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28
▣ 228화. 혈전 (4)
“먼저 가겠습니다, 아버지.”
“알겠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가겠다.”
“네, 무리하지 마십시오.”
시구르드에게 말을 건넨 뒤, 나는 전진했다.
뜀박질을 할 필요는 없었다.
축지를 사용하여 전장 한가운데로 이동할 수 있었으니까.
“카아아!”
“고오오!”
“그르르르!”
다양한 종류의 드래곤들이 나를 둘러쌌다.
갑자기 나타난 내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곧바로 적의를 드러내며 나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놈들의 발톱이나 송곳니가 나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놈들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 직후, 나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라, 카이트!”
“이제야 깨어났군!”
억지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려 하던 파프니르, 그 등에 매달려 있던 지크프리트가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대꾸하지 않은 채 레바테인을 휘둘렀다.
파프니르의 날개를 물어뜯고 있던 드래곤이 단번에 여덟 조각으로 나뉘어 떨어져 내렸다.
이어서 내가 레바테인을 공중으로 집어던지자, 레바테인이 불꽃에 휩싸인 채 공중을 춤추기 시작했다.
“화룡 같군!”
“대단하다!”
쿠쿠쿵!
공중을 날아다니던 드래곤들이 레바테인에 꿰뚫리며 일제히 불꽃에 휩싸였다.
나는 그 모습을 확인한 뒤 다시 지상으로 내려갔다.
내가 따로 의념을 보내지 않아도 레바테인은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공중전을 펼쳐 줄 것이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힘을 보여 주려고 이렇게 시간을 들이나 했더니……!”
지상에서 분투하던 토르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카이트?”
토르는 십여 마리의 드래곤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다.
전신이 피투성이였지만, 최강의 전사다운 투기를 뿜어대며 계속 싸우는 중이었다.
“…….”
나는 말없이 손을 치켜들었다.
그 직후, 토르를 둘러싸고 있던 십여 마리의 드래곤 모두가 목이 잘렸다.
“……!”
허를 찔린 토르가 숨을 삼켰다.
목이 날아간 드래곤에게서 뿜어져 나온 피가 그 몸을 적셨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이 녀석, 방금 그건 오딘을 쓰러뜨렸을 때 사용한…….”
“심즉살(心卽殺).”
“시, 심즉살?”
마음을 먹으면 곧바로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경지.
공격 과정에 걸리는 시간을 무(無)로 만들어, 마치 과정을 생략하고 상대를 죽이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
“그걸 십여 마리의 드래곤에게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경악하는 토르.
하지만 나는 토르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위그드라실 쪽에서 무수히 많은 드래곤들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갑자기 저렇게나 많이?!”
토르가 경악했고, 상공에서 파프니르와 지크프리트도 목소리를 높였다.
“카이트! 니드호그가 네 참전을 알고 전력을 다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개체수가 50, 60… 아니, 100을 넘을 것 같다!”
백여 마리의 드래곤들.
그것도 일반 드래곤이 아니라 에인션트 드래곤에 크게 뒤지지 않는 힘을 지닌 놈들.
지칠 대로 지친 아군들에게 저것들을 상대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다들, 물러서서 숨을 돌리도록 해라.”
“뭐?”
“내가 상대한다. 말려들지 않도록 물러서.”
사실 말려들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렇게 말해 두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래야 그들도 물러서서 휴식을 취할 테니까.
“…….”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거대한 티아매트의 후예들이 나에게 몰려들었다.
그들은 지금 막 태어나서 그런지 이성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순수한 새끼 같은 존재라고 하기에는 본질적인 악성(惡性)이 느껴졌다.
그러니 연민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너희들은 모든 것을 살해하고 파괴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겠지.”
드래곤들을 향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을 그 역할에서 해방시켜 주겠다.”
내 손에서 무형의 심검이 출현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른 순간.
“카아악!”
“키에에엑!”
백여 마리의 드래곤들에게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확인하면서 나는 그들 사이로 달려들었다.
아직 숨통이 끊어지지 않은 드래곤들이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나를 덮치려 했다.
나를 어떻게든 죽여 보겠다고 괴성을 질러 대면서.
“고오오!”
“카아아아!”
하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검을 휘둘렀다.
단지 그것만으로 놈들은 목이 날아가고 심장이 꿰뚫렸다.
“카이트!”
뒤에서 파프니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위그드라실의 밑동에서 여러 마리의 드래곤들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원초의 브레스다!”
쿠쿠쿠쿵!
그동안 내가 쓰러뜨려 왔던 드래곤들과는 달리, 놈들은 브레스를 쓸 때 번쩍 하는 빛이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브레스도 불꽃이 아니라 백색의 광선이었다.
“…….”
나는 입을 다문 채 심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그러자 브레스가 위아래로 갈라졌다.
하나가 아니라 모든 브레스가 전부.
“으음!”
“어허!”
파프니르와 토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절단된 브레스가 위쪽은 하늘 높이 뻗어 나가고, 아래쪽은 땅을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에게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을 터.
나는 굳이 뒤돌아보지 않고 전진했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드래곤들이 나한테 달려들었지만, 내가 팔을 가볍게 휘두르는 것만으로 토막 낼 수 있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내가 접근하는 것을 보고, 마침내 니드호그가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경지에 도달한 거지? 아무리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그건 불가능해!”
니드호그가 위그드라실에 연결된 상태로 목소리를 높였다.
“네 공격은 일반적인 신역의 힘이 아니야!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그렇게……!”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군, 니드호그.”
나는 니드호그를 응시했다.
“너는 인간을 동경했다고 하지만, 인간의 가능성을 얕보고 있었군.”
“가, 가능성? 인간이 그 정도의 힘을 지니는 게 가능하다고? 아무리 그래도 생물로서의 한계가……!”
“니드호그.”
경악하는 니드호그를 올려다보며,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
물질세계에 한계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신세계에는 한계가 없다.
정신의 힘으로 물질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물질세계에도 한계는 없어진다.
그런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절대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말도 안 돼! 지금까지 그런 경지에 도달한 그랜드 소드 마스터는 없었어!”
“나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아니다, 니드호그.”
“뭐, 뭐라고?”
“나는 신화경에 도달한 존재… 수라의 검마다.”
“무슨 이상한 소리를……!”
그 순간, 아까 브레스를 파훼당한 드래곤들이 일제히 나한테 달려들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달려들면서, 나한테 다시 한번 브레스를 날리려 했다.
“이놈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브레스를 뿜을 수 있는 모양이군.”
원초의 브레스는 뭔가 다른 모양이다.
하지만 놈들은 브레스를 방출하지 못했다.
내가 심즉살로 놈들의 목을 모조리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그아아…….”
놈들의 머리가 바닥을 굴러다녔다.
역시 머리만 남은 상태로는 원초의 브레스를 뿜을 수 없는 모양이다.
“크윽……!”
니드호그가 손을 치켜들자, 새로운 드래곤들이 위그드라실 밑동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들은 위그드라실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다.
마치 나뭇가지처럼… 아니, 탯줄처럼 위그드라실에 꼬리가 연결된 채 나를 향해 브레스를 뿜어댔다.
“위그드라실 본체에서 힘을 공급받는 건가.”
나는 왼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도합 12개의 심검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손을 앞쪽으로 뻗어 일제히 심검을 날렸다.
“크아아!”
“크오오오!”
드래곤들에게 차례차례 심검이 꽂혔다.
브레스를 뿜은 드래곤도 있었지만 심검이 브레스를 상쇄시켜 버렸다.
“……!”
니드호그가 다시 대응 방식을 바꿨다.
이번에는 위그드라실의 밑동에서 덩굴 같은 게 뻗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한 가닥 한 가닥이 뱀 같은 드래곤이었다.
“몸이 아주 길군.”
“쉬르르르!”
수많은 뱀이 나를 덮치려 했다.
심검으로 토막 냈지만, 머리가 날아가도 개의치 않고 나한테 달려들었다.
“촉수 같은 건가.”
끝부분만 토막 내 봤자 의미 없다는 걸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뱀들이 나를 옭아매려 했지만, 나는 교묘하게 움직여 모조리 피했다.
그리고 밑동 앞까지 도달한 순간, 손을 치켜들었다.
“와라.”
쐐애액!
하늘을 날아다니던 레바테인이 다시금 내 손으로 돌아왔다.
나는 레바테인을 들고 수라무극진기를 끌어올렸다.
“불태워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레바테인을 휘두른 순간.
위그드라실 주변이 거대한 화염에 뒤덮였다.
“쉬르르……!”
수많은 뱀이 불꽃에 휩쓸려 타죽었다.
나무 같은 성질도 갖고 있었으니 불에 약할 것이다.
“그럼 거기까지 올라가지, 니드호그.”
“……!”
고개를 치켜들고 말을 건네자, 니드호그가 다급히 팔을 치켜들었다.
위그드라실 곳곳에서 드래곤의 상체가 출현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위그드라실을 올라갔다.
“고오오!”
“카르르!”
파앗! 파파팟!
앞을 가로막는 드래곤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며, 니드호그에 접근한다.
“오, 오지 마라, 카이트!”
“니드호그.”
나는 니드호그에게 말을 건넸다.
“너하고는 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디트리히에게 신세 진 것도 있고, 네 부하들도 에인헤랴르에 꽤 도움을 주었는 데다가… 인간과 드래곤의 공존을 위해서, 너는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으니까.”
“……!”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지.”
나와 동맹을 맺고, 인간과 드래곤이 공존하는 미래를 모색했던 니드호그는 이제 없다.
지금 눈앞에 있는 건 티아매트의 파편에 영혼을 침식당해 사악한 존재가 된 니드호그다.
“그래도 걱정 마라, 니드호그.”
“거, 걱정하지 말라고?”
“에인헤랴르에 신세를 지고 있는 네 부하들이 탄압당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
니드호그 파벌의 드래곤들은 현재 에인헤랴르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이번 싸움이 끝난 뒤 그들이 토사구팽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남은 드래곤들… 그들이 인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 채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여러 사람한테 단단히 말해 두겠다.”
“쓸데없는… 소리를!”
니드호그가 절규하자 수없이 많은 드래곤이 위그드라실에서 튀어나왔다.
그럴 때마다 니드호그의 육체가 조금씩 변해 갔다.
위그드라실과 동화되듯이 피부가 목화(木化)되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드래곤 상태의 니드호그는 나무처럼 녹색과 갈색이 뒤섞인 몸을 지니고 있었지만, 폴리모프를 한 인간의 모습이 저렇게 변한다는 건… 그녀가 완전히 위그드라실과 일체화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너는 인간이 되고 싶었지. 티아매트의 파편에 조종당하는 상태라고 해도… 나무의 일부가 되는 건 원치 않을 거다.”
“카이트……!”
“위그드라실과 완전히 일체화되기 전에 끝을 내 주마.”
그렇게 말하며 나는 솟구쳤다.
나무를 발로 차면서 높이 올라갔다. 앞을 가로막는 목질(木質)의 드래곤들을 남김없이 베어 버리며, 마침내 니드호그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아……!”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하는 니드호그.
그 모습은 인간과 다름이 없었다.
“작별이다, 니드호그.”
“……!”
스륵.
심즉살의 검이 니드호그의 목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