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17
▣ 217화. 각성하라 (3)
“으윽!”
로키가 목소리를 높인 순간, 주위에 녹색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카이트, 니드호그 파벌의 오러 미스트하고는 다르다. 독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 하지만 기척을 감추는 효과가 있는 것 같군.”
녹색 안개가 로키와 니드호그의 모습을 가렸다.
기척조차 사라져서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상관없어.”
사방으로 기(氣)를 뻗었다.
녹색 안개를 뚫고 직선으로 뻗어 나간 기가, 모습을 숨긴 채 움직이고 있는 두 존재를 포착했다.
각자의 위치를 확인한 뒤, 나는 두 자루의 심검을 날렸다.
“윽!”
“아……!”
콰앙!
로키와 니드호그가 방어막을 전개해 심검을 막아 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쪽 다 신역의 힘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내 공격도 제대로 막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걸로 파프니르도 놈들의 위치를 알아냈다.
“우측의 니드호그는 내가 상대하마!”
“그러면 좌측의 로키는 내가 상대하지.”
파프니르는 쿵쿵 소리를 내면서 우측으로, 나는 소리없이 좌측으로 뛰어갔다.
녹색 안개 속에서 로키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한 뒤, 레바테인에 수라무극진기를 잔뜩 실었다.
‘수라파천신검, 염제!’
화르르!
모든 것을 불태우는 수라파천신검 염제의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크게 검을 휘두른 순간, 앞을 가로막고 있던 녹색 안개가 타오르며 시야가 확보되었다.
숨을 삼키는 로키의 모습도 보였다.
“크윽!”
쿠쿠쿵!
염제의 불꽃에 휩쓸리기 직전, 로키가 마법을 사용했다.
간발의 차이로 공간 이동을 하여 도망쳤지만, 이미 나는 로키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
“공간을 뛰어넘을 때 발생하는 특유의 파장만 읽어 내면, 네가 어디로 나타날지 예상할 수 있지.”
“……!”
푸욱!
내가 날린 심검이 로키의 허벅지를 관통했다.
수라파천신검 염제의 불꽃으로 녹색 안개를 소멸시키면서 달려들자, 니드호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키, 물러서!”
파프니르를 뿌리친 니드호그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앗……!”
무수히 많은 녹색 단검이 전개되었다.
독룡 니드호그의 힘이 발휘된 무형독(無形毒)의 단검이었다.
‘마치 만천화우(滿天花雨) 같군.’
문득 나는 무림의 사천당가에서 사용하던 만천화우를 떠올렸다.
만천화우도 저렇게 무수히 많은 암기를 날리는 기술이었다.
사천당가는 독공(毒功)으로 유명하기도 했으니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도… 소용없다.’
수라무극진기를 더욱 끌어올려, 막대한 화염을 발생시켰다.
춤추듯이 검을 휘두르며 화염으로 내 주위를 둘렀다.
니드호그의 독 단검은 화염을 뚫지 못하고 모조리 불타 버렸다.
그리고 그 속을 뚫고 파프니르가 돌진했다.
“저 녀석에게 그런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니드호그!”
“윽……!”
콰앙!
파프니르가 앞발을 휘두르자, 니드호그가 바닥을 굴렀다.
격투전에서는 여전히 파프니르가 우세를 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니드호그한테는 독 발톱이 있다.
“으음!”
촤악!
니드호그가 앞발을 휘두르자 파프니르의 목덜미에 상처가 생겼다.
독이 침투하여 살이 썩어 들기 시작했다.
“파프니르, 물러서서 회복해.”
“쯧, 골치 아프군.”
신역의 힘으로 부상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터.
나는 파프니르에게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혼자 앞으로 나섰다.
“카이트……!”
로키가 나를 향해 녹색의 화살을 날려 댔고, 니드호그도 나한테 달려들었다.
나는 여러 자루의 심검을 만들어 녹색 화살을 요격하는 한편, 니드호그의 공격은 레바테인으로 막아 냈다.
“니드호그, 이렇게 되어서 유감이다.”
“카이트…….”
“너하고 함께라면 드래곤과의 공존도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니드호그의 발톱과 레바테인이 충돌하며 불꽃이 튀었다.
“그동안 네 부하들은 에인헤랴르와 협력해 함께 싸워 왔다. 과거의 원한을 잊고, 미래를 위해 함께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지.”
“…….”
“그들에게 그런 마음가짐을 심어 준 건 니드호그, 바로 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니드호그 파벌의 드래곤들은 에인헤랴르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에인헤랴르와 힘을 합치고 있는 상태다.
“인간과 드래곤은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다……. 이제는 다들 그렇게 믿고 있지. 이건 너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
“그런데도 너는, 그동안 추구해 왔던 것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인류에게 적대할 생각인가?”
니드호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카이트…….”
“니드호그…….”
“나는 에인션트 드래곤이다. 원룡 티아매트… 우리들의 어머니의 피를 가장 짙게 이어받은 드래곤이란 말이다.”
침통한 목소리로 니드호그가 말했다.
“나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가 명령을 내리고 있다. 어머니 티아매트를 부활시키라고… 그 명령에는 저항할 수 없어.”
“…….”
“어쩔 수 없는 거다, 카이트.”
니드호그는 고통스러워 보였다.
종족으로서의 본능을 이겨 내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얌전히 쓰러져 줘.”
그렇게 말하며 니드호그가 앞발에 힘을 줬다.
니드호그의 근력은 상당했다. 나 같은 건 순식간에 다진 고기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수라무극진기 8성에 도달한 상태.
니드호그의 근력에도 대응 가능하다.
“……!”
쿠웅!
레바테인을 비틀면서, 니드호그의 앞발을 튕겨 냈다.
니드호그가 반대편 앞발로 나를 공격하려 했지만, 그것조차 튕겨 냈다.
니드호그의 거체가 균형을 잃고 주춤하는 것이 보였다.
“카이트!”
로키가 내 머리 위에서 공격을 퍼부으려 했다.
하지만 내 심검이 로키를 견제했다.
지금의 나는 니드호그와 전력으로 싸우면서도 심검을 원격조종하여 로키를 상대하는 게 가능했다.
“니드호그, 지금쯤 디드리히가 하늘에서 탄식하고 있을 거다.”
니드호그를 향해 쇄도하면서,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디트리히는 인간들과 화해한다는 네 이상을 위해 목숨 걸고 헌신하고 있었으니까.”
“……!”
니드호그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진 직후.
레바테인이 니드호그의 오른쪽 어깨에 박혔다.
“으윽……!”
“그러니… 내가 여기서 멈춰 주마.”
촤아악!
그대로 검에 힘을 줘서, 니드호그의 오른쪽 앞다리를 완전히 절단해 버렸다.
니드호그는 한쪽 다리를 잃고 휘청였지만, 곧바로 나를 향해 입을 벌렸다.
“카아아……!”
“카이트! 브레스가 온다!”
뒤에서 파프니르가 경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거의 동시에 니드호그의 입에서 빛이 번쩍였고… 강렬한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아까 나가라자가 된 놈들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위력이군.’
내가 경험해 본 브레스 중에서 최고 위력이다.
암리타를 흡수하여 전성기에 가까운 힘을 획득한 니드호그의 브레스.
그걸 막기 위해 나는 수라무극진기를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호신강기처럼 내 전신을 수라무극진기로 보호한 뒤, 신역절기인 수라금강원벽까지 전개했다.
이것으로 니드호그의 브레스를 잠시나마 견디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수라건곤이법(修羅乾坤移法)으로…….’
브레스의 기운을 레바테인으로 끌어모았다.
수르트의 화염도 흡수할 수 있었으니, 수라무극진기 8성에 도달한 지금 내 실력이면 여유롭다.
“……!”
니드호그가 눈을 크게 뜨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브레스의 기운을 최대한 레바테인 안에 흡수시킨 뒤, 전력을 다해 수라파천신검 염제를 펼쳤다.
불꽃의 참격이 브레스를 꿰뚫고 니드호그를 덮쳤다.
“으아악……!”
“니드호그!”
로키가 다급히 니드호그를 도우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불꽃의 참격이 니드호그의 몸통 깊숙이 파고들어 커다란 부상을 입힌 상태였다.
“아직이다……!”
하지만 여기서 니드호그가 예상을 초월한 저력을 보여 줬다.
너덜너덜해진 몸을 움직여 나를 아예 깔아뭉개려고 한 것이다.
“소용없다!”
그때 튀어나온 것이 파프니르였다.
이미 부상을 회복한 파프니르는 로키의 견제를 뚫고 뛰쳐나와 니드호그를 덮쳤다.
근력에서 뒤지는 니드호그는 파프니르에게 깔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이걸로 끝이군, 니드호그!”
“큭…….”
큰 부상도 입었고, 니드호그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 한다.
파프니르가 니드호그의 숨통을 완전히 끊기 위해 크게 입을 벌렸다.
“카아아……!”
포효하면서 니드호그의 목을 물어뜯으려 한 순간.
갑자기 니드호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
폴리모프.
그 힘을 사용해 니드호그가 다시 인간 크기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허공을 깨물고 있는 파프니르의 목덜미로 파고들어, 결사의 수도(手刀)를 꽂아 넣었다.
“윽……!”
비늘 사이를 파고든 걸까.
공격이 상당히 깊숙이 들어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젠장, 이 녀석…….”
파프니르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
니드호그의 공격이 목구멍 속까지 파고든 걸까, 아니면 독이 침투했기 때문일까.
어쨌든 작은 부상은 아니었다.
“으, 윽…….”
한편 니드호그는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완전히 숨통이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전투를 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핫, 하하……!”
그때 로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겨우 올라오는군요……!”
로키가 내 등 뒤로 시선을 향하며 떠들어 대고 있었다.
“이제는 역전입니다!”
“…….”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올라왔던 나선 계단에서 뭔가가 기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방금 전에 우리가 쓰러뜨렸던 나가라자들이었다.
“계속해서 올라옵니다!”
이어서 모습을 드러낸 건 티르였다.
나가라자들과 마찬가지로 바닥을 기면서 올라왔다.
다른 애시르 신족들도 기어 다니면서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시체를 조종한 거군, 로키.”
몸이 반으로 갈라진 시체도 있었고, 머리가 터진 시체도 있었다.
그것들이 바닥을 기면서 이쪽 최상층부로 집결하고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상황이 아니니 말입니다.”
로키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원은 최대한 유용하게 사용해 줘야죠.”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시체를 조종하지는 않았지만, 거인들의 시체를 포탄으로 만들어 활용한 적은 있다.
그러니 윤리적인 측면에서 로키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네?”
“구차하군.”
나는 로키를 쏘아보며 말했다.
“혼자서 우리 모두를 제압할 수 있다는 듯이 거들먹거리더니… 갈수록 추잡해지는구나, 로키.”
“…….”
“나 같으면 자존심 때문이라도 그렇게는 못 한다.”
그렇게 조롱하자 로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처음 얼굴을 마주했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완전히 여유가 없어졌다.
“허세 부리지 마십시오, 카이트.”
로키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파프니르도 심하게 중독되어 한동안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주륵.
천장에서 다시금 암리타가 떨어져 내렸다.
쓰러져 있는 니드호그에게로.
“니드호그는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죠.”
“…….”
“혼자서 저와 니드호그, 그리고 언데드가 된 신들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로키의 목소리에,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해 줬다.
“물론이지.”
“그런 허세를…….”
“게다가, 나는 혼자가 아니다.”
“뭐라고요?”
로키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까 말했듯이, 파프니르는 심하게 중독되어 한동안…….”
“파프니르 얘기가 아니다, 로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슬슬 그들이 다시 일어설 때가 되었으니까.”
“……?”
로키가 내가 쳐다본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곳에서는…….
“설마……!”
로키의 마법에 의해 잠들어 있던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
그들이 천천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슬슬 마무리를 지을 때가 된 듯하군, 로키.”
나는 로키를 노려보며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끝이다, 로키.”
이 혼란스러운 싸움의 원흉인 로키를 처치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