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84
▣ 184화. 라그나로크 (3)
최북단을 지키는 백룡기사단 단장인 ‘에인헤랴르의 방패’ 에리크는 눈을 의심했다.
저 멀리 영구동토 방면에서 드래곤들이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니드호그가 배신한 건가?!”
독룡 니드호그는 오랫동안 에인헤랴르와 충돌해 온 에인션트 드래곤이었지만, 최근 손을 잡았다.
그 이후로 조용했는데, 남부에서의 소란이 진정되자마자 다시 쳐들어온 걸까.
“에리크 단장님! 바로 기사들을 준비시키겠습니다!”
“아, 아니. 잠깐!”
에리크는 마력을 눈에 집중해 시력을 극대화했다.
산맥을 넘어오는 드래곤들 너머에서 이상한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저건 분명… 아니, 그럴 리가.”
“왜 그러십니까?”
“늑대인간이…….”
“웨어울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웨어울프는 늑대와 인간이 뒤섞인 모습을 한 몬스터다.
체격은 인간보다 좀 큰 정도다.
“아니, 그런데…….”
에리크가 손등으로 눈을 비빈 뒤 다시 북쪽을 노려봤다.
“어떻게… 저렇게 큰 거지?”
산맥을 넘어오는 드래곤들 너머로 거대한 늑대인간이 있었다.
드래곤보다는 명백히 컸다. 지난번에 봤던 파프니르보다 클 정도였다.
“드래곤들은 저 늑대인간에게서 도망치고 있는 건가……?”
수십 년 동안 최북단에서 싸워 온 에리크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 * *
에인헤랴르 가문의 본거지, 고틀란드.
그곳에서는 막내아들인 프리드레이프가 다른 가문에서 찾아온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면 카이트 님이 해내신 거군요!”
광휘창가 피어너에서 온 모리안이 눈을 빛내며 기뻐했다.
“희대의 패륜아인 카롤루스 황자를 처단하고, 에인션트 드래곤들까지 소탕했다니, 그야말로 영웅적인 활약이네요! 아나스타샤 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러게요. 솔직히 놀랍습니다.”
귀살마가 크레스니크에서 온 아나스타샤도 고개를 끄덕였다.
“카롤루스 황자를 쓰러뜨리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인션트 드래곤 여러 마리를 상대하는 건 아무리 카이트 님이라도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모조리 토벌해 버렸군요.”
피어너 공작 가문과 크레스니크 공작 가문의 영애들이 첫째 형을 칭찬하는 걸 듣고, 프리드레이프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죠. 카이트 형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남쪽에서 전달된 소식을 들었을 때, 프리드레이프는 정말로 기뻤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사태를 빠르게 마무리했을 뿐만 아니라, 에인헤랴르 측의 피해도 별로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구동토 원정에 비해 전력 소모가 더 적었다.
“프리드레이프 님, 그러면 앞으로 카이트 님은 어떻게 움직이실까요.”
“일단 한동안 남부에 머물면서 뒷정리를 하신다고 합니다.”
“뒷정리라…….”
아나스타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어쩌면 카이트 님이 앞으로의 제국 재편의 중심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모리안 님, 현재 제국은 권력의 공백 상태입니다. 황제 자리는 공석이고, 메로베우스에 있던 황족들도 전부 죽어 버렸죠. 이런 상태에서 어딘가 지방에 내려가 있던 황족을 데려와서 제위에 앉혀도 상황을 수습하는 건 어렵습니다.”
모리안의 의문에 아나스타샤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해 줬다.
“현재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건, 카롤루스 황자를 처단하고 에인션트 드래곤을 토벌한 영웅… 카이트 님뿐이겠죠.”
“그, 그러면 카이트 님이 어떤 일을 하신다는 건가요?”
“일단 새로운 황제의 측근이 되어 힘을 실어 주는 방법이 있겠죠. 그게 아니라면…….”
아나스타샤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니, 이건 함부로 입에 담아도 될 말이 아니군요.”
“네? 무슨 말씀이시죠?”
“아나스타샤 님, 설마…….”
프리드레이프는 눈을 크게 떴다.
“카이트 형님이 이 제국의…….”
“함부로 얘기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카이트 님 곁에 있는 니얼 경 같은 사람은 이미 그쪽 방안을 검토하고 있을 겁니다.”
“……!”
아나스타샤의 말은 카이트가 황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현시점에서 카이트는 대륙 최강의 무력을 지닌 존재다. 카롤루스를 처단하고 에인션트 드래곤을 토벌하는 등 영웅적인 활약을 했다.
혼란에 빠진 제국을 구하겠다면서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그러면 남부의 황제파 귀족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황제파 귀족들도 이번 사건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지요. 남아 있는 귀족들에게도 구심점이 필요하니, 분위기만 잘 조성되면 카이트 님을 중심으로 뭉칠 수도 있습니다.”
“저기,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는데요…….”
아직 미숙한 모리안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을 때.
바깥에서 응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프리드레이프 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지?”
“정체불명의 거인이 영구동토 쪽에서 설원지대로 내려와… 공격을 개시했다고 합니다!”
“거, 거인?”
“네! 니드호그 파벌의 드래곤과 용귀족들도 그 거인을 피해 남하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같습니다!”
“……!”
프리드레이프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리안, 아나스타샤도 마찬가지였다.
남쪽에서의 문제가 해결되어서 안도하고 있었는데… 북쪽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지고 있는 것 같았다.
* * *
“저 거대한 늑대인간은 대체 무엇인가, 니즈얼라그두!”
에리크는 고개를 치켜든 채 소리쳤다.
지금 에리크 앞에는 니드호그 파벌의 은색 드래곤이 웅크리고 있었다.
“저건… 펜리르다.”
“펜리르?”
“먼 옛날 신화시대에 살았던 거인 중 하나지. 영구동토의 봉인을 뚫고 튀어나온 거다…….”
“……!”
지금 프레이르 요새 주변에는 펜리르에게서 도망쳐 온 드래곤과 용귀족들이 모여 있었다.
다만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드래곤은 여덟 마리고, 용귀족은 세 자리 숫자도 되지 않는다.
영구동토에서 탈출한 숫자는 더 많았지만, 펜리르에게 붙잡혀 죽었기 때문이다.
“펜리르뿐만이 아니다. 신화시대의 신과 거인들이 봉인을 뚫고 나와 우리를 공격하였다. 우리는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서 도망쳤지만… 영구동토 탈출에 성공한 건 일부뿐이었다.”
“그, 그러면 니드호그는 어떻게 되었지?”
“니드호그 폐하는 우리와 다른 방향으로 탈출하셨다. 무사하시면 좋을 텐데…….”
충격적인 얘기였다.
에인션트 드래곤인 니드호그조차 도망칠 정도로 무서운 놈들이 영구동토에서 나타났단 말인가?
“니드호그 폐하는… 우리에게 에인헤랴르와 합류하라고 하셨다.”
“에인헤랴르와?”
“그렇다. 너희들… 특히 카이트 에인헤랴르와 상의해서 움직이라고 명령하셨다.”
그렇게 말하며 니즈얼라그두가 주위를 둘러봤다.
“카이트 에인헤랴르는… 여기에 없는 건가.”
“카이트 님은 여기 안 계신다. 저 멀리 남쪽에 계시니…….”
“그렇군…….”
니즈얼라그두가 이번에는 북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다행히 펜리르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덕 위에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고 있군…….”
드래곤과 용귀족들을 학살하며 남하하던 펜리르는 설원지대 중간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얼핏 보기에는 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지금이 기회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에리크…….”
“…….”
에리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남쪽 고틀란드까지 후퇴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펜리르와 맞서 싸워 봤자 승산은 없으니까.
하지만 만약 펜리르가 고틀란드까지 밀고 들어온다면… 고틀란드는 요르문간드가 나타났을 때 이상으로 큰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설원지대의 병력을 최대한 모아서 펜리르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당연히 승산은 없고, 전멸을 피할 수 없다.
그래도 펜리르의 남하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그 사이 카이트가 북쪽으로 올라온다면… 어쩌면 고틀란드는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에리크는 입술을 깨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 * *
눈 쌓인 언덕 위.
그곳에서 펜리르는 눈을 뜨고 크게 하품을 했다.
“크아아아암.”
몇 시간을 잤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어쩌면 하루 넘게 잠들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은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단위로 잠들곤 했기 때문에, 이렇게 짧게 눈을 붙이는 건 시간 파악이 어려웠다.
“바람이 시원하군…….”
차가운 바람에 회색 털이 휘날리는 걸 느끼며, 펜리르는 미소를 지었다.
영구동토 지하에 봉인되어 있었을 때는 이런 자연 현상을 느낄 수 없었다.
눈을 떠 봤자 새카만 어둠밖에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잠든 채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랜만에 땅 위에 서서 자연의 바람을 느끼고 있다.
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일까.
“워우우우우!”
펜리르는 하늘 높이 울부짖었다.
자유롭게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기쁨을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주위 생물들은 다르게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몬스터들이 모여 들었다.
그 중에서 펜리르와 비슷하게 생긴 웨어울프도 있었다.
“위, 위대하신 존재시여!”
그중 한쪽 팔이 없는 웨어울프가 펜리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저, 저희는 드래곤을 따르다가 버림받은 몬스터들입니다!”
“드래곤을……?”
“네, 하지만 지금은 저희를 통제했던 용귀족들도 사라졌고… 인간들을 피해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몬스터 중에서는 지능이 높은 편인지, 또박또박 말을 잘했다.
“위대하신 존재시여, 어떻게 이 세상에 강림하신지는 모르겠지만… 저, 저희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
다른 몬스터들도 몸을 낮추고 복종하는 자세를 취했다.
강한 자에게 복종하는 짐승의 본능에 의한 것이리라.
“그래, 그런가…….”
“며,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펜리르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리를 치켜들었다.
“그러면 죽어라, 미물들.”
“……!”
콰직.
펜리르의 거대한 발바닥이 십여 마리의 몬스터들을 한꺼번에 짓뭉갰다.
나머지 몬스터들이 깜짝 놀라 도망치려 했지만, 펜리르가 시선을 향한 순간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려 버렸다.
“위, 위대하신 존재시여, 어째서…….”
“위대한 ‘태초의 거인’ 이미르의 후예인 내가… 어째서 벌레 같은 티아매트의 후예들을 거둬들여 줘야 하는지 모르겠군.”
“……!”
콰직, 콰직, 콰직.
모든 몬스터들을 밟아 죽인 뒤, 펜리르는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고개를 치켜들어, 남쪽에 있는 인간들의 요새로 시선을 향했다.
“흐음…….”
수많은 인간이 요새를 지키고 있었다.
펜리르에게서 도망치던 드래곤들, 용귀족들과 함께.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여기서 싸우기로 마음먹은 건가.”
펜리르는 코웃음을 쳤다.
정말로 미물들다운 어리석은 행동이다.
“좋다. 너희 미물들을 남김없이 짓이겨 주마.”
그렇게 다짐하며 펜리르는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신족과 거인족의 연합 세력 ‘아우둠라’의 선봉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 * *
“카이트 님, 아마 북부는 초토화될 겁니다.”
나에게 사정을 설명해 준 뒤, 디트리히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남쪽으로 내려온 상태입니다. 바이콘을 타고 달려가든, 와이번을 타고 날아가든… 너무 늦겠죠.”
“우리가 상당히 남쪽에 와 있긴 하지.”
“저는 그대로 니드호그 폐하가 계신 곳으로 날아가고 싶었습니다만, 카이트 님에게 소식을 전하는 걸 우선하라는 명령 때문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디트리히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이트 님, 일단 북부는 포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 대신 남부에서 최대한 전력을 모아서 대처해야…….”
“아니, 북부는 포기하지 않아.”
“네?”
“바로 북부로 갈 거다.”
내 말을 듣고 디트리히가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말입니까? 아무리 빨리 가도 최소 보름 이상의 시간이 걸릴 텐데…….”
“더 빨리 갈 수 있어.”
그렇게 말하자, 내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세계에서 연습했던 그것을 하려는 거군, 카이트.’
‘그렇지.’
파프니르의 목소리에 대꾸하면서, 나는 북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디트리히, 내가 먼저 출발할 테니 너는 내 부하들한테 소식을 전해 줘. 그러면 알아서 북쪽으로 달려올 테니까.”
“카이트 님, 대체 어떻게…….”
“빠르게 가는 방법이 있으니까.”
바이콘이나 와이번에 의존하지 않아도, 북쪽으로 빠르게 갈 수 있다.
‘괜찮겠나? 현실 세계에서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는데.’
‘해 봐야지.’
파프니르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수라무극진기를 끌어올렸다.
‘평범한 경공으로는 한참 걸리지. 하지만, 나는 지금 신화경에 도달한 상태다.’
신화경은 세계의 법칙을 조작할 수 있는 경지.
실현불가능이라 여겨졌던, 허황된 무공도 가능해진다.
‘축지성촌(縮地成寸)… 땅을 줄여 1촌으로 만든다.’
그 순간, 공간이 왜곡되었다.
직접 달려가면 한참 걸릴 거리를, 한 걸음 만에 이동할 수 있도록 세계 자체를 왜곡한다.
신화경에 도달한 자만이 가능한, 도술과도 같은 경지.
‘이것이 바로… 축지(縮地)다.’
숨을 삼키는 디트리히를 뒤로 한 채.
나는 라그나로크의 괴물들이 기다리는 북쪽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