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86
▣ 186화. 라그나로크 (5)
펜리르는 이미 카이트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카이트 주변에 ‘에너지의 칼날’이 7개나 출현했다는 건 이미 감지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진을 멈추지는 않았다.
어떤 공격이든 뚫고 카이트를 짓밟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
파파파팍!
펜리르가 인식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날아온 칼날들이, 전신에 꽂혔다.
* * *
쿠쿵!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던 펜리르가 무릎을 꿇었다.
우측 종아리에 꽂힌 심검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몸 곳곳에도 이미 심검이 꽂혀 있는 상태였다.
“크윽……!”
거대한 늑대인간이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놈, 무슨 짓을 한 거냐!”
“내가 갖고 있는 기운은 느낄 수 있으면서, 내가 무엇을 한 건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뭐라고?!”
펜리르가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노려봤다.
“내 신역절기(神域絶技), 수라파천신검(修羅破天神劍)이다.”
“신역절기? 수라파천신검?”
브리트라와의 결전에서 나는 신화경에 도달했다.
단순히 내공을 모아 검기나 검강을 만드는 게 아니라, 상대를 베어 버린다는 의지 자체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세계의 법칙을 초월하여 나 자신의 법칙을 세계에 구현하는 ‘신역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무림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심검’의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고, 나는 이 심검을 운용하는 무공을 수라파천신검이라 이름 지었다.
“얼마 전까지는 그냥 손에 잡고 휘두르는 것밖에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좀 더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지.”
쉬쉬쉬식!
일곱 자루의 심검이 펜리르의 육체에서 뽑혀져 나왔다.
그리고 다시 내 주변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말이다.”
“……!”
펜리르의 전신에 부상을 입히긴 했지만, 치명상을 입히는 건 실패했다.
심검이라면 브리트라를 쓰러뜨렸을 때처럼 일격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어야 하는데, 일곱 자루를 동시에 꽂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멀쩡한 것이다.
‘파프니르, 펜리르의 육체 자체에 신역의 힘이 적용되어 있는 건가?’
‘그렇다. 역시 눈치가 빠르군.’
평범한 생명체는 저렇게 거대한 육체를 유지할 수 없다.
에인션트 드래곤도 에테르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거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펜리르는 에테르뿐만 아니라 신역의 힘까지 사용해 자신의 몸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네가 신역절기를 사용해서 펜리르의 숨통을 끊으려고 해도, 펜리르의 육체를 유지하고 있는 신역의 힘과 충돌하여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내 신역절기가 펜리르의 힘을 완전히 능가하지는 못한다는 얘기군.’
‘지난번에 네가 브리트라를 능가할 수 있었던 건, 브리트라가 순수한 에테르가 아니라 불순물이 많은 에너지로 신역의 힘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순수한 에테르를 지닌 펜리르를 능가하는 건 쉽지 않겠지.’
‘나보다 신역의 힘을 사용하는 것에 더 익숙할 테고 말이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다.
펜리르는 신화시대 때부터 신역의 힘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놈이고, 나는 신화경에 도달한 지 열흘도 되지 않았으니까.
“…….”
나를 노려보는 펜리르의 눈빛이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세 또한 바뀌었다.
‘엎드렸어?’
‘저것이 펜리르가 진지하게 전투에 임하는 모습이다.’
펜리르가 엎드렸다.
이족 보행을 하는 늑대인간이 아니라, 네 발로 뛰어다니는 늑대처럼.
‘라그나로크 때도 저런 자세로 수많은 신과 드래곤을 물어 죽였다.’
‘이제는 정말로 늑대 같아졌군.’
이제 보니 저런 자세가 더 자연스러웠다.
사냥감을 노리는 늑대 그 자체였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일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신역의 힘을 이 정도 수준으로 사용할 줄이야.”
전신의 상처에서 피를 흘리며 펜리르가 으르렁거렸다.
“발키리가 너 같은 놈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의문스럽군.”
“내가 이 영역에 도달한 지 열흘도 되지 않았어. 정보가 전달되지 못한 것도 당연하지.”
“…….”
펜리르가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농담을 하는 건가? 신역의 힘을 사용하게 된 지 열흘도 되지 않았다고?”
“그래, 브리트라와의 싸움에서 각성했지.”
“브리트라? 설마 그놈을 네가 쓰러뜨렸다는 거냐?
“자꾸 너만 질문을 던지는데, 나도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동안 발키리들은 봉인의 틈새로 빠져나와 세상을 살펴본 뒤 너희에게 정보를 전달한 것 같은데… 발할라의 전사를 추가로 선발하는 역할도 맡고 있었나?”
“그건…….”
“내 생각이 맞나 보군.”
펜리르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역시 발키리는 아우둠라의 정찰병이자 인재 영입 담당이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브륀힐다는 시구르드를 발할라의 전사로 만들려고 했다가 포기하고 영구동토로 돌아간 거겠군.’
어째서일까.
시구르드가 발할라의 전사로서 부족해서?
아니면…….
“너희 아우둠라는 신족과 거인족의 연합군이라고 하더군. 하지만 라그나로크로 인해 머릿수가 많이 줄었다고 하던데.”
“…….”
“결국 발할라의 전사들이 말단 병사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그쪽은 머릿수가 얼마나 되는 거지?”
내 질문에 펜리르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나는 네 질문에 웬만큼 대답해 줬는데, 너는 대답해 주지 않는군.”
“그런 걸 알아서 어쩌겠다는 거냐.”
펜리르가 으르렁댔다.
“설마 네놈… 우리에게 맞서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그럼 무엇 때문에 물어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나는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펜리르, 너희 아우둠라는 ‘태초의 거인’ 이미르의 후예를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릴 생각인 것 같더군.”
“…….”
“하지만, 내가 있는 이상 그렇게는 안 된다.”
일곱 자루의 심검에 내 의지를 담으면서,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너희들과 전쟁을 벌여, 막아 낼 것이다.”
“하하…….”
펜리르의 입가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크하하하……!”
마침내 폭소를 터뜨리면서 펜리르가 소리쳤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인간! 티아매트의 후예조차 아닌 인간 주제에 그렇게 당당하게 떠들어 대다니!”
하지만 나를 비웃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칭찬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좋다! 그러면 상대해 주마! 진정한 최종전쟁, 2차 라그나로크는… 너와 나의 싸움으로 막을 올리는 거다!”
신화시대 말엽에 벌어졌던 라그나로크를 재개하는, 2차 라그나로크.
그 시작을 알리며 펜리르가 입을 크게 벌렸다.
‘조심해라. 순식간에 달려들어 네 몸 전체를 집어삼킬 것이다.’
‘원래 늑대는 물어뜯는 게 주된 공격 수단이지.’
전속력으로 달려들어 나를 집어삼키려 할 터.
그 돌진을 막아 낼 수단은… 나한테 없다.
‘아까 일곱 자루의 칼날을 날렸어도 놈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리를 집중공격하면 어떨까?’
‘아니, 펜리르의 돌진에도 신역의 힘이 적용되고 있다면 그걸로는 막지 못할 거야. 다리에 심검이 꽂혀도 나를 향해 계속 돌진해 오겠지.’
‘그러면 어떻게 할 거지? 돌진을 막는 것도 불가능하고, 네 심검을 휘둘러도 펜리르의 털가죽을 뚫고 치명상을 입히는 건 불가능한데.’
‘어떻게든 해 봐야지.’
‘이봐!’
관전하는 입장이어서 그런지, 파프니르의 잔소리가 많았다.
이 악룡하고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이야.
“우오오……!”
포효와 함께, 펜리르의 돌진이 시작되었다.
내 축지처럼 공간을 압축하여 한 걸음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고 있었다.
“…….”
커다란 입을 보면서,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미친 녀석!’
파프니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전력을 다해 몸을 날리며, 펜리르의 입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지금이다.’
펜리르가 상황을 이해하는 것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
내 주위에 맴돌고 있던 일곱 개의 심검을… 내 전방으로 집중시켰다.
“……!”
신검합일(身劍合一).
나와 검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나는 펜리르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먹잇감이 아니라, 펜리르의 입 안을 노리는 한 자루의 검이 되었다.
“아……!”
펜리르의 목구멍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펜리르가 입을 다무는 것보다 내가 더 빠르다.
‘꿰뚫는다……!’
내 모든 것을 한 자루의 검으로 만든, 단 한 번의 찌르기.
그것이 펜리르의 입 안을 파고들어… 관통한다.
“크아악!”
파아악!
상대적으로 연약할 수밖에 없는 목구멍을 뚫고, 펜리르의 몸 바깥으로 나왔다.
나는 펜리르의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 된 채 근처 성벽에 착지했다.
“…….”
그리고 뒤를 돌아본 순간.
콰쾅!
돌진하던 기세 그대로, 요새에 충돌하며 쓰러지는 펜리르의 모습이 보였다.
* * *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상대의 공격은 펜리르의 척추와 주요 혈관, 신경까지 상처 입혔다.
방어력이 뛰어난 건 어디까지나 털가죽으로 뒤덮여 있는 표면뿐이다.
내장과 다름없는 목구멍을 파고들어 왔으니,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담력이 어느 정도인 거냐…….’
펜리르는 신들조차 물어 죽이는 늑대다.
그 입 안으로 뛰어 들어올 생각을 하다니, 대체 얼마나 담력이 강한 걸까.
비록 적이지만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내 패배다, 인간의 영웅이여…….”
땅에 쓰러진 채, 펜리르는 목소리를 냈다.
“실로 대단하구나…….”
“너도 대단했다, 위대한 늑대.”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며 펜리르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를 쓰러뜨린 인간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 이름을 알려 줄 수 있겠나?”
“카이트 에인헤랴르다, 펜리르.”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 이름을 듣고, 펜리르는 피식 웃었다.
“그런가, 에인헤랴르의 인간이었단 말인가.”
“에인헤랴르를 알고 있나?”
“그래, 이번에 내가 출진하기 전에 얼핏 들었지.”
펜리르가 봉인에서 빠져나와 니드호그의 부하들을 쫓기 전에… 에인헤랴르라는 이름을 분명히 들었다.
“카이트, 빨리 에인헤랴르의 본거지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다.”
“뭐라고?”
“발할라의 전사들이 에인헤랴르를 치러 남쪽으로 향했으니까.”
그렇게 말한 뒤, 펜리르는 피식 웃었다.
“나하고는 별도로, 발할라의 전사들이 남쪽으로 침투하고 있었단 말이다. 너희 에인헤랴르의 본거지를 습격하기 위해.”
인간 종족 최고의 전사 집단인 에인헤랴르를 조기에 말살하는 것이 좋다.
그렇기 때문에 발할라의 전사 중 일부를 남쪽으로 파견한 것이다.
그들은 펜리르처럼 거대한 몸도 아니고, 기척을 숨긴 채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인간들 몰래 남쪽으로 침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녀석들은 나처럼 느긋하지 않지. 쉬지 않고 남쪽으로 달려갔을 테니… 아마 지금쯤 도착하지 않았을까?”
“…….”
카이트가 침묵하는 것을 느끼며, 펜리르는 웃었다.
“나를 막는 것보다 너희 본거지를 지키는 것을 우선하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 되었구나, 카이트.”
“…….”
“그러면 어서 가 봐라. 네 가족의 시체 정도는 건질 수 있을 테니…….”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긴 채, 펜리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펜리르가 완전히 침묵했다.
생명 활동을 멈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카이트, 방금 그 말…….’
머릿속에서 파프니르가 우려를 나타냈다.
‘아우둠라 놈들이 고틀란드로 발하라의 전사들을 파견했나 보군.’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야.’
이런 상황에서 펜리르가 거짓말을 했을 리도 없다.
펜리르와는 별도로 에인헤랴르의 본거지를 기습하기 위한 선발대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고틀란드에는 마땅한 전력이 없을 텐데…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의외로 에인헤랴르 걱정을 많이 해 주는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놈들에게 대항하려면…….’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
‘뭐라고?’
대량의 에테르를 내포하고 있을 펜리르의 시체를 보면서, 나는 파프니르에게 말해 줬다.
‘고틀란드에는 그 남자가 있으니까.’
내가 인정한 그 남자가 있는 한… 발할라의 전사들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