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8
▣ 18화. 파죽지세 (2)
“우어어어!”
“키에에엑!”
1층 경기장에서 검투사가 리자드맨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다.
검투사는 육중한 대검을 들고 있었는데, 리자드맨이 휘두르는 창을 상대로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쳤다.
“아이온, 그것밖에 못 하나!”
“도마뱀을 해치워 버려!”
“그냥 도마뱀한테 죽어라, 아이온!”
1층, 2층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비교적 고급스러운 분위기인 3층도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이제 보니 우리 말고 다른 손님들은 다 어느 쪽이 이길지 돈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
“…….”
“…….”
한편 오케아스와 접대부들은 가만히 앉아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내가 입을 꿰매 놓으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야, 너희들도 마셔. 나 혼자만 마시고 있으면 어색하잖아.”
“아…….”
“대신 오늘 계산은 오케아스가 하는 거다.”
“…….”
얼굴이 일그러지는 오케아스 앞에서 나는 새로운 술병을 땄다.
그리고 술잔에 술을 따르면서 계속 경기장을 관찰했다.
‘아이온이라는 녀석, 마력은 못 쓰는 것 같지만 제법 검술이 날카롭군.’
하지만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좀 있었다.
목숨 걸고 덤벼드는 리자드맨 상대로 지나치게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 정도로 실력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아, 그렇군.’
그 직후.
아이온이 대검을 크게 휘두르자, 리자드맨의 창이 맥없이 부러졌다.
깜짝 놀란 리자드맨이 주춤하는 사이, 아이온의 대검이 리자드맨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키에에엑!”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리자드맨이 쓰러졌고, 아이온은 팔을 치켜들며 승리의 환성을 질렀다.
“오늘도 아이온이 이겼군!”
“젠장, 이번에야말로 아이온이 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산 다 날렸네!”
관객들도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시끌벅적한 객석의 분위기를 의식하면서,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개판이군. 이런 게 뭐가 재밌다고 보는 건지.”
내공을 실었기 때문에, 관객들의 잡담에 묻히지 않고 울려 퍼질 수 있었다.
웅성거림이 잠시 끊겼다. 특히 3층의 관객들은 전부 나한테 시선을 향했다.
“거기 당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근처 자리에 앉은 중년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다른 사람들 다 재밌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뭔…….”
“다 짜고 치는 게 뭐가 그렇게 재밌나?”
“짜고 친다고?”
주위가 조용해졌기 때문에, 우리 대화가 주위에 잘 울려 퍼졌다.
“리자드맨의 창에 미리 칼질을 해놨어. 그래서 저렇게 쉽게 부러진 거지.”
“카, 칼질을 해놨다고?”
경기장 쪽으로 시선을 향하니, 아이온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아이온이 창을 부러뜨려서 이기도록 각본을 짜놓았던 거지. 그냥 순수하게 실력으로 싸워도 승산이 있었을 텐데, 쪽팔린 짓을 하는군.”
아이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공을 실은 목소리이기 때문에 1층에서도 똑똑히 들릴 것이다.
“그런 게 재밌으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술잔을 들었다.
“얘들아, 우리는 술이나 마시자.”
오케아스와 접대부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술잔을 들었다.
* * *
“경기 흥행을 방해하는 놈이 있다고?”
“네, 근데 그게…….”
프레이야 클럽의 중견 간부인 폴루스는 부하의 애매모한 태도에 인상을 찡그렸다.
“뭐냐? 확실히 말해라.”
“예전에 가끔씩 오던 손님인 카이트 에인헤랴르 님입니다.”
“카이트?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그 망나니 말인가?”
“맞습니다.”
“우리 가게에서는 매번 조용히 놀다 가지 않았나? 돈 많이 쓰고 가는 상객(上客)이었는데.”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경기마다 일일이 딴죽을 걸고 있습니다.”
“흠…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군.”
“종종 같이 다니는 아스타스 상단의 놈팡이도 오늘은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가만 있자, 용살검가 장남이 뭔가 큰 공을 세웠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 같은데.”
“네? 그런 소문이 있었나요?”
“그래, 헛소문이라는 얘기도 있긴 했지만.”
문득 폴루스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참모님들은 지금 뭐 하고 계시지?”
“오너와 함께 계십니다.”
“흠… 곤란하군.”
폴루스는 주로 아래층을 책임지는 간부였다.
검투 경기를 개최하고 술과 여자를 파는 것 말고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윗선에는 여러 방면의 정보를 수집하면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참모들도 있다.
그런 참모들이라면 에인헤랴르 쪽에서 들려오는 소문도 다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오너와 함께 있는데 폴루스가 방해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할 수 없지. 내가 응대해야겠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7층으로 모셔 와라.”
1층부터 3층까지는 개방된 자리지만, 4층부터는 은밀한 술자리를 지니기 좋은 개별 룸이 준비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7층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특별한 곳이었다.
“그리고, 최음제를 탄 술을 준비해라.”
“폴루스 님, 그러면…….”
“일단 제정신을 잃게 만들어 놓은 뒤 생각하자.”
나중에 참모들한테도 물어봐야겠지만… 일단 지금은 그렇게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여자들도 1급으로만… 한 예닐곱 명 정도 모아 놔라.”
“알겠습니다.”
“경기 흥행을 방해했으니 그 손해는 갚아주셔야지.”
어떻게 바가지를 씌울까.
폴루스는 일단 그것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카이트 님, 잠시 괜찮겠습니까?”
새 경기가 열릴 때마다 야유를 퍼붓고 있으니, 종업원이 다가왔다.
“매니저인 폴루스 님이 카이트 님을 7층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카이트 님이 간만에 오셨으니… 인사를 드리고 싶으시다고.”
종업원은 상당히 긴장한 표정이었다.
“이봐, 오케아스.”
“…….”
“입 좀 열어 봐.”
“앗, 네.”
허락을 받은 오케아스가 다급히 대답했다.
“그동안 이런 적이 있었나?”
“그, 글쎄요. 적어도 저랑 같이 왔을 때는 한번도…….”
옆에 있던 접대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 나한테 해코지라도 하려는 거 아니야?”
“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카이트 님과 친분을 쌓기 위한 겁니다!”
“농담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나 혼자만 가는 건가?”
“네?”
“여기 일행도 있는데 말이야. 같이 좀 갔으면 하는데.”
“아…….”
오케아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카, 카이트 님, 저는 굳이…….”
“가자, 오케아스. 7층 구경 좀 해보자고.”
“네…….”
자리를 뜨기 전, 나는 접대부들한테 다시 한번 입을 꿰매는 시늉을 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있으라는 의미였다.
“7층은 어떻게 가지?”
“이쪽 승강기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흑사련 본부에 있었던 것과 비슷한 기관장치를 이용해 7층까지 올라갔다.
7층은 3층 이하와는 달리 아주 조용했다.
“이쪽 룸입니다.”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가니, 거친 인상의 사내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3층에서 만났던 접대부들보다 화려한 외모를 지닌 여자들도 대기하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래층들을 관리하는 폴루스입니다.”
“반갑군.”
악수를 청했기에 받아줬다.
“내가 7층까지 올라오는 건 처음이던가?”
“그렇습니다. 카이트 님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저희 클럽의 마음이라고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7층 수준이 아니었다는 얘기 같은데.”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농담이야. 신경 쓰지 마.”
그렇게 대꾸하며 나는 자리에 앉았다.
“내가 이 도시에 사는 것도 아니고, 자주 올 수 없으니 단골 대접 못 받는 것도 당연하지.”
“아닙니다, 공자님.”
폴루스는 굽실거리며 일단 내 잔에 술을 따라줬다.
나는 별다른 대꾸를 안 하고 술을 들이켰다.
“흠…….”
술맛을 음미하고 있자, 화려한 외모의 접대부들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한편 오케아스는 불편한 기색으로 구석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공자님, 제가 얼핏 들었는데, 요새 좀 공적을 세우셨다고요?”
“뭐 그렇지.”
나는 술잔을 비우며 대꾸했다.
“너커, 하이 리자드맨, 킹 리자드맨… 그런 괴물들을 잡았고, 요새는 유르고스 남작령을 탈탈 털기도 했지.”
“네?”
폴루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여기에는 아직 소문이 퍼지지 않은 상태 같았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네, 공자님.”
“술맛이 좋네.”
“아, 네.”
“약을 타서 더 좋은 것 같아.”
“…….”
폴루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약이냐? 수면약? 최음약? 먹자마자 죽는 약은 아닐 테고.”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공자님.”
“내가 이런 걸 한두 번 당해 본 적 아나?”
무림에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당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흑도를 대표하는 흑사련의 간부 출신.
이 정도 약물에 중독될 정도로 어리숙하지는 않다.
‘삼황제독공을 안 써도 정화 가능하지.’
내공을 운용하여 약기운을 몰아내면서, 나는 폴루스를 노려봤다.
“흐, 흠, 공자님.”
폴루스의 표정이 바뀌었다.
거친 인상의 사내다운 표정이 된 것이다.
“유흥가에도 규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유흥가의 규칙이라.”
“네, 영업을 방해하는 건 안 된다는 거죠.”
“내가 그 너희 영업을 방해했다고?”
“그렇습니다, 공자님.”
“재미없는 경기를 보고 재미없다고 말했을 뿐이다만, 그게 규칙 위반이 된다?”
“그렇지요. 어차피 약도 드셨고, 오늘은 얌전히…….”
폴루스가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콰직!
내가 집어 던진 술병이 폴루스의 머리에 명중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억……!”
“꺄악!”
폴루스가 피가 철철 흐르는 머리를 움켜쥐었고, 주위 접대부들이 비명을 질렀다.
“술자리에 초대해 놓고 약 탄 술을 먹이는 건 규칙에 맞는 일이냐?”
“……!”
“정말 총체적으로 난국이군.”
사실 나는 이런 일에 익숙했다.
무림에서도 기루 등에서 이런 일을 겪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런 곳일수록 일을 진행하기가 더 편한 법이지.’
이게 만약 아무런 문제없는 건전한 술집이었다면 나도 일을 진행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접대부는 애인과 편을 먹고 나를 등쳐먹으려 하지 않나, 검투 경기는 짜고 치는 연극이지 않나, 관리자란 놈은 다짜고짜 약부터 먹이지 않나…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내 뜻대로… 윗대가리들을 끌어내기에 딱 좋은 조건인 것이다.
“젠장, 최음약에 중독되었을 텐데 어떻게 이런…….”
“중독이 안 되었으니까 그렇지.”
역시 최음약이었나.
하긴 이런 곳에서는 그런 게 있을 법 하다.
“이, 이런 개 같은……!”
“손님한테 개가 뭐야.”
“억……!”
술병으로 다시 한번 폴루스의 머리를 후려치면서, 나는 냉담하게 말했다.
“여기 책임자 나오라고 해라. 개 같은 손님이 불만 많으시다고 말이다.”
오늘 프레이야 클럽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무림에서도… 이런 기루는 어느 날 갑자기 폭삭 주저앉곤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