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08
▣ 208화. 검의 신 (3)
도합 예순네 자루의 검이 공중을 춤췄다.
단순히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노련한 검사의 살초(殺招)였다.
검과 검이 부딪힐 때마다 생사결의 싸움이 벌어졌다. 전설로 남을 만한 대결이 수십 개씩 동시에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와 티르 또한 격돌했다.
“……!”
티르가 나를 향해 에테르 블레이드를 뻗었다.
섬뜩한 위력의 찌르기가 파공성과 함께 나를 습격했다.
파앙!
신속히 측면으로 움직였기에, 티르의 공격은 허공을 찔렀을 뿐이다.
하지만 아슬아슬했다. 자칫하면 내 몸 어딘가에 스친 상처 정도는 생겼을 것이다.
‘카이트! 조심해라’
그때 파프니르의 경고가 들려왔다.
내 심검들과 생사결을 벌이던 티르의 에테르 블레이드, 그 일부가 내 배후를 노리고 있었다.
파파팟!
무서운 기세로 공간을 꿰뚫며 날아오는 에테르 블레이드.
그 접근을 인식하며 나는 뛰어 올랐다.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시선을 움직이자, 나를 덮치는 에테르 블레이드 십여 자루의 모습이 보였다.
공간 전체가 살검이 되어 나를 죽이려 하는 것 같았다.
‘받아친다.’
레바테인을 휘두른 순간, 무형의 기운이 터져 나갔다.
에케작스를 거대화시켰을 때처럼 거대한 참격이 되어 십여 자루의 에테르 블레이드를 집어삼켰다.
그와 동시에, 티르가 내 배후를 노리는 것을 느꼈다.
‘살기 자체가 검이 되어 나를 찌르는 것 같군.’
방금 공간 전체가 살검이 된 것 같았다면, 지금은 공간 전체가 이미 나를 찌른 것 같은 느낌이다.
신화경에 도달하지 않았다면 이미 나는 꿰뚫려 죽어 있었을 것이다.
그 사실에 흥분을 느끼며, 나는 공중을 발로 박찼다.
자세를 바꾸면서 검을 휘둘러, 티르의 검을 튕겨 냈다.
“……!”
그 순간, 티르의 오른손에서 검이 사라졌다.
그리고 비어 있던 티르의 왼손에서 새로운 검이 출현했다.
“오오오……!”
티르가 포효하면서 왼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티르 본인이 참격 자체가 된 것처럼, 온 힘을 다해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정면에서 받아친다!’
나는 레바테인의 칼날에 불꽃을 발생시켜 맞섰다.
칼날이 부딪히자 티르의 에테르 블레이드가 불타올랐다.
하지만 티르는 곧바로 반대편 손에 에테르 블레이드를 발생시켜 다시 한번 공격했다.
나는 그것을 한 번 더 받아쳤고, 티르는 한 번 더 새로운 에테르 블레이드를 만들어 나를 공격했다.
‘에테르 블레이드를 만드는 방식을 바꿨군!’
‘그래, 빛이 번쩍하는 것처럼 한순간 출현했다가 사라지는 방식이야.’
티르는 계속해서 에테르 블레이드를 만들어 내며 나를 몰아세웠다.
수십 번의 참격에 이어 수백 번의 참격이 이어졌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받아쳤다.
‘이러다간 끝이 없겠는데.’
‘그렇지.’
이대로 계속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싸울 적이 많이 남아 있다.
여기서 변화를 줘야 한다.
“……!”
왼팔을 옆으로 든 순간, 심검 한 자루가 내 손으로 들어왔다.
오른손에는 레바테인, 왼손에는 심검을 들고 공격을 펼쳤다.
“윽……!”
갑자기 공격 방식이 바뀌자 티르의 흐름이 흐트러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왼손의 심검으로 티르의 오른쪽 손목을 노렸다.
“얕보지 마라!”
콰앙!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티르의 오른팔 자체가 검으로 변화한 상태였다.
‘에테르로 만든 팔이어서 저렇게 할 수도 있는 건가!’
티르도 공격 방식을 바꿨다.
왼손으로 에테르 블레이드를 휘두르면서, 검이 되어 버린 오른팔도 함께 공격을 펼쳤다.
태어나서 처음 상대해 보는 공격 방식이라 완전히 허를 찔렸다.
‘흥미롭군.’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제대로 대응이나 해라!’
‘잔소리하지 마라, 파프니르.’
그래도 금방 익숙해졌다.
나는 일부러 빈틈을 보여 티르의 공격을 유도했다.
티르는 그게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공격해 들어왔다. 아까처럼 함정을 파훼할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티르가 파고들어 온 순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레바테인을 놓아 버렸다.
“……!”
콰콰쾅!
레바테인이 화룡(火龍)처럼 불타오르며 티르의 오른팔을 덮쳤다.
이기어검과 수라파천신검 염제의 조합이라 할 수 있었다.
“윽……!”
막강한 화력에 티르의 오른팔까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심검에 내 의지를 더욱 강하게 담았다.
‘베어 내고야 말겠다.’
티르라는 존재 자체를 유지하고 있는 신역의 힘을 깨부술 수 있도록.
내 모든 영혼의 힘을 쏟아부어, 신역절기를 펼쳤다.
“……!”
심검이 티르의 어깨 외측을 파고들었다.
에테르가 불타오르고 있어 티르의 방어력은 저하되어 있는 상태였다.
“윽……!”
파악!
간신히 티르가 몸을 빼서 후퇴했다.
하지만 이미 티르의 오른쪽 가슴까지 검이 파고든 상태였다.
그 영향인지, 아니면 수라파천신검 염제에 불타서 손상되었기 때문인지… 티르의 오른쪽 팔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헉, 헉, 헉…….”
티르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미 티르는 한계를 훨씬 뛰어넘은 상태다.
공중을 날아다니던 에테르 블레이드도 모조리 격추되었고, 여력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크윽……!”
티르의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 나왔다.
신족이라고 해도 인간과 비슷한 피가 흐른다는 게 묘한 기분이었다.
“후우, 후우…….”
티르가 다시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면서 왼손에 새로운 에테르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즐겁군. 너는 어떻지?”
“나도 즐겁지.”
그렇게 동의해 주자 티르가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너희를 막아야 한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
“이렇게 싸움에 열중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입에서 피를 뱉으며 티르가 말했다.
“그래도 내가 싸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전력을 다해서 공격하려고 하는데… 받아 주겠나?”
“그런 걸 일일이 물어봐야 하나?”
“하하, 그렇군.”
티르가 처음으로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왼팔을 이용해 기묘한 자세를 잡았다.
마치 네발걸음을 하는 짐승처럼 낮은 자세다.
마치, 늑대가 사냥감을 향해 달려드는 듯한…….
“펜리르?”
“맞다.”
내 추측에 티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파프니르의 말에 의하면, 티르는 펜리르한테 한쪽 팔을 잃었다고 한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 만들어 낸 기술일까.
“말해 두지만, 나는 펜리르가 돌격하는 걸 맞받아쳐서 쓰러뜨린 적이 있어.”
“상관없다.”
“그럼 됐고.”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며, 나도 자세를 잡았다.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숨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 * *
티르는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카이트에게는 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라그나로크든 뭐든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티르에게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실이 티르에게는 기쁜 일이었다.
티르 자신도 그런 상태였으니까.
‘지금 나에게는… 투쟁심밖에 없다.’
신화시대의 티르는 확실히 그런 존재였다.
다른 건 신경 안 쓰고 검을 휘두르며 싸우기만 했으니까.
그때는 정말로 살아 있다는 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자유로운 생명체로서의 환희를 느끼면서 살아갔다.
하지만 라그나로크를 거치면서 티르의 위치도 달라졌다.
애시르 신족의 왕인 오딘이 쓰러지고, 최강의 전사였던 토르도 잠들면서 티르가 지휘관 역할을 맡게 되었다.
결국 티르는 애시르 신족을 이끌게 되었다. 게다가 아우둠라의 지도자 역할을 하며 바니르 신족과 거인들도 통제해야 했다.
티르는 무거운 책임에 짓눌려야 했고, 자신에게 있던 투쟁심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자유롭지 못했던 내가… 지금은 자유롭다.’
단순히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시구르드, 지크프리트와 싸우고 있을 때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지금 카이트와 싸우면서 자유를 느끼고 있는 건, 카이트가 그만큼 자유로운 인간이기 때문이다.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는 나처럼 책임감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이다. 하지만 그들의 피를 이어받은 카이트는 그렇지 않군.’
자유로운 존재와 검을 맞부딪히는 행위는, 이쪽의 영혼도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걸까.
그 생각에 도달한 순간, 티르는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군. 저 남자가 저렇게 강한 이유는… 어떤 족쇄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검을 휘두르려 하고 있기 때문인가.’
카이트는 책임감, 사명감 같은 것에 억제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카이트의 검은…….
“카이트.”
티르는 깨달음을 얻었다.
“너는 자유롭다. 그렇기에 무한하다.”
“…….”
카이트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티르는 이 깨달음을 상대에게 전달한 것으로 만족했다.
“나도 그 영역에 발을 들이고 싶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티르는 돌진을 시작했다.
‘승부를 내자, 카이트.’
쿠웅!
바닥을 박찼다.
호흡도 하지 않은 채, 단숨에 카이트에게 접근한다.
공격은 아래에서 위로 펼쳐진다.
돌진 자체는 펜리르의 질주와 비슷하지만, 공격은 많이 다르다.
낮은 자세에서 갑자기 솟구쳐 올라, 카이트의 하반신부터 상반신까지 단번에 베어 버릴 것이다.
“……!”
서로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정확한 시점에서 티르는 공격에 들어갔다.
이 공격은 단순한 공격이 아니다.
카이트라는 강적을 베어 버리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던져 버리겠다, 그런 티르의 의지가 세계 법칙으로 승화된 공격이다.
그 영향으로 티르의 육체는 이미 붕괴를 시작하고 있었다.
‘내 모든 것을 던져서……!’
콰콰콰!
공간을 붕괴시키면서 칼날이 뻗어 나갔다.
카이트의 하체부터 상체까지, 완전히 절단해 버리기 위해.
그 공격 앞에서, 카이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
입을 다문 채, 진지한 표정으로.
티르와는 반대 뱡향으로, 위에서 아래로, 검을 휘둘렀을 뿐이다.
자신은 그 어떤 것이든 베어 낼 수 있다는 확신을 담은 공격이었다.
콰직!
세계의 법칙이 충돌하는 소리가 들렸다.
격렬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폭풍 같은 충격파가 뿜어져 나왔다.
카이트와 티르, 두 검사가 펼친 신역의 참격이 충돌하며, 공간이 일시적으로 붕괴했다.
“아, 아…….”
티르는 환희하면서 눈을 감았다.
자신의 검을 깨부순 카이트의 검이, 자신을 위에서 아래로 찢어 버리는 것을 느끼면서.
* * *
털썩.
티르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왼쪽 쇄골부터 시작해서, 복부 중앙까지 파고드는 부상이다.
아무리 신족이라고는 해도 살아남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티르의 육체는 아까 전부터 붕괴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카이트.”
바닥에 쓰러진 채, 티르가 입을 열었다.
“자유롭기에 무한한 경지에 도달할 인간의 검사여.”
그의 목소리는 홀가분했다.
“나를 꺾어 줘서 고맙다. 덕분에 나는 검사로서 죽을 수 있게 되었다.”
“…….”
그동안 짊어지고 있던 무언가를 털어 버린, 후련한 목소리.
만약 이런 상태로 계속 검을 수련한다면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겠지만, 티르에게 주어진 시간은 더 이상 없다.
“하지만… 알아 두거라, 카이트.”
티르의 눈동자가 위쪽으로 움직였다.
“이 위쪽… 아스가르드 상층부에서 기다리고 있는 존재는, 나와는 다를 것이다.”
“상층부에 누가 있지? 오딘? 토르?”
“내가 말하려고 하는 건, 로키다.”
“로키…….”
파프니르에게 들어 본 적이 있다. 애시르 신족의 책사 역할을 하는 신이다.
바니르 신족이 애시르 신족에게 종속된 것도, 거인족과 애시르 신족이 손을 잡아 아우둠라가 결성된 것도 로키의 공적이라고 한다.
만약 로키가 없었다면 애시르 신족은 거인족에게 멸망당했을지도 모른다는 게 파프니르의 견해였다.
“네 검이 로키까지 베어 버릴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그 말을 끝으로, 검신은 숨을 거두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만약 사후 세계가 있다면 그는 그곳에서도 검을 휘두를 것이다.
생전과는 달리, 자유롭게.
“…….”
나는 고개를 돌렸다.
시구르드, 그리고 지크프리트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갑시다.”
그들에게 말을 건네며 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스가르드 상층부에서 로키를 비롯한 상위 신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