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5
▣ 25화. 용귀족 (2)
“용살검가의 장남이라,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글쎄, 별로 유명하지 않은 놈이라서 말일세.”
고틀란드 북서쪽의 숲속.
그곳에서는 두 명의 용귀족이 몬스터들을 거느린 채 전진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명 다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실제로는 각자 흉흉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차남이나 삼남은 저희도 잘 알고 있지만, 장남 얘기는 거의 들어 본 적이 없군요.”
존댓말을 사용한 건 갈색 머리카락을 짧게 깎은 남자였다.
아카샤니그두에게서 용남작(龍男爵)의 작위를 받은 용귀족으로, 이름을 몬트리올이라 했다.
“그렇지. 특히 삼남하고는 우리 몬스터들이 많이 충돌했지. 차남도 유능한 인물이라 알려져 있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흰머리가 가득한 노년의 남자가 대답했다.
그는 용백작(龍伯爵)의 작위를 받은 인물로, 알레이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아카샤니그두 님의 얘기에 의하면, 그 용살검가의 장남이 남쪽의 배룡주의자들을 처단하고 다녔다더군.”
“종종 있는 일 아닙니까? 근데 그것만으로 아카샤니그두 님이 직접 척살 명령을 내리다니 흔치 않은 일이군요.”
평상시 용귀족들은 자기 영지에서 노예들을 거느리며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드래곤들이 다른 종족들보다 특별한 대우를 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알레이드와 몬트리올은 아카샤니그두의 명령으로 몬스터 등을 이끌고 출진한 상태였다.
“얘기를 들어 보니, 그놈이 아카샤니그두 님을 모욕한 것 같더군.”
“세상에 그렇게 용감한 놈도 있군요.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건지.”
“어쨌든 그놈을 끌어내서 해치울 방법을 강구해야겠네.”
“마침 북부대공도 다른 지역으로 나가 있는 시기니까 말입니다. 빨리 해치워야겠죠.”
드래곤을 따르는 종족들은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 지성을 지닌 종족은 그리 많지 않다. 진짜 드래곤과 유사한 레서 드래곤들도 지능은 일반 몬스터 수준이다.
가끔 킹 리자드맨처럼 지능이 뛰어난 몬스터가 태어나기도 하지만, 여러 종족을 통솔하는 지휘관 역할을 맡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드래곤들은 인간 출신의 용귀족을 우대한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일반 몬스터들보다는 지휘관에 적합한 지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아카샤니그두가 알레이드와 몬트리올을 보낸 것도, 카이트 아인헤랴르를 해치우려면 몬스터들만으로는 어려울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단 용살검가의 병사들이나 민간인들을 학살한 뒤, 이게 다 장남 책임이니까 장남이 나오라고 도발을 해야겠군.”
“장남이 튀어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요? 겁먹고 숨어 있기라도 하면…….”
“그때는 계속 학살을 하는 거지. 북부대공이나 그 차남이 나타나기 전까지.”
“만약 북부대공이나 차남이 나타난다면 빨리 후퇴해야겠군요.”
“우리도 목숨이 아까우니 말일세, 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알레이드는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 두 사람이 이끌고 온 병력은 오크와 고블린의 혼성 군단이다. 숫자는 5백 이상… 만약 북부대공의 흑룡기사단이 나타나더라도 알레이드와 몬트리올이 도망칠 시간 정도는 벌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방비가 허술하군.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용살검가의 병력과 거의 마주치지 않았어.”
“그러게 말입니다. 이러다가는 용살검가의 본성까지 그냥 도달할 수 있겠는데요?”
“하하, 그래도 우리가 공성전을 할 건 아니지 않나. 일단 이 근처에 화전민들의 촌락이 있으니, 거기부터 학살하자고.”
“알겠습니다, 알레이드 용백작.”
그렇게 두 사람은 몬스터들을 이끌고 계속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윽고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왔고, 주저 없이 마을 안으로 진입했다.
“왜 아무도 없지?”
“우리들의 접근을 눈치채고 도망친 걸까요?”
마을은 너무 조용했다.
알레이드와 몬트리올은 오크 및 고블린을 이끈 채 마을을 뒤져 봤지만, 역시 사람이 없었다.
“김이 새는군. 어떻게 이 정도로 신속하게…….”
“키엑!”
그때였다.
고블린 한 마리가 알레이드에게 달려와 코를 벌름거리며 손짓을 했다.
“뭐냐, 천한 것.”
“키에엑!”
계속 코를 벌름거리며 뭔가를 표현하고 있었는데, 말을 못하는 몬스터라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 멍청한 놈이 대체 무슨 소리를…….”
“알레이드 용백작, 무슨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그때 몬트리올도 코를 킁킁 거리며 말했다.
“무슨 냄새 말인가?”
“글쎄요.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옛날에 이런 냄새를 맡아 본 듯한…….”
“……?”
몬트리올의 말에 알레이드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을 때.
갑자기 이변이 발생했다.
“키에엑!”
“쿠오오!”
콰콰콰쾅!
마을 곳곳에서 폭음이 발생하면서, 엄청난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알레이드와 몬트리올의 지시로 마을을 뒤지고 있던 오크와 고블린들이 불꽃에 휩싸이며 비명을 질러 댔다.
“뭐, 뭐냐?!”
“아, 그, 그렇군! 내가 느꼈던 건 기름 냄새……!”
알레이드와 몬트리올이 당황해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마을 바깥에서 갑자기 함성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또 뭐지?!”
“아, 알레이드 용백작!”
다급히 건물 위로 올라가 주위를 살핀 몬트리올이 목소리를 높였다.
“기사들이, 기사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
함정에 빠졌다는 걸 깨닫고, 알레이드는 눈을 크게 떴다.
* * *
“카이트 님! 정말로 놈들이 이 마을로 진입했군요!”
“진짜 놀랍습니다!”
화공(火功)에 당해 비명을 지르는 몬스터들을 보면서, 어윈과 모르트가 감탄했다.
“솔직히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카이트 님 말대로 되었습니다!”
“놈들의 행동을 유도한 거지.”
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헤스테인이 도와준 덕분에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어.”
놈들의 목적은 카이트 에인헤랴르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놈들이 전면 공격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등의 방식으로 도발하면서 나를 끌어내려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헤스테인의 도움을 얻어 놈들의 행동을 유도했다.
동북쪽 방면의 병력을 재배치하여, 놈들이 특정 길로 전진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리고 놈들이 진입할 게 분명한 촌락에 화약과 기름을 설치하여… 화공을 펼쳤다.
“다들 들어라.”
나는 내공을 실어서 말했다.
“지금 후방에는 헤스테인의 적룡기사단이 대기하고 있다. 우리 신생 기사대가 놈들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면 달려와서 도와줄 생각이지.”
기사들이 움찔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녀석들은 당연히 자기들이 나서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50명도 안 되는 신생 기사대가 용귀족이 이끄는 500명 규모의 몬스터 군단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말이다.”
“…….”
“하지만 그렇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검을 뽑으면서 말했다.
“내가 가장 앞에 나선다. 너희들은 나만 따라오면 된다.”
“네……!”
일제히 대답하는 기사들을 이끌며, 마을 안으로 돌입했다.
불길에 휩싸인 오크와 고블린들이 우리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오크……. 리자드맨 이상의 근력과 체력을 지녔지만, 움직임은 둔하다고 했던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오크에게 쾌검을 펼쳤다.
푸욱!
오크의 목에 구멍이 뚫렸다. 이걸로 죽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 뒤에서 따라오는 기사들이 숨통을 끊어 줄 것이다.
‘그리고 고블린, 힘은 약하지만 재빠르고 영악하다고 했지.’
고블린 몇 마리가 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왔다.
조악한 단검으로 나를 찌르려 했지만, 내 검이 훨씬 더 빨랐다.
파팟!
여러 마리에게 동시에 치명상을 입히면서 전진했다.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에게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면서, 이미 화공 때문에 혼란에 빠진 몬스터 집단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해치워라!”
“카이트 님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내 뒤를 따르는 기사대는 이미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50명도 안 되는 6서클 미만의 기사들이다. 500마리 규모의 몬스터 군단과 정면에서 맞부딪치면 이쪽이 전멸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오러를 펼치면서 몬스터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어윈, 모르트, 각자 우측과 좌측으로 움직여라. 반격을 위해 아군의 측면을 노리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어윈과 모르트에게 지시를 내려 둔 뒤, 나는 속도를 더 높였다.
질풍처럼 움직이며 불타는 마을을 질주했다.
뒤에서 따라오는 기사들을 배려해 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몬스터들의 사기도 많이 저하되었기 때문에 도망치는 놈들이 더 많다.
지금처럼 기사대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상태라면 내가 가까이 없어도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저기 있군.’
마을 중앙에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몬스터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인간도 아니다.
‘용귀족인가.’
배룡주의자들의 최종 목표.
드래곤들에게 인정받아 귀족의 작위를 받은 인류의 배신자들.
몬스터들의 지휘관인 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놈……!”
지붕 위에 한 남자가 서있다.
갈색 머리카락을 짧게 깎은 모습.
겉모습은 젊은 남자 같지만, 눈빛은 노련했다.
“설마, 저놈이 용살검가의 장남……!”
“맞다.”
휘이익!
품에서 단검을 던졌다.
남자가 손을 치켜들어 단검을 막아내는 걸 알 수 있었다. 맨손임에도 불구하고 돌처럼 단단해진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용귀족들은 드래곤들에게서 특별한 힘을 받았다고 하던데.’
하지만, 상관없었다.
놈이 단검을 막아 내는 사이, 나는 거리를 좁혀 놓은 상태였으니까.
‘수라비룡검, 섬뢰.’
파앗!
번개처럼 뻗어나간 검이 남자의 목을 꿰뚫었다.
“……?!”
경악한 남자가 눈을 크게 떴지만, 목이 뚫린 상태라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그 상태로 나는 칼날을 한 바퀴 회전시켰다. 목이 꿰뚫려도 살아 있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
눈을 까뒤집으면서 남자가 지붕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아래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몬트리올 용남작……!”
흰머리가 가득한 노년의 남자였다.
새카만 예복을 입고 있었는데, 단추 하나하나가 찬란한 보석이었다.
“네놈, 네놈이 용살검가의 장남이냐?!”
“그렇다.”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대꾸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게 내 이름이지.”
“그래, 네놈이 바로…….”
냉담한 목소리로 이름을 밝히자, 노년의 남자가 이를 까득 갈았다.
“아카샤니그두 님이 직접 지목할 만한 놈이구나. 어째서 지금까지 무명(無名)이었는지 모르겠군.”
그 순간.
노인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방금 상대한 갈색 머리의 남자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존재감이었다.
“좋다. 내가 직접 상대해 주지.”
노인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마. 나야말로 아카샤니그두 님이 직접 작위를 내려주신 용백작으로서…….”
“궁금하지 않다.”
짤막하게 내뱉으면서 검강을 전개했다.
“덤비기나 해라.”
늙은 용귀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