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05
▣ 205화. 신을 죽여라 (3)
우웅!
기묘한 감각과 함께, 주위 풍경이 변했다.
방금 전까지 시구르드는 얼어붙은 영구동토 위에 서 있었지만, 지금은 밤하늘처럼 새카만 공간 안에 있었다.
“지크프리트, 이곳은…….”
“아공간이다.”
옆에 서 있던 지크프리트가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정체는 시구르드의 선조인 초대 ‘시구르드’지만, 그는 자신을 그냥 지크프리트라 불러 달라 했다.
‘현재 시구르드의 이름을 계승한 건 너다.’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여기로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아스가르드의 출입 시스템인 ‘비프로스트’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스가르드를 파괴하면 비프로스트도 기능을 정지하기 때문에, 두 번 다시 나갈 수 없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어쨌든 두 번 다시 나갈 수 없다는 건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아스가르드로 잠입하지.”
지크프리트가 암흑 공간을 날아 눈앞의 거대 요새로 접근했다.
아스가르드는 바나헤임과는 달리 출입구가 그냥 열려 있었다.
“……!”
지크프리트의 뒤를 따라 아스가르드에 발을 들인 시구르드는 놀라움을 느꼈다.
화려한 장식이 가득했던 바나헤임과는 달리, 아스가르드 내부는 웅장하고 신성한 분위기였다.
‘마치… 신전 같군.’
신들의 본거지라는 게 실감되기 시작했다.
정말로 어마어마한 존재들을 상대로 싸우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눅 들지 마라.”
그때 지크프리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단순한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아니다. 이미 신역에 도달한 상태… 신조차 죽일 수 있는 존재다.”
“신조차 죽일 수 있는…….”
“실제로 프레이야를 죽였지. 네 힘을 믿어라.”
“알겠습니다.”
지크프리트는 시구르드가 어렸을 때부터 존경해 왔던 ‘초대 시구르드’다.
그가 하는 말은 시구르드에게 안심감을 줬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움직이면 되겠습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들의 최종 목표는 놈들의 우두머리인 오딘을 죽이는 것이다.”
주신(主神) 오딘.
그는 애시르 신족의 왕으로, 오딘을 죽이면 아스가르드의 기능도 정지된다고 한다.
다만 신화시대의 1차 라그나로크에서 큰 부상을 입고 계속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 넓은 곳에서 오딘만을 찾아내 죽인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일단 나머지 신들을 모조리 척살한다. 오딘은 그 다음에 천천히 찾으면 되겠지.”
대담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그러니 잔챙이 신들부터 유인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며 지크프리트가 검을 뽑았다.
신을 죽이는 나뭇가지인 ‘미스틸테인’을 개조했다는 검이었다.
“닥치는 대로 파괴한다.”
거대한 섬광이 아스가르드 내부를 꿰뚫었다.
* * *
콰콰쾅!
갑작스러운 폭음에 문신(門神) 헤임달은 다급히 눈을 떴다.
그리고 아스가르드 하층부에서 폭발이 발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침입자다!”
헤임달은 아스가르드 하층부의 책임자다.
침입자의 존재를 깨달은 직후, 헤임달은 하층부를 담당하는 다른 신들을 호출했다.
“헤임달, 무슨 일이요?”
“침입자? 그런 건 그냥 당신이 해결하면 되는 거 아닌가?”
“허튼 소리……!”
헤임달은 사념파로 다른 신들을 다그쳤다.
“인간 상대로도 전력을 다하자고 지난번 회의에서 얘기했던 것을 잊어버렸나!”
“아…….”
“하층부 담당인 우리 다섯이 동시에 나서야 한다! 2147 구역에 집합하여 놈들을 막을 것이다!”
아직도 긴장감이 부족한 신들에게 지시를 내린 뒤, 헤임달 자신도 2147 구역으로 향했다.
2147 구역은 하층부에서 중층부로 올라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되는 곳이었다.
“하나, 둘, 셋… 헤르모드는 아직 도착 안 했나?”
“글쎄, 모르겠군.”
2147 구역에 모인 건 네 명뿐이었다.
하층부 담당 중 한 명인 헤르모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스가르드에 침입자가 들어왔는데, 긴장감이 부족하군!”
“헤임달, 너무 그렇게 화를 내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그림자를 다스리는 여신인 스카디가 입을 열었다.
“침입자는 아마 지크프리트일 거야.”
“지크프리트?”
“프레이야가 죽으면서 자유로워진 거겠지. 전부터 지크프리트는 수상했어.”
“아……!”
지크프리트의 태도가 불손하다는 건 예전부터 종종 나왔던 얘기다.
스카디의 지적에 헤임달도 납득했다.
“프레이야가 왜 그렇게 쉽게 당했나 했더니… 지크프리트가 배신한 건가?”
“자세한 건 알 수 없지. 하지만 현시점에서 아스가르드에 침입할 수 있는 건 지크프리트뿐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워.”
“그, 그렇군…….”
다른 신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흠, 지크프리트라니 별로 걱정 안 해도 되겠군.”
“그래, 프레이야에게 복종하던 발할라의 전사장 따위야 우리들이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겠지.”
“아, 잠깐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방심하면…….”
바로 그때.
폭발로 조명이 꺼진 탓에 어두컴컴한 복도 끝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
어둠 속에서 나타난 건, 흑색 갑옷을 입은 검사였다.
“역시 지크프리트였군!”
“우리 예상이 맞았어!”
프레이야가 종종 데리고 다니던 전사장의 모습을 확인하고, 신들은 미소를 지었다.
“네놈, 프레이야가 죽었다고 감히 신들에게 대항하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구나!”
신들이 호통을 쳤지만, 지크프리트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앞으로 집어던졌을 뿐이다.
“이게 무슨…….”
“헉?!”
헤임달은 숨을 삼켰다.
지크프리트가 집어던진 건… 집합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던 헤르모드의 ‘머리’였다.
“헤, 헤르모드!”
“이게 어떻게 된……!”
다들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하고 있었을 때.
지크프리트가 바람처럼 움직였다.
그 직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신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크악!”
“헉……!”
찌르기 한 번에 심장이 꿰뚫렸다.
에테르로 강화되어 있는 신족의 육체에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히다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의 검…….”
“미스틸테인이다! 예전에 발두르를 죽였던 나뭇가지야!”
“신살(神殺)의 마목(魔木)!”
발두르는 애시르 신족의 광신(光神)이었다.
하지만 불행한 사고로 미스틸테인에 꿰뚫려 죽음을 맞이했다.
애시르 신족은 불길하다면서 미스틸테인을 처분하려 했지만, 프레이야가 가져가서 검으로 만들었다.
“큭, 미스틸테인이라면 주의해야…….”
“조심해라!”
바로 그때.
다른 쪽 통로에서 날아온 검이, 지크프리트에게 정신이 팔려 있던 신의 등에 꽂혔다.
“크악…….”
“……!”
그 신이 휘청대는 틈을 노려, 지크프리트가 미스틸테인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목이 날아갔고, 헤임달과 스카디만이 남게 되었다.
“뭐, 뭐지? 어떻게 이놈들…….”
스카디의 목소리를 들으며, 헤임달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로키 말대로 방심하지 말고 전력을 다했어야 했는데……!’
최대한 방심하지 말고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되새겨 보면 빈틈이 많았다. 결국 방심해 버린 것이다.
놈들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와, 순식간에 우위를 차지했다.
“젠장……!”
헤임달은 욕설을 퍼부으며 검을 뽑았다.
검신(劍神) 티르에게는 한참 못 미치지만 헤임달도 나름 검의 명수였다.
“내가 지크프리트를 상대하겠다! 스카디, 너는 다른 놈을 맡아라!”
“아, 알겠어!”
검에 에테르를 흐르게 하며, 헤임달은 앞으로 나섰다.
“지크프리트! 신들의 은혜도 모르고 반기를 든 어리석은 놈! 내가 너를 단죄하도록 하겠다!”
“…….”
지크프리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허공에 휘저었을 뿐이다.
“……!”
콰콰쾅!
무수히 많은 마력탄이 헤임달을 향해 쏟아졌다.
지크프리트의 오러 샷이 작렬한 것이다.
“이까짓!”
헤임달은 에테르를 끌어올리며 오러 샷의 폭풍을 뚫고 나갔다.
방심하지 않고 에테르로 잘 방어한다면 이 정도 공격에는 상처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직후.
“……!”
어느새 지크프리트가 사라졌다.
오러 샷으로 헤임달의 시야를 교란시킨 뒤, 본인은 빠르게 위치를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머리 위!”
천장을 발로 차면서, 지크프리트가 낙하해 왔다.
헤임달은 다급히 검을 치켜들어 막으려 했지만, 지크프리트는 공중에서 몸을 틀면서 검을 휘둘렀다.
“……!”
예술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미스틸테인이 헤임달의 목덜미를 찔렀다.
에테르에 의한 방어조차 꿰뚫으면서.
“크, 악……!”
헤임달은 손을 뻗어 지크프리트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는 교묘한 몸놀림으로 헤임달의 손아귀를 피했다.
그리고 헤임달의 측면으로 파고들어, 갈비뼈 사이로 미스틸테인을 찔러 넣었다.
“컥……!”
가슴 속을 미스틸테인이 휘젓는 것을 느끼며, 헤임달은 후회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중층부로 올라가… 티르와 합류할 걸 그랬…….’
방심하지 않고 전력을 다하려면, 하층부 담당자들을 집결시켜 맞서는 걸로는 부족했다.
아스가르드의 모든 신들이 한곳에 모여서 맞서 싸워야 했던 것이다.
‘역시, 로키가 옳았…….’
판단을 잘못했다는 걸 깨달으면서, 헤임달은 앞으로 쓰러졌다.
* * *
“아악……!”
마지막으로 남았던 여신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숨통이 끊어진 걸 확인한 뒤, 시구르드는 엑스칼리버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다섯 명을 잡았군요.”
“그래, 좋은 성과다.”
애시르 신족은 십여 명밖에 남지 않은 상태.
그중 다섯 명을 쓰러뜨렸다는 건 상당한 전과였다.
“하지만,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네?”
“내가 알고 있는 애시르 신족이라면 이렇게 우르르 몰려다니지 않는다.”
지크프리트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들은 이 구역에서 집결하여 우리를 막으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놈들이 우리를 더 많이 경계하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크프리트의 작전은 놈들이 신족 특유의 자만심에 사로잡혀 있는 걸 전제로 한다.
만약 그들이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전력을 다한다면… 이쪽이 불리하다.
“그래도,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네 말이 맞다.”
시구르드의 말을 듣고, 지크프리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구르드, 일단 너는 여기 있는 신들의 시체에서 에테르를 흡수해라.”
“저는 에테르를 체내에 저장할 수 없습니다.”
“알고 있다. 엑스칼리버에 저장하라는 거다. 엑스칼리버는 최고의 신화병장… 에테르를 추가로 저장할 수 있을 거다.”
“그게 가능할까요?”
“너는 이미 평범한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아니다. 신역에 도달했으니… 그 정도는 가능하다.”
“알겠습니다.”
시구르드는 엑스칼리버를 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신들의 시체에 남아 있는 에테르를 감지하고, 그걸 엑스칼리버 안으로 끌어오려 했다.
“중층부로 올라가면 검신 티르가 있을 거다.”
지크프리트의 심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와 내가 힘을 합쳐 티르를 쓰러뜨려야 한다. 하지만, 만약 티르뿐만 아니라 다른 신들까지 협공을 한다면…….”
지크프리트가 말꼬리를 흐렸다.
불길한 예감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 * *
‘여기로군.’
축지를 사용해 도착한 영구동토 끝자락.
그곳에는 하늘 끝까지 뻗은 거대한 나무와 공중 요새 아스가르드가 있었다.
물론, 지금 눈에 보이는 아스가르드는 허상일 것이다.
진짜 아스가르드는 아공간 속에 있다.
‘그 안에서…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가 싸우고 있는 건가.’
‘어떻게 할 거냐, 카이트.’
‘일단 문을 열어야지.’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하냔 말이다.’
나는 에케작스를 뽑아 들었다.
디트리히가 쓰던 이 신화병장은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우리가 있는 이 현실 공간과 아공간 사이에 통로가 있다고 했지?’
‘그래, 하지만 그걸 통과할 수 있는 건 신족들뿐이다. 너한테는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문을 부수면 되는 거야.’
‘뭐라고?’
내 안에서 파프니르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파프니르, 잊어버렸어?’
나는 에케작스를 거대화시키며 내 의식을 확장시켰다.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아공간으로의 연결 통로를 찾는다.
‘나는 검마… 모든 것을 검으로 베어 버리는 존재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나의 검으로 두 조각 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