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30
▣ 230화. 하늘 너머에서 (1)
파프니르는 육체가 부스러지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암리타로 만든 가짜 육체이긴 하지만, 그래도 몸이 부스러지는 감각은 별로 기분 좋지 않다.
이미 하체는 남아 있지 않다. 머리와 상체 일부, 그리고 날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추워져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다.
‘태양에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신화시대에도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온 적이 없었다.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공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신기한 곳이다.’
사실 두 눈이 이미 터져 버렸기 때문에 주위를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초월적 존재로서 주위 환경을 감지하는 건 가능했다.
“아…….”
어느새 초대 시구르드가 공격을 펼치는 소리가 멎어 있었다.
주위에서 계속 달려들던 촉수들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카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여기까지 체력을 온존할 수 있었다, 고맙다, 파프니르, 지크프리트.”
“흥, 빨리 가기나 해라.”
파프니르는 카이트에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결판을 내고 와라.”
“그동안 신세 많이 졌다, 파프니르.”
미련이 남은 건지, 카이트는 계속 파프니르에게 말을 건넸다.
“너는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용이었다.”
“흥…….”
뭐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파프니르는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고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시구르드.”
“뭐냐.”
초대 시구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파프니르와 함께 추락하고 있는 중이었다.
“만족했나?”
“물론이다.”
그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후손들을 위해, 전신전령(全身全靈)을 다해 싸울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을 인내해 온 보람이 있었다.”
“쯧… 역시 너는 증오스러울 정도로 영웅다운 놈이다.”
이것이 영웅 중의 영웅, 시구르드다.
이런 남자의 정신을 이어받았기에, 에인헤랴르 가문에서는 계속해서 영웅이 태어났을 것이다.
정말로… 위대한 숙적이다.
“파프니르.”
“뭐냐.”
“마지막으로, 한번 싸워 볼까.”
“하하…….”
파프니르는 웃었다.
옛 숙적이 마지막 순간에 이런 말을 해 주다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좋다. 서로 전력을 다해 싸워 보자. 이번에야말로 너를 꺾고야 말겠다, 시구르드.”
“그렇게는 안 될 것이다, 악룡 파프니르.”
파프니르는 날개를 퍼덕이며 브레스를 뿜었다.
상대도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며 대적했다.
물론, 그 모든 건 상상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미 양쪽 다 온몸이 가루가 되어 하늘 위에서 흩어지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그래도 상관없었다. 물질은 유한하지만 정신은 무한하니까.
마지막으로 의식이 사라질 때까지, 파프니르는 숙적과의 마지막 싸움을 즐겼다.
그것은 저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충족감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 * *
저 멀리에서 파프니르와 지크프리트가 함께 소멸하는 것이 느껴졌다.
양쪽 다 이미 한 번 죽었던 존재들이다.
하지만 둘 다 이 세상 누구보다 생명을 불태우며 싸웠다.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싸운 그들은 위대한 전사이자… 영웅일 것이다.
“고맙다.”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느새 주위에서 공기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자연지기가 희박해질 정도로 높은 위치에 올라와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질식해서 죽었겠지만, 진정한 신화경에 도달한 나한테는 상관없는 얘기였다.
‘그래도 조심하긴 해야겠군. 잠시라도 의식을 잃으면… 죽게 될 거다.’
내 머리 위에는 무성한 잎이 달린 나뭇가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서로 얽히면서 묘한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저것이… 티아매트인가.’
가지 하나하나가 뱀처럼 변했다. 가지에 달려 있는 나뭇잎은 날개 같기도 했고, 깃털 같기도 했다.
그런 가지들이 서로 얽히면서 거대한 드래곤의 형상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대지의 기운을 위로 끌어올려, 티아매트를 만들고 있는 모양이군.’
하지만, 세계를 만든 원초의 존재라고 하기에는 작다.
대지의 기운을 충분히 모으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기서부터 점점 더 커져 가는 걸까.
“…….”
나는 레바테인을 든 채 정신을 집중했다.
티아매트도 일종의 생물이라면, 분명 급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공격한다면 숨통을 끊을 수 있다.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목소리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직접 파고들어 오는 목소리였다.
“티아매트에게 급소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
나는 목소리가 어디서 날아오는 건지 살폈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서 ‘머리’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저게 티아매트의 머리인가.’
일반적인 드래곤들하고는 많이 달랐다.
인간 여성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었는데, 눈은 둥글지 않고 사각형이었다.
깃털 같기도 하고 나뭇잎 같기도 한 붉은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있었으며, 그 사이에서 산양 같은 뿔이 좌우로 각각 세 개씩 뻗어 나와 있었다.
“그래, 내가 티아매트다.”
목소리도 여성적이었고, 아래쪽을 살펴보니 여성의 유방 같은 것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그동안 티아매트를 ‘어머니’라 칭하는 소리를 몇 번 들었는데, 정말로 여성체인 것 같았다.
“모든 용, 모든 마수의 어머니… 그것이 바로 나다, 카이트.”
“내 이름을 알고 있군.”
“니드호그의 기억을 흡수했으니까.”
그녀는 네모난 눈으로 나를 들여다봤다.
“그런데… 흐음, 이상하구나.”
“뭐가 이상하지?”
“물질적으로는 이 세계의 존재인데… 정신적으로는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구나.”
“…….”
나는 허를 찔렸다.
여기서 그걸 지적당할 거라고는 예상 못 했기 때문이다.
“놀랄 필요는 없다. 나는 물질과 정신이 구분되지 않았던 시절부터 존재했으니, 그 정도는 구별할 수 있지.”
“…….”
“카이트, 너는 대체 어디서 온 거지?”
그녀가 흥미롭다는듯이 말했다.
“정말로 평행 세계에서 온 것이냐?”
“평행 세계가 뭐지?”
“흠, 그런 경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나.”
티아매트가 천천히 말했다.
“아주 먼 옛날… 원초 우주에서 거대한 폭발이 있었다.”
“거대한 폭발?”
“그 폭발로 인해 원초 우주가 쪼개졌다. 다양한 평행 세계가 생겨났고, 폭발 이전에 있던 ‘모든 것’의 파편이 그 평행 세계로 흩어졌다.”
“혹시…….”
“그래, 나와 이미르 등은 그 파편이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던 이 평행 세계를 우리들의 몸으로 채워 나갔지.”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반고(盘古)를 떠올렸다.
반고는 내가 무림에서 읽은 책에서 서술된 존재로, 티아매트나 이미르 등과 마찬가지로 그 시체에서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예전에 파프니르에게서 티아매트나 이미르의 얘기를 들었을 때, 왜 서로 다른 세계에서 비슷한 창조 신화가 있는지 의문이었는데…….
‘티아매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원래 있던 세계도 그 원초 우주에서 파생된 평행 세계인 거니까… 비슷한 방식으로 세계가 형성된 건가.’
그동안 나는 두 세계 사이의 공통점이 많다고 느꼈다.
같은 원초 우주에서 파생된 평행 세계였기에 서로 닮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카이트, 너는 그런 식으로 형성된 다른 평행 세계에서 태어난 영혼이다.”
“그래,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흥미롭군.”
티아매트의 사각형 눈이 빛났다.
“네 영혼의 주파수를 활용하면…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뭐라고?”
“그래, 그렇다면…….”
티아매트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무방비해 보일 정도로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뭐지?’
이대로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내가 먼저 움직이려고 마음먹었을 때.
티아매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카이트, 나와 이미르 등 이 평행 세계에 떨어진 존재들이 원했던 게 뭐라고 생각하나?”
“갑자기 무슨 소리지?”
“우리가 원했던 것은 원초 우주를 다시 복원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세계가 아니라, 원초 우주처럼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한 우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티아매트 등은 자신들의 육체로 세계를 채운 건가.
“그런데… 우리가 만들어 낸 건 참으로 추한 것들만 가득한 세상이었지.”
“추한 것들이라고?”
“그렇지 않나?”
그렇게 말하며 티아매트는 아래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저 아래로… 대륙이 보이고 있었다.
“원래 땅은 아름다운 구형(球形)을 취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평평한 대륙만을 만드는 게 한계였다.”
“…….”
내 발밑에 보이는 세계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넓은 대륙이 전부였다.
티아매트가 말하는 것처럼, 구체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는 않았다.
“저것뿐만이 아니다. 거기서 태어난 동물도, 식물도, 물리 법칙도… 정말로 구역질 나게 추했지.”
“너는… 너에게서 태어난 드래곤이나 몬스터도 추하다고 생각하나?”
“물론이지. 그 역겨운 것들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
티아매트의 후예들은 자신들의 어머니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충성을 바쳤던 건가.
“하지만 이미르 등 다른 태초의 존재들은 그냥 이걸로 만족했던 모양이다.”
“…….”
“그들은 이 세계를 창조한 뒤 그대로 소멸했지. 어차피 세계를 만드느라 모든 힘을 잃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했기에… 정신을 잘게 나누어 세계에 녹아들었다. 언젠가 힘을 회복한 뒤 나 혼자서 이 세계를 재창조할 날을 꿈꾸면서 말이다.”
세계를 재창조한다.
그건 로키가 추구했던 일이기도 하다.
“티아매트, 라그나로크는 네가 사주한 일인가?”
“눈치가 빠르군.”
티아매트가 세계를 재창조하려면 초월적 존재들은 방해가 된다.
하지만 라그나로크가 발생하여 초월적 존재들이 서로 싸우다가 죽으면 티아매트를 방해할 존재는 없어진다.
로키가 애시르 신족, 바니르 신족, 거인족이 몰살당하도록 유도했던 것과 같은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일이 틀어졌지. 설마 내 후예들이 애시르 신족 등을 봉인하고 라그나로크를 일시 중단시킬 줄은 몰랐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 다시금 라그나로크가 재개된 뒤… 로키나 니드호그 등에게 개입하여 본격적으로 다시 초월적 존재들을 말살하려 한 거군.”
그동안 티아매트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대략적으로나마 이해가 되었다.
결국 티아매트가 이 모든 싸움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래, 어쩌다 보니 네가 큰 역할을 해 줬더군. 드래곤들도, 거인들도, 신들도… 대부분 네가 죽여 줬어. 세계의 재창조를 방해할 놈들을 다 청소해 준 것이지.”
“…….”
“물론, 너라는 최대의 장애물이 남아 있긴 하지. 그래서 나는 너를 해치우고 세계를 재창조할 생각이었던 거다.”
그렇다.
티아매트는 그걸 위해 나를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는 티아매트를 막아야 하는 상황이고 말이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무슨 소리지?”
“너를 이용하면, 절대로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게 가능할 것 같다.”
티아매트가 미소를 지었다.
“흩어진 평행 세계를 통합하여… 원초 우주를 재생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단 말이다.”
평행 세계의 통합과 원초 우주의 재생.
그것은 원초 우주의 모습을 그리워한 티아매트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길일 것이다.
평행 세계 중 하나를 잘 꾸며서 원초 우주 비슷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아예 원초 우주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니까.
“네 주파수를 이용하면 네 고향 세계로 넘어갈 수 있겠지.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다른 세계로 넘어갈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렇게 여러 평행 세계를 오가는 방법을 확립한 뒤…….”
티아매트의 눈이 요사스럽게 빛났다.
“모든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원초 우주를 부활시키는 거다. 모든 것을 다시 원초로 되돌리는 것이지……!”
복귀어무극(復歸於無極).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그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내가 자연경에 도달하기 위해 떠올렸던 도가의 가르침으로, 궁극적 경지에 도달하면 무극이라는 원초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결국 모든 이치는 서로 통하는군.’
내가 여러 가지 무공들의 이치를 하나로 모아 무극이라는 원초적인 힘에 도달하려 했듯이, 티아매트는 여러 세계를 하나로 모아 원초 우주를 복원하려 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제안하겠다, 카이트.”
티아매트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나와 손을 잡자. 너에게는 로키에게 약속했던 것 이상의 권한을 주지.”
“권한?”
“너는 이쪽 세계의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싸워 왔지? 네가 협력해 준다면, 이쪽 세계의 인간들은 원초 우주로 고스란히 이주시켜 줄 거라 약속하마.”
“고작 그런 걸로…….”
“그리고.”
티아매트의 사각형 눈이 빛났다.
“네가 원래 있던 세계의 인간들도 데려와 주마.”
“내가 원래 있던 세계?”
“그래, 너 같은 놈이라면… 원래 있던 세계에 사랑하는 사람이나 지키고 싶은 사람을 두고 왔겠지.”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총관이나 천룡회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니 카이트… 나한테 협력해라.”
부드러운 목소리로, 티아매트가 나한테 속삭였다.
“우주 일부를 너한테 떼어 주마. 나와 함께 새로운 우주를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