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29
▣ 229화. 혈전 (5)
아주 먼 옛날.
니드호그는 다른 종족과의 싸움에서 큰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드래곤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면 적에게 붙잡힐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인간으로 폴리모프를 한 뒤 밀림 속에 몸을 숨겼다.
부상이 너무 심해서 신음하고 있던 니드호그를 구해 준 건, 밀림 속 신전에서 일하는 무녀였다.
그녀는 폴리모프를 한 드래곤이라는 걸 알면서도 니드호그를 보살펴 줬다.
드래곤들과 적대하는 신을 모시는 신전이었지만,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너는 정말로 이상한 아이구나, 무녀.”
“그렇습니까?”
“내가 건강을 되찾으면 너를 잡아먹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지금 상태로도 저 같은 연약한 무녀 정도는 잡아먹을 수 있으실 텐데요.”
“흥, 그러면 내 시중을 들어 줄 사람이 없어지게 되지.”
신전에서 지내는 시간은 평화롭고 안락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족이나 거인족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모든 게 옛날 일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너는 신에게서 신탁을 받는 무녀인 거지?”
“네,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있을 때나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저에게 찾아와서 신탁을 받으려 하지요.”
“역시 인간들은 미개한 종족들이구나.”
“그래도 신탁을 받으면 그걸 지침 삼아 더욱 노력할 수 있습니다.”
“노력이라… 너희 인간 종족은 그런 말을 좋아하네.”
“드래곤님도 노력을 하시면 좋지 않을까요?”
“무슨 노력을 하지?”
“글쎄요. 저희들과 더 사이좋게 지내는 노력을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인간들과? 농담도 잘하는군!”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필요는…….”
“그러면 신탁을 받아 봐, 무녀. 내가 인간들과 사이 좋게 지낼 가능성이 있을지.”
“…….”
그렇게 말다툼을 한 날, 니드호그는 오랜만에 산책을 나갔다.
밀림에 충만한 에테르를 받아들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드호그가 신전으로 돌아왔을 때… 신전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아직도 살아 있는 인간이 있었군!”
“죽여라! 폐하의 복수를 하는 거다!”
“폐하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제물로 삼는다!”
그들은 니드호그를 따르는 용귀족이었다.
니드호그가 죽은 줄 알고 이 일대를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학살을 저지르고 있었다.
“…….”
무녀는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시체가 되어 있었다.
그 고깃덩이를 내려다보며, 니드호그는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폴리모프를 해제하여 본 모습을 드러냈다.
“니, 니드호그 폐하?!”
“살아 계셨군요!”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에…….”
무릎을 꿇는 용귀족들을 향해 브레스를 뿜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즉사한 그들을 뒤로 하고, 니드호그는 신전을 떠났다.
‘그 녀석은… 신탁을 받았을까.’
궁금했다.
산책을 하러 나가 있는 동안, 무녀는 신탁을 받았을까.
니드호그가 인간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지, 답이 나왔을까.
그 답을 듣지 못했다는 게 아쉬웠다.
라그나로크의 끝자락에서도… 니드호그는 계속 아쉬웠다.
* * *
니드호그의 머리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은 매우 높은 곳이다. 아무리 에인션트 드래곤이라도 해도 머리만 남은 채 추락하면 그걸로 끝이다.
나는 니드호그의 머리가 지상에 충돌하는 모습을 굳이 확인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티아매트의 영혼 일부가 깃들었던 니드호그는 쓰러뜨렸다.
하지만 이걸로 끝일까?
“카이트!”
그때 후방에서 잔챙이 드래곤들의 숨통을 끊고 있던 파프니르가 목소리를 높였다.
“위그드라실이 뭔가 이상하다!”
파프니르의 말대로, 위그드라실에서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가지들이 이상하게 뒤틀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
쿠쿠쿵!
거대한 지진이 발생했다.
땅이 쩍쩍 갈라지고 있었는데, 지진 규모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 이건……!”
그때 토르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진이 아니다! 위그드라실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거다!”
“……!”
위그드라실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있다.
그 말은…….
‘이미 대지의 기운을 충분히 흡수한 상태였단 말인가?’
위그드라실은 세계 각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거기서 대지의 기운을 흡수하여 티아매트를 부활시키는 것이 니드호그, 아니 티아매트의 파편이 꾸민 계획이었다.
‘아니, 니드호그가 사망했기 때문에… 불충분한 상태여도 티아매트의 부활을 시도하려는 건가?’
콰콰쾅!
굉음과 함께 위그드라실이 점점 위로 솟아올랐다.
뿌리가 여전히 땅에 박혀 있었지만, 위그드라실이 솟아오르면서 뿌리가 하나둘씩 끊겼다.
더 이상 대지의 기운을 흡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증거였다.
“카이트!”
그때 번개와 함께 날아온 토르가 목소리를 높였다.
“위그드라실은 이미 티아매트로 변화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티아매트의 파편들도 어느 정도 끌어 모은 상태로 보인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건 하나뿐이군.”
나는 위그드라실을 살펴보며 말했다.
“위그드라실을 파괴해야겠다.”
“그, 그렇지!”
토르의 대답을 들으면서, 나는 시선을 아래쪽으로 향했다.
파프니르와 지크프리트, 그리고 시구르드까지 위그드라실 밑동 근처로 와 있는 상태였다.
“카이트, 어떻게 해야…….”
“일단 아래쪽을 담당해 주십시오. 최대한 위그드라실을 파괴하면 됩니다.”
“음, 알겠다!”
시구르드의 대답을 듣고, 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위그드라실은 정말로 까마득하게 높이 뻗어 있었다.
“토르, 우리는 위쪽에서 공격한다.”
“알겠다!”
나는 경공을 사용해 위로 날았고, 토르도 번개와 함께 상승했다.
함께 위그드라실을 파괴하면서 올라갔지만, 솔직히 표면 일부만 파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상대했던 적 중에서 가장 거대했던 건 요르문간드지만… 이 나무는 그것보다 훨씬 크다.’
예전에 요르문간드와 싸울 때는 머릿속을 파괴하는 것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위그드라실은 나무다. 급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씩 전체를 파괴하는 수밖에 없었다.
“카이트! 이곳에 구멍이 나 있다!”
그때 토르가 목소리를 높였다.
“위그드라실에 살던 청설모인 라타토스크가 뚫어 놓은 구멍이다! 라타토스크는 도망친 것 같지만… 이 안으로 파고들면 어떨까?”
“내부에서 파괴한다는 건가?”
“그래! 네 힘으로 구멍을 더 깊게 뚫어 줘!”
확실히 단단한 겉면에서 공격하는 것보다는 안쪽에서 공격하는 편이 효과적일 것이다.
나는 토르가 가리킨 커다란 구멍을 향해 거대한 심검을 꽂았다.
“하아압!”
콰콰콱!
위그드라실이 너무 크기 때문에 얼마나 깊게 구멍을 만든 건지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토르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이 나를 보며 웃었다.
“좋아! 이 몸이 속으로 들어가지! 혹시 모르니 너는 바깥에 있도록!”
그렇게 소리치면서 토르는 구멍 속으로 몸을 던졌다.
* * *
구멍은 상당히 안쪽까지 뚫려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위그드라실의 정중앙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꽤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좋아, 그러면…….”
토르는 심호흡을 하면서 에테르를 끌어올렸다.
번개의 신으로서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붓기로 했다.
“……!”
하지만 그때 주위에서 촉수가 뻗어 나왔다.
정확히는 나무의 섬유라고 해야 하겠지만, 그것들이 사방에서 토르를 일제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몸까지 양분으로 흡수하려는 거냐, 세계수!”
토르는 촉수가 온몸을 휘감는 걸 느끼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원래 토르는 일대일의 싸움보다는 일대다수의 싸움, 그리고 거대한 존재와의 싸움에 특화된 힘을 지니고 있다.
위그드라실 표면은 너무 단단해서 공격이 잘 먹히지 않았지만, 이렇게 내부에서라면…….
“내 번개로 위그드라실 내부를 다 박살 내 주겠다!”
콰르릉! 콰쾅!
토르의 전신에서 막대한 뇌전이 방출되었다.
* * *
쩌억!
위그드라실이 안쪽부터 갈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토르의 번개가 효과적으로 위그드라실 내부를 파괴한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까지 번개가 파고들었는지는 바깥에서는 알 수 없었다.
“……!”
쩌저적!
위그드라실 표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구멍 입구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균열이 주위로 퍼져, 거대한 붕괴가 발생했다.
‘아니, 이건…….’
우우웅!
굉음과 함께 위그드라실이 위아래로 갈라졌다.
아래쪽은 그대로 추락했지만, 위쪽은 계속해서 상승했다.
“젠장……!”
아래쪽에서 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날아다닐 힘도 없어졌는지, 지상으로 추락하는 중이었다.
“카이트! 대지에서 빨아들인 에너지는 벌써 위그드라실 윗부분으로 보내진 것 같다! 아랫부분은 그냥 말라비틀어진 나무에 불과한 상태야!”
“그게 정말인가?”
“그래! 번개에서 느껴지는 감각으로 확인했다! 그러니, 네가 더 높이…….”
토르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이렇게 된 이상 나 혼자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위그드라실의 상승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어. 최대한 빨리…….’
축지를 사용해서 이동하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공간이 기묘하게 왜곡되어 있어 내 뜻대로 공간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위그드라실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것 자체가 공간 왜곡의 작용인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경공만을 사용해 올라가려 했을 때, 기분 나쁜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위그드라실의 안쪽에서 무수히 많은 촉수가 뻗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저걸 뿌리치고 올라가야겠군.’
나는 촉수를 무시하고 상승하려 했다.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거대한 심검으로 한꺼번에 날려 버려도 금방 재생되어 나를 덮쳤다.
‘더 강력한 공격으로 돌파해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정신을 집중하려 했을 때.
아래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위에 올라타라, 카이트!”
“파프니르?”
쉬아아악!
하늘을 가르고 파프니르가 솟구쳐 왔다.
그 등에는 지크프리트도 타고 있었다.
“그런 것에 힘을 뺄 필요 없다! 올라타라!”
몸을 날려 파프니르에 올라탔다.
그러자 파프니르는 엄청난 속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촉수들이 파프니르를 붙잡으려고 달려들었지만, 지크프리트가 강력한 오러 샷을 날려 돌파구를 만들었다.
‘파프니르, 지크프리트…….’
나는 알 수 있었다.
파프니르도 지크프리트도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양쪽 다 부상이 심각했고, 에테르도 거의 고갈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힘을 발휘한다는 건… 의지의 힘일까.
‘아니, 그것뿐만 아니라…….’
바람을 가르며 초고속으로 상승하는 파프니르 위에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파프니르와 지크프리트는 이미 생명을… 아니, 영혼을 불태우고 있었다.
“카아아……!”
파프니르가 포효하며 복잡한 움직임으로 솟구쳤다.
그에 호응하듯이 지크프리트도 피를 토하며 공격을 펼쳤다.
앞을 가로막는 이 촉수들을 돌파하면, 파프니르도, 지크프리트도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