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83
▣ 183화. 라그나로크 (2)
우리는 일단 메로베우스 주변에 머무르기도 했다.
카롤루스를 처단하긴 했지만, 메로베우스는 괴멸되었고 성내에 있던 황족들이나 귀족들도 몰살되었다. 뒷수습을 위해서라도 바로 북쪽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었다.
“다른 황제파 귀족들에게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라도, 바로 떠나서는 안 됩니다.”
“니얼, 그런 부분은 너한테 일임할 테니 알아서 해.”
“알겠습니다. 하지만 대귀족들이 직접 면담을 요청하면 카이트 공자님이 나서 줘야 합니다.”
“가능할 때는 그렇게 하지.”
다른 귀족들과의 조율은 니얼에게 일임했다.
이런 부분에 관해서는 니얼만큼 유능한 녀석이 없었다.
“그리고.”
“네?”
“요즘 너희들끼리 뭔가 쑥덕거리는 것 같던데, 따로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
“그건… 제대로 정리가 되면 보고드리겠습니다.”
“급한 일은 아닌가 보군. 정리되는 대로 알려 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마 황제를 잃은 제국을 어떻게 재편해야 할지 의논하고 있을 것이다.
원래 니얼은 북부를 통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이제는 북부뿐만 아니라 제국 전체의 운명에도 관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상당히 신났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훈련장에 가 보지.”
“알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니얼에게 뒷일을 맡긴 뒤, 나는 임시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이바르와 어윈, 모르트, 슈데르츠, 슈벤, 이그니카, 휴이엔, 루살카가 땀을 흘리며 무공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들 잘하고 있나?”
“아, 형님!”
“각자 과제는 잘 수행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꼼꼼히 살피면서 무공을 지도해 줬다.
이건 그들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의 무공을 돌아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신화경에 도달하면서 내 무공을 원점에서 다시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슈벤, 하체에 비해 상체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 균형을 맞춰라.”
“알겠습니다!”
“이그니카는 연리음양검의 절초(絶招)를 거의 터득한 것 같군. 조금만 다듬으면 되겠어.”
“감사합니다!”
“휴이엔, 월야비연도로 날리는 비수의 숫자를 더 늘려도 될 것 같다. 지금 네 실력이면 감당할 수 있다.”
“해 보겠습니다!”
“루살카, 슬슬 경공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 수라비룡검에 경공을 접목해서 누구보다 빠르게 적을 습격해 보자.”
“네……!”
한 명씩, 한 명씩.
다양한 녀석들의 무공을 점검하는 일은 나 자신의 무공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깨닫게 되는 일도 많았다.
“이바르, 뒤랑달은 익숙해졌나?”
“솔직히… 아직 성과는 없습니다.”
이바르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성검’ 뒤랑달을 치켜들었다.
카롤루스를 쓰러뜨린 뒤 전리품으로 얻은 거지만, 나는 이걸 이바르한테 넘겨준 상태였다.
“에테르를 인식하고 교감하는 건 가능한데, 아직 그 힘을 끌어내지는 못하겠습니다.”
“아니, 지금은 그 정도로 충분해.”
솔직히 놀라웠다.
무공에 입문한 지 1년도 안 된 주제에 벌써부터 신화병장 속의 에테르를 제대로 감지할 수 있게 될 줄이야.
역시 이바르는 기(氣)를 다루는 것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계속 검을 휘두르면서 뒤랑달과 하나가 되려고 해 봐. 그러면 분명히 너에게 답해 줄 테니까.”
“네, 해 보겠습니다.”
이바르에게 조언을 해 준 뒤, 나는 오늘 지도를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해 줄 수 있는 건 다 끝난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보지.”
“수고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너희들한테 말해 줄 게 있었는데.”
“네?”
“북부에서 아나스타샤가 새로운 영약을 보내 줬다. 영구동토에서 퇴각하는 길에 추가로 확보한 드래곤 하트를 사용해서 제조했다고 하더군.”
“……!”
에리크 등이 시구르드를 데리고 고틀란드로 귀환하고 있었을 때, 에인션트 드래곤에게 흡수되지 않고 살아남은 드래곤들과 조우했다고 한다.
그들을 에리크와 모리안, 아나스타샤가 토벌하고 드래곤 하트를 입수했다는 것 같았다.
“오늘 훈련을 마치고, 니얼과 함께 영약을 복용한 뒤 운기조식을 해라.”
“카이트 형님, 그러면…….”
“이번 영약까지 먹으면 너희들은 3갑자의 내공을 획득하게 될 거다. 이제 오러 블레이드와 동급인 검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거지.”
“……!”
다들 기뻐했다.
특히 예전에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던 녀석들의 표정이 밝았다.
“검강까지 만들 수 있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거다. 다들 정진하도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격려한 뒤, 나는 자리를 떴다.
중간에 아그나르의 황룡기사단과 헤스테인의 적룡기사단도 점검한 뒤, 평야를 가로질러 근처 야산으로 올라갔다.
‘역시 이 주변에서는 여기가 가장 낫군.’
이 주변은 평평한 지형이 대부분이지만, 여기는 예외다.
숲이 우거져 있고 조용해서 나한테는 딱 맞는 곳이었다.
‘자, 그러면…….’
나는 바위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오늘도 시작해 볼까.’
마음을 깊게 가라앉히자, 내 정신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이곳 말고는 안 되는 건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파프니르가 나한테 쓴소리를 던졌다.
지금 나는 그동안 여러 번 봤던 설원… 내면의 심상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이제는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동안 나는 매일 이곳에 들어와 파프니르의 잔류 사념과 대면하고 있었다.
“뭐가 좋다고 네놈의 과거를 매번 봐야 되는 건지 모르겠군.”
설원에는 천룡회 사람들의 시체가 잔뜩 있었다.
확실히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지만, 에인션트 드래곤인 파프니르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 정도로 거북한가?”
“거북하다기보다는, 거슬린다. 네 마음에 깊게 새겨져 있는 회한(悔恨)이 그대로 드러나 있으니까 말이다.”
“…….”
“지금 나는 네 내면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네 감정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지. 별로 유쾌한 감각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며 파프니르는 근처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래서, 오늘은 무엇을 할 생각이냐?”
“일단 얘기부터 하지.”
“뭐가 좋다고 너하고 잡담을…….”
“잡담이 아니고, 진지한 얘기야.”
나는 파프니르의 맞은편 바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지난번에는 물어보지 못했는데, 발할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나?”
“발할라…….”
파프니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에인헤랴르에서 믿는 사후 세계 아닌가?”
“아니, 영구동토에 신들이 발할라의 전사들과 함께 봉인되고 있다고 하던데.”
“뭐라고? 그 소리를 누구한테 들었지?”
“브리트라한테서.”
“브리트라한테? 그렇다면…….”
내 말을 듣고 파프니르는 생각에 잠겼다.
“가만있자, 설마… 오딘의 전사들을 말하는 건가?”
“오딘의 전사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신화시대 때 나는 그쪽과 직접 충돌하지 않아서 바로 깨닫지 못했다.”
어쨌든 파프니르도 아는 게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발할라는 오딘이라는 신을 따르는 인간 전사들의 모임이다.”
“에인헤랴르의 전설에서는 싸우다가 죽으면 발할라로 간다고 하던데, 와전된 건가?
“그렇겠지.”
“파프니르, 그러면 발키리는 어떤 거지?”
“발키리?”
“발할라로 전사들을 인도하는 여자라는데.”
“아, 그런 게 있긴 했지. 그 여자들의 이름이 발키리였나.”
정말로 큰 관심이 없었는지, 이 분야에 관해서는 브리트라보다 지식이 적은 것 같았다.
“프레이야라는 여신이 이끄는 여전사들이 있었다. 인간 전사들을 선발하여 발할라로 데려오는 여자들이었지.”
“…….”
카이트의 어머니이자 시구르드의 첫 아내였던 브륀힐다는 자기가 발키리라고 했다.
그냥 농담이라고 받아들였는데, 왠지 진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프니르, 혹시 발키리는 전사를 육성하는 역할도 하나?”
“무슨 소리지?”
“전사를 선발하는 것 말고도, 나중에 발할라의 전사가 될 만한 사람을 직접 육성하기도 하냔 말이야.”
“그건… 모르겠는데.”
“도움이 안 되는군.”
“이 녀석이…….”
시구르드는 브륀힐다를 만나서 강해졌다고 했다.
특히 비전서를 보여 준 덕분에 빨리 강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만약 발키리가 전사를 육성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면, 브륀힐다가 진짜 발키리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파프니르, 혹시 봉인 속에서 발키리가 몰래 빠져나와 현대의 인간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을까?”
“대체 왜 그런 걸 궁금해하는지 모르겠다만…….”
파프니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지. 봉인의 틈새로 빠져나오려 하는 놈들은 예전부터 있었다. 다만 그런 놈들은 우리 에인션트 드래곤들의 감시망에 걸렸다.”
“그래?”
“발키리 정도 되는 존재감을 지닌 존재라면 우리가 놓쳤을 리 없다.”
“만약… 존재감을 작게 만들었다면?”
“뭐라고?”
“자신의 힘을 약하게 해서 평범한 인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만든다면, 너희들의 눈을 피해 봉인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
내 말을 듣고 파프니르가 생각에 잠겼다.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소드 마스터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면 우리도 감지 못한다.”
“그렇단 말이지…….”
브륀힐다는 8서클의 소드 엑스퍼트였다고 한다.
소드 마스터 미만의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 조건에 부합한다.
‘카이트가 태어난 뒤, 브륀힐다는 시구르드의 곁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어. 설마 영구동토의 봉인 안으로 돌아간 걸까?’
만약 그렇다면 영구동토에서 봉인을 뚫고 기어 나오는 신들의 군세에 브륀힐다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내 육체의 어머니와 싸워야 되는 걸까?
‘만약 시구르드가 브륀힐다와 마주치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기 어렵군.’
생각에 잠겨 있자, 파프니르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대체 뭐지? 이런 걸 왜 물어보는 거야?”
“그런 게 있어.”
“이 녀석이 진짜…….”
“어쨌든.”
짜증을 내는 파프니르를 무시하고, 나는 바위에서 일어났다.
“오늘 수련을 시작하지.”
“쯧, 알겠다.”
이곳은 내 마음속 공간이다.
잔류 사념에 불과한 파프니르도 이곳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면, 해 봐라.”
“그래.”
나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을 되살렸다.
그리고 그것을 이 세계에 재현시키면…….
“흐음.”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흑색의 에인션트 드래곤이 출현한 상태였다.
파프니르의 본모습인 드래곤 형태였다.
“네가 허락해 주지 않으면 이 모습을 취할 수 없다니, 안타깝군.”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나는 파프니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곳에서라면, 너도 신역의 힘을 마음대로 쓸 수 있잖아.”
“그렇긴 하지.”
내가 싸웠던 파프니르는 에테르 부족으로 인해 신역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곳은 내 마음속 공간이다.
내가 에테르를 충분히 보유한 파프니르를 구현해내면 되는 것이다.
“이것도 네가 신화경에 도달했기에 가능한 일이겠군.”
“그렇지.”
“좋다.”
파프니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렇다면 오늘의 수련을 시작하지. 네가 원하는 대로… 대련 상대가 되어 주마.”
“부탁하지.”
내가 손에 심검을 출현시키자, 파프니르도 입을 벌리고 브레스를 뿜을 준비를 했다.
내 마음속에서 신화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후우…….”
파프니르와의 일과를 마치고, 나는 눈을 떴다.
어느새 주위는 새카만 밤이었다. 내가 앉아 있는 바위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슬슬 돌아가야겠군.”
전성기 시절의 힘을 발휘하는 파프니르와의 대련은 내 성장에 큰 도움이 되어 주고 있다.
실제로 싸우는 게 아니라 마음속 공간에서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부상을 입을 염려도 없다.
다만 정신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기 때문에, 적절한 휴식은 필요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막사로 돌아가려 했을 때.
나는 하늘에서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을 느꼈다.
“이건…….”
익숙한 기척이라, 누구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와이번을 타고 날아온 디트리히였다.
“디트리히, 무슨 일이지?”
브리트라를 쓰러뜨린 뒤, 디트리히는 임무가 다 끝났다면서 북쪽으로 돌아갔다.
니드호그에게 간 줄 알고 있었는데, 중간에 돌아온 걸까.
“카이트 님, 비상사태입니다.”
디트리히의 표정은 평소보다 심각했다.
“니드호그 폐하가 저한테 사념파를 보내셨습니다.”
“니드호그가?”
“영구동토의 봉인이 뚫렸다고 합니다.”
“……!”
영구동토의 봉인이 뚫렸다.
그것은 신화시대의 신이나 거인 등이 기어 나오게 되었다는 얘기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군.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줄은 몰랐는데.’
머릿속에서 파프니르가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래, 봉인이 뚫렸단 말이지.”
“네, 현재 니드호그 폐하는 부하들과 함께 영구동토를 탈출하시는 중입니다.”
“적절한 판단이군.”
니드호그 혼자서는 대항할 수 없다.
남쪽으로 도망쳐서 인간들과 합류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기에 니드호그도 디트리히를 영구동토로 불러들이지 않고 다시 나한테 보낸 것이다.
내가 다시 북부로 돌아가 자신들과 합류할 수 있도록.
“카이트 님, 부디…….”
“말 안 해도 된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는 북쪽을 노려봤다.
‘그러면 카이트… 갈 건가?’
머릿속에서 들려온 파프니르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가야지.”
나는 산을 내려가면서,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북쪽으로 간다.”
라그나로크 때 봉인된 신이나 거인들이 이 세상을 짓밟으려 한다면, 내가 막아야 한다.
그들의 군세 속에… 카이트의 어머니인 브륀힐다가 속해 있다고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