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99
▣ 199화 발하라의 전사 (2)
“이게 대체 뭐야!”
프레이야는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왜 이렇게 다 죽어 나가는 건데!”
지금 프레이야는 바나헤임 지휘실에서 마법으로 외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인간들이 엄청난 화력의 마법을 퍼부어 대서 발할라의 전사들을 괴멸시켰다.
남아 있는 전사들도 카이트와 시구르드 등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라드그리드!”
“네, 프레이야 님.”
발키리 중 한 명이 다급히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였다.
“우리 전사들이 저렇게 약해 빠진 거였어? 그동안 제대로 훈련시킨 거 맞아?!”
“인간들의 마법 공격이 저희 예상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아마 거인들의 시체를 이용한 것 같습니다. 거인들은 체내에 대량의 에테르를 갖고 있어…….”
“변명하지 마!”
짜악!
프레이야에게 싸대기를 맞은 라드그리드가 땅을 굴렀다.
“이렇게 한꺼번에 몰살당할 줄 알았으면 저놈들을 육성하지도 않았어! 진작 전부 갈아 버렸겠지!”
“네…….”
“정말, 쓸모없는 것들이야. 전사들도, 너희 발키리들도.”
“…….”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발키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발키리의 생사 여탈권은 프레이야가 갖고 있다.
프레이야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여기 있는 발키리들은 전부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다.
“쯧, 어쩔 수 없지.”
다행히 프레이야는 발키리들을 더 이상 비난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대신 지휘실에 표시된 바깥 광경을 살펴보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카이트와 시구르드가 저렇게 의기양양하게 돌격해 오는 게 꼴 보기 싫으니… 이렇게 해야겠어.”
프레이야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황야에 깔린 시체들… 전부 ‘변질’시켜 줘.”
프레이야의 냉혹한 명령에, 발키리들이 동시에 숨을 삼켰다.
* * *
‘뭐지?”
바나헤임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소리였다.
‘이 파장의 소리는…….’
‘파프니르, 뭔지 알겠나?’
‘가만 있어 봐라. 이걸 어디선가…….’
딱히 음공(音功) 같은 건 아니다.
인체에 해는 없을 것 같은데…….
“카이트 님!”
바로 그때.
후방에서 아나스타샤를 지키고 있던 모리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체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
신속히 주위를 살폈다.
모리안 말대로 시체들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만 시체 병사로서 다시 일어서는 것은 아니었다.
‘산산이 흩어진 살점까지 움직이고 있어. 설마…….’
‘아, 이건……!’
뒤늦게 파프니르가 내 안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프레이야가 전사들의 시체로 어보미네이션을 만들고 있는 거다!’
‘……!’
철퍽!
전사들의 시체가 녹아내리면서 제대로 된 형체를 갖추지 못한 고깃덩이가 되었다.
수백 명의 시체에서 비롯된 어보미네이션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했던 어보미네이션들하고는 느낌이 달라. 훨씬 더 강력한 것 같은데… 골치 아프게 됐군.’
게다가 어보미네이션은 나와 시구르드 등을 향해 달려들지 않았다.
방어선이 있는 남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큭, 거의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모리안 등이 혀를 차면서 어보미네이션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보미네이션은 결코 만만한 괴물이 아니다. 순수한 전투력은 생전의 흑색 검사들에게 한참 못 미치지만, 급소라는 게 딱히 없는 고깃덩이이기 때문에 완전히 침묵시키려면 상당한 고생을 해야 한다.
‘게 볼그를 지닌 모리안이라면 어보미네이션의 코어를 정확히 찔러서 무력화시킬 수 있겠지만, 다른 인간들한테는 쉽지 않겠지. 어떻게 할 건가?’
‘글쎄…….’
파프니르의 질문을 들으며, 나는 잠시 고민했다.
완전히 ‘고깃덩이의 파도’가 된 어보미네이션들이 이제 곧 방어선에 도달하여 방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병력들이 막아 낼 수 있을까.
‘아니, 잠깐.’
‘왜 그러지?’
멀리서 느껴진 기척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어보미네이션은 저쪽에 맡기면 되겠군.’
‘뭐?’
바로 그때.
남쪽에서 대규모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인헤랴르의 기사단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피어너나 크레스니크의 병력도 아니었다.
“남부 귀족들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이바르 공자님이 남부에서 병력을 모아 왔다……!”
“와아아……!”
엄청난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에인헤랴르의 기사단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은 병력이 어보미네이션들을 향해 돌격했다.
그들 사이에서 이바르를 비롯한 내 측근들의 모습이 보였다.
“카이트 공자님!”
그중에서 니얼이 경공을 사용하여 나한테 날아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 딱 좋았어.”
귀족들을 설득한 이바르와 니얼이 원군과 함께 달려오고 있다는 건 이미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다.
바나헤임과의 결전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늦지 않고 도착해 주었다.
“메로베우스 남쪽에서 이름을 날리던 소드 마스터와 스피어 마스터, 매직 마스터 등도 함께 와 주셨습니다! 충분한 전력이 될 겁니다!”
“그래, 수고했다.”
이윽고 이바르와 어윈, 모르트, 슈데르츠, 슈벤, 이그니카, 휴이엔, 루살카도 내 근처로 달려왔다.
그들의 단전에서는 3갑자의 내공이 뚜렷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다들 수련은 잘하고 있었나?”
“물론입니다!”
“이제 검강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힘차게 대답하는 부하들을 보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남쪽에 녀석들을 내버려 둔 채 급하게 올라온 게 마음에 걸렸는데, 이바르를 중심으로 잘 수련을 한 모양이다.
“내가 봐도 다들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 같더군.”
“아……!”
어느새 기척도 없이 다가온 노인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산중 교단의 최고 장로, 샤이흐였다.
“최고 장로님, 몸은 이제 괜찮으십니까?”
“물론이지. 카롤루스와의 싸움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계속 정보를 제공해 주셨지 않습니까.”
그동안 샤이흐는 설원 지대에서 하겐과 싸우다가 큰 부상을 입은 뒤 교단의 본거지에서 칩거하고 있었다.
“이제는 나도 몸이 회복되었고, 장로들까지 모조리 데리고 북쪽으로 올라왔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지.”
“감사합니다.”
“그럼 나는 장로들과 함께 저 괴물들을 상대하겠네.”
그 말을 남기고 샤이흐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최고 장로님도 오셨고… 남쪽의 전력을 모조리 끌고 왔다고 보면 되겠군.”
“그렇습니다, 카이트 형님.”
이바르가 웃으면서 말했다.
“다들 우리 뜻에 공감하여 협력해 주었습니다.”
“그래, 다행이다.”
“카이트 형님이 남쪽에서 카롤루스를 쓰러뜨리고 에인션트 드래곤들을 토벌해 주신 덕분이죠. 다들 카이트 형님에게 힘을 실어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단지 그것만은 아니겠지. 어느 정도 협박도 했을 텐데.”
“하하, 그거야 뭐…….”
예전부터 니얼과 이바르는 내 무력(武力)을 내세워서 귀족들을 통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없었어도 내 이름을 들먹이며 귀족들을 포섭했을 것이다.
“어쨌든… 어보미네이션은 저들에게 맡기면 되겠군.”
흑색 기사들과는 달리, 어보미네이션은 일반 병사들도 상대할 수 있다.
연합군의 머릿수를 활용한다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바나헤임에 돌입하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나는 저기 있는 공중 요새에 돌입할 생각이다. 다들 따라올 수 있겠나?”
“네!”
“어디까지고 따라가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하는 녀석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어보미네이션을 뛰어넘어 바이콘이 달려왔다.
이 녀석도 함께 북쪽으로 올라온 모양이었다.
“함께 갈까?”
“히이잉!”
나는 바이콘에 올라탔다.
그리고 부하들과 함께 적진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카이트 형님! 놈들의 심장을 파괴하는 건 저희가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심장을 파괴하면 어보미네이션이 되지 못한다. 고깃덩이가 되어도 심장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카이트 님을 따른다!”
“한 자루의 검이 되어라!”
우리는 한 자루의 검과 같은 돌격 진형을 취했다.
내가 칼끝의 검봉(劍鋒)이 되어 적진을 꿰뚫고, 나머지 녀석들은 검신(劍身)이 되어 따라오며 적들을 마무리했다.
발할라의 전사들을 마음껏 베어 넘기면서 전진하자, 바나헤임 근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카이트!”
우측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마찬가지로 적진을 돌파하던 시구르드였다.
“공중 요새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문제는 출입구가 닫혀 있다는 점이다!”
시구르드의 말대로, 발할라의 전사들이 튀어나온 출입구는 모조리 닫혀 있었다.
“강제로 구멍을 내는 수밖에 없겠군요.”
물론, 쉽게 구멍이 뚫리지는 않을 것이다.
수라무극진기로 강력한 일격을 날려야 한다.
“그 역할은 우리가 맡도록 하마……!”
바로 그때, 머리 위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즈얼라그두를 비롯한 니드호그 파벌의 드래곤들이 바나헤임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카아아……!”
그들이 바나헤임을 향해 일제히 브레스를 발사했다.
바나헤임의 외벽은 한동안 버텼지만, 결국 굉음과 함께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우리들은 몸집 때문에 내부로 진입하기 어렵다! 하지만 너희 인간들이라면 가능할 터… 뒷일을 부탁한다!”
“고맙다!”
드래곤들이 물러선 뒤, 나는 바이콘을 몰고 바나헤임 근처까지 달려갔다.
그리고 경공을 사용해 날아올라 바나헤임 내부로 진입했다.
“……!”
흑색 검사 몇 명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부를 지키는 발할라의 전사들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비켜라.”
“……!”
촤악!
이기어검으로 놈들의 목을 차례차례 날려 버린 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진입로를 확보했습니다. 들어오시죠.”
“알겠다.”
시구르드와 에리크, 아그나르가 도약하여 바나헤임 내부로 진입했다.
이어서 이바르와 니얼 등 내 측근들도 안쪽으로 들어왔다.
“바깥은… 저들에게 맡겨야겠군.”
시구르드가 바깥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바깥에서는 에인헤랴르의 기사단이 귀족들의 지원군과 협력하여 어보미네이션을 소탕하고 있었다.
“헤스테인 님과 프리드레이프 님이 있고, 모리안 님과 아나스타샤 님도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귀족들 중에도 9서클의 마스터들이 있다고 하니까요.”
에리크와 아그나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시구르드가 나를 쳐다봤다.
“카이트, 이대로 안쪽으로 돌입해야겠다.”
“네, 프레이야를 찾아내서 쓰러뜨리면 될 겁니다.”
다만 프레이야가 어디 있는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바나헤임의 내부 구조가 내 감지 능력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보통 요새 정중앙에 지휘실이 있다. 프레이야는 아마 그곳에 있겠지.’
‘길을 찾아야겠군.’
파프니르의 조언을 들으며, 나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 * *
“놈들이 바나헤임 내부에 침입했습니다, 프레이야 님.”
“알고 있어…….”
프레이야는 의자 위에서 몸을 늘어뜨린 채 대꾸했다.
짜증이 극에 달하니 더 이상 소리 지르기도 귀찮아졌다.
“지크프리트.”
인상을 찡그린 채,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를 불렀다.
“카이트도 시구르드도 바나헤임으로 들어왔을 거야.”
“…….”
“놈들을 제압해서 내 앞으로 끌고 와. 평전사(平戰士)뿐만 아니라 고위전사(高位戰士)들을 다 동원해도 좋으니까.”
지크프리트는 투구를 쓴 채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떴다.
“발키리들도, 절반은 여기에 남고 절반은 바깥으로 나가서 놈들을 상대해.”
“알겠습니다.”
참모 역할을 하는 발키리인 라드그리드가 인원을 선발하여 지휘실 바깥으로 보냈다.
프레이야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카이트, 시구르드… 너희들이 아무리 강해도 지크프리트에게는 안 될 거야.”
신화시대의 영웅들조차 능가하는 ‘최강의 전사’가 에인헤랴르의 부자(父子)를 쓰러뜨려 주기를 기대하면서, 프레이야는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