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88
▣ 188화. 잠에서 깨어나다 (2)
시구르드와 함께 고틀란드 내부를 달리고 있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렸다.
“돌아오셨군요!”
“기다렸습니다!”
“시구르드 만세! 카이트 만세!”
병사도, 민간인도 우리의 모습을 보고 환호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아버지, 몸은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시구르드에게 말을 건네자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시구르드의 몸 상태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였다.
계속 의식불명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영양 공급 등에 문제가 없도록 마법으로 보조해 줬다고 해도, 이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시구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로군.”
파팟!
아나스타샤의 빙결 마법이 작렬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음의 장벽을 만들어 흑색 갑옷의 검사들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여자는 마법 솜씨가 괜찮군.’
‘나도 그렇게 생각해.’
파프니르의 의견에 대꾸해 주면서, 시구르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뛰어들었다.
“시구르드 님?!”
“카이트 님도……!”
아나스타샤와 함께 싸우고 있던 기사들이 탄성을 질렀다.
“오셨군요……!”
아나스타샤도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반겨 줬다.
“모리안 공녀 쪽은 이미 정리됐다. 이쪽도 우리가 맡지.”
“알겠습니다!”
시구르드의 목소리에 다들 물러섰고, 우리만 흑색의 검사들과 대치하게 되었다.
“숫자는… 넷이군.”
그렇게 말한 뒤, 시구르드가 나를 힐끔 쳐다봤다.
“이제 보니 검이 없군.”
“아, 그게…….”
“하나 써라.”
양손에 검을 들고 있던 시구르드가 나한테 한 자루를 건네줬다.
‘너한테 검은 이제 필요 없는 거 아닌가?’
‘아니, 그렇지도 않아.’
심검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잔챙이들은 그냥 평범한 검으로 쓰러뜨리는 게 낫다.
“네 명이니 둘씩 나눠서 상대할까요?”
“그럴 필요 없다.”
그렇게 말하며 시구르드가 앞으로 나섰다.
흑색 검사들은 이미 진형을 갖추고 있는 상태였다.
‘철저한 훈련을 받은 놈들이군.’
놈들이 긴밀히 연계한 움직임으로 시구르드를 노렸다.
하지만 시구르드는 신속한 움직임으로 그들의 빈틈을 찾아내 검을 휘둘렀다.
“……!”
파앗!
순흑(純黑)의 오러 블레이드가 전개된 검이 갑옷을 뚫고 심장을 관통했다.
즉시 다른 검사들이 시구르드에게 달려들었지만, 시구르드는 여유롭게 피하며 반격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뭐가 말이냐?’
‘시구르드의 마력 운용 능력이 훨씬 좋아졌어.’
‘그게 정말인가?’
지난번에 시구르드가 오러를 한계 이상으로 압축시켜 검은색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있다.
다만 완전한 순흑의 오러 블레이드는 발뭉을 사용할 때만 가능하다는 게 시구르드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구르드는 발뭉은커녕 신화병장도 아닌 검으로 순흑의 오러 블레이드를 펼치고 있었다.
이것은 시구르드가 오러를 더욱 세밀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잠들어 있는 동안 허송세월을 보낸 건 아닌 모양이야.’
‘너처럼 정신세계 속에서 수련이라도 했단 말인가?’
‘글쎄, 거기까지는 모르겠고.’
나는 시구르드가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
검을 휘두르는 움직임 자체도 지난번보다 더 자연스러웠다.
‘흥미롭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흑색의 검사 하나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칼날에 백색의 기운을 발생시켰다.
그동안 분노검 그람을 들고 있을 때만 사용해 왔던, 수라백강검이었다.
“……!”
파앗!
흑색 검사의 몸이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분리되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갑옷도 수라백강검의 절단력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이어서 또 다른 흑색 검사가 나를 향해 덤벼들었지만, 나는 이미 수라청벽검을 사용하고 있었다.
“……?!”
파직!
번개와 같은 속도로 움직여, 사각에서 갑옷 틈새로 검을 찔러 넣었다.
그 직후, 갑옷 속으로 뇌기(雷氣)가 방출되었다.
“……!”
흑색 검사가 부들대며 쓰러졌다.
아마 심장이 멈췄을 것이다.
‘이제는 신화병장 없이도 각각의 무공을 사용할 수 있군.’
‘자연경에 도달했으니까.’
신화경이 세계의 법칙을 제어하는 신역에 도달하는 경지라면, 자연경은 에테르 같은 순수한 자연지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경지다.
그동안 나는 신화병장의 속성을 활용해 수라청벽검, 수라적염검, 수라백강검, 수라흑설검 같은 무공을 펼쳤다.
하지만 이제는 에테르에서 비롯된 수라무극진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기 때문에, 무기의 속성을 고려하지 않아도 부담 없이 각각의 무공을 사용할 수 있었다.
‘자연경이라는 건 그랜드 소드 마스터와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그렇지.’
파프니르와 대화를 나누며, 나는 마지막 흑색 검사를 해치우는 시구르드를 관찰했다.
자신의 마력만으로 순흑의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시구르드의 모습은, 확실히 예전보다 훨씬 발전한 것이었다.
어쩌면 시구르드는 오랜 시간 잠들어 있으면서…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되기 위한 실마리를 잡은 걸지도 모른다.
* * *
흑색의 검사들을 다 쓰러뜨리자, 기사들이 달려와 환호했다.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카이트 님!”
“깨어나셔서 정말 기쁩니다!”
“카이트 님도 잘 돌아와 주셨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기뻐하는 기사들 너머에서, 아나스타샤와 모리안도 미소 띤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동안 계속 잠들어 있어서 미안하다. 에인헤랴르 대공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 사과하겠다.”
“아닙니다!”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하!”
고개를 숙이는 시구르드의 모습을 보고 다들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시구르드의 책임감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버지.”
“뭐냐.”
“오랫동안 누워 있으셨던 것치고는 몸이 가벼우시군요.”
“그런가?”
시구르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손으로 자기 어깨를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충분한 수면을 취한 탓일지도 모르겠군.”
“네?”
“평소에 수면 시간이 너무 적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이번에 오래 잠들었다 깨어나니… 뭉쳐 있던 부분이 많이 부드러워졌군.”
“…….”
“그래도 이번에는 이렇게 오래 잤으니… 한동안은 수면 시간을 줄여도 괜찮을 것 같다.”
조금 어이없는 소리였다.
설마 지금 농담을 하는 건 아닐 테고…….
‘이 남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엉뚱한 인물이었던 것 같군…….’
내 안에서 파프니르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카이트, 습격자들의 정체를 알고 있나?”
“네,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일단 지휘 본부로 가시죠.”
나는 아나스타샤와 모리안도 데리고 이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발걸음을 멈췄다.
“……!”
강렬한 존재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시구르드도 같은 감각을 느꼈는지 나와 같은 방향을 쳐다봤다.
그리고…….
‘뭐지?’
성벽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습격해 온 검사들과 마찬가지로 흑색 갑옷을 입었고, 얼굴을 가리는 투구를 뒤집어쓴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그에게서 다른 검사들과는 명백히 다른 존재감이 느껴졌다는 점이다.
‘마력이 아니라… 에테르를 보유하고 있는 건가?’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체내에 마력이 아니라 에테르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대량으로.
‘하지만, 육체 자체는 인간의 몸이야. 설마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가?’
펜리르의 말에 의하면, 오늘 습격한 놈들은 발할라의 전사들이다.
그렇다면 저놈은 발할라의 전사 중에서도 높은 지위에 있는 놈일까.
“웬 놈이냐.”
시구르드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단지 머리에 쓰고 있던 투구를 벗었을 뿐이었다.
“…….”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흑발의 남자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 분명했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잠깐, 저건…….’
그때 갑자기 파프니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남자는, 설마…….’
‘파프니르, 왜 그러지?’
우리를 가만히 쳐다보던 흑발의 남자가 갑자기 사라졌다.
성벽 너머로 도망친 것 같았지만, 기척조차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뭐였을까요?”
“지휘관인 것 같군. 작전이 실패한 걸 확인하고 퇴각한 모양이다.”
모리안과 시구르드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파프니르한테 다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아는 얼굴인가?’
‘그래,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이지.’
‘무슨 소리지?’
‘틀림없다. 그 남자가 분명하다.’
지금 내 안에 있는 파프니르는 진짜 파프니르의 영혼이 아니라 잔류 사념이다.
하지만 지금 내 안에서는… 진짜 파프니르 못지않은 격렬한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저건 에인헤랴르의 시조… 초대 시구르드 에인헤랴르다!’
초대 시구르드 에인헤랴르.
파프니르를 격퇴했던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발할라의 전사가 되었단 말인가?
* * *
머나먼 영구동토.
그곳에서는 봉인에서 풀려난 아우둠라의 구성원들이 모여 있었다.
인간 크기의 육체를 지닌 신족도, 드래곤 이상의 체구를 자랑하는 거인족도 서로 구분 없이 모여 있는 상태였다.
“선봉으로 나선 녀석들이 전부 실패한 것 같군.”
그렇게 입을 연 건, 외팔의 신인 티르였다.
그는 신족 중에서도 손꼽히는 지위에 있는 존재로, 특히 신족 최강의 검사로 이름이 높았다.
“펜리르는 남쪽 설원에서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펜리르가……!”
“어떻게 그럴 수가……!”
거인들이 웅성거렸다.
펜리르는 거인 중에서도 손꼽히는 전투 능력을 지닌 존재다.
그래서 선봉으로 나선 것인데… 설마 이렇게 금방 목숨을 잃을 줄이야.
“누구한테 목숨을 잃은 거지?”
“아직도 행방을 알 수 없는 니드호그인가?”
“자세한 건 불명이다.”
그렇게 말한 뒤, 티르가 고개를 돌렸다.
“프레이야, 그쪽 선발대도 실패한 것 맞나?”
“그래, 티르.”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의 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발키리의 수장으로, 오딘을 대신하여 발할라를 관리하는 역할도 맡고 있었다.
“이번에 보낸 평전사 전원이 전멸한 것 같아.”
“평전사 전원?”
“열 명도 안 되는 숫자를 보내긴 했지만, 다 죽어 버렸단 말인가?”
“지휘를 맡은 지크프리트는 뭘 하고 있었지?”
지크프리트.
그것이 이번에 발할라의 전사들을 이끌고 고틀란드를 습격한 남자의 이름이었다.
생전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으나… 발할라의 전사가 된 이후로는 지크프리트라 불리고 있다.
“지크프리트는 싸우지 않고 퇴각한 것 같았어.”
“뭐라고!”
“그 건방진 놈이……!”
프레이야의 말에 여러 신과 거인들이 화를 냈다.
“발할라에서는 신참 축에 속하지 않나? 능력을 인정받아 전사장(戰士長)이 되었으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목숨 걸고 싸워야지!”
“발할라의 전사로서 책임감이 부족하군! 아무리 전사장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해도……!”
지크프리트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직속상관인 프레이야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어쨌든 이 시대를 평정하는 건 그다지 쉽지 않은 것 같아. 펜리르도 죽었고 말이지.”
“크흠… 티아매트의 직계인 드래곤들이 대부분 죽었다고 해서 아무런 걸림돌이 없을 줄 알았는데…….”
“2차 라그나로크도 쉽게 끝나지는 않겠군.”
여러 신들과 거인들이 수군대고 있었을 때.
가장 거대한 체구를 지닌, 흑색의 거인이 입을 열었다.
“다들 걱정이 많군.”
“……!”
흑색 거인의 발언에 다들 숨을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비열한 모략에 의해 이 북쪽 땅에 봉인되지만 않았어도, 먼 옛날 라그나로크는 우리 아우둠라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
“두 번 다시 우리가 봉인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즉, 이번 2차 라그나로크는 우리들의 승리로 끝난다는 얘기지.”
그렇게 말하며 흑색 거인이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서 이렇게 대화나 나누고 있어 봤자 시간 낭비다. 우리 거인족은 곧바로 남진(南進)을 시작하겠다.”
“진심인가?”
“물론이지, 티르.”
티르의 질문에 흑색 거인이 미소를 지었다.
“펜리르의 원수도 갚을 겸, 이 수르트가 앞장서겠다.”
수르트.
모든 것을 불태우는 화염의 거인이자, 거인족 전체의 우두머리.
그가 제2차 라그나로크를 위해 거인족 전체를 이끌고 남쪽으로 진군할 것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