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15
▣ 215화. 각성하라 (1)
솔직히 아직도 상태가 안 좋았다.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고 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항하려 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로키의 감언이설에 넘어갈 것 같았기에.
‘아마 로키의 목소리에는 다른 사람을 현혹시키는 마법이 적용되어 있을 거야. 브리트라가 카롤루스를 세뇌한 것과 비슷하겠지.’
로키가 주절주절 자기 계획을 늘어놓은 것도, 나를 설득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으로 내 정신을 현혹시키면 결국 고개를 끄덕이게 될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넘어가지 않아.’
사실 여전히 로키의 힘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티르나 수르트 등의 힘과는 달리, 로키의 마법은 매우 복잡하여 내 능력으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 덕택인지 신화경에 도달한 내 힘으로도 몸 상태를 완벽히 회복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도… 저항은 해야 했다.
‘덕분에, 허를 찌르는 것에는 성공했고.’
나는 이를 악물며 전방을 쳐다봤다.
눈앞에서 가슴에 심검이 박힌 로키가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 * *
“크윽, 크악, 으아아악……!”
로키는 다양한 마법을 동시에 사용했다.
치명상에 가까운 상처를 입었기에, 빨리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된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공격을 할 수 있지?!’
카이트는 신역의 힘을 사용해 로키를 공격했다.
로키라는 존재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도록, 로키에게만 특화된 공격이었다.
그 완성도가 매우 높아서, 로키의 몸을 상시 보호하고 있는 방어막조차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나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그런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로키가 사용한 마법은 인간의 의식이 외부 세계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마법이다.
마법이 제대로 먹혀들면 정신 세계에 갇히게 되고, 그렇지 않더라도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의식이 외부 세계에 영향을 끼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신역의 힘을 발휘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그런 상태로, 이렇게 강력한 신역의 힘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로키는 전율했다.
이게 성립하려면 카이트의 정신력이 로키보다 훨씬 강해야 한다.
아직 30년도 채 살지 않은 인간이, 수천 배 이상 살아온 로키의 정신력을 능가한단 말인가?
‘오딘이나 토르 수준의 정신력을 지닌 게 아니라면, 불가능해!’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만약 카이트의 정신력이 그 정도라면……!’
로키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동안 로키는 카이트를 존중했다. 대등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순간, 로키는 카이트가 자신을 능가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카이트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는 중이다.
로키가 응급처치를 완료하고 반격한다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약 카이트가 로키의 예상을 초월한 힘을 보여 준다면?
방금 전처럼 로키의 허를 찌르는 신역의 힘을 사용했을 때, 과연 로키가 이길 수 있을까?
‘전력을 다해 싸운다든가, 방심하지 않고 싸운다든가 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로키는 전사가 아니다.
그래서 전력을 다해서 싸워 승리를 거두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냥 승리하면 되는 것이다.
‘이 방법이 최선이다!’
그 순간, 로키는 자신이 확보한 권한을 사용해 ‘장치’를 조작했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오딘과 로키에게 공급되고 있던 ‘액체’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고농도 암리타 속에서 녹아내려라, 카이트!’
콰콰콰!
우윳빛 액체가 쏟아져 내려 카이트를 집어삼켰다.
* * *
“……!”
카이트의 머리 위로 암리타가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 니도흐그는 숨을 삼켰다.
“로, 로키, 지금…….”
“조용히 하십시오!”
로키가 평소답지 않게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카이트 주위에 반투명한 원통형 결계가 형성되었다.
결국 카이트는 암리타로 가득 찬 원통에 갇혀 있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후우…….”
암리타를 정지시키고 로키가 이마의 땀을 닦았다.
“한시름 놓았군요.”
“로키, 이건…….”
머리 위에 있는 오딘과 토르처럼, 카이트도 암리타로 가득 찬 공간에 갇혀 있게 되었다.
카이트는 의식을 잃어버렸는지 암리타 안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당신도 아시겠죠, 니드호그. 고농도 암리타 속에 인간을 집어넣으면…….”
“그래, 존재 자체가 분해되어서… 암리타의 영양분이 되어 버리지.”
그렇다.
메로베우스에서 브리트라도 민간인들을 죽여서 암리타의 연못에 집어넣어 양분으로 삼았을 것이다.
지금 카이트도 그런 신세가 되었다.
“너는 카이트를 죽일 생각이야?”
카이트는 오딘과 토르 같은 신족이 아니다.
아무리 강하다고는 해도 평범한 인간이다.
엄청난 힘을 지닌 액체인 암리타에 의해 녹아내릴 수밖에 없다.
“그렇습니다.”
“방금 전까지는 설득하려 하지 않았어?”
“포기했습니다. 억지로 설득하려 해 봤자 반격만 당할 것 같더군요.”
방금 전, 로키는 카이트에게서 뻗어 나온 에너지에 관통당했다.
그 공격에 생각을 바꾼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 괜히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 확실하게 처치해서 변수를 없애는 게 낫습니다.”
“…….”
니드호그는 입술을 깨물며 원통 속의 카이트를 응시했다.
아직 멀쩡한 모습이지만, 조만간 카이트를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녹아내릴 것이다.
그리고 검과 옷가지만 남긴 채… 카이트는 완전히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문제는 오딘과 토르에게 공급해야 할 암리타가 부족해졌다는 건데… 카이트가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기다려야겠군요.”
방금 카이트에게 쏟아부은 암리타는 본래 오딘과 토르에게 공급되어야 할 것이다.
오딘과 토르를 변이시키려면 카이트를 녹여 낸 암리타를 다시 회수하여 주입해야 한다.
“시간 여유는 있으니, 상관없습니다만.”
티르 등의 애시르 신족은 이미 괴멸되었다.
로키가 느긋하게 작업을 진행해도 방해할 사람은 없다.
카이트는 암리타 속에서 녹아내리는 중이고,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는 잠들어 있으니까.
“아, 그러면 변수를 확실히 없애는 편이 낫겠군요.”
“뭐?”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를 처치하도록 하지요.”
“……!”
로키의 시선이 쓰러져 있는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에게 향했다.
“써먹을 구석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각성해서 카이트처럼 덤벼들 수도 있으니… 그냥 죽여 두는 편이 낫겠군요.”
아무래도 로키는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비겁한 방식이네. 잠들어 있는 중에 죽여 버리다니.”
“저는 전사가 아닙니다, 니드호그.”
로키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정정당당한 싸움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로키가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에게 다가갔다.
* * *
숨이 막혔다.
눈을 뜨지도 못한 채,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다.
허우적대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꼴사나운 모습이구나, 카이트.’
그러고 있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안에 있는 파프니르… 정확히 말하자면 파프니르의 잔류 사념의 목소리였다.
‘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로키 같은 놈한테는 안 되는군.’
‘파프니르…….’
‘너는 이제 끝났다.’
파프니르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너는 지금 암리타 원액 속에 빠졌다.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너라고 해도 방법이 없다.’
‘…….’
‘평소라면 대량의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다고 좋아했겠지. 하지만 암리타 원액 속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이 부분은 파프니르의 말이 맞았다.
탕약을 들이마시려고 해도 너무 농도가 진해서 목이 막혀 버리는 상황이라고 할까.
‘꼴좋구나, 카이트.’
‘파프니르.’
나는 파프니르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아까부터 계속 내 말에 제대로 대답을 안 했던 건… 로키가 티아매트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었나?’
그 질문에 파프니르가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곧바로 코웃음을 치며 대답해 줬다.
‘그렇다.’
‘역시 그랬군.’
나가라자로 변이한 비다르 등을 봤을 때부터 파프니르의 태도가 이상했다.
그 시점부터 이미 로키의 계획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원망하지 마라, 카이트.’
파프니르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드래곤이다. 티아매트의 후예인 이상… 로키의 계획에 찬동할 수밖에 없다.’
‘파프니르…….’
‘인간에게 호의적이었던 니드호그조차 로키에게 붙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까 로키가 말했다.
니드호그 같은 드래곤의 육체는 티아매트에게서 비롯되었기에, 본능적으로 티아매트를 숭상할 수밖에 없다고.
‘방금 들었듯이, 우리에게는 복종의 유전자가 있다. 그러니… 나를 원망하지 마라.’
파프니르의 목소리에는 씁쓸한 감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 목소리를 곱씹으면서… 나는 파프니르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글쎄, 과연 그럴까.’
‘뭐라고?’
‘파프니르, 너희 에인션트 드래곤들이 티아매트를 숭상하는 건 어디까지나 티아매트가 너희 육체의 어머니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하지만… 지금 너는 어떻지?’
파프니르가 잠시 침묵했다.
‘무슨 소리냐?’
‘너는 육체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가 아니야.’
나는 내 생각을 입에 담았다.
‘지금 너는 파프니르의 드래곤 오브에 남아 있던 잔류 사념에 불과해. 육체의 주박에서 자유로워진 상태 아닌가?’
‘……!’
그렇다.
내 안에 있는 파프니르는 파프니르 자체가 아니라 잔류 사념이며, 육체에 종속되어 있지도 않다.
‘파프니르, 그동안 나는 너를 지켜봐 왔어.’
‘카이트…….’
‘너는 생전에 갖고 있던 집착에서 상당히 자유로워진 상태였지. 티아매트에게 복종해야 된다는 본능도… 약해진 상태 아닌가?’
‘…….’
‘내 말이 틀렸을까?’
파프니르가 조용해졌다.
그 반응만으로도 내 추측이 맞아떨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다시 파프니르가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너한테 협력해 로키의 음모를 막으라는 거냐? 내가 왜 그런 짓을 해야 하지? 나한테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파프니르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내가 지금까지 너에게 협력한 건, 네가 신족이나 거인족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키가 티아매트를 부활시키려 한다면 굳이 그걸 막아야 할 이유가 없다.’
‘아니, 그렇지 않아.’
‘뭐라고?’
‘이대로 로키를 내버려 두면… 너는 초대 시구르드와 다시 싸울 기회를 잃게 되니까.’
‘……!’
파프니르가 경악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 로키는 초대 시구르드도 죽이려 하고 있어. 네가 다시 한번 싸우는 걸 원했던, 초대 시구르드 말이야.’
‘카이트, 네놈…….’
‘파프니르, 너는 기적적으로 초대 시구르드를 다시 만났어. 이대로 초대 시구르드가 죽게 내버려 둘 건가?’
‘네놈, 대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파프니르에게 계속 말을 건넸다.
‘지금 우리는 암리타 속에 있어. 네 말대로 나는 암리타를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없지만… 티아매트의 후예인 에인션트 드래곤이라면 가능하겠지.’
‘……!’
‘파프니르, 나에게서 탈출해서 암리타 속으로 들어가. 내가 최대한 도와줄 테니까.’
파프니르의 의식을 암리타 속으로 녹아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암리타를 제어하여… 파프니르의 새로운 몸을 만든다.
‘분신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하면 되겠지?’
‘카이트, 네놈…….’
‘암리타 원액의 힘을 최대한 흡수하면… 그동안 네가 쓰지 못했던 신역의 힘도 쓸 수 있을 거야.’
예전에 나하고 싸웠던 때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네가 암리타의 힘을 흡수해 농도를 낮춰 주면… 나도 숨통이 트이겠지.’
‘네놈, 그런 것까지…….’
‘어때, 파프니르.’
아직 망설이고 있는 파프니르에게, 분명히 말했다.
‘이대로 나하고 함께 암리타에 녹아들어 소멸할 건지, 아니면 다시금 힘을 되찾아 초대 시구르드와 싸울 수 있는 존재로 되살아날 건지.’
‘……!’
‘네 선택에 달렸어.’
그렇게 말한 뒤, 나는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감각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격렬한 의지가… 불꽃처럼 타오르며 솟구치는 것을.
* * *
우우우우웅!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를 죽이기 위해 다가가고 있던 로키는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뭐, 뭐지?”
“결계가……!”
니드호그도 놀란 표정으로 카이트가 갇혀 있는 원통형 결계를 쳐다봤다.
절대로 부서지지 않게 설정되어 있을 터인 결계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로키가 결계를 보강하기 위해 손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
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결계가 깨져 나갔다.
내부에 있던 암리타도 터져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로키와 니드호그는 눈을 크게 뜨고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그리고… 보았다.
“어?”
“아……!”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는 흑색의 비늘.
머리 양옆에 솟아 있는 거대한 뿔.
세상 모든 악(惡)을 집결한 것처럼 사악한 느낌을 주는 붉은 눈동자.
“카아아아아!”
악룡(惡龍) 파프니르가 아스가르드 최상층에서 포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