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03
▣ 203화. 신을 죽여라 (1)
나는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의 대화를 중간부터 듣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끼어들지 못했던 건, 다른 사람들을 구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바나헤임이 완전히 붕괴해 버렸기 때문에, 비교적 중심부에 있던 우리는 상당히 위험한 상태였다.
다들 오러 실드와 호신기로 몸을 보호하긴 했지만 탈출하는 건 어려운 상태였고, 내가 신역절기로 탈출구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다 날려 버렸다간 위쪽에서 더 무너져 내릴 수도 있어서… 탈출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결국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를 놓치고 말았군.’
지크프리트가 신역의 힘을 사용해 아우둠라의 본진으로 이동한 것 같았다.
조금만 빨리 나왔어도 붙잡을 수 있었는데, 결국 놓치고 말았다.
‘지크프리트는 역시 그 남자였던 건가…….’
파프니르도 지크프리트가 초대 시구르드가 맞다는 걸 확인하고 아쉬워하고 있었다.
‘발할라의 전사가 되어 프레이야의 부하가 된 상태에서도, 언젠가 프레이야를 비롯한 신족들을 타도하는 걸 꿈꾸고 있었던 모양이군.’
‘그래,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야.’
시구르드와 마찬가지다.
그들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정의감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남자들이었다.
‘파프니르, 두 사람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싸움에 나선다는 얘기를 하던데… 무슨 뜻이지?’
‘아스가르드에 침입한다는 얘기겠지.’
‘아스가르드라면… 애시르 신족의 공중 요새 말인가?’
신화시대에는 다수의 공중 요새가 있었다.
하지만 라그나로크 막바지에는 바니르 신족의 바나헤임과 애시르 신족의 아스가르드만이 남았다고 한다.
‘바나헤임이 재가동된 걸 보면, 아스가르드도 재가동되었겠지. 애시르 신족은 전원 아스가르드로 들어갔을 것이다.’
‘아스가르드도 바나헤임 같은 공중 요새 아닌가? 왜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거지?’
‘아스가르드는 아공간에 진입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아공간?’
‘우리가 있는 현실의 공간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아스가르드는 이런 아공간에 있기 때문에 평범한 방법으로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지. 그래서 마지막까지 건재할 수 있었던 거다.’
파프니르가 천천히 설명을 해 줬다.
‘들어가는 방법만 알고 있으면 잠입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만약 잠입에 성공한다고 해도, 빠져나오는 게 문제다.’
‘빠져나올 수 없는 건가?’
‘아스가르드에서 애시르 신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려면, 최고신인 오딘을 쓰러뜨려야지.’
오딘.
지난번에 들었던 이름이다.
애시르 신족의 수장으로, 원래 발할라의 전사들은 오딘의 부하라고 한다.
다만 오딘은 라그나로크 초기에 펜리르의 공격을 받아 큰 부상을 입은 뒤 프레이야에게 발할라를 맡겼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딘과 아스가르드는 연결되어 있다. 만약 오딘을 죽인다면 그 시점에서 아스가르드는 기능을 정지하지.’
‘그렇다면…….’
‘아공간에서 탈출할 수 없게 되는 거다. 애시르 신족을 쓰러뜨려 봤자 영원히 아공간에 갇혀 있어야 되는 거지.’
그 말을 듣고, 나는 지크프리트가 왜 시구르드만 데리고 갔는지 이해했다.
그들은 2차 라그나로크를 끝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할 생각이다.
나 같은 젊은이들에게 뒷일을 맡기면서 말이다.
‘정말로… 웃기는 얘기군.’
파프니르가 내 안에서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숭고한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구나. 인간 세상을 지키기 위해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전장으로 떠나다니.’
‘파프니르…….’
‘정말로 우습다. 우스워 미칠 정도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파프니르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파프니르의 목소리는 점점 우울해지고 있었다.
‘정말로… 재미없는 얘기다.’
‘…….’
‘이봐,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시구르드들은 대체 왜 저 모양인 거냐?’
파프니르가 나한테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해 줄 말이 없었다.
나라고 해서 에인헤랴르 가문의 시구르드들을 잘 아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초대 시구르드 같은 경우는 나보다 파프니르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염원하던 대로, 그 녀석과 재회했는데…….’
파프니르가 탄식했다.
‘전혀 즐겁지 않구나. 물론, 내가 실체 없이 네 안에 머물고 있는 존재인 탓도 있겠지만…….’
‘…….’
만약 파프니르가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면, 곧바로 지크프리트에게 달려들었을까.
파프니르와 초대 시구르드가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을 조금은 구경해 보고 싶지만, 별로 우리들에게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황야에 전개된 아군 병력들은 환호하고 있는 중이었다.
발할라의 전사들과 어보미네이션은 이미 전멸한 상태다.
그리고 거대한 공중 요새가 추락해 박살 나 버렸으니, 아군의 승리라고 환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바나헤임은 추락했고 프레이야도 소멸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시구르드가 지크프리트와 함께 최후의 결전을 위해 떠났다.
그 사실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 * *
원군으로 온 남부의 지휘관들과 인사를 나누고, 크레스니크 가문 측에 전리품 처리를 부탁한 뒤.
나는 내 형제들과 에리크, 아그나르, 니얼을 불러 놓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밝혔다.
“그러면 아버지는 혼자서 희생할 생각이시라는 겁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그, 그런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바르와 헤스테인, 프리드레이프가 즉각 반발했다.
시구르드의 심복인 에리크와 아그나르도 마찬가지였다.
“카이트 님, 아무리 시구르드 전하의 결정이라고 해도 이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즉각 전군을 이끌고 영구동토로 향해야 합니다.”
하지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도 있었다.
바로 니얼이었다.
“지금 영구동토로 진격한다고 해서 의미가 있겠습니까?”
“니얼 경, 지금 무슨 소리를…….”
“지난번 거인족과의 전투를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대부분의 아군 전력은 뒤에서 화살이나 쏴 댔을 뿐입니다.”
니얼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이트 공자님이 입수하신 정보에 의하면, 애시르 신족은 십여 명의 신들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말단 병사 같은 게 없는 대신 한 명 한 명이 무지막지하게 강하다고 하더군요. 그런 놈들 상대로 기사단이 의미가 있겠습니까?”
“으음,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려서, 여기 앉아 있는 사람 중 과반수는 그들을 상대로 아무런 전력이 되지 못합니다.”
다들 표정이 굳어졌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바나헤임이 붕괴할 때도, 우리들은 카이트 공자님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우리들을 탈출시켜 주느라 카이트 공자님만 고생했죠.”
“니얼 경, 그건…….”
“우리가 따라가 봤자, 두 분의 발목을 잡을 뿐입니다.”
“확실히,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분들도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둘이서만 떠난 겁니다. 더 전력이 필요하다면 카이트 공자님을 데려가셨겠죠.”
“…….”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둘이나 있습니다. 게다가 그 중 하나는 계속 프레이야의 곁에서 애시르 신족을 관찰해 왔죠. 그분이 ‘해 볼 만하다.’라고 결론을 내렸기에 카이트 님 없이 둘이서만 간 겁니다.”
니얼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지크프리트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시구르드만 데려갔을 것이다.
두 명이서 아스가르드를 괴멸시킬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두 분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카이트 공자님.”
니얼이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두 분의 뜻이 뭐라고 보십니까?”
“…….”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 그리고 초대 시구르드가 원하는 건…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라그나로크를 끝낸 뒤, 그 이후의 세상을 우리 세대가 이어받아 지키는 것이다.”
“……!”
“더 이상 초월적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을 우리들에게 남기는 것이 그 사람들의 뜻이라 할 수 있겠지.”
내 말에 여러 사람들이 숨을 삼켰다.
하지만 니얼은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분들의 뜻을 존중해 줘야 할 겁니다.”
“…….”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건 다급히 영구동토로 달려가서 쓸데없는 피를 흘리는 게 아니라, 라그나로크 이후의 세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갈 준비를 하는 겁니다.”
니얼의 말을 듣고, 프리드레이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니얼 경, 구체적으로는 어떤 걸 하자는 말입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니얼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새로운 제국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2차 라그나로크에서 인류를 지켜 낸 에인헤랴르 가문을 중심으로 하는, 에인헤랴르 제국 말입니다.”
숨을 삼키는 사람들 앞에서, 니얼이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 제국의 황제가 될 사람은 카이트 공자님밖에 없습니다.”
* * *
회의가 일단락된 뒤.
나는 홀로 망루에 서서 북쪽 하늘을 쳐다봤다.
“…….”
이미 밤이 늦었기 때문에 주위는 조용했다.
온 세상이 평화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떻게 할 것이냐.’
그때 파프니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제로 즉위할 건가?’
‘그건 니얼의 주장일 뿐이야.’
‘동조하는 놈들도 많았던 것 같은데.’
회의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 시점에서 꺼낼 얘기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고, 실현하려면 많은 난관이 있을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다만 내가 황제가 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할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아마 니얼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가 목숨을 걸고 결전의 땅으로 향한 상황인데, 우리가 차기 권력을 어떻게 할지 떠들어 대는 건 적절치 못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얼이 얘기를 꺼낸 건 스스로 악역을 자처한 것이 아닐까.
‘아마 니얼은 하루라도 빨리 이 세상에 새로운 질서를 수립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겠지.’
우리가 꾸물거리다간 다른 마음을 먹은 귀족들에 의해 또 다른 피가 흐를 수도 있다.
빠르게 새로운 제국을 수립하여 주도권을 잡는 게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 제국을 대표할 사람을 정한다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카이트 에인헤랴르만큼 적합한 사람이 없다.
‘문제는 내가 황제 자리에 큰 관심이 없다는 거지만.’
‘관심 말고, 다른 측면에서는 어떠냐?’
‘다른 측면?’
‘책임감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시구르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구르드라면 순수히 책임감만으로 제위에 올랐을 것이다.
‘파프니르.’
‘뭐냐.’
‘지금의 나는 카이트 에인헤랴르지만, 에인헤랴르의 의무에 종속되지는 않아.’
‘…….’
나는 나다.
내 마음 속의 명령에 따를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건…….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를 따라 영구동토로 가겠어.’
‘드디어 미쳤군.’
내 안에서 파프니르가 야유했다.
‘자살하러 간 두 놈을 따라가겠다는 거냐? 아스가르드에서는 탈출할 수 없다고 말했을 텐데?’
‘뭔가 방법이 있겠지.’
‘어차피 너 혼자 영구동토로 가 봤자 아공간에 숨어 있는 아스가르드로 진입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내가 도와줄 수도 없어.’
‘뭔가 방법이 있겠지.’
‘이 녀석이 진짜…….’
파프니르가 답답해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이대로 두 사람을 보낸 채 나 혼자 여기에 남는 게 더 답답한 일이었다.
‘네 도움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는데, 정녕 가겠다는 거냐?’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뭐라고?’
지크프리트는 시구르드만 데려가도 애시르 신족을 전멸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현 시점에서 애시르 신족의 전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지크프리트이니, 그 판단을 부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과연 애시르 신족은 지크프리트에게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있었을까?’
‘뭐?’
바로 그때.
북쪽에서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와이번? 설마……!’
‘그래, 디트리히야.’
용공작 디트리히.
그는 자신의 주군인 니드호그를 도우러 혼자서 영구동토로 향했다.
그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고 니드호그의 행방도 알 수 없어서 걱정했었는데…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디트리히.”
“카이트, 님…….”
와이번에서 내려 망루에 착지한 디트리히의 모습은 처참했다.
한쪽 팔이 뜯겨 나간 상태였고, 복부에도 구멍이 뚫려 있었다.
사실상… 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니드호그는?”
“카이트 님…….”
헐떡이면서 디트리히가 말했다.
“니드호그 폐하는, 포로로 잡히셨습니다.”
“니드호그가 잡혔다고?”
많이 약체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에이션트 드래곤인 니드호그를 포로로 잡다니…….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카이트 님, 애시르 신족은… 윽!”
디트리히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
“카, 카이트 님, 제가 파악한 것을, 최대한 말씀드리겠습니다.”
“디트리히…….”
“그러니, 부디 파프니르 폐하를…….”
완전히 숨이 끊어질 때까지,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디트리히는 그 모든 시간을 나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데 사용했다.
축 늘어진 디트리히를 보면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인가.’
이렇게 된 이상,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나도 북쪽으로 올라가… 아스가르드의 애시르 신족과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