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91
▣ 191화 신화의 거인들 (3)
거인들은 거침없이 돌격하는 중이었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동족의 시체 같은 건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냥 밟고 지나갔다.
눈앞에 있는 허접한 방어선 따위는 쉽게 돌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구도 자신들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억?!”
“으억, 뭐야!”
“어이쿠!”
갑자기 땅이 꺼졌다.
방금 전에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태연히 걸어갔던 곳인데, 거인들이 발을 내딛자 바닥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설마…….”
“인간들의 함정인가?!”
“인간들의 힘으로 이렇게 깊은 구덩이를 팔 수는 없어!”
“원래 이곳은 깊게 파인 협곡이었던 거야! 그 위를 덮어 위장한 게 분명하다!”
“무슨 이따위 함정을……!”
그래도 거인들의 체구를 생각하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는 깊이다.
거인들은 팔을 뻗으며 바깥으로 기어 나오려 했다.
하지만, 거인들은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뭐지?”
“안개? 연기?”
“웬 녹색 기운이…….”
녹색 안개가 함정 안에 가득 찼다.
별생각 없이 그 안개를 들이마신 순간, 거인들이 비틀거렸다.
“어윽…….”
“어, 어떻게 된 거지?”
“이봐, 밀지 마!”
거인들이 휘청대면서 서로 뒤엉켰다.
그 덕택에 제대로 기어오르지도 못하고 나뒹구는 거인들이 속출했다.
“젠장, 갑자기 몸을 가누기가…….”
“윽, 구역질이 난다!”
“정신을 못 차리겠군!”
빨리 이 녹색 안개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잠깐, 이거 설마…….”
거인들 중 하나가 고개를 치켜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독룡 니드호그의 부하들이 만든 오러 포그다!”
그와 거의 동시에, 인간들의 방어선 쪽에서 화살이 비 오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화살촉에 녹색 액체가 발라져 있는 독화살이었다.
* * *
“드래곤과 용귀족들이 전력을 다해 독 안개를 발생시켜 주고 있군요.”
“귀살마가 크레스니크의 지식을 접목하여 독의 효과를 극대화한 게 효과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에리크와 아그나르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구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에인헤랴르는 자연 지형을 이용한 함정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인간들만으로 했다면 불가능에 가까웠겠지만, 니드호그 파벌의 드래곤들이 도와줬기 때문에 가까스로 완성할 수 있었다.
“카이트 님이 입수한 정보대로 거인들이 단순 무식한 성격이어서 다행입니다.”
“이게 만약 드래곤과의 전쟁이었다면 이런 함정 따위는 먹히지 않았겠죠.”
놈들이 방어선에 접근하면 일단 함정에 빠뜨린다.
그들이 함정에서 빠져나가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 동안, 니드호그 파벌의 오러 포그를 함정 안에 가득 채우는 것이 이번 작전이었다.
“크레스니크 가문에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 니드호그 파벌의 오러 포그가 강력한 건 그들이 한계 이상으로 자신의 힘을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말로 목숨을 걸고 이번 싸움에 임하고 있지.”
“우리와 싸울 때보다 더 결사적인 것 같군요.”
“니드호그가 그만큼 강하게 명령을 내렸나 봅니다.”
이번 전투에서 니드호그 파벌의 드래곤들과 용귀족들은 오로지 거인들을 중독시키는 역할만 맡게 되었다.
카이트가 ‘거인들은 독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라고 하면서 제안한 것이었다.
“그들이 목숨 걸고 자기 역할을 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겠지.”
“그렇겠죠.”
“맞습니다.”
시구르드는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볼테온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볼테온이 아군 전체에게 들릴 수 있도록 커다란 뿔피리를 불었다.
“가자, 에리크, 아그나르.”
“알겠습니다!”
“전하를 따르겠습니다!”
망루에서 세 남자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검을 뽑았다.
알비온 대공 가문에서 전해 온, 세 자루의 신화병장을.
“으윽……!”
거인 하나가 다른 거인의 어깨를 밟고 함정에서 기어 나왔다.
독의 영향으로 몸을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 오른쪽 발밑으로 아그나르가 전광석화같이 뛰어 들어갔다.
“흐읍!”
촤악!
신화병장 ‘갈라틴’이 번뜩이며 거인의 발뒤꿈치 힘줄을 찢었다.
아그나르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왼쪽 발의 힘줄까지 끊어 버렸다.
그 직후, 에리크가 정면에서 달려들었다.
“하압!”
콰앙!
신화병장 ‘아론다이트’에서 솟구친 거대한 오러가 거인의 종아리를 후려쳤다.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거인이 땅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
파앗!
시구르드가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몸을 비틀면서, 신화병장 ‘엑스칼리버’를 휘둘렀다.
“크아아악!”
시구르드가 노린 것은 거인의 두 눈이었다.
순식간에 시력을 잃은 거인이 땅에서 나뒹굴었고, 시구르드가 그에게 다시 한번 뛰어들었다.
엑스칼리버가 번뜩인 직후, 거인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어, 어떻게, 인간 따위에게…….”
“당할 때 하는 소리는 드래곤들도 별 차이 없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구르드가 거인에게서 물러섰다.
“시구르드 전하, 이 신화병장들은 확실히 대단한 것 같습니다. 펜리르를 상대할 때는 제 공격이 거의 먹히지 않았는데, 아론다이트를 사용하니 좀 먹혀드는 느낌이군요. 물론, 이놈이 펜리르보다 약한 탓도 있겠습니다만.”
“강화된 오러 포그에 중독된 탓도 있겠지만, 확실히 공격이 잘 먹힙니다.”
에리크와 아그나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시구르드가 고개를 돌렸다.
함정에서 거인들이 더 많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이, 이놈들…….”
“다 짓밟아 죽여 주마!”
이를 갈면서 기어 나오는 거인들을 보면서, 세 명의 소드 마스터가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강대한 적이지만, 쓰러뜨릴 수 없는 적은 아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힘으로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구르드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하늘 높이 솟구친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올려다봤다.
“우리들에게는, 카이트도 있으니까.”
그 직후, 하늘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쏟아져 거인들을 덮쳤다.
* * *
수라무극신공의 빛이 함정에서 기어 나온 거인들에게 직격했다.
본래 수라무극신공은 신화병장을 사용해 극양과 극음의 기운을 조합하는 것으로 무극의 힘을 방출하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단전의 수라무극진기를 방출하는 것만으로도 수라무극신공을 사용할 수 있었다.
“크아악!”
“이, 이게 무슨……!”
거인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수라무극진기 3성으로 사용하는 수라무극신공은 지금까지보다 위력이 몇 배 이상 강해진 상태였다.
‘거인들이 순식간에 몰살당하는군!’
‘그래도 진기 소모가 너무 커. 연발은 불가능하지.’
지금 앞으로 나선 거인들은 펜리르보다 훨씬 약했다.
그래서 굳이 신역절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 가능했다.
‘아직 절반 이상 남았으니, 나머지는 직접 쓰러뜨려야겠군.’
지상에 착지하면서 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이건 지난번에 고틀란드를 습격한 흑색 검사가 휘두르던 검이다.
잘 살펴보니 신화병장보다 못할 뿐이지 상당히 좋은 검이어서 써먹고 있는 중이었다.
“네놈, 이상한 브레스 같은 공격을……!”
“죽여 버리겠다!”
이미 거인들은 대부분 함정에서 기어 나온 상태였다.
그들은 오러 포그에 중독되어 비틀거리고 있었지만, 그런 상태여도 나를 잡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서로 뒤엉키고 난리가 났군.’
‘내가 말했을 텐데, 신화시대 때부터 거인들은 좀 멍청한 편이라고.’
파프니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수라무극진기를 활성화시켰다.
가장 먼저 나에게 달려든 거인들은 셋.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나를 붙잡으려 하는 모습을 보며, 수라적염검을 펼쳤다.
“으악……!”
타오르는 불꽃이 그들의 전신을 뒤덮었다.
일부러 치명상을 입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온몸이 불타오르는 고통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거인들이 주춤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몸이 불타면서 비명을 질러 대는 모습에 긴장했군.’
‘불을 두려워하는 건 생물로서의 본능이니까.’
거인들 사이에서 다섯 명 정도가 튀어나왔다.
다들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역전의 용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식하게 돌격하지 않는군.’
그들은 나를 둘러싸려 했다.
사방에서 포위한 뒤 일제히 나를 공격할 생각인 것 같았다.
“해치우자!”
거인들 중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다섯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면서 커다란 손을 뻗었다.
‘동시에 달려드는군.’
‘아니야.’
파프니르의 말에 짧게 대꾸했다.
‘저런 건 동시라고 할 수 없지.’
다섯 명 전부, 약간의 시간 차이가 있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 거인을 향해 움직였다.
수라청벽검을 사용해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어 그 목을 그어 버린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검을 던졌다.
뇌전과 함께 날아간 검이 또 다른 거인의 눈에 박혔다.
“윽…….”
“크악!”
목에서 피를 뿜으면서 첫 번째 거인이 쓰러졌고, 두 번째 거인도 눈을 통해 두개골 내부로 침투한 뇌기(雷氣)에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
나머지 셋이 주춤했다.
그 시점에서 그 셋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나는 손아귀에 심검을 만든 뒤, 좌측과 우측에 있던 두 거인을 향해 날렸다.
“컥!”
“끄윽!”
가슴에 박힌 심검에 두 거인이 쓰러졌다.
약간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이제 하나 남았군.”
“윽…….”
마지막 남은 거인이 뒷걸음쳤다.
하지만, 방금 전에 집어던졌던 검이 다시 날아와 놈의 등을 찔렀다.
‘이기어검이라고 했나?’
‘그래, 기(氣)로 검을 조종하는 것이지.’
‘몇몇 소드 마스터들이 사용하는 오러 매뉴버보다 낫군.’
동족들의 죽음을 보고, 거인들이 이를 악물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숫자가 많은 것을 보고, 나는 심검을 더 많이 만들었다.
펜리르를 쓰러뜨렸을 때는 7개였지만… 이번에는 12개.
‘이제는 이 정도도 여유 있군.’
파파파팟!
12개의 심검이 공중을 춤췄고, 12명의 거인이 급소를 꿰뚫려 쓰러졌다.
그들의 시체를 뛰어넘어 거인들이 계속 몰려들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다음 공격을 펼쳤다.
“네놈, 어떻게 인간 주제에 그런 힘을… 커억!”
수라백강검으로 가장 먼저 달려든 거인의 목을 쳤다.
멈추지 않고 종횡무진 움직이면서 검을 여러 번 휘둘렀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거인의 목이 두세 개씩 동시에 떨어졌다.
“무, 무슨 인간이 이런…….”
“신화시대의 영웅들에 필적하는 거 아닌가?!”
“아니, 어쩌면 그 이상… 크악!”
시체가 계속 쌓였다.
시체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성벽을 쌓을 수 있을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거인들을 해치우다 보니, 어느새 더 이상 덤벼드는 거인이 없어지게 되었다.
“…….”
주위를 확인했다.
시구르드와 에리크, 아그나르의 협공에 쓰러진 거인들의 시체가 보였다.
그리고 겁을 먹고 뒷걸음질하는 거인들도 보였다.
그리고, 저 너머에서…….
“참으로… 실망스럽군.”
측근들에게 둘러싸인 채 상황을 지켜보던 거인족의 수장 수르트가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실망스럽다면, 본인이 직접 나서서 상황을 타개해 보시지.”
나는 오른손을 앞으로 뻗으며 까닥였다.
“와라, 수르트.”
“좋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흑색의 거인에게서 갑자기 불꽃이 치솟았다.
파프니르에게 들었던 정보에 의하면, 저 수르트는 신화시대 최강의 ‘화염의 거인’이다.
“네 녀석의 도전, 받아들여 주마.”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하며, 수르트가 타오르는 대검을 치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