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23
▣ 223화. 신들의 황혼 (4)
– 심즉살이라는 게 그렇게 허황된 것은 아닙니다.
– 실제로 과거의 천마는 심즉살이 가능했던 걸로 보입니다.
– 원리는 간단합니다.
– 우리는 상대방을 베어 죽일 때, 일단 상대방을 베어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 그다음에 검을 들어 상대방에게 휘둘러, 상대방을 베어 죽였다는 결과를 도출해 내지요.
– 얼핏 생각하기에, 심즉살은 여기서 과정을 생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 검을 들어 상대방에게 휘두르는 과정을 생략해 버리고, 상대방을 베어 죽이겠다는 마음과 상대방을 베어 죽인다는 결과를 즉결시키는 것이지요.
– 하지만 이런 건 불가능합니다.
– 과정 없이 결과가 존재할 수는 없으니까요.
– 그러면 심즉살은 과연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요.
– 그 부분에 관해서는… 회주님이 고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옛날에 총관은 심즉살에 관해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
심즉살은 과정을 생각하고 마음과 결과가 직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고.
과정을 거치는데 어떻게 심즉살이 성립하는 것일까.
‘단순히 빨리 움직여서 과정이 생략된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니겠지.’
이미 나는 ‘수라파천신검 찰나’를 사용해 물질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속도를 구현했다.
하지만 오딘은 이것도 막아 냈다. 미래 예측으로 사전에 대응해 동등한 속도를 구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심즉살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딘이 대응할 수 없을 만큼, 극도로 빠른 속도를 구현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만약 오딘이 그 속도까지 쫓아온다면 답이 없다.
그런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빠른 속도로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공격 과정을 생략하는 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정이 존재해도, 과정에 시간이 걸리면 안 된다.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되면 그게 아무리 짧다고 해도 심즉살이 될 수 없다.
심즉살에서는 과정에서 걸리는 시간을 무(無)로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시간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그러니…….’
세계의 법칙을 완전히 초월해야 한다.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어야 한다.
‘시간을 멈춘 뒤, 그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이미 단서는 있었다.
시공을 도약하는 마법에 특화된 로키, 아공간을 만들어 내는 오딘.
그들은 나에게 시공을 조작하는 힘을 보여 줬다.
그 경험을 통해 시간이 멈춘 공간을 만들어 내야 한다.
‘심즉살의 개념은 무림에서나 존재하던 것……. 오딘도 이것까지는 예측하지 못할 터!’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신화경에 도달한 나는 이 세계가 어떤 법칙 하에 존재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한 상태다.
그 법칙들을 조종하고 초월하는 것으로, 나는 신역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시간은 끝없이 흐르는 것이고, 멈출 수 없는 것이다.’
흐르는 강물을 떠올렸다.
모든 사물은 그 흐름을 따라 존재한다.
하지만 그 흐름을 순간적으로 멈출 수 있다면?
세계의 법칙을 지배하여, 시간의 흐름을 멈추고 그 속에서 움직일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신들의 우두머리를 초월하기 위한… 나의 신화경!’
상대는 모든 신의 정점에 위치한 오딘.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신을 초월한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오딘이 시간의 흐름 너머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알 수 있다면, 나는 시간의 흐름을 멈추는 존재가 되어서 맞선다.
‘내가 보유한 8성의 수라무극진기… 무극의 힘을 이용해!’
무극이란 우주 근원의 기운.
아직 이 세계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았던 시기부터 존재해 왔던 힘.
세계의 법칙보다 우선하는 그 힘을 사용하여, 내 뜻대로 세계를 지배한다.
그 순간, 나는 내 의식이 이 세계와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나 자신과, 내가 아닌 것이 구분되지 않았다.
내가 곧 이 세계였다.
그렇다고 해서 긴장을 늦추지는 않았다.
자칫하면 내 의식이 세계와 동화되어 자아가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기한 감각이다.’
따로 눈에 보이는 것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명백히 인식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미래를 향해 흐르고 있는, 시간의 흐름을.
나는 그것을 내 의지로 정지시켰다.
‘내가 사용하는 것은 무극의 힘… 시간의 흐름이란 법칙이 생겨나기 전부터 있었던 힘이니, 내 의지로 멈출 수 있다.’
오딘이 정지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정지해 있다.
나 자신의 육체도 정지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내 정신은 멀쩡히 의식을 유지하고 있다.
‘내 정신은 자유롭다.’
나는 무극의 힘을 사용했다.
이 정지된 시간에서도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새로운 세계 법칙을 창조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나 자신의 자유로움을 확인하면서.
나는 정지된 시간 속에서 검을 휘둘렀다.
* * *
주륵.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오딘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새 가슴에서 배까지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커다란 상처가 생겨 있었기 때문이다.
상처가 벌어지고 대량의 피가 쏟아져 나온 이후에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크윽…….”
“오딘!”
토르가 다급히 다가왔다.
카이트는 이미 물러난 상태였고, 토르가 접근하는 걸 막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왜 당한 거지?!”
“…….”
“예측 능력을 써서도 막지 못한 건가?! 그럴 리가……!”
오딘은 몸을 웅크리며 소리쳤다.
토르의 말대로 오딘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 능력으로 대응할 수 없는 공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트는 오딘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오딘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공격으로 말이다.
‘어떻게 공격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인식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공격한 것인가?’
오딘은 카이트가 아무리 빨라져도 그 속도를 예측하여 대응할 수 있었다.
애시르 신족의 우두머리로서 그 정도는 가능했다.
하지만 카이트가 지금 펼친 공격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이해조차 불가능했다.
“젠장, 이렇게 된다면……!”
토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더 이상 자존심을 챙길 상황이 아니다! 함께 놈을…….”
“물러서라, 토르.”
“오딘……!”
오딘이 손을 치켜들어 토르를 밀쳤다.
“나는 애시르 신족의 수장, 오딘이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오딘, 하지만……!”
토르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남은 애시르 신족은 우리뿐이다! 무성생식으로 개체 수를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당신이 죽으면 불가능해!”
토르는 단순무식한 전사다.
오딘이나 로키처럼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저 전선에서 싸우는 능력만 있다.
무성생식으로 새로운 신을 만드는 건 토르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애시르 신족을 부흥시켜야 한다! 자존심을 차릴 필요는 없어!”
“토르, 이해해다오.”
오딘은 힘겹게 말했다.
“우리는 신이다. 인간들 앞에서… 신으로서의 위엄을 지켜야 한다.”
“……!”
“이제 와서 이런 소리를 해 봤자… 너무 늦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토르를 물러서게 하고, 오딘은 카이트에게 시선을 향했다.
“카이트여… 결판을 내자.”
“당신은 이미 치명상을 입었어. 더 이상 싸워 봤자 의미가 없을 텐데.”
“아니, 의미가 있다.”
오딘은 그렇게 말하며 궁니르를 다시 만들었다.
게리와 프레키를 없애고, 모든 힘을 궁니르에 집중시켰다.
“나는 너에게 신의 위엄을 보여 줄 것이다.”
“…….”
카이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다.”
“고맙군.”
오딘은 카이트를 향해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카이트는 자세를 잡지 않았다. 손에는 검도 들려 있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는 싸움을 포기한 듯한 모습이다.
‘자유로운 모습이구나.’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오딘은 자신에게 남아 있는 모든 힘을 궁니르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카이트를 죽이겠다는 일념을 담아, 전력을 다해 날렸다.
“……!”
세계의 법칙을 왜곡하여, 오로지 카이트를 죽이는 것만을 목적으로 날아가는 신창.
공간을 관통하여, 세계를 관통하여, 순식간에 카이트의 가슴에 도달한다.
하지만 궁니르가 카이트의 가슴을 꿰뚫는 일은 없었다.
“커헉……!”
촤악!
가슴에 다시 한번 상처가 새겨졌다.
아까하고는 다른 방향으로, 교차하듯이.
카이트는 어느새 궁니르를 피한 뒤 오딘을 스쳐 지나가는 중이었다.
“……?!”
근처에 있던 토르가 숨을 삼켰다.
가까이서 봐도 카이트의 속도를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녀석, 아까보다 훨씬 더 빠른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속도를 획득한 건가?”
“아니, 이건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토르…….”
온몸의 피가 흘러나오는 걸 느끼면서, 오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시간을 정지했군. 그리고 그 속에서 움직인 건가.”
“……!”
놀라운 일이었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정신세계 속에 들어가는 것은 오딘도 가능하다.
하지만 물질세계에서 시간의 흐름을 멈춘 뒤 그 속에서 움직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카이트여… 실로 대단하다.”
“오딘.”
카이트가 오딘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세계의 법칙을 조종하는 건, 본래 신들의 힘이라고 들었다.”
“맞다.”
오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신이라는 것은 세계의 법칙을 조종할 수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었지. 그렇기에 다른 종족들의 존경을 받는 상위 존재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세계의 법칙을 조종하는 힘을 ‘신역의 힘’이라 부르는 것도, 본래 신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다른 종족들도 세계의 법칙을 조종하는 법을 깨달았지만, 신들의 위상이 흔들리는 일은 없었지. 우리는… 이 세계를 지배하는 신이었다.”
“그 자만심이 너희를 파멸로 이끈 거다, 오딘.”
카이트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종족들도 신역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이상, 너희들은 더 이상 특별한 종족이 아니게 되었다. 다른 종족들과 마찬가지로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주민 중 한 명에 불과하다는 걸 이해해야 했지.”
“…….”
“너희는 자만심이 너무 강했다.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하려는 마음이 없었지.”
그 말을 듣고, 오딘은 탄식했다.
“그렇군. 그게 너희 인간들과 우리 신족의 차이인가.”
원래 인간들은 보잘것없는 미물들이었다.
하지만 힘을 갈고닦아 신의 영역에 도달하게 되었고… 이제는 신역조차 초월하게 되었다.
자만하지 않고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인간의 성질 덕분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그 점에 관해서는 우리 드래곤도 할 말이 없다, 오딘.”
싸움을 지켜보던 파프니르가 입을 열었다.
“드래곤들도 라그나로크 이후 발전이 없었다. 오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파프니르여… 네 말이 맞다.”
오딘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었구나. 이런 미래는 보지 못했으니…….”
“…….”
“아니, 내가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 자체가 오만한 일이었겠군.”
결국 오딘은 남들보다 통찰력이 뛰어났을 뿐이다.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인간하고 큰 차이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계가 있는 존재들에 불과한 것인가.”
이 깨달음을 조금 더 일찍 얻을 수 있었다면… 라그나로크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딘…….”
토르가 눈물을 글썽이며 오딘을 보고 있었다.
“토르여, 나는 이걸로 끝이다.”
“오딘……!”
“애시르 신족은 이제 너밖에 안 남았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남은 동족에게 오딘은 차분히 목소리를 건넸다.
“카이트와 힘을 합쳐 티아매트를 막아라.”
“……!”
아마 토르는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죽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애시르 신족의 존재를 이 세계의 역사에 남기기 위해, 오딘은 토르를 마지막 전장에 내보낼 생각이었다.
“티아매트가 니드호그의 몸을 빼앗아 부활의 의식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이 전쟁을 놈의 승리로 끝내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
“토르여, 카이트 등과 함께 최종 전쟁에 나서라.”
오딘은 눈을 돌렸다.
카이트, 시구르드, 지크프리트, 그리고 파프니르가 보였다.
인간과 드래곤의 연합에 애시르 신족인 토르가 참가하는 것이다.
“이 세계의 일원으로서, 다 함께 힘을 합쳐… 라그나로크를 끝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