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18
▣ 218화. 각성하라 (4)
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브륀힐다와 껴안은 채, 시구르드는 더할 나위 없는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게 대체 얼마만일까.
“언제까지고… 함께 있을게요, 시구르드.”
“…….”
“우리는 앞으로 영원히 함께일 거예요.”
브륀힐다는 시구르드가 원하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면서, 시구르드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릴 필요는 없어요, 시구르드.”
브륀힐다가 시구르드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앞으로는, 행복한 나날만이 계속될 테니까.”
브륀힐다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면서.
시구르드는 입을 열었다.
“아니다, 브륀힐다.”
“네……?”
“그럴 수는 없다.”
그렇게 말하면서.
시구르드는 브륀힐다를 밀쳤다.
“왜…….”
“내가 해야 할 것은, 그런 게 아니니까.”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시구르드는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너와의 시간에 빠져 있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시구르드, 그렇지 않아요.”
브륀힐다가 고개를 저었다.
“카이트도 말했잖아요. 당신은 책임감이 너무 강해요. 그런 것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요.”
확실히 카이트도 그렇게 지적했다.
“모든 것을 다 짊어질 필요는 없어요. 감정에 솔직해지면서… 저와 함께 쉬는 거예요.”
“감정에 솔직…….”
“네.”
브륀힐다가 시구르드의 손을 잡았다.
“당신은 지금 저하고 함께 있고 싶어 해요. 그것이 당신의 솔직한 감정이지요.”
“…….”
“감정에 솔직해지도록 해요. 카이트가 말했던 것처럼.”
그 말을 듣고.
시구르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브륀힐다, 확실히 나는 너와 함께 있고 싶다. 그런 감정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면…….”
“하지만 말이다.”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감정에 휘둘리는 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감정도, 동시에 존재한다.”
“네……?”
“내 감정에 솔직해지려면, 그런 감정하고도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며 시구르드는 하늘을 쳐다봤다.
“내가 책임감,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내가 원해서 한 일이란 말이다.”
“시구르드…….”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에인헤랴르 대공으로서 책무를 다하는 것이 나에게는 기쁜 일이었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구르드는 계속 말했다.
“그런 감정을 부정하는 것도… 그릇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
“너와 함께 있고 싶다는 감정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솔직히 말해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이 세계에서 너와 함께 싶은 마음이 있다.”
시간의 흐름도 없이, 그저 브륀힐다와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는 세계.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다른 마음도 있다. 에인헤랴르 대공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검사로서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다.”
“…….”
“그리고, 또…….”
시구르드는 계속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카이트, 이바르, 헤스테인, 프리드레이프, 그리고… 프레데군다.”
시구르드는 아들들뿐만 아니라 아내의 이름도 입에 담았다.
무뚝뚝한 시구르드에게 계속해서 정성을 다해 준, 두 번째 아내의 이름을.
“한 사람의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내 가족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지키고 싶다.”
“…….”
“너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그 마음을 더 우선하고 싶은 거다.”
그렇게 말하면서, 시구르드는 브륀힐다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 말은 브륀힐다를 버리고 프레데군다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을 선택한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시구르드는 그 부분이 미안했고, 그렇기에 브륀힐다와 눈을 마주치기 어려웠다.
그런 감정에도, 시구르드는 솔직하고 싶었다.
“미안하다, 브륀힐다.”
“…….”
“사명감에 휘둘리는 인생이 잘못되었다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나는 카이트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시구르드는 카이트처럼 될 수 없다.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내 과제는…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그것을 하나로 만들 수 있다면, 시구르드의 문제는 해결된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고뇌하겠지.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
“하지만, 그게 내가 선택한 길이다.”
그렇게 말하며 시구르드는 브륀힐다를 다시 쳐다봤다.
“그러니 작별이다, 브륀힐다.”
“…….”
“나는 미래를 향해 걸어가겠다.”
시구르드는 아까부터 계속 잡고 있던 브륀힐다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천천히 등을 돌렸다.
“…….”
등 뒤에서 브륀힐다가 뭐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하지만 시구르드는 듣지 않으려고 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브륀힐다가 건네주는 말은 로키의 마법에 영향을 받은 말이다.
실제 브륀힐다는… 저렇게 상냥하게 시구르드를 다독여 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 둔재라고 혼냈을 정도였으니까.’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시구르드는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고 해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저 멀리, 자신이 돌아가야 하는 곳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진짜 세계로.
* * *
“확실히 저는 제 역할을 완수했습니다.”
지크프리트는 아버지인 시그문드 앞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웅으로서 인류의 적을 물리치고, 후진을 양성했습니다. 충분히 제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 시구르드.”
에인헤랴르 가문을 만든 초대 시구르드로서, 지크프리트는 충분한 업적을 남겼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후대의 일은 후손들에게 맡겨라. 너는 이제… 휴식을 취해도 된다.”
“휴식…….”
“이제 그만 쉬어라, 시구르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지크프리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말씀대로, 영웅이라고 해서 모든 일의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
“솔직히 지친 것도 사실입니다. 죽은 뒤에도 프레이야의 노예로서 계속 살아왔으니까요.”
“이제 그만 쉬어도 된다.”
“후손들을 아스가르드로 데려왔으니… 그 녀석들이 알아서 잘하겠지요.”
“그래, 후손들에게 맡겨라.”
아버지는 지크프리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음?”
“제 후손들이 결사적으로 싸우고 있는데, 그걸 못 본 척할 수는 없습니다.”
“시구르드,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아니, 책임감이 아닙니다.”
지크프리트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전사로서의 본성입니다.”
“전사로서의 본성?”
“제가 단순히 책임감만으로 싸워 온 줄 아십니까?”
“…….”
“그건 아주 큰 착각입니다.”
거대한 적과 맞서 싸우는 흥분, 고양감.
그것은 전사에게 무엇보다 큰 기쁨이다.
“이제 쓰러뜨려야 할 사냥감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걸 모두 후손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시구르드…….”
“지금의 저는 지크프리트입니다.”
시그문드의 아들, 초대 시구르드가 아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전사 지크프리트다.
“마지막까지 전력을 다해 싸우고, 죽겠습니다.”
“…….”
“전사로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지크프리트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저를 막지 마십시오, 아버지.”
“안 된다, 시구르드.”
“애초에 말입니다.”
지크프리트는 코웃음을 쳤다.
“저는 아버지와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습니다.”
“시구르드!”
“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촤악!
시그문드를 일도양단한 뒤, 검을 거둬들였다.
“로키의 사악한 마법으로 재현된 아버지라니… 그런 것에 저는 현혹되지 않습니다.”
만약 지크프리트의 정신력이 약했다면 시그문드의 말에 솔깃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크프리트의 정신력은 그렇게 약하지 않았다.
에인헤랴르를 만든 초대 시구르드로서, 극강의 정신력을 지녔다.
로키의 사악한 마법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다.
“…….”
지크프리트는 입을 다문 채 앞으로 걸어갔다.
다시금 현실 세계로 돌아가, 자랑스러운 후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고 위해.
* * *
“…….”
“…….”
두 남자가 일어선 것은 거의 동시였다.
시구르드는 엑스칼리버를, 지크프리트는 미스틸테인을 지팡이 삼아 일어섰다.
“어, 어떻게……!”
로키가 그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어떻게 깨어난 겁니까! 인간의 정신력으로는 제 마법에서 깨어날 수가……!”
“생각보다 머리가 나쁘군, 로키.”
나는 로키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미 내가 네 마법을 버티지 않았나?”
“……!”
“인간도 충분히 네 마법을 파훼할 수 있다는 거다.”
로키는 그동안 여러 번 말했다.
자신은 인간을 얕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결국 로키도 인간을 낮춰 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마법을 이겨 낼 수 없는 존재라고 말이다.
“에인헤랴르의 남자들을 얕보지 마라, 로키.”
에인헤랴르를 만든 초대 시구르드도.
그 핏줄과 정신을 이어받은 현재의 시구르드도.
모든 고난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 낼 수 있는 영웅이니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카이트.”
“동감이다.”
시구르드와 지크프리트에게 나한테 말을 건네왔다.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묻고 싶지만… 그럴 상황이 아닌 것 같군.”
시구르드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애시르 신족의 시체가 바닥을 기면서 우리를 덮치려 하는 중이었다.
“놈들을 해치우면 되겠나?”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지.”
시구르드의 엑스칼리버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지 아까보다 훨씬 더 강렬한 빛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잠깐, 파프니르?”
지크프리트가 파프니르를 발견하고 움찔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이 부활했군. 내가 상대하마.”
“멈춰, 지크프리트.”
“왜 그러지?”
“파프니르는 아군이야.”
“…….”
지크프리트의 눈동자가 커졌다.
“카이트,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설명해 줄 시간이 없으니, 저기 있는 니드호그하고나 싸워.”
니드호그는 암리타를 흡수해 부상을 대부분 회복한 상태였다.
“파프니르가 회복되면 같이 협공해.”
“파프니르와 함께 싸우라고? 카이트, 대체 무슨 소리를…….”
바로 그때, 니드호그가 다시 드래곤 형태로 돌아갔다.
이쪽을 노려보는 니드호그의 모습에 지크프리트가 혀를 찼다.
“어쩔 수 없군. 니드호그를 상대하지.”
“부탁한다.”
“그런데… 너는 계속 반말을 쓰는군.”
투덜거리면서 지크프리트가 움직였다.
왠지 잠들기 전보다 더 인간적인 성격이 된 것 같았다.
“그러면…….”
나는 로키를 쳐다봤다.
로키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방해되는 놈들은 어르신들이 맡아 주기로 했고, 이제 우리 둘이서 결판을 낼 수 있겠군.”
“카이트……!”
“그럼 슬슬 끝내지, 로키.”
그렇게 말하며 나는 레바테인을 치켜들었다.
“너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질리기 시작했으니까.”
“그, 그렇게 당신 마음대로 될 것 같습니까? 당신이 아무리 강해도 제 마법에 완벽히 대응하는 건… 커헉!”
로키의 말이 중간에 끊겼다.
내가 날린 심검이 로키의 복부를 관통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이런, 속도로, 내, 공간 도약보다, 빨리…….”
입에서 피를 토하는 로키를 보면서, 나는 수라무극진기를 더욱 끌어 올렸다.
“지금까지 너하고 싸우면서, 나는 계속 너를 관찰했다.”
“무슨…….”
“그 결과… 이제는 네가 마법을 쓰는 것보다 빠르게 너를 공격할 수 있게 되었지.”
신역절기, 수라파천신검 찰나(刹那).
계속 공간을 도약하며 도망다니는 로키를 확실히 제압할 수 있도록, 초고속의 심검을 날리는 신공.
“이걸로 끝이다.”
“……!”
세계의 법칙을 초월한 속도로 발사된 일곱 자루의 심검이 로키의 전신에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