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96
▣ 196화 새로운 검과 새로운 힘 (3)
‘이 남자… 강하다!’
검을 맞부딪힌 순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상대해 온 검사들 중에서, 이 남자가 가장 강했다.
‘내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검사들 중에서 가장 강해!’
그는 자신이 지크프리트라 말했지만, 파프니르는 그가 초대 시구르드라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이 남자가 정말로 초대 시구르드라면 이 정도로 강한 것도 납득이 된다.
전성기의 힘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파프니르를 패배시킨 그랜드 소드 마스터니까.
“……!”
서로 거리를 벌렸다.
설원 위에서 움직이며 기회를 엿보고 있을 때, 신조차 죽이는 나뭇가지 ‘미스틸테인’으로 만든 검이 번뜩였다.
‘오러 샷이다!’
파앗!
검환(劍丸)을 떠올리게 하는 마력탄이 나를 향해 쏟아져 나왔다.
숫자가 많다. 아마 위력도 상당할 것이다.
나는 레바테인을 든 채 화기(火氣)를 발생시켰다.
“……!”
화르르!
격렬한 불꽃이 마력탄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불꽃 사이를 뚫고 지크프리트가 접근해 왔다.
‘조심해라!’
쿠쿵!
검과 검이 충돌했다.
충돌로 인한 충격파가 발생하면서 땅에 쌓였던 눈까지 흩어졌다.
그렇게 검을 맞닿게 한 상태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을 때.
지크프리트가 갑자기 검에서 손을 뗐다.
“……!”
지크프리트의 검이 춤추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선 지크프리트를 대신하여, 공중을 날아다니며 나를 공격한 것이다.
이기어검과 비슷한 기술, 오러 매뉴버였다.
‘그렇다면……!’
나도 레바테인을 하늘로 날렸다.
두 자루의 초월적인 검이 쫓고 쫓기는 공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막상막하로군!’
파프니르가 감탄할 정도로, 양쪽의 움직임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자신의 검을 회수했다.
“…….”
“…….”
입을 다문 채 우리는 서로를 노려봤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주시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지크프리트가 검을 아래쪽으로 내렸다.
“왜 그러지?”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렇게 말하며 지크프리트가 아예 납검까지 했다.
“너도 지금 당장 여기서 승부를 가릴 생각은 없을 것이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결전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 카이트.”
지크프리트의 푸른 눈동자가 투구 안에서 빛났다.
“그때 다시 승부를 가리면 될 것이다.”
“잠깐…….”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지크프리트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냥 은신술을 쓴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사라진 것이다.
‘축지처럼 공간에 간섭하는 이동술을 사용한 건가?’
지난번에 고틀란드에 나타났을 때도 이 능력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공중 요새로 이동한 것 같지만, 확인할 수는 없었다.
‘카이트.’
갑자기 파프니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 심검을 사용하지 않은 거냐.’
파프니르가 나를 다그쳤다.
‘내 실력을 전부 다 보여 줄 필요는 없으니까.’
‘뭐라고?’
‘지크프리트가 결판을 낼 생각이 없다는 건 중간부터 눈치채고 있었어.’
‘그게 정말인가?’
‘그래, 나를 관찰하는 게 목적 같더라고.’
나를 쓰러뜨리기 위해 덤벼든 것이 아니라, 내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덤벼든 것이다.
‘무슨 생각으로 나를 관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러면 너는 일부러 실력을 숨긴 건가?’
‘그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말이야.’
‘이해하기 어렵군. 그냥 전력을 다해 싸워도 되는 거 아닌가? 상대편에게 맞춰 줄 필요는 없었을 텐데?’
‘전력을 다해 싸워서 지크프리트를 쓰러뜨려 봤자, 별로 이득 볼 게 없으니까.’
‘뭐라고?’
‘저기에 저놈들이 있잖아.’
나는 공중 요새를 가리켰다.
‘지크프리트가 나타난 걸 보면, 바나헤임의 바나르 신족도 내 존재를 감지했을 거야.’
‘아……!’
‘여기서 내 모든 것을 드러내면서 싸워 봤자, 요새에 있는 놈들한테 내 정보를 제공해 주는 꼴이 되는 거지.’
어차피 지금 당장 바나헤임에 쳐들어갈 것도 아니다.
내가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놈들한테 보여 주면 나만 손해다.
‘물론… 지크프리트도 내 생각을 눈치챘을 것 같지만 말이지.’
아마 지크프리트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체 그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지크프리트가 초대 시구르드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주의해야겠어.’
이제 머지않아 바나헤임과의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지크프리트하고는 그때 결판을 내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 * *
바나헤임 내부.
신화시대에 바니르 신족에 의해 건조된 이 공중 요새는, 어딜 가도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화려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화려한 분위기를 즐기는 건 오로지 프레이야 한 명뿐이었다.
이 요새에 존재하는 바니르 신족은 프레이야 한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전부… 프레이야를 위해 싸우는 발할라의 전사들, 그리고 발키리들뿐이다.
“프레이야 님, 목욕 중에 죄송합니다.”
황금 욕조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프레이야는, 발키리의 목소리에 눈썹을 찌푸렸다.
“뭐야, 라드그리드.”
목욕 시간을 방해당한 프레이야가 불쾌감을 드러내자, 라드그리드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지크프리트 전사장이 인류 측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와 충돌했습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
“전투 데이터는 발키리들이 분석 중입니다. 나중에 자세한 보고를…….”
“아니, 먼저 지크프리트에게 듣겠어.”
프레이야는 욕조 위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주위에 대기하고 있던 발키리들이 수건으로 프레이야의 몸을 닦아 줬고, 옷까지 입혀 줬다.
“지크프리트는 어디 있지?”
“일단 중앙 홀에서 대기하게 하였습니다.”
“알겠어.”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은 금색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프레이야는 중앙 홀로 향했다.
그러자 텅 비어 있는 공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지크프리트.”
프레이야는 맨발로 걸어갔다.
그리고 지크프리트에게 가장 가까운 의자 위에 앉았다.
“내 허가도 없이 움직이다니, 나쁜 아이네.”
“…….”
“투구를 벗어, 지크프리트.”
프레이야가 지시하자 지크프리트는 바로 투구를 벗었다.
수려한 이목구비를 보며 프레이야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확인할 만큼 확인했어?”
“어느 정도는.”
지크프리트는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름은 카이트 에인헤랴르… 강하더군.”
“그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다시 한번 확인한 보람이 있었다는 거네.”
이미 지크프리트는 지난번 고틀란드 습격에서 에인헤랴르의 부자(父子)가 싸우는 모습을 확인하고 왔다.
하지만 직접 검을 맞대고 실력을 확인한 건 아니었다.
“어때, 지크프리트.”
프레이야는 의자에 앉은 채 맨발을 까닥였다.
“발할라의 전사로 편입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가치가 있다.”
지크프리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지켜본 ‘에인헤랴르’ 중에서 최강이다. 큰 전력이 될 것이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프레이야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웃었다.
“좋아, 그러면 그 방향으로 가자고, 지크프리트.”
“…….”
“그 녀석을 발할라의 전사로 만들어서…….”
그 순간, 프레이야의 푸른 눈동자가 빛났다.
“애시르 신족을 타도하고, 바니르 신족을 재건하는 거야.”
먼 옛날, 라그나로크가 시작되기도 전.
애시르 신족과 바니르 신족의 전쟁이 있었고, 프레이야가 속한 바니르 신족이 패배했다.
바니르 신족은 애시르 신족에게 종속되게 되었고, 라그나로크에서도 애시르 신족을 대신해 최전방에 나섰다가 많은 신들이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는 오로지 한 명… 발할라의 관리자라는 역할이 있었던 프레이야뿐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어. 이제야 비로소 복수의 때가 온 거지.”
프레이야는 오랫동안 복수를 꿈꿔 왔다.
하지만 프레이야에게는 애시르 신족에 복수할 힘이 없었다. 애시르 신족이 머릿수가 훨씬 많았고, 거인들도 애시르 신족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주 좋은 상황이야. 거인들은 괴멸되었고, 오딘이 없는 상황이라 발할라는 완전히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지.”
원래 발할라의 전사들은 애시르 신족의 왕인 오딘의 지휘를 받는다.
하지만 현재 오딘이 부재중이기 때문에 프레이야가 자신의 사병처럼 사용할 수 있다.
“애시르 최강의 전사였던 토르도 이제는 없어. 걸림돌이 되는 건 펜리르에게 한쪽 팔을 잃은 티르 정도지.”
“…….”
“너희 발할라의 전사들이 티르 등의 신들을 상대하는 사이, 이 바나헤임으로 아스가르드를 파괴하면 바니르 신족의 승리야.”
애시르 신족을 타도하고, 바니르 신족이 새롭게 지상의 지배자가 된다.
그것이 프레이야의 꿈이었다.
“그러기 위해… 인간들 중에서 전력을 보충해야지.”
“…….”
“아, 그러고 보니 카이트 에인헤랴르 말고 한 명 더 있었지. 그 녀석의 아버지였던가?”
그렇게 말하며 프레이야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발키리들을 향해 말을 건넸다.
“이름이 뭐였더라?”
“시구르드 에인헤랴르입니다.”
“아, 그랬지.”
한 발키리의 대답을 듣고 프레이야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름이 똑같은데 계속 헷갈린단 말이야.”
“…….”
“하여간 현재의 시구르드 에인헤랴르도 눈여겨봐야겠어.”
그렇게 말하면서 프레이야가 눈을 가늘게 떴다.
“20여 년 전 ‘그 발키리’가 판단했던 것과는 달리, 쓸 만한 전사로 성장한 것 같단 말이지.”
“…….”
“좋아,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드네.”
프레이야는 금색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고혹적으로 웃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도, 시구르드 에인헤랴르도… 빨리 나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충실한 투견으로 만들고 싶네.”
* * *
고틀란드 대공궁.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 방 안에서, 시구르드 에인헤랴르는 상의를 벗은 채 검을 들고 있었다.
눈을 감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시구르드는 언젠가 들었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몇 달 전, 영구동토에서 파프니르와 대치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 참으로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구나.
– 의무감에 사로잡힌 채 검을 휘둘러 봤자, 너는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 이대로라면 너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채 피를 흘리며 싸우다가 죽을 뿐이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개죽음을 당하는 것이지.
그때 시구르드는 자신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일갈하고 파프니르와 싸웠다.
하지만… 파프니르의 말이 틀렸던 것은 아니다.
‘카이트는 그렇지 않지.’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도달한 장남.
그 녀석은 언제나 재미있게 사는 것 같았다.
의무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카이트는 의무감에서 자유롭다. 카이트가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건… 그런 자유로움 때문인가?’
시구르드는 하겐이 남긴 비전서의 내용을 익혔다.
그리고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되려면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어떻게 변해야 할지는 쉽게 답을 찾기 어려웠다.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나?’
시구르드는 에인헤랴르 대공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만을 생각해 왔다.
그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애초에… 자유로워진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지?’
어차피 시구르드는 계속 싸워 나갈 뿐이다.
자유로워진다고 해서 다른 일을 하게 될까.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나? 원하는 게 있나?’
싸우는 것 말고 무엇이 있을까.
시구르드는 진지하게 과거를 되새기며 고민했다.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 있었을지.
“…….”
그리고, 시구르드는 깨달았다.
만약 의무감이 없었다면… 시구르드는 20여 년 전에 에인헤랴르를 떠났을 것이다.
갑자기 사라진 아내, 브륀힐다를 찾기 위해.
“……!”
그 사실을 인정한 순간.
시구르드의 몸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뻥 뚫리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막혀 있던 것이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하아아압!”
기합 소리와 함께 검을 휘두르자, 격렬한 에너지가 방출되었다.
천장을 부수고 하늘로 치솟는 오러를 올려다보며, 시구르드는 후련한 느낌을 받았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시구르드 전하!”
여러 사람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버지.”
바로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너진 천장 너머에서 카이트가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 싶으신지, 길을 찾으셨습니까?”
“그래.”
항상 자신의 길을 걸어온 큰아들을 보면서, 시구르드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입에 담았다.
“나는 네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다.”
“그러시군요.”
카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
“좋다.”
이미 시구르드는 눈치챘다.
카이트가 브륀힐다 관련으로 할 말이 있었다는 것을.
“네가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말해 봐라.”
그렇게 말하면서, 시구르드는 손에 든 검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