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34
▣ 234화. 봄 같은 하늘 (2)
“나는 황제가 될 생각은 없어.”
입을 열어 그렇게 말한 순간.
이바르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고, 니얼은 눈을 부릅떴다.
“어째서입니까!”
니얼이 벌떡 일어났다.
“지금까지 계속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황제가 되어 세상의 혼란을 진정시킬 수 있는 건 카이트 공자님뿐이란 말입니다!”
“니얼, 진정해.”
“카이트 공자님은,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내 말도 무시하고 니얼이 소리쳤다.
“불세출의 영웅으로서, 구세주로서… 이 세계 전체를 책임지셔야 합니다!”
“…….”
“이건 힘을 가진 사람의 의무입니다! 황제가 되지 않겠다는 건, 무책임한 일이란 말입니다!”
니얼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니얼도 이미 깨달은 상태일 것이다.
내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카이트 공자님… 저희는 단순히 적들과 싸우기 위해 공자님한테 무공을 배웠던 게 아닙니다.”
“…….”
“공자님의 행보에 힘을 보태 드리기 위해, 공자님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위해 더욱 강해지고 싶었던 겁니다.”
니얼의 목소리는 처절했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한테 계속 매달리는 중이었다.
“부탁입니다, 카이트 공자님.”
“니얼, 너희가 오해하게 했다면, 그 부분은 사과하고 싶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나도 고민은 했다. 너희들 말대로 황제 자리에 오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러면……!”
“하지만, 이번 결전을 통해 깨달았어.”
애시르 신족, 그리고 티아매트와의 싸움을 통해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나는 계속 싸워야 해. 황제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야.”
“나라를 안정시켜야 한다니까요! 귀족들하고 싸우시면…….”
“아니, 나는 귀족들하고 싸우지 않아.”
“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건 너희들 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렇다.
나는 앞으로 진행될 전쟁에 참가할 생각이 없었다.
“이바르, 에인헤랴르의 지금 전력으로 남쪽의 귀족들을 제압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나?”
“형님, 그건…….”
“내가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가능할 것이다.
원래 에인헤랴르는 대륙 최강의 전투 집단이었다. 최근 있었던 일련의 전쟁으로 인해 더욱 강해졌다.
남쪽의 귀족들 정도는 여유롭게 제압할 수 있다.
“옛날에는 북쪽 드래곤 세력을 경계하느라 병력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
“에인션트 드래곤은 전멸했지. 그들을 따르던 드래곤이나 용귀족도 얼마 남지 않았어. 이렇게 되면 몬스터들도 오합지졸이지.”
더 이상 북쪽을 경계할 필요가 없어졌다.
남쪽으로 전군을 투입해도 되는 것이다.
“이미 피어너 가문 및 크레스니크 가문하고도 끈끈한 유대로 맺어져 있는 상태야. 에인헤랴르가 전군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가도 북부가 혼란스러워지는 일은 없겠지. 현시점에서 에인헤랴르의 전력으로 충분히 대륙 전체를 평정할 수 있어.”
“하지만, 남쪽에도 만만치 않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래, 남쪽에도 9서클의 마스터들이 있긴 하지.”
산중교단의 최고장로 말고도, 9서클의 마스터들이 여러 명 있다.
대부분 특정 세력에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귀족들이 포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바르, 이미 너희는 절정고수야. 조금만 더 실력을 쌓으면 9서클의 마스터들하고도 싸울 수 있을 거야.”
“형님, 아직 그 정도는…….”
“그리고 우리 쪽에도 소드 마스터가 세 명이나 있잖아.”
정말로 강한 놈이 나타나면, 시구르드가 상대하면 된다.
이미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된 시구르드를 당해 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내가 꼭 나서야 할 필요는 없는 거지.”
“카이트 공자님, 하지만…….”
니얼이 다시 입을 열었지만, 내가 중간에 끊었다.
“물론, 전쟁이 벌어지면 많은 희생이 발생하겠지. 너희는 그걸 막기 위해 내가 압도적인 힘으로 귀족들을 위협해 주기를 기대하는 거고.”
니얼이나 이바르도 에인헤랴르가 패배하는 걸 걱정하는 건 아니다.
압도적인 힘으로 절대적인 우위를 만드는 걸 바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압도적인 힘으로 귀족들을 겁줘서 수립한 정권이… 과연 정상적일까?”
“……!”
“그래서는 용황제가 되어 공포 통치를 하려던 카롤루스와 다를 게 없어.”
니얼이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니얼, 나는 딱히 너희들만으로 피 튀기며 통일 전쟁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야.”
“그러면…….”
“대화를 하면서 남부 귀족들을 설득해야지. 물론,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야 하겠지만 말이야.”
카롤루스 토벌 이후로 남부 귀족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그동안 그들은 에인헤랴르를 북부의 무법자들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원군을 보내 줄 정도로 호의적이다.
우리가 설득하면 제국 재편에 힘을 보태 줄 것이다.
“대화로 일을 해결하려면, 나보다는 너희들이 훨씬 유능하지.”
“카이트 공자님…….”
“형님…….”
니얼과 이바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내가 귀족들의 사병(私兵)들을 다 쓸어버리며 다니는 것보다, 너희가 차분히 협상을 하고 설득을 하는 편이 향후의 통합에는 더 도움이 돼.”
“…….”
“내가 나서면 더 빨리 통합을 이룰 수 있겠지.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너희들이 주도하는 편이 나아.”
그동안 나는 빠르게 적을 타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때가 아니다. 니얼이나 이바르처럼 지혜가 뛰어난 인물들이 차근차근 세상을 바꿔 나가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정치 체제도 너희가 고민해야 해.”
“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누구를 황제로 옹립하는 것만 생각하지 말란 말이야. 꼭 황제가 있어야만 되는 것도 아니잖아?”
“……!”
니얼과 이바르는 그 생각은 못 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부분은 똑똑한 너희들이 생각해. 내가 거절했다고 해서 괜히 아버지를 꼬드길 생각하지 말고.”
“혀, 형님…….”
“…….”
이바르는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지만, 니얼은 바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똑똑한 녀석이니 금방 여러 가지 대안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형님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시려는 겁니까?”
“일단 나는 여행을 떠날 거다.”
“여행이요?”
“놀러가는 건 아니야. 싸우러 가는 거지.”
“싸우러 가다니… 대체 누구와 싸우신다는 겁니까? 남쪽 귀족 세력과 싸울 생각은 없으시다면서요?”
“결착을 지어야 하는 일이 있어서 말이다.”
“……?”
나는 웃으면서 이바르한테 말했다.
“걱정 마라,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형님…….”
“이곳으로 돌아올 거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얼어붙어 있던 북쪽 바다가 녹아내리면서, 사시사철 고틀란드에 불어오던 추운 바람도 잦아들었다.
이제 북부는 예전보다 훨씬 따뜻해질 것이고, 앞으로 훨씬 발전할 것이다.
제2의 고향인 이곳이 점점 발전해 가는 모습을… 나는 계속 지켜볼 것이다.
“나는 카이트 에인헤랴르니까 말이다.”
나를 소중히 생각해 주는 새로운 가족과 부하들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장남, 카이트 에인헤랴르로서.
* * *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한 뒤, 고틀란드 외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드래곤과 용귀족들의 임시 체류지가 있었다.
원래 니드호그 파벌 출신밖에 없었지만, 소문을 듣고 각지에 숨어 있던 다른 파벌의 생존자들도 몰려들었다.
지배자였던 에인션트 드래곤들도 사라졌으니, 그들하고도 협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니드호그가 꿈꿨던… 인간과 드래곤의 공존도 가능할 거야.’
에인헤랴르는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땅을 마련해 줄 생각이다.
다만 드래곤과 용귀족들만 뭉쳐서 살아가게 하면 세력화되어 딴 생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과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부분을 잘 해결하는 것도 앞으로 에인헤랴르의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토르.”
“왔냐?”
임시 체류지 구석의 망루 위로 올라가자, 북쪽 하늘을 쳐다보던 토르가 나를 맞이해 줬다.
“별문제는 없나?”
“그렇지 뭐. 아무런 이상도 없어.”
티아매트를 쓰러뜨린 뒤, 토르는 우리와 함께 고틀란드로 왔다.
토르도 인간들과 어울리며 살아가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다.
“티아매트도 완전히 대지에 녹아든 것 같고…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다행이군.”
토르는 앞으로 이 세계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애시르 신족의 부흥은 포기했지만, 오딘의 마지막 당부대로 이 세계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하려는 것이다.
세속적인 싸움에는 관여하지 않겠지만, 세계를 위협하는 큰 사건이 터지면 직접 나서겠다고 한다.
“그러면 토르… 나는 이만 가 보겠다. 뒷일을 부탁하지.”
“뭐야.”
토르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벌써 떠나려고?”
“그래, 여행을 떠날 거다.”
“정말로 다른 평행 세계로 이동하는 건가…….”
티아매트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다른 평행 세계로 이동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나는 티아매트에게서 흘러나온 유액(乳液)을 흡수하여 예전보다 더 막대한 힘을 지니게 된 상태.
로키와 오딘, 티아매트 등하고 싸우면서 깨달은 시공 조작의 이치를 활용하면,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문을 열 수 있다.
“정말로 끝없는 싸움을 할 생각인가 보군.”
“끝이 없지는 않을 거야.”
나는 수라의 길을 걷기로 했다.
여러 평행 세계를 넘나들며, 타인의 자유를 짓밟는 존재들과 싸우기로.
이것은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이 진정한 자유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언젠가 이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면 싸움을 멈추겠지.”
“설마 그게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생각인가?”
“그건 아니고.”
이곳은 이미 제2의 고향이다.
자주 돌아오게 될 것이다.
“자칫하면 우주의 미아가 될 텐데… 걱정도 안 되나?”
“어떻게든 되겠지. 이미 첫 번째 목적지는 정해 놨어.”
티아매트가 말했듯이, 내 영혼에는 원래 살던 세계 고유의 파장이 있다.
그걸 지침 삼아 문을 열면 된다.
내가 원래 살던… 무림으로 돌아가는 문을.
“쯧… 알겠다. 이 세계는 내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 다녀와라.”
“그래, 부탁한다.”
“가기 전에 저 남자한테 제대로 인사 좀 하고.”
토르가 망루 아래를 가리켰다.
조금 전까지 같이 식사를 했던 시구르드가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나는 토르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망루를 내려갔다.
그리고 시구르드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저는…….”
“가는 거냐.”
“네.”
“그렇군.”
시구르드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딱딱했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차분했다.
“카이트, 너한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어떤 거죠?”
시구르드는 잠시 나를 응시한 뒤, 천천히 말했다.
“누가 뭐래도, 너는 내 아들이다.”
“아버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시구르드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내가 예전의 카이트가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구르드는 나를 아들로 대해 주고 있었다.
“그동안 에인헤랴르의 일원으로서 나와 함께 싸워 온 너는… 자랑스러운 내 아들이다.”
“…….”
“그러니, 카이트.”
시구르드가 미소를 지었다.
아들을 아끼는 아버지의 미소였다.
“잘 싸우고 돌아와라.”
“…….”
나는 잠시 침묵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네, 아버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도 미소 지었다.
진짜 아버지를 대하는 마음으로.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나는 싸우고 돌아올 것이다.
제2의 고향이자,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이곳으로.
그렇게 다짐하면서, 나는 무림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