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25
▣ 225화. 혈전 (1)
지크프리트는 카이트의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금 카이트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고 눈을 감고 있는 상태였다.
아까 했던 말이 사실이라면, 오딘의 힘을 완전히 제어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인 것 같았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저렇게 무방비한 모습을 취하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동시에 믿음이 가기도 했다.
카이트가 저렇게까지 한다는 건, 승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일 것이다.
‘니드호그는 위그드라실과 동화된 상태… 그리고 위그드라실로 대지의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지.’
니드호그는 무한에 가까운 힘을 손에 넣었다고 할 수 있다.
카이트가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승산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카이트를 위해 시간을 벌어 주는 게 최선인가.’
지크프리트는 냉정히 상황을 분석했다.
이미 니드호그는 위그드라실의 밑동에서 드래곤들을 출현시켜 이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에인션트 드래곤에 근접한 힘을 지닌 것 같았다.
저놈들을 막으면서 카이트가 각성하기 위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
“시구르드.”
시구르드의 이름을 이어받은, 듬직한 남자를 불렀다.
“네가 카이트를 지켜라.”
“네?”
“누군가가 카이트 옆에 있으면서 지켜 줘야 한다.”
물론, 놈들이 카이트 곁에 접근하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싸우는 동안, 네가 카이트를 지켜야 한다.”
“……!”
시구르드가 눈을 크게 뜨고 지크프리트를 쳐다봤다.
이미 시구르드는 목숨 걸고 싸울 각오를 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지크프리트는 그에게 이 역할을 맡기고 싶었다.
‘그래야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아지니 말이다.’
시구르드를 데리고 아스가르드에 돌입했을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는 토르도 있고, 파프니르도 있다.
그러니 시구르드를 카이트와 함께 후방에 두고 싶었다.
‘나의 후손들…….’
에인헤랴르를 계승하여 드래곤과 싸워 온 후손들.
지크프리트는 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의 미래를 위해 전신전령(全身全靈)을 바쳐 싸울 각오가 되어 있었다.
‘너희는 에인헤랴르의 정의를 이 세상에서 계속 실현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게 다짐하면서 지크프리트는 앞으로 나섰다.
“파프니르, 그리고 토르. 놈들을 막는다. 따라와라.”
“어째서 네놈이 명령하는지 모르겠군.”
파프니르가 반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토르는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상관없다. 누군가가 지시하는 대로 싸우는 게 더 편한 성격이라.”
“흥, 단순한 성격은 여전하군, 토르.”
“그러는 너는 신화시대보다 훨씬 성격이 부드러워졌군. 아, 파프니르의 파편이라 그런가?”
“부드러워지기는 무슨…….”
“잡소리는 그만해라.”
지크프리트는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놈들이 온다.”
“……!”
두 개의 뿔을 지닌 드래곤, 바슈무가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
“크오오오……!”
몸집은 평범한 드래곤들보다 훨씬 크다.
에인션트 드래곤과 비슷한 힘을 지니고 있을 터.
전력을 다해 맞서 싸워야 한다.
‘내 모든 것을 끌어내서 싸운다.’
지크프리트는 체내의 에테르를 활성화시켰다.
프레이야가 육체에 주입해 준 에테르는 지크프리트에게 인간을 초월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줬다.
“크오오오!”
파파팡!
달려드는 바슈무를 향해 오러 샷을 퍼부었다.
그리고 땅을 박차고 질주했다.
“……!”
파앗!
에테르로 코팅된 미스틸테인이 바슈무의 오른쪽 눈을 터뜨렸다.
바슈무가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사이, 미끄러지듯이 그 아래로 파고들어 목에 미스틸테인을 찔러 넣었다.
“크오오오……!”
촤악!
전력을 다해 목을 찢어발기고 이탈했다.
바슈무에게서 뿜어져 나온 피가 온몸을 뒤덮었지만, 지크프리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카아아!”
“그오오오!”
이어서 우슘갈루, 무슈후슈도 시구르드에게 달려들었다.
바슈무와 마찬가지로 티아매트 직계의 자식들이다.
시구르드가 놈들에게 맞서 싸우려 했을 때, 갑자기 머리 위에서 떨어진 번개가 놈들을 내리찍었다.
“카아악!
“그오오오오!”
번개는 마치 창처럼 놈들의 몸통을 관통했다.
우슘갈루도 무슈후슈도 심장까지 터져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혼자 나서지 마라, 지크프리트!”
토르가 호전적인 목소리로 외치며 지크프리트의 옆으로 다가왔다.
“라그나로크를 마무리하는 최종 전투… 이 토르도 너의 아군이다!”
“든든하군, 뇌신(雷神).”
토르가 손을 치켜들자 묠니르가 다시 생성되었다.
다른 드래곤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지만, 토르는 주저 없이 묠니르를 집어던졌다.
“크오오오!”
콰콰쾅!
묠니르가 엄청난 번개를 일으키며 전장을 휘젓고 다녔다.
돌격해 오던 드래곤의 대부분이 번개에 감전되어 고통스러워했다.
“흥, 여전히 다수를 대상으로 한 전투에서 실력을 발휘하는군, 토르.”
파프니르도 천천히 앞으로 나서면서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안심하지 마라. 놈들의 군세가 끝없이 몰려오니까.”
위그드라실의 밑동에서는 아직도 새로운 드래곤이 탄생하고 있었다.
현재 위그드라실은 새로운 드래곤을 출산하는 모태(母胎)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만으로 상대하는 건 좀 버겁다. 하지만…….”
“저걸 계속 생산하고 있으면, 니드호그가 티아매트를 완전히 부활시키는 게 늦어지겠지.”
“내 말을 가로채지 마라.”
지크프리트의 말에 파프니르가 불쾌감을 드러냈다.
“카아아!”
“크오오오!”
“캬아아악!
다양한 외형의 드래곤들이 이쪽을 향해 계속 몰려들었다.
그들을 노려보며 지크프리트는 전진했다.
“모조리 도륙해라.”
“그러니까, 네가 지시를 내리지 말란 말이다!”
파프니르가 화난 목소리로 외쳤지만, 지크프리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돌격을 시작했다.
* * *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군.’
사자 같은 털이 나 있는 드래곤의 목을 물어뜯으며, 파프니르는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내가 이놈들과 함께 싸우고 있는 거지?’
처음에 카이트에게 협력해 준 건, 에인션트 드래곤의 긍지를 저버린 브리트라를 쓰러뜨리기 위해서였다.
이어서 라그나로크 시절의 적이었던 아우둠라 연합과의 전쟁이 시작됐기 때문에 카이트를 계속 도왔다.
암리타로 육체를 재구성하여 로키나 오딘하고 싸운 것도 그들이 과거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닌데 말이다.’
지금 싸우고 있는 상대는 티아매트의 후예들이다.
딱히 동족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싸울 이유도 없다.
오히려 그들을 도와 티아매트의 부활을 추진해야 하는 입장이다.
‘물론, 나는 복종의 유전자에 지배되지 않고 있지만…….’
티아매트의 시체에서 비롯된 존재이기에, 드래곤이나 몬스터들은 티아매트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파프니르는 한 번 육체를 잃은 뒤 암리타로 가상 육체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본능에서 자유롭다.
‘그래도 니드호그가 하는 짓을 막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단 말이지.’
어차피 지금의 파프니르는 잔류 사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존재이니 굳이 열심히 싸울 이유가 없다.
니드호그가 세상을 멸망시키든 말든, 어차피 파프니르는 서서히 풍화되어 사라질 존재니까.
‘차라리…….’
파프니르는 고개를 돌렸다.
토르가 묠니르를 휘두르며 드래곤들을 때려잡는 모습이 보였다.
‘애시르 신족인 저놈하고 싸우는 편이 더 의미 있지 않나?’
애시르 신족은 드래곤의 적이었다.
특히 토르는 많은 드래곤을 죽였다.
그때의 분노를 되새기면서 토르와 싸우는 게 더 속 시원한 일일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가장 앞에서 싸우고 있는 지크프리트, 아니 초대 시구르드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저놈하고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초대 시구르드.
그는 파프니르의 원수다.
파프니르는 오랫동안 그와의 재회를 기다려 왔다.
‘나는 저놈이 환생하는 걸 기다리면서 오랜 세월을 살아왔던 것 아닌가?’
먼 옛날, 파프니르는 시구르드에게 패배했다.
상처가 회복된 뒤 복수하러 갔지만, 이미 시구르드가 사망한 뒤였다.
분노한 파프니르는 에인헤랴르 가문을 멸망시키려 했지만, ‘시구르드는 언젠가 에인헤랴르에서 다시 태어나 드래곤들과의 싸움을 마무리 짓겠다고 유언을 남겼다.’라는 말을 듣고 물러섰다.
그리고 시구르드가 환생하는 걸 기다리며 에인헤랴르를 계속 지켜보게 되었다.
언젠가 다시 태어난 시구르드와 결판을 내는 걸 기대하면서.
‘환생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저놈과 다시 만났다.’
시구르드는 지크프리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발할라의 전사가 된 상태였다.
고틀란드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파프니르에게 육체가 없는 상태여서 아무것도 못 했지만, 지금은 암리타로 만든 육체가 있다.
그토록 원했던 복수전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냥 지금 저놈한테 달려드는 게 맞지 않나?’
시구르드는 이번 싸움에서 죽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큰 부상을 입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 몸으로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으니, 이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목숨을 부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지금 복수전을 시작하는 게 옳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시구르드가 지금 무방비한 뒷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굳이 달려가서 공격하고 싶지 않았다.
‘비겁한 짓이라서 그런가?’
되도록 정면에서 싸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정정당당한 싸움을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원 없이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싸우고 싶었으니까.
‘그래, 나는 시구르드를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시구르드에게 설욕하고 싶었다.
자신을 패퇴시킨 시구르드를 꺾어, 어느 쪽이 진정한 강자인지 시구르드에게 똑똑히 알려 주고 싶었다.
그러니 배후에서 기습해서 시구르드를 죽여서는 안 된다.
‘정면에서 당당히 선전포고를 하고, 서로 마주 보며 전력을 다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측면에서 달려드는 드래곤의 목을 앞발로 찢어발기고 있었을 때.
앞서가던 초대 시구르드가 휘청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
그는 왼손으로 복부를 움켜쥐고 있었다.
궁니르에 꿰뚫린 상처가 다시 터진 것 같았다.
‘너무 격렬하게 싸운 탓인가!’
휘청대는 시구르드를 향해 여러 드래곤이 달려들었다.
시구르드는 그런 상태에서도 검을 휘둘러 드래곤들을 막아 냈다.
하지만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완벽했던 칼 솜씨에 조금씩 빈틈이 생겼다.
“커헉!”
지나치게 무리했는지, 시구르드가 입에서 피를 토한 순간.
“……!”
파프니르는 달려 나갔다.
다른 드래곤들을 신경 쓰지 않고, 시구르드를 향해 질주했다.
그리고 시구르드를 덮치려던 드래곤들을 향해 브레스를 뿜었다.
“카아아……!”
콰콰쾅!
격렬한 화염이 다수의 드래곤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놈들을 즉사시키기에는 위력이 부족했다.
놈들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계속해서 돌진해 왔다.
파프니르는 크게 도약해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꺼져라……!”
콰직! 까드득!
턱과 앞발을 사용해 드래곤들을 찢어발겼다.
하지만 놈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놈들의 반격에 파프니르의 전신이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파프니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파프니르, 어째서…….”
증오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배후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파프니르에게는 대답해 줄 말이 없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목덜미를 파고드는 것을 느끼면서도, 파프니르는 미친 듯이 적들을 유린했다.
등 뒤에 있는 남자가 여기서 쓰러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