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89
▣ 189화. 신화의 거인들 (1)
계속 의식불명 상태였던 시구르드가 복귀했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모든 사람이 환호했다.
깨어나자마자 고틀란드를 습격한 자들을 격퇴했다는 것도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구르드 본인은 평소처럼 냉정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에인헤랴르 대공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려 했다.
“그사이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군.”
내 얘기를 듣고, 시구르드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 그 많은 일을 너한테 다 떠넘겨 버렸군.”
“아닙니다, 아버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은 그런 얘기보다 영구동토 쪽에서 몰려오는 아우둠라 세력을 막을 때입니다.”
“아우둠라… 신화시대의 잔당들이라.”
시구르드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런 놈들과 싸우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다. 하지만 놈들이 인류를 위협한다면 맞서 싸워야겠지.”
“그래야지요.”
“문제는 드래곤 세력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군.”
“역시 거부감이 있으십니까?”
“나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지 모르겠군.”
용살검가 에인헤랴르는 오랫동안 드래곤 세력과 싸워 왔다.
이제 와서 그들과 손을 잡고 연합 전선을 형성한다고 하니…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도 있다.
“잘 설득할 수밖에 없겠지요.”
“알겠다. 그 부분은 나한테 맡겨라.”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피어너 가문과 크레스니크 가문에도 협력을 요청하고, 남부에도 연락을 취해 모든 전력을 이쪽으로 집중시켜야겠군.”
드래곤들이 찔끔찔끔 공격해 오던 때하고는 상황이 다르다.
‘이미르의 후예’를 제외한 모든 지성체를 멸종시키기 위해 공격해 오는 것이니, 모든 사람이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다만… 남부에서 얼마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부분은 아직 남쪽에 있는 이바르와 니얼의 활동을 기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카롤루스를 쓰러뜨린 뒤, 그들은 귀족들 상대로 모종의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겠다. 그러면 너는 아우둠라와 어떻게 싸워 나갈지만 생각해라.”
그렇게 말한 뒤, 시구르드가 내 하체를 빤히 쳐다봤다.
“왜 그러시죠?”
“카이트.”
시구르드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들고 다니던 신화병장은 다 어떻게 했지?”
“네?”
“칼라드볼그, 발뭉, 노퉁… 네가 다 들고 다니던 걸로 기억하는데.”
“…….”
“내가 쓰던 그람도 네가 남쪽으로 들고 갔다고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람은 원래 시구르드의 검이었다.
“이제 나도 복귀했으니, 그람은 나한테 돌려줬으면 좋겠군.”
“그게 말이죠.”
“카이트, 좋은 검을 탐내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람은 대대로 에인헤랴르 대공이 사용해 온 검이다. 나에게도 큰 의미를 지닌 검이니, 돌려줬으면 좋겠다.”
“…….”
나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 그람은 이제 없습니다.”
“뭐라고?”
“에인션트 드래곤과 싸우는 과정에서… 파괴되었습니다.”
“…….”
시구르드가 멈칫했다.
“파괴되었다고?”
“네…….”
“신화병장은 드래곤 브레스에도 끄떡없는 물건인데.”
“그게… 어쩌다 보니.”
사실 내장되어 있는 에테르를 흡수하기 위해 일부러 부순 것이다.
“에인헤랴르의 가보가… 부서졌다고?”
“네…….”
“그러면… 발뭉과 노퉁은?”
발뭉과 노퉁도 에인헤랴르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검이다.
엘드리트를 쓰러뜨리고 노퉁을 되찾았을 때는 시구르드가 큰 공적을 세웠다고 칭찬해 줬었다.
“발뭉과 노퉁도 파괴되었습니다.”
“…….”
시구르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동안 본 적이 없는 반응이었다.
“사실 칼라드볼그도 파괴되었는데… 이건 뭐 중요하지 않으시겠죠.”
“…….”
“죄송합니다.”
시구르드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내 안에서 파프니르가 낄낄 웃어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며칠 뒤, 설원지대에서 후퇴한 에리크가 백룡기사단 및 니드호그 파벌을 이끌고 도착했다.
“시구르드 전하!”
“그동안 고생 많았다, 에리크.”
“아닙니다!”
복귀한 시구르드의 모습을 보고 에리크는 눈물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시구르드 전하. 설원지대의 요새들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 신경 쓰지 마라.”
펜리르에 의해 요새가 파괴된 탓에, 백룡기사단은 더 이상 설원지대를 지키기 어려워졌다.
결국 설원지대를 지키는 걸 포기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설원지대의 요새를 재건하려면 병사들이 너무 지칠 거다. 앞으로는 고틀란드 북쪽에서 방어선을 구축할 테니, 네가 책임지고 진행하도록 해라.”
“제 목숨을 걸고, 철벽같은 방어선을 구축하겠습니다!”
“그리고…….”
시구르드가 니드호그 파벌의 중진인 니즈얼라그두에게 시선을 향했다.
“오랜만이군, 니즈얼라그두.”
“그리 오랜만도 아니지…….”
니즈얼라그두가 시구르드를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쓰러뜨린 동족들의 시체가 설원 위에 산더미처럼 쌓였었지. 그게 고작 몇 달 전 아닌가……?”
“동족들의 복수를 할 건가?”
“니드호그 폐하는 우리에게 명령하셨다. 과거를 잊고… 에인헤랴르와 협력하라고 말이다.”
주위에 있던 다른 드래곤과 용귀족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니드호그 폐하의 명령을 따른다. 하지만 너희 인간들은… 그동안 적대해 온 우리들을 받아들여 줄 수 있느냐?”
“그건 장담할 수 없다, 니즈얼라그두.”
시구르드가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지만 에인헤랴르는 이미 너희들과 손을 잡기로 결정했다.”
“시구르드…….”
“물론, 과거를 잊을 생각은 없다. 피로 얼룩진 과거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
“다만 과거를 피로 청산할 필요는 없다.”
흠칫 놀라는 드래곤들 앞에서, 시구르드가 명확히 선언했다.
“과거는 미래에 의해 청산될 것이다.”
* * *
파프니르 파벌의 드래곤와 용귀족들을 따라, 몬스터들까지 모여들었다.
그동안 우리들의 토벌 대상이었던 몬스터들까지 아군이 되자 다들 어색해했다.
다만 드래곤과 용귀족들은 몬스터들을 잘 통제해 줬고, 북쪽에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남부에서 아그나르와 헤스테인이 황룡기사단과 적룡기사단을 이끌고 도착했다.
“작은형님은 남쪽에 남았습니다.”
헤스테인은 나한테 메로베우스 방면의 소식을 전해 줬다.
“니얼 경과 함께 귀족들을 설득하고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큰형님 부하들도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 같고요.”
“그래, 알겠어.”
“괜찮겠습니까?”
“내가 없는 동안은 이바르가 지휘하라고 얘기해 뒀어. 알아서 잘하겠지.”
내 측근들은 최근 3갑자에 도달했다.
직접 지도해 주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자기들 나름대로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고 있을 것이다.
남부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 녀석들이 얼마나 강해져 있을지 기대되었다.
“그런데 참…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군요. 신화시대의 신족, 거인족과 싸우기 위해 드래곤 세력과 손을 잡고 있다니.”
“그래, 인간과 드래곤이 총력전을 벌이는 인룡대전을 기대했는데 말이야.”
어떻게 보면, 브리트라가 인룡대전의 방향성을 바꾼 덕분에 우리에게 여유가 생겼다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인간과 드래곤이 총력전을 벌이는 형태로 인룡대전이 진행되었다면, 인간 측이 승리했다고 해도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로 아우둠라를 막는 건… 어렵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렇게 되었으니 다 함께 힘을 합쳐서 놈들을 막아야 하겠군요. 전력을 다해서 말입니다!”
“그래,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하지.”
헤스테인의 적극적인 태도가 든든하게 느껴졌다.
* * *
“남쪽에서 카이트를 보좌해 주느라 수고 많았다, 아그나르.”
“아닙니다, 전하.”
“나한테 전해 줄 것이 있다고?”
집무실에서 시구르드와 대면한 아그나르는 두꺼운 천으로 둘러싸인 물건을 내밀었다.
“알비온 대공이 보내온 물건입니다. 에인헤랴르에게 맡기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알비온 대공이……?”
알비온 대공 가문은 황제파 귀족 중에서도 손꼽히는 힘을 지닌 대귀족이다.
다만 영지가 서쪽 변방에 있고, 알비온 대공 본인도 늙고 병들어 최근 메로베우스에서 벌어진 사태에는 참전하지 못하였다.
“이번 사태를 해결해 낸 에인헤랴르 가문에 경의를 표하며, 인류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보물을 보낸다…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보물?”
시구르드는 천을 풀어 그 안에 있던 물건을 확인했다.
그 안에 있던 건… 세 자루의 장검이었다.
“설마 이건…….”
“알비온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병장인 ‘해방검’ 엑스칼리버, ‘호수검’ 아론다이트, ‘태양검’ 갈라틴입니다.”
“……!”
평소 냉정하던 시구르드조차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에인헤랴르의 그람, 발뭉, 노퉁과 비견되는 신화병장들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알비온 가문을 상징하는 신화병장 아닌가? 이걸 우리한테 보내 주다니…….”
“알비온 가문에는 현재 이 검을 운용할 소드 마스터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에인헤랴르에 맡긴다는 것이죠.”
“…….”
시구르드가 세 자루의 검을 내려다보며 침묵했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카이트의 치열한 싸움이 남부 귀족들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이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카이트는 카롤루스의 반역을 진압했다. 거대한 음모를 꾸미던 에인션트 드래곤들까지 토벌했다.
에인헤랴르가 인류의 수호자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에인헤랴르에 의구심을 가진 귀족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국의 중심부에서 반역자와 드래곤들을 상대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고… 에인헤랴르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물론 시간이 흐르면 다시 권력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북쪽에서 거대한 위협이 다가오고 있는 이상, 지금은 귀족들도 에인헤랴르를 도와야 할 때이다.
“지금 이바르 님이 니얼 경과 함께 귀족들에게 병력과 보급 물자를 지원해 달라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을 겁니다.”
“그렇군…….”
시구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나르, 그동안 나는 에인헤랴르의 힘으로 드래곤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 해 왔다.”
“시구르드 전하…….”
“에인헤랴르가 모든 것을 짊어지는 게 옳다고 생각했지. 그런 마음으로 항상 전력을 다해 싸워 왔다.”
그렇게 말하며 시구르드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카이트 녀석의 행보를 보면… 나도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군.”
“…….”
“물론, 카이트가 자신을 도와달라고 여기저기 부탁하고 다닌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이 카이트를 보면서 모여들고 있지. 심지어 사람이 아닌 존재들조차 말이다.”
카이트가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면서, 아군의 구성이 다채로워졌다.
지금은 드래곤과 용귀족들까지 한편이 되었다.
“그 녀석은 에인헤랴르에 과분한 인재일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구르드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 * *
방어선 구축이 거의 끝나 갈 무렵, 설원지대를 정찰하던 드래곤에게서 급보가 전해졌다.
수많은 거인이 땅을 짓밟으며 남쪽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진군 속도는 빠른 편이 아니지만, 열흘 안에 고틀란드 근처까지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드디어 시작되는군.’
‘그래.’
조용한 곳에서 가부좌를 튼 채, 나는 마음속으로 파프니르와 대화를 나눴다.
‘아무래도 거인들이 모조리 몰려나온 것 같다. 펜리르만큼 강한 개체는 드물지만, 머릿수가 많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천재지변에 가까운 거인들의 진군.
그걸 앞두고도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는 대적할 힘이 있으니까.’
지난번에 펜리르를 쓰러뜨린 뒤.
나는 펜리르의 체내에 있던 에테르를 흡수했다.
그리고 수라무극진기로 만들어 단전에 저장했다.
‘지금 이 정도면 수라무극진기 2성, 아니 3성이라 할 수 있겠지.’
단순히 기(氣)의 절대량이 3배 이상 늘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걸 활용하고 방출하는 능력까지 두 단계 이상 향상되었다.
아우둠라의 초월적 존재들이 단체로 몰려들어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네 녀석이 대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군, 카이트.’
내 안에서 파프니르가 감탄했다.
‘좋다. 우리 함께 갈 수 있는 곳까지 가 보도록 하자.’
‘의욕적이군, 파프니르.’
‘그럴 수밖에 없지.’
파프니르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발할라에 시구르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얼마 전에 발할라의 전사들이 고틀란드를 습격했을 때, 우리는 초대 시구르드의 모습을 보았다.
그의 숙적이었던 파프니르가 확인해 준 거니 틀림없을 것이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시구르드는 죽지 않고 발할라의 전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놈을 끌어내야겠지.’
파프니르가 적의를 드러냈다.
내가 자신을 대신해서 초대 시구르드와 싸워 주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아우둠라 세력을 격파하다 보면 시구르드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겠지. 그러니… 거인들을 격파해라, 카이트.’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야, 파프니르.’
이미 준비는 끝났다.
신화의 거인들을 상대로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 줄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