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85
▣ 185화. 라그나로크 (4)
쿠쿵, 쾅!
요새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이 단번에 무너져 버렸다.
거대한 늑대인간 펜리르의 일격에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파괴된 것이다.
그 엄청난 힘에 에리크는 전율했다.
‘에인션트 드래곤 이상의 힘을 갖고 있는 건가?!’
영구동토에서 악룡 파프니르와 싸웠을 때가 생각났다.
파프니르는 암흑 마법도 쓰긴 했지만, 육체 능력만 보자면 펜리르가 파프니르보다 훨씬 강한 것 같았다.
‘이래서는, 시간을 버는 것조차 어렵다……!’
펜리르와의 전투가 시작된 지 10분 정도 지났을 뿐인데, 피해가 막심했다.
백룡기사단의 기사들이 정말 허무할 정도로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에리크가 지휘한 이래 이 정도의 피해를 입은 건 처음이었다.
함께 싸워 준 니드호그 파벌의 용귀족과 드래곤도 피해가 컸다. 그들은 니드호그의 명령대로 에인헤랴르 측에 최대한 협력해 줬지만, 결국 개죽음만 당했다.
“펜리르……!”
“더 이상 네 마음대로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때 두 마리의 드래곤이 펜리르의 사각에서 튀어나와 브레스를 뿜었다.
한 마리는 펜리르의 등을 향해, 또 다른 한 마리는 펜리르의 뒤통수를 향해.
“흐음…….”
하지만 펜리르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은색 털이 약간 그을렸을 뿐, 별다른 대미지를 입지 않은 것 같았다.
드래곤의 브레스를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내는 존재가 있었을 줄이야.
‘저놈은 대체……!’
펜리르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양팔을 옆으로 뻗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브레스를 뿜은 드래곤들의 목을 움켜쥐었다.
“크억!”
“카악……!”
뚜둑.
마치 닭의 목을 꺾듯이, 펜리르는 드래곤 두 마리의 목을 꺾어 버렸다.
그 엄청난 힘에 에리크는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러면…….”
“……!”
그때 펜리르의 시선이 에리크에게 향했다.
“가장 높은 곳에 서 있고, 마력도 가장 많아 보이는군. 네가 지휘관이냐?”
“그, 그렇다!”
에리크는 검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내가 바로 에인헤랴르의 백룡기사단 단장, 에리…….”
“관심없다.”
펜리르는 에리크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그리고 오른쪽 손을 앞으로 내밀며 중얼거렸다.
“이제 곧 짓뭉개질 미물의 이름 따위를 알아서 무슨 의미가 있지?”
“……!”
거대한 손에 의해 짓눌리기 직전.
에리크는 전력을 다해 오러 실드를 전개했다.
9서클 마력을 최대한 활용한 오러의 방어막이 펜리르의 손을 가로막았다.
“으음?”
쿠웅!
자신의 손이 막히자 펜리르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그 정도 마력으로… 수련을 많이 했나 보군, 인간.”
“크윽……!”
에리크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오러 실드를 유지했다.
황룡기사단의 아그나르가 속도 위주의 소드 마스터라면, 에리크는 방어력 위주의 소드 마스터.
아무리 상대가 강하다고 해도, 이렇게 전력을 다해 막는다면…….
“칭찬해 주마.”
“……!”
파팟!
오러 실드가 산산조각 나 버렸다.
펜리르가 할퀴듯이 손가락을 움직인 것만으로, 잘 버텨 주고 있던 오러 실드가 완전히 뚫려 버린 것이다.
“너 정도라면 발할라의 전사가 될 자격이 있겠지.”
“지, 지금 발할라라고 했나?”
발할라는 에인헤랴르의 전사들이 죽은 다음에 가는 사후 세계의 이름이다.
어째서 펜리르가 그걸 언급하는 걸까.
“하지만 이곳에는 발키리가 없지. 안타깝지만 네 운명은 죽음뿐이다.”
“바, 발키리? 대체…….”
“그래도… 너라는 전사가 있었다는 것은 기억해 두도록 하마.”
“……!”
펜리르의 커다란 손바닥이 에리크에게 떨어져 내렸다.
다시 오러 실드를 전개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오러 블레이드로 막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저항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에리크는 오러 블레이드를 전개하고 받아치려 했다.
“크오오오……!”
바로 그때, 기합 소리와 함께 펜리르의 옆얼굴을 향해 브레스가 날아왔다.
이곳으로 도망쳐 온 드래곤들의 리더, 니즈얼라그두가 무너진 성벽 뒤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브레스를 날린 것이다.
“으음……!”
아무리 방어력이 뛰어나도 얼굴에 직격당하면 고통을 느끼는 걸까.
펜리르가 인상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섰다.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걸 보면 그곳이 약점일지도 모른다.
“하압……!”
에리크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크게 도약하여 펜리르의 팔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펜리르의 머리 쪽으로 미친 듯이 질주했다.
‘눈, 코, 귀… 어디여도 상관없다. 오러 블레이드로 쑤셔 주지!’
죽음을 각오한 전력 질주.
크게 도약하여 어깨 위까지 올라간 뒤, 펜리르의 얼굴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크아아악!”
크게 벌린 펜리르의 입이, 에리크의 왼쪽 팔뚝을 집어삼켰다.
“에리크……!”
니즈얼라그두의 목소리를 들으며 에리크는 지상으로 추락했다.
“크헉……!”
무너진 성벽 위로 떨어진 충격 때문에 입에서 피를 토했다.
물론, 왼팔이 뜯겨져 나간 자리에서도 엄청난 출혈이 있었다.
“제, 젠장…….”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니즈얼라그두가 펜리르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지만, 펜리르가 귀찮다는 듯이 팔을 휘두르자 저 멀리로 튕겨져 나갔다.
“나쁘지 않았다, 인간 전사.”
“크윽…….”
“하지만… 이만 작별이다.”
에리크를 짓밟으려는 듯이, 펜리르가 커다란 발을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기에, 에리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먼저 가겠습니다. 시구르드 전하, 카이트 님…….’
죽음을 각오하면서, 에리크는 존경하는 두 사람을 마음속으로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옛날에 봤던 아름다운 사람을 떠올렸다.
‘브륀힐다 님…….’
예전에 파프니르에게 지적당한 대로, 에리크는 주군의 아내였던 브륀힐다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감정을 드러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말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 헛된 꿈이었다.
“……?”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펜리르가 자신을 짓밟지 않았다.
에리크의 육체는 여전히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된…….”
눈을 뜨자, 펜리르가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체 무엇을 쳐다보고 있는 걸까.
“……!”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펜리르가 시선을 향한 방향을 확인한 순간.
에리크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에 있을 리 없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트 님……!”
그렇다.
저 멀리 남부에 있어야 할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요새 첨탑 위에 서 있었다.
파프니르와의 전투에서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당당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에리크 경.”
카이트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하지만 손을 빌려드릴 수 없습니다. 혼자서 물러서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에리크는 피를 토하며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꼴사납게 뒹굴고 있으면서 카이트의 방해가 되면 안 된다.
“전원, 남쪽으로 후퇴한다! 카이트 님이 싸우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라……!”
카이트와 더 얘기를 나눌 필요도 없었다.
지금 카이트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지, 에리크는 잘 알고 있었다.
“카이트 님, 무운을 빌겠습니다……!”
“네, 에리크 경. 뒷일은 맡겨 주십시오.”
“하하……!”
비틀거리면서도 에리크는 미소를 지었다.
시구르드와 브륀힐다 사이에서 태어난… 진정한 영웅에게 무한한 신뢰를 느끼면서.
* * *
나는 하루도 채 안 되어 설원지대에 도달했다.
새롭게 터득한 ‘축지’의 힘이었다.
‘이론상으로는 한 걸음에 도달해야 하는데, 뜻대로 안 되는군.’
‘신역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지 일주일도 안 되었으면서 건방진 소리는 하지 마라.’
파프니르의 말대로, 이건 나의 한계였다.
축지는 기존 경공과는 달리 ‘거리를 줄여서’ 이동하는 방식인데, 한 번에 줄일 수 있는 거리에 한계가 있었다.
세계의 법칙에 관여하는 것에 더 익숙해지거나, 에테르를 더 많이 얻으면 더 먼 거리를 단숨에 이동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단거리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파프니르. 저게 뭐지?’
나는 눈앞의 거대한 늑대인간을 응시했다.
‘저건 펜리르다.’
‘펜리르…….’
‘거인 종족에서도 손꼽히는 힘을 지닌 존재였지. 저놈이 물어 죽인 신이나 드래곤이 한둘이 아니다.’
펜리르에게서는 브리트라 이상의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도 브리트라와는 달리 정순하기 그지없는 기운이었다.
펜리르의 체내에 대량의 에테르가 순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우둠라 놈들은 펜리르를 선봉장으로 내세운 모양이군.’
아우둠라.
그것은 신족과 거인족이 연합하여 만든 세력의 이름이다.
본래 그들은 대립하는 관계였고, 라그나로크 초기에도 서로 싸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태초의 거인’인 이미르에게서 태어난 존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원룡(原龍) 티아매트의 후예인 드래곤들에 맞서기 위해 손을 잡고 연합을 형성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영구동토에 봉인되었다는 게 파프니르의 설명이었다.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거인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육체 능력을 지닌 놈이었다.’
‘그러면 저놈과 싸워 보면 거인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알 수 있겠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펜리르를 관찰하고 있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흥미롭군.”
펜리르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마력은 확실히 아니고, 에테르에 가깝긴 한데… 아주 특이한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군.”
내가 에테르를 수라무극진기로 바꾸어 단전에 저장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는 모양이다.
“너는 대체 뭐 하는 놈이지? 티아매트의 후예들이 길러 낸 전사인가?”
“헛다리를 짚는군.”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 시대에서 티아매트의 후예들을 가장 많이 도륙한 인간이 나다.”
“…….”
펜리르가 잠시 침묵했다.
“설마 하찮은 미물들을 죽였다고 으스대는 건 아니겠지. 네가 드래곤들을 도륙했다고?”
“그래, 신화시대부터 존재해 온 에인션트 드래곤들도 여럿 죽였지.”
파프니르, 요르문간드, 아지다하카, 드래이그 고흐, 브리트라까지… 전부 다섯 마리다.
“놀랍군. 발키리들의 보고에 의하면 이 시대의 인간들은 보잘것없는 힘밖에 없다는 것 같았는데…….”
“…….”
역시 발키리는 봉인 바깥으로 빠져나와 세상을 돌아다니며 암약하고 있었던 건가.
브륀힐다가 진짜 발키리일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어째서 너 같은 존재가 나타났는지 모르겠군. 정말 흥미롭구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펜리르가 나를 쳐다봤다.
“너 같은 놈이라면… 잡아먹을 가치가 있겠군.”
송곳니를 보이며 웃는 펜리르에게서 막강한 투기(鬪氣)가 느껴졌다.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막강한 기운이었다.
‘역시 신화시대와 거의 차이가 없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군. 봉인 속에서 겨울잠을 자면서 에테르를 최대한 온존한 것 같다.’
‘상당히 강할 거라는 얘기군.’
‘말했지 않나. 거인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힘을 지닌 존재였다고.’
거대한 몸집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데, 막대한 양의 에테르까지 보유하고 있다.
브리트라 이상의 강적이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카이트.’
파프니르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역, 아니 신화경에 도달한 너라면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니 나한테 보여 다오, 카이트.’
내 안에서 파프니르가 사악하게 웃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네 검이 이미르의 후예를 찢어발기는 모습을 말이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다, 파프니르.’
이미 나는 파프니르와의 수련을 통해 신역절기를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향상시킨 상태였다.
그러니… 파프니르의 기대에 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와라, 펜리르.”
펜리르를 도발하며 나는 심검을 만들었다.
하나가 아닌… 도합 일곱 개의 심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