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8
▣ 28화. 사지로 향하다 (2)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데, 정말로 그 금액인가?”
“그렇습니다. 그게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가격’입니다.”
군나르는 복면 쓴 여자의 대답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산중교단이 그렇게 암살 금액을 팍팍 올리는 줄은 몰랐는데.”
산중교단(山中敎團).
충분한 대가만 지불하면 누구든지 죽여준다는, 세계 최대의 암살자 집단.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심지어 에인헤랴르 대공가의 본거지인 고틀란드에도 의뢰를 받는 창구원이 있을 정도였다.
이들의 특징은 주요 인물들의 청부액을 미리 정해 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중교단의 ‘가격’을 확인하면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위상의 인물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 하나 죽이는 데 1,200만 골드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예전에는 1만 골드도 안 되지 않았나?”
“언제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창구원의 목소리는 냉담했다.
“하이 리자드맨을 쓰러뜨렸다는 게 확인되었을 때 5만 골드였습니다. 킹 리자드맨을 쓰러뜨린 시점에서 100만 골드로 올라갔죠. 유르고스 남작령과 크란켈 자치도시의 배룡주의자를 해치운 뒤에는 200만 골드… 그리고 용귀족 두 명을 동시에 제압한 것으로 1,000만 골드 고지를 넘어섰습니다.”
“크흠…….”
얘기를 들어 보니 나름 단계를 밟으면서 올린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1만 골드 미만에서 1,200만 골드로 올랐다는 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좀 더 검증이 필요한 거 아닌가? 벌써부터 1,000만 골드 이상으로 책정하는 건 너무 성급한 것 같은데.”
“지휘본부장.”
창구원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낮은 금액으로 의뢰해 보고 싶었으면 좀 더 일찍 움직였어야 합니다.”
“…….”
“저희도 손해 보는 장사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엄청난 인물이라는 걸 이미 다 파악하고 있는데, 푼돈으로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군나르는 인상을 찡그렸다.
“산중교단에서 그 정도로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참고 삼아 물어보겠는데, 나하고 비교하면 어떤가?”
“지금 장난하십니까?”
창구원이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가격’을 책정하기 시작한 이래, 당신은 줄곧 1,000만 골드는커녕 700만 골드도 넘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
“지금은 좀 더 낮은 선에서 책정되고 있습니다.”
군나르는 모욕감을 느꼈다.
에인헤랴르의 베테랑 기사로서 지휘본부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8서클 검사인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밥만 축내고 있던 애송이보다 한참 낮은 가격이라니.
“그래서, 어떻게 할 겁니까?”
군나르의 기분 같은 건 관심없다는 듯이 창구원이 말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암살을 의뢰하겠습니까?”
“크흠, 말해 두지만…….”
군나르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애초에 카이트 님을 정말로 죽이고 싶어서 문의해 본 게 아니다.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다는 산중교단에서 카이트 님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지.”
“어련하시겠습니까.”
창구원이 비웃듯이 말했다.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1,200만 골드를 준비해서 연락 주십시오. 그때는 가격이 더 올랐을 수도 있겠지만.”
“크흠, 알겠다.”
“그리고.”
“또 뭔가?”
의아해하는 군나르 앞에서 창구원이 손을 내밀었다.
“입막음 비용을 줘야겠습니다.”
“뭐라고?”
“설마, 공짜로 견적만 받고 끝낼 수 있을 줄 알았습니까?”
창구원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암살 금액을 문의했다는 정보, 팔아넘기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요?”
“……!”
군나르가 눈을 치켜떴지만, 창구원은 태도 변화가 조금도 없었다.
“견적료 내지는 상담료라고 생각하시지요. 특별히 싸게 해드리겠습니다.”
* * *
‘군나르는 나를 사지(死地)로 몰아넣고 싶은 모양이야.’
나는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들은 얘기에 의하면, 군나르는 대공비(大公妃) 프레데군다의 친척으로서 그녀의 자식들하고도 가까운 존재… 내가 눈엣가시겠지.’
시구르드의 현재 아내인 프레데군다는 이바르, 헤스테인, 프리드레이프의 어머니다.
한편 전처(前妻)의 자식인 카이트하고는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기에 상당히 소원한 사이다.
‘내가 프레데군다의 자식들의 입지를 위협하기 시작했다고 판단한 거겠지.’
아마 프레데군다와 군나르도 여러 가지 방법을 검토했을 것이다.
지난번 페루스 유르고스처럼 나한테 암살자를 보내는 것도 고려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결국 나를 사지로 몰아넣는 방식을 택했다.
아카샤니그두의 수하들과 싸우다가 죽는 걸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 위치에 노예 수용소가 있는 건 확실해 보이고.’
군나르는 알레이드라는 용귀족에게서 얻어낸 정보라고 말했지만, 자치도시 크란켈에 갔을 때 리브라스의 비밀 방에서 압수한 자료들 중에도 비슷한 걸 얼핏 봤었다.
그러니 군나르가 말한 곳에 노예 수용소가 있는 건 사실일 것이다.
‘문제는 그 주변에 아카샤니그두의 수하들이 쫙 깔려 있을 거라는 점이지.’
군나르는 그쪽에 병력이 별로 배치되어 있지 않다고 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
드래곤들의 영역에 진입하게 되는 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도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나는 혼자 생각했다.
‘해볼 만하다.’
* * *
군나르와의 만남을 마친 뒤, 산중교단의 ‘창구원’ 프레아는 변장을 풀고 거리로 나왔다.
군나르 앞에서는 거들먹거리는 암살교단의 간부처럼 행세했지만, 평상시 프레아의 겉모습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소극적 인상의 여성이다.
심지어 상단의 재고 관리 담당자라는 평범한 직업까지 갖고 있다.
평소의 그녀를 보고 산중교단의 창구원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사지로 몰아넣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으면서, 갑자기 우리 산중교단에게 접촉해 오다니.’
프레아는 군나르가 카이트에게 노예 구출 임무를 맡겼다는 것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각종 정보를 수집하여 산중교단 본부에 전달하는 것도 창구원의 임무였기 때문이다.
‘군나르 나름대로 자신이 있어서 음모를 꾸민 걸 텐데, 왜 갑자기 산중교단에 암살을 문의한 걸까.’
아카샤니그두의 수하들과 싸우다가 전사하는 것하고, 암살자에게 암살당하는 것하고는 큰 차이가 있다.
만에 하나 배후에 군나르가 있다는 게 밝혀지면 그냥 넘어가기 힘들다.
‘카이트가 살아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나? 그게 걱정되어서?’
카이트가 아카샤니그두의 수하들을 물리치고 살아 돌아오면 군나르와 그쪽 세력들은 상당히 난처해진다.
불현듯이 그게 걱정되기라도 한 걸까.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프레아는 일터로 돌아갔다.
하지만 조용한 창고 안으로 발을 들인 순간, 프레아는 숨을 삼켰다.
“……!”
창고 안에 사람이 있었다.
최근 들어 외모가 상당히 단정해졌다는 평가를 받는 흑발의 청년… 카이트 에인헤랴르였다.
“이 창고의 담당자가 당신인가?”
“네, 맞습니다만…….”
프레아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 했다.
지금 프레아는 산중교단의 창구원이 아니라 상단의 재고 관리 담당자다.
그에 걸맞은 태도를 보여야 했다.
“이쪽 창고에 있는 병장기들을 내가 전부 접수하게 되었다.”
“네?”
“고틀란드에서 병장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말이야. 이미 상단에 대금은 지불했다.”
카이트가 내민 서류를 보니, 확실히 상단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지휘본부에서 대금을 전액 지불하는 계약이었다.
‘혹시 이번 임무에서 기사대에 장비시키려는 건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창고에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무기가 보관되어 있다. 장검만 해도 이백 자루가 넘는다.
그냥 필요한 숫자만 사가면 될 것이지, 창고의 무기를 전부 다 산다는 건 대체 어떤 이유 때문일까.
“문제가 있나?”
“아, 아닙니다.”
프레아는 헛기침을 했다.
“그러면, 운반하는 사람이 오는 겁니까? 시간을 알려 주시면 제가 응대를…….”
“아니, 따로 운반할 사람이 오지는 않을 거다.”
“네?”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장검부터 살펴보려고 하는데.”
“아, 이쪽입니다.”
프레아는 창고 안쪽으로 카이트를 안내했다.
카이트는 이백여 자루의 장검들을 쓱 훑어보니, 냉정한 목소리로 평가했다.
“솔직히 말해서, 별로 좋은 검이 없군.”
“네?”
“그냥 평범한 대장장이들이 아무런 신념도 없이 마구잡이로 만든 검들이다. 질이 들쑥날쑥한 것 같군.”
“…….”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한눈에 보고 파악한 걸까.
“그렇게 들쑥날쑥한 품질의 검들이니… 우연히 좋은 품질의 검이 탄생할 수도 있겠지.”
“……?”
어리둥절한 프레아 앞에서 카이트가 두 자루의 장검을 집어 들었다.
“어떤 것 같나?”
“글쎄요. 제가 잘 몰라서…….”
카이트가 고른 장검은 그나마 질이 괜찮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프레아는 문외한인 것처럼 연기했다. 어디까지나 창고를 지키는 평범한 여자인 것처럼 행세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번 보자.”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카이트가 장검을 각각 양손에 쥐고 서로 칼날을 부딪힌 것이다.
퍼걱!
특별한 오러를 담기라도 했는지, 생전 처음 듣는 소리를 내면서 한쪽 장검이 부러져 버렸다.
“카, 카이트 님, 대체 무슨 짓을…….”
“이건 나중에 치우면 된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대금을 지불한 거니.”
부러진 검을 바닥에 집어 던진 뒤, 카이트가 새로운 검을 하나 더 집어 들었다.
그리고 똑같은 짓을 했다.
깡!
아까 멀쩡했던 검이 부서졌다.
카이트는 미련 없이 부서진 검을 집어 던지고 다시 새로운 검을 손에 들었다.
‘대체 뭐 하는 짓이지?’
당황한 프레아 앞에서 카이트는 계속해서 검을 충돌시켰다.
이 창고에 있는 검을 모조리 부러뜨릴 생각인 걸까.
‘그리고, 저 오러…….’
프레아는 카이트가 매번 검에 담는 오러를 관찰하며 침을 삼켰다.
평범한 오러가 아니다. 저거면 오러 블레이드 수준이다.
그런데 검을 충돌시킬 때마다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이 항상 일정했다.
저렇게 자꾸 오러 블레이드를 반복해서 사용하려면 마력이 아니라 기력이 다해서라도 점점 약해져야 정상인데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똑같아. 마치 기계 같은데.’
일정한 위력으로 카이트는 검을 충돌시켰다.
그렇게 백 자루 정도를 부러뜨린 뒤…….
“흠.”
카이트의 움직임이 멈췄다.
여덟 자루의 검을 부러뜨린 은색 장검 한 자루를 손에 들고 찬찬히 살펴봤다.
“나머지는… 그냥 눈으로 봐도 쓰레기고.”
손도 대지 않은 백여 자루의 검을 힐끔 쳐다본 뒤, 카이트가 검을 허리에 찼다.
“이걸 가져가겠다. 나머지는 상단에 다시 반납하지.”
“……!”
프레아는 비로소 이해했다.
품질이 들쑥날쑥한 이곳 검들 중에서, 우연히 탄생한 양질의 검을 찾아내려고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것이다.
‘그래도, 확실하긴 해.’
오러 블레이드를 전개한 상태에서 여덟 자루의 검을 부러뜨린 검이다.
여기 있는 검들 중에서 최상의 품질일 것이다.
만약 저명한 장인이 만든 검이었으면 수만 골드의 가치가 있었을 터.
하지만 대량생산되는 허접한 검들 사이에 끼어있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대로 창고에 처박혀 있었으면 언젠가 천 골드 미만의 가격으로 팔려나갔을 이름 없는 명검을, 카이트가 정확히 찾아낸 것이다.
“창고지기.”
“아, 네.”
완전히 압도된 프레아 앞에서, 카이트가 짤막하게 말했다.
“다음에는 단검을 보여 줬으면 하는데.”
“…….”
이 남자는 오늘 이 창고를 완전히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을 생각인 걸까.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면서, 프레아는 카이트를 단검 코너로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