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27
▣ 227화. 혈전 (3)
“파프니르!”
지크프리트는 피투성이가 된 파프니르의 모습을 살폈다.
파프니르는 지크프리트가 휘청댄 사이 드래곤들의 집중 공격을 받아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호들갑 떨지 마라. 어차피 나는… 살아 있는 생명도 아니다.”
파프니르가 투덜거렸다.
실제로 파프니르에게서 흘러나온 피는 금방 연기가 되어 증발해 버렸다.
현재 파프니르의 육체는 암리타를 사용해 가짜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네 몸이나 챙겨라, 시구르드.”
파프니르가 지크프리트의 복부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크프리트는 오딘의 궁니르에 당해 배에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파프니르, 나도 이미 한 번 죽었던 몸이다. 몸을 챙길 필요는 없다.”
“흥, 그것도 그렇군.”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다른 드래곤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앞장선 토르가 번개를 발생시키며 혈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시구르드.”
“지금의 나는 지크프리트다, 파프니르.”
“시끄럽다. 나에게 너는 언제까지고 시구르드일 뿐이다.”
파프니르가 그렇게 말하며 날개를 폈다.
“나는 너를 쓰러뜨리고 싶다.”
“그래서, 지금 나를 죽이겠다는 얘기인가?”
“배에 구멍이 뚫려 다 죽어 가는 놈을 죽여 봤자 무슨 소용이냐.”
파프니르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저놈들한테 네가 죽겠지.”
“그건…….”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며 파프니르는 몸을 숙였다.
“내 등에 타라.”
“뭐라고?”
“그런 몸으로 종횡무진 뛰어다니다간 다시 상처가 벌어진다. 차라리 나를 타고 날아다니면서 놈들을 공격해라.”
“…….”
지크프리트는 할 말을 잃었다.
파프니르가 자신한테 등을 빌려주다니?
“내가 너를 추락시켜 죽일까 봐 걱정되나?”
“그런 게 아니다.”
고개를 저으면서 지크프리트는 헛기침을 했다.
“파프니르, 너는 많이 변했군.”
“…….”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예전하고 똑같을 리는 없지만…….”
지크프리트가 기억하고 있는 파프니르는 그냥 흉악한 에인션트 드래곤이었다.
이런 행동을 할 존재가 아니었다.
“혹시 카이트 때문인가?”
“…….”
“카이트와 함께 한 시간이 너를 변화시킨 건가?”
파프니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전방을 응시했을 뿐이다.
“…….”
지크프리트도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조용히 파프니르의 등에 올라, 미스틸테인을 치켜들었다.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라, 시구르드.”
파프니르가 날아올랐다.
적들의 공격으로 너덜너덜해진 날개를 펴고서.
옛 숙적이었던 영웅과 악룡이, 용기사가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쿠쿵!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포격에 토르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파프니르의 등에 올라탄 지그프리트가 에테르를 사용해 드래곤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사이가 좋은 건가?’
그들의 관계를 잘 모르는 토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까이 있던 드래곤의 머리를 분쇄했다.
토르는 그들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저렇게 날아올라 싸우는 걸 보니 아직 여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둘 다 얼마 남지 않았군.’
부상도 많이 입었고, 그들이 싸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 모습을 보니 둘 다 마지막까지 싸우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좋은 자세다.’
한 명의 전사로서, 토르는 그들에게 마음속으로 찬사를 보냈다.
언제 어느 때라도 훌륭한 전사에게는 찬사를 보내야 하는 법이었으니까.
“카아아!”
“크오오오!”
하늘을 날아다니는 파프니르를 잡기 위해 다양한 드래곤이 솟구쳤다.
그 모습을 보며 토르는 묠니르를 치켜들었다.
“하아압!”
콰르르릉!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들이 드래곤들을 관통했다.
이렇게 도와주면 저 녀석들도 조금이나마 숨이 트일 것이다.
‘다만… 지상도 여유롭지는 않군.’
토르는 주위를 다시 한번 살펴봤다.
니드호그는 여전히 위그드라실에서 새로운 드래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금은 잘 막아 내고 있어도, 결국 체력이나 기력이 고갈되어 이쪽이 불리해질 것이다.
‘위그드라실까지 달려가 니드호그를 죽여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토르는 계속해서 몰려드는 드래곤들을 쓰러뜨렸다.
때로는 번개를 발생시켜 감전시켰고, 때로는 주먹을 휘둘러 머리를 터뜨렸다.
그러고 있으니 문득 옛날이 생각났다.
‘그래, 예전의 라그나로크에서도 이렇게 드래곤들과 싸웠었지.’
애시르 신족이 지배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영광스러운 싸움이었다.
현재 애시르 신족은 토르밖에 남지 않았고, 이 싸움이 끝나 봤자 인간들의 시대가 시작될 뿐이지만… 토르는 긍지를 갖고 싸움에 임했다.
‘오딘이 맡긴 임무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토르는 묠니르를 휘둘렀다.
토르를 측면에서 집어삼키려던 드래곤의 턱이 부서졌고, 그 목구멍 안으로 번개가 쏟아졌다.
“크오오오!”
드래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토르는 종횡무진으로 움직였다.
현재 여기서 가장 강한 건 토르이니, 최대한 전력을 다해 싸워야 한다.
“역시 강하군, 토르.”
그때 니드호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위그드라실과 연결된 모습으로 토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네 힘으로도 티아매트의 부활을 막는 건 불가능해.”
“흥, 이 몸을 너무 얕보는군, 니드호그!”
“네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건, 후방에서 가만히 있는 카이트 때문이겠지.”
“…….”
토르는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카이트가 저렇게 앉아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어.”
니드호그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 카이트부터 처리하는 게 낫겠지.”
“……!”
그 순간, 토르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시구르드, 카이트를 지켜라!”
카이트를 지키고 있는 시구르드 앞에서, 땅이 무너지며 드래곤 한 마리가 솟구치고 있었다.
* * *
“갸르르르르!”
머리가 여러 개 달린 드래곤이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몰래 땅 밑을 파고 이쪽까지 이동한 것 같았다.
“감히……!”
시구르드는 엑스칼리버를 뽑아든 채 다두룡(多頭龍)에게 맞섰다.
카이트가 가부좌를 틀고 오딘의 기운을 소화해 내는 동안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이 시구르드의 역할이었다.
“멈춰라!”
엑스칼리버에 남아 있던 에테르로 에테르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자, 드래곤의 머리 서너 개가 한꺼번에 날아갔다.
“갸르르르!”
하지만 아직도 머리는 많이 남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시구르드의 우측 어깨를 물어뜯었다.
에테르로 육체를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몸 전체가 뜯겨져 나가는 건 피할 수 있었지만, 어깨뼈가 박살 났다.
“크윽!”
엑스칼리버를 놓칠 뻔했다.
하지만 시구르드는 왼쪽 손으로 엑스칼리버를 다시 잡았다.
“카이트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 한다!”
마지막 보루인 큰아들을 건드리려는 드래곤에 대한 분노.
그것이 극에 달하면서, 엑스칼리버에 저장된 에테르가 일제히 뿜어져 나왔다.
분노의 감정이 반영된, 시구르드만의 분노검 그람이었다.
“하아압!”
콰아악!
거대한 에테르의 검이 드래곤을 일도양단했다.
“윽……!”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반으로 갈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드래곤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 머리 중 하나가 이번에는 시구르드의 왼쪽 어깨를 물어뜯으려 했다.
“하앗!”
억지로 몸을 돌리면서 드래곤의 아래턱에 검을 꽂아 넣었다.
그 상태에서 한 바퀴 회전하면서 목을 완전히 찢어발겨 놓았다.
“헉, 헉…….”
거친 숨을 내쉬면서 자세를 바로잡았을 때, 또 다른 드래곤 세 마리가 동시에 이쪽으로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토르가 그들을 향해 번개를 날렸지만, 그중 한 마리를 잡는 것에 그쳤다.
“오오오!”
시구르드는 투지를 불태웠다.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서 검을 휘둘러, 우측에서 달려들던 사자 머리의 드래곤을 죽였다.
하지만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온 핏줄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이, 좌측에서 달려들던 드래곤이 시구르드의 하체를 노렸다.
“고오오!”
뿔 달린 드래곤이 시구르드를 들이받았다.
몸이 꿰뚫리지는 않았지만 충격에 공중으로 날아갔다.
‘여기서 뚫리면 카이트가 위험하다!’
시구르드는 전력을 다해 검을 집어던졌다.
검은 드래곤의 등을 꿰뚫었고, 에테르가 폭발하듯이 터져 나가며 숨통을 끊었다.
“크악……!”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제대로 착지하지 못해 온몸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엑스칼리버가 근처에 떨어져 있었지만, 손을 뻗어 집어 들 수 없었다.
아마 방금 공격으로 에테르도 완전히 고갈되었을 것이다.
“쉬이익…….”
하지만 적들은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전갈의 꼬리를 지닌 드래곤이 뱀 같은 혀를 날름거리며 시구르드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
이제 보니 다른 아군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토르는 십여 마리의 드래곤들에게 둘러싸인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지크프리트를 태운 채 날아다니던 파프니르는 적들에게 날개가 물어뜯겨 추락하는 중이었다.
“크윽…….”
시구르드는 남아 있는 마력을 최대한 쥐어짜며 몸을 일으켰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힘을 이용해 주위에 흩어져 있는 에테르의 잔재를 끌어모았다.
그것으로 볼품없는 에테르 블레이드를 만든 뒤 자세를 잡았다.
“덤벼라, 드래곤.”
“쉬이익…….”
“나는, 시구르드 에인헤랴르… 위대한 영웅 시구르드의 이름을 이어받은,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수장.”
입가에서 피를 흘리면서, 의지를 담아 말했다.
“너희를 쓰러뜨리는 것이 내 의무이며…….”
시구르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내 바람이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일치시키는 것.
그것은 꿈속에서 만난 브륀힐다한테 말했던, 시구르드의 목표다.
“너희를 쓰러뜨리고, 내 가족을 지킨다.”
등 뒤에 있는 카이트뿐만이 아니다.
저 멀리 남쪽에 있는 이바르, 헤스테인, 프리드레이프, 그리고 프레데군다.
그리고 가족이나 다름없는 부하들까지.
그들을 지키기 위해, 시구르드는 싸울 것이다.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가장으로서.
“쉬이익!”
“……!”
드래곤이 전갈 같은 꼬리를 휘둘러 시구르드를 찌르려 했다.
시구르드는 에테르 블레이드로 받아쳤다.
전갈 꼬리와 에테르 블레이드가 부딪히면서 힘겨루기가 시작했다.
“하아아앗!”
파아앙!
전갈 꼬리가 잘려 나갔다.
하지만 에테르 블레이드 또한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맨손이 되어 버린 시구르드를 향해, 드래곤이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고 버티는 시구르드를 한입에…….
“가만히 계십시오, 아버지.”
스륵.
짤막한 소리와 함께, 드래곤이 머리부터 꼬리까지 두 조각 났다.
무슨 공격이 펼쳐진 건지 시구르드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가 한 건지는 바로 눈치챘다.
“깨어났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준비는 다 끝났나?”
“네, 아버지.”
카이트가 일어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인데도 처음 보는 얼굴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그에게서는 예전에는 없었던 ‘격(格)’이 느껴지고 있었다.
‘오딘의 힘을 이어받았기 때문?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때 다른 드래곤들이 달려들었다.
숫자는 다섯이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달려들어 시구르드와 카이트를 덮치려 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파파파파팟!
역시 이번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카이트가 그들에게 무형의 검을 휘둘렀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일도양단된 드래곤 시체 다섯 개가 얼어붙은 땅 위에 쓰러졌다.
“카이트… 검의 신이 된 것이냐?”
“검신은 아닙니다, 아버지.”
고개를 저으면서 카이트가 천천히 검을 들었다.
그 순간, 전투 중이던 드래곤들이 일제히 몸을 떨었다.
“수라의 검마입니다.”
수라의 검마,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가 마지막 싸움을 위해 전장에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