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32
▣ 232화. 하늘 너머에서 (3)
티아매트는 고통에 인상을 찡그렸다.
“시간을 멈추고 공격하다니……!”
카이트가 무슨 공격을 했는지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시공을 정지한 뒤, 그 속에서 공격한 것이다.
그 결과 마치 아무런 동작 없이 티아매트에게 상처를 입힌 것처럼 되었다.
“하지만……!”
또다시 카이트가 시간을 멈추려 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티아매트는 시간이 멈춘 공간에서 입을 벌렸다.
“그건 너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콰아아아!
티아매트는 브레스를 뿜었다.
일반적인 드래곤들과는 달리, 원초의 에너지를 뿜는 백색 광선이다.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 카이트와 티아매트의 공격이 부딪혔다.
“놀랍군…….”
공격이 상쇄되는 것과 동시에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시간을 멈춘 공간 속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건가.”
“물론이지! 나는 이 세계의 시간과 공간이 성립되기도 전부터 존재했다!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단 말이다!”
이번에는 티아매트가 시간을 멈췄다.
멈칫하는 카이트를 향해 다시금 브레스를 뿜었다.
“……!”
카이트의 모습이 사라졌다.
티아매트의 공격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이다.
‘저 녀석도 내가 정지시킨 시공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가!’
파앗!
브레스가 허공을 가로지른 직후, 다시금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
“……!”
카이트가 접근전을 시도했다.
에테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되는 에너지의 검으로 티아매트를 찌르려 했다.
티아매트는 거대한 앞발을 휘둘러 그 공격을 막아 냈다.
“윽……!”
앞발 하나가 절단되었다.
하지만 티아매트에게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앞발 하나가 다시 돋아나 회복되었다.
“소용없다!”
이 정도 가지고는 에너지가 소모되지도 않는다.
잘려 나간 앞발에 남아 있던 에너지는 다시금 흡수할 수 있다.
“나는 한계 있는 필멸자인 너와는 다르다! 나는 세계를 만드는 원초의 존재니까!”
포효하면서 티아매트는 육체 표면을 수천 마리의 뱀으로 바꾸었다.
수많은 뱀이 고개를 쳐들고 각자 브레스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나는 수많은 평행 세계를 통합하여 원초 우주를 복원할 원룡 티아매트! 피조물에 불과한 네놈이… 나를 막을 수는 없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티아매트.”
허공을 수놓는 브레스의 화망(火網) 속으로 몸을 던지며, 카이트가 말했다.
“나도 너도, 이 우주에서 존재하는 하나의 개체에 불과하다.”
“헛소리를……!”
그 직후.
다시 시간이 멈췄다.
수천 마리의 뱀에서 발사되던 브레스 또한 허공에서 정지했다.
‘수작을 부렸군!’
브레스의 화망을 돌파하기 위해 시간을 멈춘 것이다.
카이트의 의도를 파악한 티아매트는 곧바로 원초의 브레스를 날렸다.
카이트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여 화망에 휘말리게 만들 수 있도록.
‘내 브레스를 막아 내려면 주춤할 수밖에 없겠지! 이걸로 끝이다!’
그리고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초의 브레스가 카이트를 덮치고, 카이트가 있는 위치에 뱀들의 브레스 수천 개가 집중되어…….
“……?”
티아매트는 위화감을 느꼈다.
카이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수천 개의 브레스는 허공을 수놓았을 뿐이었다.
‘대체, 어디에…….’
아무리 찾아도 카이트를 발견할 수 없었다.
원초의 브레스에 증발하기라도 한 것일까.
좀 더 감각을 강화하기 위해 체내의 에너지를 감각기관에 집중시키려고 했을 때.
“……!”
티아매트는 그제야 깨달았다.
카이트가… 자신의 체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마……!’
카이트는 시간을 멈춘 공간에서… 다시 한번 시간을 멈춘 것인가.
시간을 멈춘 공간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티아매트의 시간을……?
“카이트……!”
체내를 가로지르는 카이트의 검을 느끼며, 티아매트는 절규했다.
* * *
티아매트의 급소를 찾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토르의 모습이었다.
토르는 위그드라실의 구멍으로 들어가 내부를 파괴했다.
그런 방법으로 티아매트를 공략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래서 티아매트의 의식을 정지시켰지.’
시공이 정지된 상태에서도 나와 티아매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정신의 힘으로 시공의 법칙을 초월하여 육체를 조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티아매트의 의식을 정지시킬 수 있다면 나 혼자 움직일 수 있다.
아마 티아매트 입장에서는 시간이 정지된 상태에서 시간이 한 번 더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브레스를 사용하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던 티아매트 내부로 들어간 것이지.’
티아매트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건 한순간이면 충분했다.
그 상태에서 목구멍으로 내려가 더 깊숙이 들어가니, 일반적인 동물하고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티아매트의 체내는 우유빛 액체로 가득 차 있었는데, 저 액체가 근육의 역할도 하고 소화기의 역할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수라무극진기로 전신을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액체에 용해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저기에 있군.’
아마 상복부 언저리일 것이다.
하얀 액체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거대한 보석 같은 게 보였다.
‘에인션트 드래곤의 드래곤 오브와 같다!’
마석, 드래곤 하트, 드래곤 오브.
티아매트의 후예인 드래곤이나 몬스터들에게는 항상 저런 것이 있었다.
‘저것이 티아매트의 중추……!’
마침내 티아매트의 급소를 발견한 순간.
나는 아낌없이 수라무극진기를 방출했다.
내 힘이 완전히 고갈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모든 것을 검으로 바꾸어… 벤다!’
그동안 내가 이 세계에서 쌓아 온 모든 힘을 끌어내어, 절대적인 검을 만들었다.
티아매트의 오브가 어떤 힘으로 내 공격을 막으려 하든, 상관하지 않고 뚫어 버릴 수 있도록.
“카이트……!”
티아매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처절한 목소리였지만 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내 마음을 하나로 모아 검을 휘둘렀다.
파아아아앗!
우윳빛 액체 속을 가르며 뻗어 가는 섬광.
일념(一念)의 검이 티아매트의 오브를 일도양단했다.
* * *
티아매트는 카이트의 의지를 느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티아매트의 중추 오브를 베어 버리겠다는 의지였다.
이 세계의 물리 법칙에서 자유로운 물체이기에, 어떤 공격으로도 파괴되지 않아야 하지만…….
“아…….”
카이트의 검이 중추 오브를 일도양단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티아매트는 자신의 육체가 붕괴하는 것을 느꼈다.
“아아…….”
쩌적!
위그드라실을 재료로 만든 육체 곳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얀 액체가 스며 나와 허공에 흩어졌다.
“아아아…….!
붕괴를 막을 수 없었다.
티아매트의 의식은 아직 건재하다. 하지만 그 의식으로 육체를 유지할 수 없다.
마침내 육체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아아아아……!”
하얀 액체들은 허공에 흩어지면서 구름의 바다를 만들었다.
그 속에서 티아매트의 의식은 안간힘을 쓰면서 육체를 재구성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정신은 무한한 힘을 갖고 있으나… 육체라는 매개체 없이는 물질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티아매트, 원초의 용, 세계의 어머니…….”
티아매트는 의식만 남은 채 절규했다.
“나는 세계를 다시 창조하여, 원초 우주처럼, 아름답고 올바른 세계를, 만들어 낼…….”
“티아매트.”
그때 카이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고향…….”
“나도 고향이 그립다. 이쪽 세계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지. 이런 건 작은 동물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카이트가 차분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하지만 티아매트, 그렇다고 해서 네가 낳은 세상을 모조리 버리는 건 옳지 못해.”
“…….”
“네가 이 세계의 어머니라면, 이 세계가 아무리 못나 보여도 어머니로서 계속 지켜봐 줘야 했어.”
티아매트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래쪽으로 의식을 향했다.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대륙… 티아매트의 고향에 비하면 조잡하고 왜소한 땅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아직도 티아매트의 후예들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의 자식들…….’
니드호그를 떠올렸다.
그녀도 어머니인 티아매트를 위해 자신의 뜻을 굽히고 싸우다가 죽었다.
그런 존재들에게… 티아매트가 애정을 쏟아부은 적이 있었던가.
‘너희들은…….’
그동안 저 땅에서 태어나고 죽었을 수억 개의 생명을 생각했다.
그들은 계속 유전자 레벨에서 티아매트를 기억하고 있었으나, 티아매트는 그들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만약 티아매트가 원초 우주로 돌아가는 것을 꿈꾸지 않고 그들과 어우러졌다면… 어땠을까.
“…….”
티아매트는 천천히 추락을 시작했다.
중력에서 자유로울 텐데도,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이제 티아매트는 영원한 잠에 빠져든 채 대지에 흡수된다.
그리고… 이미르 등 다른 태초의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후손들의 혈육이 될 것이다.
* * *
티아매트의 정신이 지상으로 떨어지며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의식이 소실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대로 대지에 흡수되어 자연지기의 일부가 되겠지.’
하지만 지상으로 떨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티아매트의 오브를 파괴하면서 수라무극진기를 모조리 꺼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신화경의 힘을 발휘할 내력이 없었다.
‘그러니…….’
나는 손을 뻗었다.
티아매트가 붕괴하면서 흘러나온, 유백색의 액체 구름을 향해.
‘암리타는 저 액체에서 만들어진 것이었군.’
먼 옛날, 티아매트가 시체가 되었을 때 저 액체도 세상에 흘러나왔을 것이다.
그 유해(乳海)가 세계의 양분이 되어 어머니를 잃은 존재들을 먹여 살리지 않았을까.
‘아마 인간들도 그랬겠지.’
인간은 티아매트의 후예도 이미르의 후예도 아니다.
어떤 초월적 존재가 흙을 빚어 만든 것이 인간이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원초의 존재들의 요소가 여러 개 섞여 들어갔다고 하는데, 아마 티아매트의 유해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면… 또 신세를 져 볼까.’
나는 유백색 구름을 향해 의식을 집중했다.
수라무극진기는 다 써 버렸지만,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카이트의 선천진기는 아직 남아 있었다.
원래 선천진기를 다 써 버리면 죽게 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수라건곤이법으로…….’
유백색 구름이 반응했다.
추락하는 나를 향해 비 같은 우윳빛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나는 마치 어머니 품 안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편히 잠들지는 않았다.
그 모든 기운을 빨아들여 내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돌아가자.’
나는 이미 누구보다 높은 곳까지 올랐다.
지금 내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이미 정점에 도달한 존재로서, 나는 지상으로 돌아가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에인헤랴르로 돌아가고, 그리고 또…….’
많은 생각을 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간다.
내가 할 일은 아직도 이 세계에, 그리고 다른 세계에 많이 남아 있다.
나는 수라의 검마로서 내 역할을 할 것이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용이 되는 건,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