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79
▣ 179화. 신역의 힘 (2)
무한한 어둠이 설원을 계속 침식하고 있었다.
브리트라의 어둠이 내 육체뿐만 아니라 내 정신까지 모조리 집어삼키려 하는 것이다.
아까 파프니르의 도움으로 어둠에서 탈출하긴 했지만, 이 설원까지 잠식당하면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시간이 없다.
‘파프니르가 말했던 신역의 힘이야말로… 신화경이다.’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여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세상의 이치를 변화시키고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신역의 힘이며 신화경이다.
그렇다면 그건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세상의 이치를 깊게 이해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하지.’
파프니르는 신역의 힘을 가장 먼저 사용한 게 신화시대의 ‘신’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드래곤들도 신역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보면, 어떤 존재이든지 깨달음만 얻는다면 신역의 힘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나는 많은 실마리를 알고 있다.’
아나스타샤 등과 교류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이쪽 세계는 세상의 진리에 관해 고민하려는 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실용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많이 발달했지만, 관념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그다지 깊은 탐구가 없었던 것 같았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 제자백가(諸子百家) 등 다양한 사상가들이 세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에 큰 비중을 두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무공을 익히면서 함께 탐구했던… 세상의 이치들.’
무공을 배울 때는 세상의 이치를 함께 공부하게 된다.
기(氣)를 다루는 것부터가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또한 기를 다루면서 세상의 이치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원래 있던 세계도, 이쪽 세계도, 세계를 구성하는 법칙은 다 똑같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며,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항상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무명천지지시(無名天地之始), 유명만물지모(有名萬物之母).’
무는 천지의 시작에 이름을 붙인 것이며, 유는 만물의 어머니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고상무욕이관기묘(故常無欲以觀其妙), 상유욕이관기미(常有欲以觀其徼).’
고로 언제나 무의 측면에서 그 오묘함을 볼 수 있고, 고로 언제나 유의 측면에서 그 드러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깨달음을 되새긴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이해하여, 세계를 바꾸는 힘을 손을 넣기 위해.
* * *
정신을 집중하는 카이트를 보면서.
잔류 사념에서 구현된 파프니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이트, 처음에 나는 네가 시구르드의 환생이라 생각했다.”
시구르드.
이건 지금 에인헤랴르 가문을 지배하는 시구르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먼 옛날 파프니르를 처음으로 상처 입힌 인간, 초대 시구르드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군.”
파프니르는 씁쓸한 표정으로 눈앞의 카이트를 봤다.
“너는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던 거다.”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는, 파프니르가 생전에 봤던 카이트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카이트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혼이 카이트에게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다른 세계의 존재가 카이트의 육체에 깃든 것이군.”
그게 어떤 원리로 이루어진 것인지, 파프니르는 알 수 없다.
파프니르한테도 그 정도의 깨달음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네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강해진 건지 비로소 이해했다.”
카이트는 원래 있던 세계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상태였다.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성장하였기에, 그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너는 소드 마스터조차 아니었던 거군.”
카이트는 마력을 사용하는 소드 마스터가 아니었다.
마력과는 다른 힘을 사용하여, 정체불명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네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겠지.”
파프니르는 긴 한숨을 쉬었다.
과거에 카이트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가 관심을 기울이긴 했지만, 그게 무의미했다는 게 밝혀졌다.
“카이트, 신역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카이트를 쳐다보면서, 파프니르는 혼자서 말했다.
“일단 깊은 깨달음을 통해 이 세계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신화시대에 태어난 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신역의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
신화시대의 신들이 누구보다 먼저 신역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세계의 법칙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존재 자체가 세계의 법칙을 상징하는 개체들이었기에 그만큼 세계의 법칙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신역의 힘을 사용하려면 대량의 에테르 혹은 그에 준하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지금의 브리트라 수준으로 말이다.”
신역의 힘은 세계의 법칙을 건드리는 힘이다.
이 세계의 원초적인 에너지인 에테르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그 에테르를 제대로 다루는 능력 또한 필요하지.”
현시대의 인간은 에테르를 다루지 못하지만, 그랜드 소드 마스터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라면 에테르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신역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였으며.
대량의 에테르를 확보한 상태고.
에테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신역의 힘을 사용하는 조건이다.
“일단, 너는 세 번째 조건은 충족하고 있다.”
현재 카이트는 에테르를 다루는 능력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드래곤 오브의 에테르를 그대로 활성화하여 자신의 공격에 사용하고 있으니까.
이건 신화병장에서 특정 성질로 발현되는 에테르의 힘을 사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지다.
“문제는 나머지 두 가지다.”
카이트가 아무리 그랜드 소드 마스터 수준의 존재라고 해도, 나머지 두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신역의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
“카이트, 너는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나?”
그렇게 물으면서 파프니르는 카이트를 들여다봤다.
지금 카이트를 중심으로 모종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대략 짐작이 간다. 자신의 영혼을 보다 고차원적인 영역으로 승화시켜, 세계의 진리를 직접 감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거겠지.”
파프니르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원래 있던 세계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었던 모양이군. 그걸 바탕으로… 신역의 힘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너의 경지를 끌어올리고 있을 거다. 신역의 문을 여는 것이지.”
만약 카이트가 문을 열어젖히는 것에 성공한다면.
신역의 힘을 사용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중에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카이트, 아직 한 가지 조건이 남아 있다.”
마지막 조건.
신역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원동력인, 대량의 에테르.
카이트에게 그것이 있는가.
“분명히 말하지. 네 몸에는 그 정도의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카이트의 몸에 있는 것은, 마력과는 다른 정체불명의 에너지뿐이다.
상당히 많은 양이지만, 브리트라가 확보하고 있는 대체 에너지와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다.
“애초에 네 몸에 그 정도 에너지를 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네가 만약 대량의 대체 에너지를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네 몸에 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이건 인간이라는 종족의 한계다.
드래곤 등과는 달리 왜소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보유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파프니르는 카이트를 노려봤다.
초대 시구르드 이후 처음으로 만난 호적수를.
“카이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자신이 있느냐?”
대답은 없다.
하지만 지금 카이트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명백히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것이었다.
“네가 정말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겠다면…….”
지금 이곳에 있는 파프니르는 드래곤 오브에 남은 잔류사념이다.
생전의 파프니르를 사로잡고 있었던 집념도, 이제는 큰 의미가 없다.
지금 파프니르에게 의미가 있는 감정이 있다면, 딱 한 가지다.
영구동토에서 카이트에게 패배하여 목숨을 잃기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카이트가 에인션트 드래곤과 싸워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
“네가 브리트라와 싸울 수 있도록, 거들어 주마.”
그 순간.
파프니르의 몸이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에인션트 드래곤이 소멸할 때처럼 가루가 되는 게 아니라, 연기처럼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너에게 내재되어 있는 기운으로는 부족하다. 한참 부족하다.”
파프니르는 카이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너는 이미 에테르를 갖고 있다. 바로 내 시체에서 획득한 드래곤 오브에 있는 에테르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브리트라가 10만 명이 넘는 인간을 몰살하여 획득한 에너지에 대적할 수는 없다.
“그리고… 너는 신화병장도 갖고 있지.”
견뢰검 칼라드볼그.
상흔검 발뭉.
필연검 노퉁.
분노검 그람.
신화시대의 에테르가 내재된 신화병장을 무려 네 자루나 갖고 있다.
그리고 파프니르는 신화병장에서 에테르를 추출하는 것에 능숙하다.
“드래곤 오브, 그리고 신화병장 네 자루의 에테르라면… 잠시나마 신역의 힘을 발휘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잠시 동안만 가능하다.
브리트라처럼 대량의 에너지를 확보한 건 아니니까.
“나는 브리트라와는 달리 용귀족 등에게서 에너지를 흡수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내 드래곤 오브에는 매우 순도가 높은 에테르가 저장되어 있지. 신화병장의 에테르도 마찬가지다. 이 부분은 네가 유리한 부분이다.”
장기전이 된다면 필패(必敗).
하지만 단기전이라면 카이트에게도 승산이 있다.
“그러니… 해 봐라, 카이트.”
검은색 연기가 되어 사라져 가며, 파프니르는 힘주어 말했다.
“드래곤의 긍지조차 잃어버린 채, 폴리모프로 인간의 모습을 취하며 교활한 음모나 꾸미던 놈을… 인룡대전을 더럽힌 브리트라를, 네 손으로 토벌해 봐라.”
그렇게 파프니르가 말한 순간.
카이트의 몸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 * *
신역의 힘을 사용해 카이트를 무한의 어둠 속에 가둬 버린 뒤.
브리트라는 메로베우스 중심에서 똬리를 튼 채 자기 자신을 안정화시키고 있었다.
에테르를 대신해 사용하는 대체 에너지는 불순물이 많아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에테르와는 달리 한번 사용하면 다시 회복되지 않기도 해서, 여러모로 단점이 많았다.
‘그래도… 이제 슬슬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정신이 완전히 침식되었겠지.’
이제 카이트를 세뇌하여 새로운 황제로 내세우면 된다.
카롤루스처럼 황실 출신인 건 아니지만, 카이트에게는 에인션트 드래곤들을 여럿 쓰러뜨렸다는 실적이 있다.
그걸 내세우면서 제위에 오르면 기존 봉건 귀족들도 반기를 들기 어려울 것이다.
‘최강의 절대군주로서 공포정치를 펴게 하고, 내가 뒤에서 조종하면 되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브리트라는 슬슬 카이트를 어둠 속에서 끌어내려 했다.
지금쯤이면 영혼이 완전히 잠식되어 백치 상태가 되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바로 그때.
“……!”
우우우웅!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소리가 울려 퍼진 뒤.
브리트라의 아래턱이 두 조각 났다.
“크아아악……!”
브리트라의 입 안에 있던 어둠의 공간.
그것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절단되고 있었다.
‘이건, 설마……!’
그리고 브리트라는 보았다.
절단된 공간에서 빠져나오는, 흑발의 청년을.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는 어둠 속에 갇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멀쩡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갇혀 있기 전보다 훨씬 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건장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한 자루의 검이 들려 있었다.
실체가 없는, 무형(無形)의 검이었다.
“대체 어떻게 탈출한 거냐?!”
브리트라는 절규했다.
“나는 너를 가두면서 신역의 힘을 사용했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네가 어떻게……!”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이지, 브리트라.”
“뭐라고?!”
“그래, 이것이…….”
그 순간.
카이트가 들고 있는 검에서 눈부신 빛이 발산되었다.
“신화경에 도달한 내가 사용하는 신역의 힘… 신역절기(神域絶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