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81
▣ 181화. 신역의 힘 (4)
언제부터인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브리트라가 강제로 수분을 끌어모았던 것이 해제되면서 발생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린 메로베우스 위로 빗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
브리트라는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몸이 절반으로 갈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다시 일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그 모습을 응시하면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브리트라.”
“…….”
“이걸로 확인은 끝났나?”
그렇게 말을 걸자, 브리트라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다 끝났습니다.”
거만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폴리모프를 하고 있었을 때와 똑같은, 차분하고 공손한 목소리였다.
“당신은… 신역의 힘을 쓸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였군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화경이라고 하지.”
“신화경… 그렇군요.”
신역의 힘이란 마치 신처럼 세계의 법칙을 다루는 힘이다.
그 신역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이상, 신화경에 도달했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자연 본래의 힘인 에테르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으니… 자연경이라고도 할 수 있지.”
“자연경이라…….”
지금까지 수라청벽검, 수라적염검, 수라흑설검, 수라백강검 등의 무공을 사용할 때는 신화병장을 매번 바꿔야 했다.
각 신화병장의 속성에 맞춰서 무공을 사용해야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내 안에 있는 에테르… 정확히 말하자면 에테르를 변환시켜 만든 수라무극진기를 활용하면 되니까.
수라무극진기는 내가 원할 때마다 음기도 되고 양기도 되어서 다채롭게 발현될 것이다.
무극이란 음과 양이 분화되기 이전의 정순한 기운을 뜻하는 것이니까.
“신화경, 그리고 자연경… 그것이 지금의 내가 도달한 경지다.”
세계의 법칙을 다루는 신화경.
순정의 자연지기를 다루는 자연경.
나는 이런 경지에 도달한 상태였다.
화경과 현경을 넘어, 무림에서는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펼친 심검은, 신화경과 자연경을 바탕으로 펼친 ‘신역절기’라 할 수 있지.”
“그렇군요. 그게 바로 당신이 도달한 힘…….”
브리트라가 탄식했다.
“당신이 그 정도 수준이라면… 진지하게 당신에게 충성을 바칠 걸 그랬군요.”
“충성?”
“카롤루스한테 맹세했던 충성과는 다릅니다. 진지하게 당신을 섬기고 신하가 될 걸 그랬군요.”
“나를 꼭두각시로 삼아 조종하려 하는 게 아니고?”
“그게 가능한 인물이 아닌데, 어떻게 그리하겠습니까.”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브리트라가 쓴웃음을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신이라면 진정한 용황제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
“정말로 인간과 드래곤을 함께 지배하며…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었을 텐데.”
그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패배를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미래를 실현하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브리트라.”
나는 브리트라를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가 카롤루스를 옹립하여 용황제로서 세상을 지배하려 했던 건, 단순히 인간들을 사육하기 위한 거였나?”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한 가지 의문이 생겼거든.”
사실 아까 황궁에서 전투를 할 때도 느꼈던 것이다.
“암리타를 복용한 인간은 나가가 되지. 그런데 나가는 순수한 식량이라기보다는 전사(戰士)에 적합한 존재처럼 보이더군.”
“…….”
“너희가 복용시킨 암리타는 신화시대의 암리타와 완전히 동일한 게 아니라고 했지. 따로 조정한 거라고 하던데… 단순히 인간들을 먹이로 삼기 위한 거라면, 좀 더 다른 방향으로 조정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내 질문을 듣고, 브리트라가 탄식했다.
“당신은 정말로 날카롭군요.”
“…….”
“맞습니다. 나가들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라 용황제와 함께 싸우는 전사이기도 합니다.”
카롤루스가 나가들의 왕이라는 ‘나가라자’로 변했을 때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얘기였다.
“브리트라, 너희들의 계획이 성공하면 이 세상에는 너희들에게 대항할 존재가 아무도 남지 않게 돼.”
반발하는 귀족들만 제압하면 더 이상 용황제에게 대항할 세력은 없다.
에인션트 드래곤은 용황제와 한편이고, 몬스터들도 통제할 수 있다.
니드호그도 그런 상황이 되면 결국 브리트라 측에 붙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왜 나가 같은 전사들이 필요한 걸까.
“너희는 누구와 싸울 생각이었던 거지?”
“…….”
“내가 모르는 세력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가?
그 질문을 듣고.
브리트라가 웃음소리를 냈다.
“평범한 인간 중에서 그걸 깨달은 건 아마 당신이 처음일 겁니다, 카이트…….”
“그렇다면…….”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봉인이 깨질 날을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죠.”
“봉인?”
“카이트, 영구동토가 왜 얼어붙어 있다고 생각합니까?”
허를 찌르는 말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막연히 북쪽이 더 추우니까 얼어붙어 있는 거라 생각했다.
“영구동토가 얼어붙어 있는 것은, 신화시대의 결전에서 패배한 자들을 봉인하기 위해서입니다.”
“…….”
“신화시대에 존재했던 신이나 거인들이 왜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을까요? 드래곤들은 버젓이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데?”
그 부분도 특별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먼 옛날이기도 하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니드호그의 용공작인 디트리히가 왜 거대한 존재를 상대하는 것에 특화된 힘을 갖고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거인 종족이 영구동토에 봉인되어 있다는 건가?”
“거인뿐만이 아닙니다.”
“설마 신들도?”
“네, 결전에서 살아남은 신들이 그곳에 봉인되어 있죠.”
브리트라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발할라의 전사들과 함께 말입니다.”
“……!”
발할라.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
에인헤랴르의 전사들이 죽으면 가게 된다는 사후 세계 같은 곳이다.
그리고… 카이트의 어머니이자 시구르드의 첫 번째 아내였던 브륀힐다는, 발할라로 전사들을 인도해 주는 존재인 ‘발키리’를 자칭했다고 한다.
“발할라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그렇습니다, 카이트…….”
단순히 전설 속의 존재가 아니었던 건가.
“그리고… 아마 그들은 머지않아 봉인을 깨고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어째서지?”
“그들은 이미 눈치챘을 겁니다. 에인션트 드래곤이 영구동토를 떠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차례차례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하겠죠.”
브리트라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존재의 소멸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브리트라.”
나는 브리트라에게 물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지금의 저로서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이 불가능할 것 같군요.”
브리트라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머지는… 당신 안에 있는 파프니르에게 듣는 게 좋을 겁니다.”
“뭐라고?”
파프니르의 잔류 사념은, 드래곤 오브가 부서지면서 소멸했을 텐데?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군…….’
바로 그때, 파프니르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정신세계에서 들었던 목소리하고 완전히 똑같았다.
“자, 그러면 이제 작별입니다…….”
브리트라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느새 브리트라의 육체는 모래처럼 흩어지기 시작한 상태였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당신을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
“그랬다면 이런 방식을 취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결국 니드호그가 옳았군요.”
점점 사라져 가는 육체로, 브리트라가 탄식했다.
“에인션트 드래곤도 이제는 니드호그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생물을 지킬 수 있는 건… 이제 당신뿐입니다.”
“브리트라…….”
“영구동토에 남아 있는 소수의 드래곤들도… 염치없는 부탁이라는 건 알지만, 부디…….”
브리트라의 목소리는 그것으로 끝났다.
거대한 육체는 완전히 흩어져 소멸해 버렸다.
황궁이 있던 자리에 드래곤 오브가 남았지만, 금방 깨졌다.
“…….”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빗줄기 속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파프니르.”
그리고 내 안에 존재하는 파프니르에게 말을 걸었다.
“설명을 부탁한다.”
내 안에서 파프니르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영구동토 최북단.
그곳에는 그 무엇보다 거대한 나무가 하늘 높이 뻗어 있다.
신화시대부터 존재해 온 세계수… ‘위그드라실’이었다.
그리고 그 밑동에 니드호그의 거처가 있었다.
“남쪽에서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연전연승하고 있는 것 같더군.”
“정말로 카이트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에인션트 드래곤을 연달아 격파한다는 건…….”
“하지만 브리트라까지 격파한다면 카이트야말로…….”
거대한 광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 니드호그 파벌의 용귀족과 드래곤들이었다.
그들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에인헤랴르를 상대로 치열한 전쟁을 벌여 왔다. 하지만 지금은 에인헤랴르와 손을 잡기로 한 주군의 방침에 납득한 상태로, 앞으로 별일이 없으면 인간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었다.
“니드호그 폐하는… 어떻게 하고 계시지?”
“모르겠습니다. 분신을 남쪽으로 보낸 이후 계속 휴식을 취하고 계신 것 같은데…….”
“아무리 니드호그 폐하라고 해도… 그 먼 곳까지 분신을 보내는 건 쉽지 않지.”
“빨리 회복되셨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들은 잡담을 나누면서 니드호그가 다시 모습을 나타나는 때를 기다렸다.
원래 니드호그 파벌은 드래곤이든 용귀족이든 주군을 향한 충성심이 아주 강한 편이다.
“음……?”
“니즈얼라그두 님, 왜 그러십니까?”
니드호그 파벌의 중진인 니즈얼라그두가 머리를 치켜들고 위그드라실 쪽을 쳐다봤다.
“아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설마 라타토스크라도 보신 겁니까?”
라타토스크는 위그드라실에 사는 청설모다.
신화시대 때부터 살아온 존재이기 때문에 여기 있는 어떤 드래곤보다 나이가 많다.
“그런 게 아니라…….”
니즈얼라그두가 인상을 찡그리며 위그드라실을 자세히 살펴보려 했을 때.
갑자기 주위가 흔들렸다.
“뭐, 뭐야?!”
“무슨 일인가……!”
쿠르릉!
위그드라실을 중심으로 격렬한 지진이 발생하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엄청난 진동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세상의 종말인가……!”
다들 당황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을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시작된 모양이구나.”
“니드호그 폐하……!”
인간으로 폴리모프를 한 니드호그가 거처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평소라면 다들 환희하면서 니드호그에게 인사를 올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들 준비를 해라.”
“주, 준비라니요?”
“어떤 준비를 말씀하시는 건지…….”
“영구동토를 탈출할 준비 말이야.”
니드호그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화시대에 봉인되었던 신과 거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어.”
“……!”
“라그나로크가 다시 시작되는 거지.”
라그나로크.
신화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던, 초월적 존재들의 최종 전쟁.
그 전쟁은 제대로 결판을 내지 못했다.
초월적 존재 상당수를 봉인하는 것으로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단되었던 전쟁이… 오랜 세월이 흘러 재개되려 하고 있었다.
“명령이다. 영구동토를 탈출해 남쪽으로 가서 카이트 에인헤랴르와 합류해라.”
경악하는 부하들 앞에서 니드호그는 선언했다.
“다시 시작되는 라그나로크에서 초월적 존재들과 싸우기 위해… 인간과 드래곤의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