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14
▣ 214화. 음모의 신 (4)
“저는 말입니다. 그동안 계속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로키가 몸을 일으키며 두 팔을 옆으로 벌렸다.
“이 세상은 정말로 너무 불완전합니다!”
“…….”
“예를 들어… 어째서 암컷과 수컷이 나뉘어져 있는 걸까요? 어째서 죽음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걸까요? 어째서 하늘이나 땅하고는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걸까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합니다! 기분 나쁠 정도로!”
그렇게 소리치면서 로키는 다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카이트, 당신이 추구하는 진정한 자유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
“이 세상에 진정한 자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영원히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당신이 허황된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아니라, 이 세상이 애초부터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겁니다. 처음부터 이 세상은… 제대로 된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아니니까 말입니다.”
“…….”
“이 세계는 티아매트나 이미르 같은 태초의 존재들의 시체로 만들어졌지요. 말하자면 우리들은 시체에서 비롯된 구더기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는 썩어 있는 시체 속에서 열심히 뒹굴고 있는 중이지요.”
그렇게 말하며 로키가 자기 이마를 탁 쳤다.
“어이쿠! 그렇게 추악한 세계에서 완벽한 미(美)를 기대하는 놈이 멍청한 것이지요! 오히려 위화감을 느끼고 기분 나빠하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그래서…….”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모조리 없애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카이트.”
로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원룡 티아매트를 부활시키는 것이지요.”
“모든 드래곤과 몬스터들의 어머니인 티아매트를…….”
“네, 그래서 니드호그도 저에게 찬동하고 있는 것이죠.”
로키의 시선이 향하자, 니드호그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완벽한 찬동은 아니야.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니까.”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쯧쯧쯧.”
로키가 혀를 찼다.
“당신들은 본능적으로 티아매트를 숭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드래곤의 육체는 티아매트에게서 비롯되었으니까요. 말하자면 복종의 유전자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
“니드호그, 당신은 드래곤입니다. 어머니인 티아매트를 부활시킨다고 하면 찬동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인정하십시오.”
니드호그는 인간과의 공존을 추구했다.
그러니 복잡한 심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여간… 티아매트가 완전히 부활하면 이 세계는 붕괴합니다. 티아매트의 시체 위에서 성립한 세계이니 당연한 일이지요.”
“티아매트의 시체만이 이 세계를 구성하는 건 아닐 텐데.”
“그렇다고 해도, 이 세계를 붕괴시키기에는 충분합니다. 중요한 주춧돌 중 하나를 빼 버리는 것이니, 건물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지요.”
“…….”
“태초의 존재인 티아매트는 우리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 힘으로 세계를 처음부터 다시 창조하면 되는 것입니다.”
잘 와 닿지 않는 얘기였다.
너무 규모가 큰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세계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처럼 아무렇게나 만들어서는 안 되겠지요.”
“…….”
“철저하게 설계된, 완벽하게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로키가 가슴에 손을 얹고 노래하듯이 말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처럼 우연히 만들어진 혼돈의 세계가 아니라… 흠잡을 곳 하나 없이 완성된 세계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
“그곳에서는 인룡대전도, 라그나로크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인간이든 드래곤이든 신이든 자신들의 존재를 걸고 생존 전쟁을 벌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로키가 다시 니드호그를 쳐다봤다.
“니드호그, 당신이 원한 대로 인간과 드래곤의 공존이 가능한 겁니다.”
“…….”
니드호그가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모순 없이 완벽한 세계를 만든다는 건 그야말로 절대적인 유일신(唯一神)이나 할 수 있는 일… 솔직히 저 혼자서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로키가 웃으면서 나와 니드호그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니 인간 대표인 카이트, 드래곤 대표인 니드호그, 이렇게 셋이서 힘을 합치면 좋지 않겠습니까?”
“셋이 힘을 합쳐서, 절대적인 유일신의 역할을 한다는 건가?”
“삼위일체(三位一體)라는 것이지요.”
“…….”
“제 마법도 견디는 정신력, 자유를 추구하는 독립적인 영혼… 당신이라면 삼각형의 일각(一角)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로키가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읍시다, 카이트.”
“로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가 늘어놓는 얘기가 그럴듯하다는 건 인정하지…….”
“오오, 그렇게 받아들여 주신 겁니까?”
“하지만,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어.”
“중요한 부분?”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거지.”
그렇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존재라면 몰라도, 티아매트는 까마득한 옛날에 죽은 존재일 것이다.
“한 번 죽은 존재를 언데드로 되살릴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티아매트처럼 태초에 죽은 존재를 되살려서 권능을 발휘하게 한다니… 정말로 가능한 건가?”
“카이트, 그건 당신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티아매트의 의식은 아직도 이 세계에 존재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편재(遍在)한다고 할 수 있지요.”
“편재?”
널리 퍼져 있다?
“티아매트의 육신은 죽었지만 의식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다만 우리처럼 특정 개체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널리 퍼져 있지요. 세계 전체에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해도 될 겁니다.”
“세계 전체에…….”
“물론, 그렇게 흩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의식을 한 곳에 모아야 합니다. 커다란 그릇을 마련해서 말이죠.”
세상에 흩어져 있는 티아매트의 영혼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으로 부활시킬 수 있다는 얘기인가.
“그러면 그릇은 어떻게 마련하지?”
“그게 중요합니다, 카이트.”
그 순간.
그저 깜깜하기만 했던 주위가 갑자기 밝아졌다.
그리고 나는 머리 위에 이상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것은…….”
“주신 오딘과 뇌신 토르입니다.”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분명 머리 위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얀 액체로 가득한 유리관에 갇혀 있는, 두 명의 남신(男神).
그들이 아스가르드 최상층부에 잠들어 있었다.
“애시르 신족의 왕(王)인 오딘, 애시르 신족 중에서 가장 강한 토르… 그들은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존재입니다. 신으로서 격(格)이 높지요.”
“저들을 어떻게 한다는 거지?”
“암리타로 변이시켜, 티아매트의 의식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한 ‘그릇’으로 만드는 겁니다.”
“……!”
경악할 수밖에 없는 얘기였다.
“그러면 저 액체가…….”
“네, 진짜 암리타지요. 신화시대에 제가 확보해 놓았던 것을 증식시켰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로키가 아래쪽으로 손짓을 했다.
“방금 여러분이 쓰러뜨리고 온 비다르 등에게는 아주 적은 양의 암리타를 투여했습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티아매트의 후예인 드래곤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모했지요.”
“…….”
“그러니 저렇게 대량의 암리타를 사용해서 의식을 진행하면… 티아매트 부활을 위한 그릇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암리타로 오딘과 토르를 변이시켜, 티아매트 부활을 위한 그릇으로 삼는다.
그것이 로키의 계획이었다.
“너는 신화시대 때부터 이런 계획을 꾸미고 있었던 건가?”
“정확히는 라그나로크 때부터지요.”
로키가 웃으면서 말했다.
“원래 애시르 신족은 멸망할 운명이었습니다.”
“뭐라고?”
“거인족 등 적대 세력과의 전쟁에서 멸망하게 되어 있었죠.”
로키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본래 라그나로크는 신화시대의 초월적 존재들을 전멸시키는 싸움이 되어야 했습니다. 신도, 거인도, 드래곤도 남김없이 멸망해야 했죠. 서로 싸우다가 말입니다.”
“…….”
“하지만, 저는 그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모든 초월적 존재가 전멸해 버리면 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지니까요. 그래서… 멸망을 막기 위해 거인족과의 동맹을 체결하여 아우둠라 연합을 만들었습니다.”
애시르 신족과 거인족의 동맹.
그것이 라그나로크의 전개를 바꾼 건가.
“아우둠라는 막강한 힘으로 다른 세력을 격파하였습니다. 올림포스 신족을 비롯해 많은 종족들을 괴멸시켰죠. 그렇게 아우둠라의 승리로 라그나로크가 마무리되나 싶었을 때, 드래곤들이 예상 밖의 반격을 했습니다.”
“너희들을 봉인해 버린 거군…….”
“네, 드래곤들은 힘을 합쳐 아우둠라 전체를 봉인해 버렸습니다.”
그 결과, 아우둠라 연합은 영구동토 지하에 갇히게 되었다.
“얼어붙은 북쪽 땅에 봉인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지요.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린 결과,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에인션트 드래곤들이 내 손에 몰살당한 것이다.
“저희는 봉인을 뚫고 다시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제2차 라그나로크를 시작했지요.”
“…….”
“제2차 라그나로크가 진행되는 동안, 저는 오딘과 토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거인족과 바니르 신족이 자멸하는 모습을 그냥 지켜봤지요. 전력이 부족한 상황이 되어야 비로소 저한테 권한이 주어질 테니 말입니다.”
애시르 신족 최고의 두뇌를 지녔다는 로키가, 거인족과 바니르 신족의 멸망을 그냥 지켜본 이유가 이것이다.
“결국 궁지에 몰린 티르는 저한테 오딘과 토르를 깨우라고 지시했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게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었는데, 저한테 권한을 모조리 넘겨줬지요.”
“…….”
“비다르 등이 옆에 있었습니다만… 그럴듯한 거짓말로 암리타를 한 방울 먹여 줘서 이성을 잃게 만들면 신경 안 써도 되지요.”
그렇게 로키는 마음대로 오딘과 토르를 변이시킬 수 있게 되었다.
티르 등의 애시르 신족들은 우리가 전부 쓰러뜨려 줬으니, 이제 걸림돌은 없다.
우리를 제외하면 말이다.
“자, 그러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셨겠지요?”
로키가 웃으면서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카이트, 제 속셈은 다 밝혔습니다. 이 정도로 자세히 얘기해 줬다는 건, 그만큼 당신을 인정했다는 얘기입니다.”
“…….”
“저는 다른 신족이나 거인족하고는 다릅니다. ‘인간 따위’라고 얕보지 않습니다. 하나의 인격체로서 동등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로키가 나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아직 몸을 웅크리고 있는 내 손을 붙잡았다.
“함께… 진정한 자유가 존재하는 신세계를 창조해 봅시다, 카이트.”
“진정한 자유가 존재하는 신세계…….”
“그렇습니다. 당신이 목표로 하던 세상입니다. 그곳에서 함께 진정한 자유를 추구해 봅시다.”
로키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손을 붙잡은 채 입을 열었다.
“로키, 너는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어.”
“네?”
“나는 나 혼자서 자유로워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야.”
“……?”
로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으음? 이해를 못 하신 겁니까? 다른 이들에게도 진정한 자유가 주어지는 세상을 만들자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미 이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네? 그야…….”
“싹 없어지겠지.”
남쪽에 두고 온 사람들을 생각했다.
내 동생들, 부하들, 그밖의 다른 사람들.
로키의 계획대로 진행되면, 그들은 모조리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필요한 희생이라고 할 수 있…….”
“때로는 세상에 희생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 하지만 본인들이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한 희생이 아니라면, 용납할 수 없어.”
“카이트! 그런 고민이 필요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겁니다! 궁극적으로는 희생을 최소화하는…….”
“아니, 그렇지 않아.”
기억 속의 광경을 되살렸다.
설원 위에 무수히 쓰러져 있는 시체들 앞에서, 무림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부르짖던 무림맹주와 흑사련주.
로키가 하는 말은, 그들과 큰 차이가 없다.
“나는 천룡의 경지를 추구하는 검마로서… 너희 같은 놈들을 결코 용납 못 한다.”
“……!”
그 순간.
내가 남아 있는 힘을 쥐어짜서 생성한 심검이, 내 손을 붙잡고 있던 로키를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