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00
▣ 200화 발하라의 전사 (3)
“으윽!”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여성 전사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바나헤임 내부를 진행하던 우리는 10여 명의 전사들과 조우하여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들은 상당히 뛰어난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나와 시구르드를 중심으로 한 정예 부대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압!”
이바르가 ‘성검’ 뒤랑달을 휘둘러 마지막 여전사의 복부를 꿰뚫는 것으로 전투는 일단락되었다.
“이 여자들, 대체 뭐였던 걸까요? 우리 쪽하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려고 하던데.”
“발키리겠지. 프레이야는 발키리들의 수장이라고 하니까.”
어윈에게 대꾸하면서, 나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발키리에게 다가갔다.
“발키리, 프레이야는 어디 있지?”
“…….”
그녀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을 뿐, 나를 노려보지도 않았다.
“윽…….”
잠시 뒤, 그녀는 작은 신음 소리와 함께 축 늘어졌다.
결국 우리는 발키리들에게서 단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 다들 미모가 대단하네요.”
“모르트, 이런 상황에서 그런 소리를…….”
“그치만 정말로 다들 미녀 아닙니까? 얼굴 스타일이 다 비슷하긴 했지만…….”
모르트가 어윈 상대로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듣고, 갑자기 아그나르가 목소리를 높였다.
“앗, 그러고 보니…….”
“아그나르 경, 왜 그러시죠?”
“아까 프레이야와 닮지 않았습니까?”
“네?”
“공중에 표시된 환영 말입니다! 다들 얼굴이 조금씩 비슷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발키리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살폈다.
“그러고 보니… 다들 닮은 것 같기도.”
머리카락의 색깔이나 모양들은 각기 달랐지만, 얼굴 생김새가 프레이야와 비슷했다.
‘파프니르, 발키리들은 전부 다 프레이야의 친척들인가?’
‘글쎄, 그런 건 나도 모르겠군.’
다들 발키리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편 시구르드는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냉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버지.”
“뭐냐.”
“혹시… 제 어머니와 닮았습니까?”
“그렇지는 않다.”
시구르드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모습이 브륀힐다의 본모습이 아닐 수도 있지.”
“그것도 그렇군요.”
에리크와 아그나르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브륀힐다가 발키리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은 상태였다.
“…….”
나는 발키리의 시체에 손을 대면서 내력을 불어넣었다.
자세히 내부를 살펴보니,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발키리는 인간이 아니군.’
발할라의 전사들은 전부 인간이었다.
지크프리트도 에테르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지 인간이 분명했다.
하지만 발키리의 육체는 인간하고 다른 부분이 많았다.
‘그렇다고… 신족도 아닌 것 같은데.’
물론, 나는 지금까지 신족을 직접 만나 본 적이 없다.
아까 본 프레이야도 마법적 환영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 발키리는… 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단순히 전투력이 약한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약해.’
신화경에 도달한 덕분에, 세계의 이치를 보다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발키리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감이 왔다.
‘그렇다면, 브륀힐다는…….’
나는 시구르드를 힐끔 쳐다봤다.
시구르드는 무표정으로 발키리들의 시체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왠지… 우리가 쓰러뜨린 발키리 중에 브륀힐다가 섞여 있지 않은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골치 아프게 됐는데.’
나는 시구르드가 브륀힐다와 재회하길 바라고 있었다.
옛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내 추측이 맞다면… 브륀힐다와 아예 만나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 * *
“인간들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4517 구역에서 흐리스트의 부대와 조우한 것 같습니다.”
발키리 중 한 명인 헤르표투르가 그렇게 말하자, 지크프리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지크프리트는 다섯 명의 고위 전사와 열 명의 평전사, 그리고 열 명의 발키리를 데리고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게이라회드의 부대가 그 근처로 움직이고 있었지.”
“네, 맞습니다만…….”
“게이라회드에게 놈들을 유인하게 해라.”
“유인이라고 하셨습니까?”
“3741 구역으로 말이다. 서둘러라.”
“아, 알겠습니다!”
지크프리트의 차가운 목소리에 헤르표투르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발키리는 발할라의 전사들보다 지위가 높다. 하지만 전사장(戰士長)인 지크프리트에게는 절대 복종해야만 했다.
지크프리트가 프레이야처럼 발키리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한 적은 없지만,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면 발키리들은 다들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는 3741 구역에서 놈들을 기다린다.”
지크프리트가 전사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 * *
우리는 발키리 집단을 또다시 발견하고 전투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들은 조금 싸우는 듯하더니 도망치기 시작했다.
“함정이군요.”
아그나르가 즉각 의견을 말하자, 시구르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유인하는 듯한 움직임이다.”
“굳이 유인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놈들을 따라간다.”
“네?”
“놈들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 우리들을 유인할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시구르드가 나를 쳐다봤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저도 동감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마 그곳에 지크프리트가 있겠죠.”
“지크프리트……!”
나는 이미 지크프리트의 정보를 다른 사람들한테 공유한 상태였다.
초대 시구르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말이다.
“놈이 있는 곳에 안내해 주는 거라면, 우리가 마다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지.”
시구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놈들을 따라간다. 다만 기습을 유의하며 주위를 경계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우리는 발키리들이 도망친 방향으로 전진했다.
오르막길을 여러 번 지나니,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이건…….”
“남쪽에서 검술 대회 등에 사용되는 원형 경기장하고 비슷하군요.”
니얼이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객석 같은 것도 있고, 바니르 신족의 투기장일지도 모릅니다.”
“투기장이라…….”
객석으로 둘러싸인 원형의 공간.
그곳에서 발키리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버지, 저쪽에서…….”
“그래.”
발키리들의 배후에서, 흑색 갑옷을 입은 검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들어온 입구 쪽에서도 흑색 검사들이 나타났다.
“퇴로를 차단했군요.”
에리크가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를 이곳에 가둬 놓고 공격할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모양이다.”
시구르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흑색 검사들 사이에서도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지크프리트였다.
“전원, 발검(拔劍).”
지크프리트가 짤막하게 말하자, 흑색 검사들 전원이 동시에 검을 뽑았다.
그 모습을 보며 니얼이 내 옆에서 속삭였다.
“아무래도 저 녀석… 싸우기 전에 주절주절 떠드는 타입은 아닌가 봅니다.”
“그래, 그동안 우리가 상대해 온 적들을 생각하면 정말 특이한 녀석이지.”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든가, 순순히 항복하고 부하가 되라든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정말 ‘시구르드 에인헤랴르’다운 남자였다.
“전투 개시.”
파팟!
흑색 검사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전방과 후방에서 우리들을 협공할 생각인 것 같았다.
“침착하게 대응해라.”
“네!”
일일이 지시를 내릴 필요도 없었다.
시구르드가 전방으로 움직이자, 에리크와 아그나르가 바로 뒤를 따랐다.
나는 뒤돌아서서 후방으로 향했다. 이바르와 니얼, 어윈, 모르트, 슈데르츠, 슈벤, 이그니카, 휴이엔, 루살카가 내 뒤를 따라왔다.
“아버지, 다른 놈들보다 실력이 뛰어난 놈들이 있습니다.”
“그래, 나도 느낄 수 있다.”
일반 검사보다 한 단계 높은 실력을 지닌 놈들이 있다.
지크프리트보다는 못한 것 같지만, 놈들은 나와 시구르드가 상대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두 번째 녀석을 내가 맡는다.”
“알겠습니다.”
이바르에게 지시를 내린 뒤, 빠르게 움직였다.
실력이 뛰어난 검사가 오러 블레이드를 전개했다. 하지만 나는 레바테인으로 화기(火氣)를 발생시켜 오러 블레이드 자체를 집어삼켜 버렸다.
그리고 무방비해진 검을 일격에 부러뜨린 뒤, 다음 공격으로 완전히 숨통을 끊었다.
“다들 우리보다 실력이 뛰어납니다! 협공해야 합니다!”
“네……!”
이바르와 니얼, 어윈, 모르트, 슈데르츠가 검강을 펼치며 흑색 검사 하나를 포위했다.
슈벤, 이그니카, 휴이엔, 루살카도 서로 연계하면서 적을 상대했다.
“…….”
한편 반대편에서는 시구르드가 에리크와 아그나르를 양쪽 날개로 삼아 흑색 검사들을 연달아 격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는 후방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무슨 생각이지? 아직도 우리를 관찰하려는 건가?’
‘으음… 내가 기억하는 시구르드는 저런 놈은 아니었는데.’
파프니르가 의구심을 드러냈다.
‘아무리 봐도 시구르드이긴 한데, 왜 저러고 있는 거지?’
‘프레이야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 거 아닌가?’
‘애초에 시구르드가 왜 프레이야의 명령을 따르지?’
‘세뇌라도 당했겠지.’
‘으음…….’
파프니르와 대화를 나누며 흑색 검사를 하나씩 쓰러뜨렸다.
이대로 가면 지크프리트를 제외한 검사들은 금방 전멸시킬 수 있다.
“……!”
바로 그때, 침묵하던 지크프리트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모습을 드러냈던 통로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추격하겠다.”
“아버지, 잠시만…….”
시구르드가 지크프리트를 쫓아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나도 쫓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 직후.
“……!”
쿠쿠쿵!
기관 장치가 작동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내려와 통로를 막아 버렸다.
시구르드를 쫓아가던 에리크와 아그나르가 다급히 철문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지만,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시구르드 전하!”
“전하 혼자서 통로에……!”
나는 혀를 차면서 수라무극진기를 끌어 올렸다.
소드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를 견딜 정도로 견고하다고 해도, 내 수라백강검이라면 뚫을 수 있을 것이다.
정 안 되면 신역의 힘을 발휘하면 되는 거고.
“……!”
이변이 발생한 건 바로 그때였다.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객석 쪽으로 물러서 있던 발키리들에게서 정체불명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건…….”
“독가스인가?!”
어느새 우리가 들어온 쪽 통로도 막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밀폐된 공간에서 독성이 있는 연기를 들이마시게 되었다.
“다들 동요하지 마라.”
나는 레바테인을 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시구르드가 분노검 그람으로 니드호그 파벌의 오러 포그를 흡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독기를 빨아들였다.
자연경에 도달한 내 힘이면 독성이 있는 기운을 정화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놈들……!”
모르트가 이를 갈면서 발키리들에게 달려들었지만… 발키리들은 다들 쓰러져 있었다.
독을 발생시키는 데 자신의 생명력을 다 소모한 모양이었다.
‘상당히 강력한 독이었나 보군. 네가 없었다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그래, 하지만…….’
발키리들의 독을 정화하느라 시구르드를 쫓아가지 못했다.
바나헤임 내부인 탓에 시구르드가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감지하는 것도 어려웠다.
‘빨리 쫓아가야겠어.’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나는 철문을 향해 수라백강검을 사용했다.
* * *
고속으로 이동하는 지크프리트를 쫓아, 시구르드는 미로 같은 복도를 계속해서 달렸다.
“……!”
빠르게 도망치던 지크프리트가 갑자기 발을 멈췄다.
경계하면서 시구르드도 발을 멈추자, 지크프리트가 투구를 벗었다.
‘확실히… 비슷한 부분이 있군.’
흑발의 남자와 얼굴을 마주하면서, 시구르드는 상대방과 자신의 얼굴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등과 비교해도 닮은 부분이 있었다.
‘정말로 초대 시구르드인 것인가?’
다시 질문을 던지기 위해 시구르드가 입을 열려 했을 때.
지크프리트가 갑자기 불쑥 말을 던졌다.
“따라와라.”
“뭐라고?”
“지금 너와 싸울 생각은 없다. 나를 따라와라.”
그렇게 말한 뒤 지크프리트는 다시 시구르드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아까와는 달리 차분한 발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프레이야에게 안내해 주마.”
“……?”
대체 무슨 의도인 걸까.
발할라의 전사로서 프레이야를 지켜야 하는 입장일 텐데, 프레이야한테 직접 안내해 준다는 건가?
“대체 무슨 생각이지?”
“…….”
혹시 이 남자한테 다른 꿍꿍이속이 있는 게 아닐까.
프레이야에게 충성을 바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시구르드 에인헤랴르.”
지크프리트가 잠시 발을 멈추고 뒤돌아 왔다.
“의심하지 말고 따라와라.”
“지크프리트, 당신은…….”
“얌전히 나를 따라온다면.”
지크프리트의 차가운 눈동자가 시구르드를 응시했다.
“네가 사랑했던 발키리를 만나게 해 주마.”
“……!”
시구르드가 사랑했던 발키리.
그 말은…….
“브륀힐다를……?”
“따라와라, 시구르드 에인헤랴르.”
그 말을 남기고 지크프리트는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시구르드가 순순히 따라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무방비한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