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11
▣ 211화. 음모의 신 (1)
최상층부로 올라온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두 명의 남녀였다.
하나는 녹색 옷을 입은 남자,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니드호그?”
“카이트…….”
독룡 니드호그.
나와 동맹을 맺고 있던 에인션트 드래곤이 함께 있었다.
“니드호그라고?”
시구르드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니드호그와 동맹을 맺었을 때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시구르드가 폴리모프한 상태의 니드호그와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왜 네가 여기에…….”
시구르드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니드호그와 치열한 싸움을 벌여 왔다.
니드호그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포로로 잡혔어, 시구르드.”
니드호그는 보란 듯이 팔다리를 움직였다.
그녀의 손목과 발목은 끈으로 묶여 있었다.
“글레이프니르… 신들의 족쇄군.”
그 모습을 보며 지크프리트가 입을 열었다.
“펜리르조차 속박할 수 있는 마법의 끈이다. 포로로 잡혀 있는 게 맞는 것 같군.”
“설명해 줘서 고맙다, 초대 시구르드.”
“지금의 나는 지크프리트다.”
지크프리트가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한 뒤, 녹색 옷의 남자에게 시선을 향했다.
“로키, 이제 어쩔 생각이냐.”
역시 저 남자가 허신(虛神) 로키인 것인가.
“헤임달, 티르, 비다르 등… 애시르 신들은 대부분 우리들 손에 쓰러졌다. 바니르 신족도, 거인족도 이미 전멸했다.”
“…….”
“아우둠라 동맹은 괴멸되었다. 다른 종족들을 쓸어버리고 너희들이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야망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지크프리트가 로키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제 에인헤랴르의 칼날이 너희들의 숨통을 끊을 것이다. 포기하고 패배를 받아들여라, 로키.”
“후후, 지크프리트.”
로키가 웃음소리를 냈다.
“실로 훌륭합니다. 그야말로 인류의 수호신이군요.”
“…….”
“당신은 이미 영웅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던 존재입니다. 파프니르 등을 격퇴하고, 훗날을 대비해 에인헤랴르 가문을 만들었죠. 그것만으로도 인류사에 충분히 공헌했다고 할 수 있는데…….”
미소를 유지하면서 로키가 어깨를 으쓱했다.
“발할라의 전사가 된 이후에도 영웅으로서의 정의감을 잊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인내하다가… 마침내 반역을 일으켜 인류를 구하기 위해 다시 싸우기 시작했군요. 정말로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어서 로키는 시구르드에게도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시구르드… 초대 시구르드의 이름을 이어받은 현대의 에인헤랴르 대공, 당신도 참으로 훌륭하군요.”
“…….”
“당신은 시구르드의 이름을 이어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사입니다. 추운 북부를 지키면서 인류를 수호하는 데 인생을 바쳤죠. 항상 금욕적으로 살면서 오로지 인류 수호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아스가르드에 뛰어들기까지 했으니, 정말 대단한 영웅이라 할 수 있겠죠.”
시구르드는 말없이 로키를 노려 보고 있었다.
하지만 로키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카이트 에인헤랴르.”
“…….”
“말할 것도 없겠죠. 누구보다도 빠르게, 누구보다도 강하게 최고의 경지에 오른 신시대의 영웅!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당신을 찬양할 것입니다!”
로키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드래곤을 죽이고! 거인을 죽이고! 신을 죽이고! 그야말로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영웅이지요! 아아, 당신 같은 존재를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도 경이롭…….”
“슬슬 귀를 막고 싶어지는군, 로키.”
나는 로키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무런 의미 없는 찬사는 그만둬라. 너한테 찬양받고 싶어서 여기까지 올라온 게 아니니까.”
“쯧쯧, 쌀쌀맞은 분이시군요.”
그렇게 말하며 로키는 지크프리트와 시구르드를 쳐다봤다.
“여러분도 별로 호응이 없고… 이래서는 제가 바보 같지 않습니까? 기껏 열심히 찬양해 드렸는데, 어느 정도는 반응을 해 주셔야죠.”
“…….”
“어이쿠, 그렇게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시면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로키가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껴안으며 부르르 떨었다.
지금까지 만난 신족들하고는 확실히 느낌이 다른 녀석이었다.
근엄한 분위기는 전혀 없고, 마치 광대 같은 분위기다.
‘그렇기에 더 불길하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까부터 파프니르가 완전히 침묵하고 있다는 것도 신경 쓰였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여러분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입니다.”
“호감?”
“네, 저는 여러분들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로키의 말을 듣고, 시구르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지?”
“저는 다른 애시르 신족하고는 다릅니다, 여러분.”
로키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여러분과 굳이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평화주의자라서 말입니다.”
“허황된 소리를…….”
“보십시오. 지금 저는 무방비한 상태입니다. 무기 하나 안 들고 있단 말입니다.”
두 손을 치켜들며 로키가 말했다.
“여러분 같은 대단한 영웅들을 상대로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그냥 사이좋게 지내는 편이 좋지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 그래서 결국 항복하겠다는 얘기냐?”
“항복, 그 표현이 좋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항복입니다, 항복.”
“…….”
시구르드가 인상을 찡그리자, 옆에서 지크프리트가 나섰다.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좋다. 무시해라.
“지크프리트…….”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든가.”
“……!”
지크프리트의 말에 시구르드가 바로 검을 뽑았다.
이어서 지크프리트가 니드호그에게 시선을 향했다.
“니드호그, 글레이프니르로 묶여 있어도 물러서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옆으로 피해 있어라.”
“…….”
하지만 니드호그는 반응이 없었다.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이다.
“니드호그.”
그래서 내가 다시 니드호그를 불렀다.
“혹시 너는 로키와 손을 잡기로 한 건가?”
“후우…….”
니드호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어, 카이트.”
“무슨 소리지?”
“판단하기 어려워.”
“…….”
그 태도는… 아까부터 계속 애매한 대답만 하는 파프니르와 비슷했다.
“카이트, 나는 너희와의 관계에 희망을 느끼고 있었어.”
“…….”
“네가 호전적인 존재들을 모조리 쓰러뜨린다면, 인간과 드래곤이 어우러져 평화롭게 살아가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거라 생각했지.”
니드호그는 오랜 세월 동안 에인헤랴르와 싸워 왔지만, 속으로는 인간과의 공존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에인션트 드래곤과 함께 인간들과 싸울지 말지 고민하다가 우리 편이 되어 줬다.
이번에 니드호그의 부하들도 영구동토에서 도망쳐 에인헤랴르에게 협력해 줬다.
니드호그는 분명… 인류의 아군이 되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판단하기 어렵단 말이지.”
“니드호그, 그 말은…….”
나는 니드호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로키가 드래곤들에게 이득이 되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단 말인가?”
내 발언에 시구르드가 숨을 삼켰다. 지크프리트도 내 얼굴을 쳐다봤다.
“지금 상황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군.”
내 안에 있는 파프니르도 아까부터 계속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
니드호그도 저렇게 나온다면, 로키가 드래곤들에게 긍정적인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니드호그, 네가 로키 편에 붙는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카이트…….”
“다만 이건 알아 뒀으면 한다.”
나는 니드호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우리들의 적이라고 판단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너를 베어 버릴 것이다.”
“…….”
“그것만 기억해 둬라.”
그렇게 말하며 나는 레바테인을 치켜들었다.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 또한 검을 들고 로키에게 시선을 향했다.
“정말로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는 겁니까? 너무 폭력적이군요.”
“신뢰가 가는 태도여야 대화를 하지.”
차갑게 내뱉은 순간,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가 먼저 움직였다.
시구르드는 우측에서, 지크프리트는 좌측에서 로키를 덮치려 했다.
아까 경고를 받아들인 것인지 니드호그는 이미 뒤로 물러선 상태였다.
“이것 참…….”
고개를 절레절레 중얼거리는 로키를 향해,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의 검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큭……!”
“……!”
양쪽에서 로키를 찢어발겨야 했던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의 검이 서로 충돌했다.
로키는 멀쩡히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환상? 그럴 리가 없는데.’
로키는 명백히 애시르 신족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막대한 에테르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의 검은 로키의 몸을 그냥 통과해 버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
시구르드는 물러섰지만, 지크프리트는 다시 한번 공격을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지크프리트의 검은 그냥 로키의 몸을 통과해 버릴 뿐이었다.
“그만하시지요, 지크프리트.”
“…….”
로키가 느긋하게 중얼거리자, 지크프리트의 검에서 강렬한 기운이 솟구쳤다.
최대 화력의 오러 샷이 로키를 향해 뿜어져 나왔다.
“이런……!”
쿠쿠쿵!
말려드는 걸 우려한 시구르드가 급히 물러설 정도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격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로키는 멀쩡히 그곳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을 뿐,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
지크프리트가 입술을 깨물었다.
로키가 무슨 술수를 부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주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검을 휘둘러 봤자 저한테는 닿지 않습니다.”
“…….”
“괜히 힘 빼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시지요.”
로키가 조롱하듯이 말한 순간.
이번에는 시구르드 쪽이 강력한 일격을 펼쳤다.
“하아압!”
쿠르릉!
우레 같은 소리와 함께 뻗어 나간 흑색의 빛이 로키를 집어삼켰다.
순간적으로 로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빛이 사라진 뒤 확인하니 로키는 그 자리에 멀쩡히 있었다.
“대체… 무슨 마법을 쓰고 있는 거냐!”
“여러분들이 강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는 법이죠.”
시구르드가 목소리를 높이자, 로키가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
“저는 다른 신들이나 거인들처럼 ‘인간 따위’라고 얕보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렇지만… 여러분의 검은 저에게 닿지 않습니다.”
“…….”
시구르드도 지크프리트도 로키를 노려볼 뿐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앞으로 나섰다.
“두 사람 다, 물러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카이트!”
“…….”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제가 맡겠습니다.”
“흐음.”
로키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카이트… 당신의 검이 저에게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글쎄, 모르겠군.”
“모르겠다고요?”
“내 아버지와 조상님의 검도 닿지 않는데, 내 검이 닿을 수 있을까.”
“…….”
잠시 로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했다.
“그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
“뭡니까?”
“너를 그곳에서 끌어내는 것이지.”
그 순간, 나에게서 수라무극진기가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