 신화경과 동일한 것이라면…….
‘설마… 이게 답인가?’
신화경과 자연경.
신역의 힘과 에테르.
이 모든 것을 연결하면… 내가 그동안 추구하던 새로운 경지가 열리는 것 아닐까?
“파프니르.”
나는 천천히 파프니르를 불렀다.
“신역의 힘에 대항하는 방법은… 신역의 힘뿐인가?”
“그렇지.”
파프니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의 법칙을 개변하여 절대로 깨부술 수 없는 감옥을 만들었다면, 그걸 깨부술 수 있는 건 세계의 법칙을 개변하여 만든 검뿐이다.”
“그런 논리군.”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법칙이 있다면, 그걸 능가하는 법칙으로 부숴 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방법밖에 없는 건가.”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끝없이 펼쳐져야 할 설원 가장자리에서 시커먼 어둠이 침식해 들어오는 게 보였다.
파프니르 덕분에 빠져나오긴 했지만, 여기서 꾸물거리면 내 영혼은 다시 어둠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가르침을 줘서 고맙다, 파프니르.”
“……?”
파프니르가 눈을 깜박이며 나를 쳐다봤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네놈 설마…….”
“덕분에 그동안 고민했던 것이 해결되었어.”
이제 방향성은 잡혀졌다.
그러니 절체절명의 위기인 이 순간을 이용해,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
“똑똑히 지켜봐라, 파프니르.”
새로운 문을 열기 위해.
나는 마음속으로 검을 뽑았다.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신과 같은 경지다.”
신화경의 문.
그것이 내 눈앞에서 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