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29
▣ 29화. 사지로 향하다 (3)
허리에는 이름 없는 장검 한 자루.
품에는 비수로 쓸 만한 단검 열 자루.
상단에서 고른 무기들을 잘 장비하고 나니 비로소 허전했던 게 채워졌다.
‘일일이 확인해 본 보람이 있었군.’
알레이드와의 전투에서 검이 부러진 뒤, 나는 제대로 된 무기를 갖춰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에인헤랴르의 무기고까지 뒤져봐도 썩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이미 좋은 검들은 소드 엑스퍼트 이상의 검사들이 다 챙겨간 듯했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에게 뺏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상단에서 보관하고 있는 병장기 재고 중에서 쓸 만한 걸 찾아내기로 했다.
검과 검을 충돌시켜 부러진 놈은 버리고 멀쩡한 놈을 고른다는 무식한 방법을 사용했지만, 그 덕분에 그나마 쓸 만한 검을 구할 수 있었다.
‘대금이야 지휘본부에서 다 지불해 주기로 했고.’
이번 임무를 맡는 대신에 최대한 지원을 해주기로 이미 군나르와 얘기를 해뒀다.
‘그런데 창고를 지키던 여자가 마음에 걸려.’
겉모습은 그냥 음침한 인상의 여자였다.
하지만 중간중간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관찰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상당한 마력을 갖고 있었단 말이지. 일반인이 아니었어.’
대체 정체가 뭘까.
시키는 일을 얌전히 잘 하는 것 같아서 굳이 캐묻지는 않았지만, 조금 궁금하긴 했다.
“큰형님, 계십니까?”
“들어가겠습니다.”
그때 헤스테인과 프리드레이프가 방으로 들어왔다.
한때 매일같이 나를 만나러 오던 녀석들인데, 요새는 좀 뜸했었다.
“큰형님, 오늘 출발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맞다.”
“…….”
헤스테인도 프리드레이프도 얼굴 표정이 어두웠다.
이번 임무가 군나르의 함정이라는 걸 눈치채고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이 내적 갈등을 겪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헤스테인, 프리드레이프.”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돌아오면 너희들에게 내 검술을 좀 가르쳐주려고 하는데, 어떠냐.”
“네?”
“그게 정말이십니까?”
두 사람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대련에 응해 준 적은 있어도 검술을 직접 가르쳐 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약속하지.”
“……!”
약속.
그 말을 듣고 두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
“야, 약속하신 겁니다, 큰형님!”
“반드시 돌아오셔야 합니다, 카이트 형님!”
“그래, 나를 믿어라.”
그렇게 말하며 나는 두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돌아오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의논도 해 보자.”
* * *
내 기사대는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완전 무장을 한 상태로 대기하고 있는 기사들을 쓱 훑어보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다들 알고 있겠지만, 간략하게 다시 설명하겠다.”
“…….”
“노예 수용소에 접근하기 위해, 우리는 북서쪽에 있는 ‘붉은 흙의 숲’을 통과한다. 드래곤의 하위종 중 하나인 드레이크가 서식하고 있는 곳이지.”
드레이크.
드래곤에 가장 가까운 육체 능력을 지난 괴물의 이름을 듣고, 기사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드레이크와 마주치지 않고 숲을 통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다들 각오를 간단히 해둬라.”
“네……!”
“좋다. 그럼 출발하자.”
내 귀환을 바라는 자들과, 내 죽음을 바라는 자들.
그들이 있는 고틀란드를 뒤로하고, 나는 기사대와 함께 출발했다.
* * *
얼어붙은 황야 위에 세워진 노예 수용소.
이곳의 관리자를 맡고 있는 용백작(龍伯爵) 테르코스는 술잔을 손에 든 채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면 알레이드가 정말로 용살검가의 포로가 되었단 말이냐?”
“네, 확실한 것 같습니다.”
“용귀족의 수치로군.”
테르코스는 알레이드와 마찬가지로 아카샤니그두를 따르는 용귀족이었다.
다만 드래곤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용귀족이라는 특권계급으로서의 자부심이 더 강했다.
이건 테르코스가 유서 깊은 용귀족 가문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북부대공 시구르드나 다른 소드 마스터에게 패한 것도 아니고, 무명에 가까운 용살검가의 장남한테 패하다니… 용살검가가 우리 용귀족들을 얼마나 비웃겠나.”
테르코스는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러자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인간 노예들이 다급히 튀어나와 유리 조각을 치우고 와인 자국을 닦았다.
“아카샤니그두 님은 어떻게 반응하고 계시지?”
“매우 화가 나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용살검가의 장남에게 분노하고 있는 상태셨기 때문에…….”
부관 역할을 하는 노예의 말을 듣고 테르코스는 다시 인상을 찡그렸다.
“서열을 생각하면 다음에는 나한테 명령이 떨어지겠군.”
“그러면…….”
“곤란하게 되었구나. 안 그래도 광휘창가(光輝槍家) 놈들을 잡아야 하는 상황인데.”
광휘창가.
그건 북서 방면의 대귀족인 피어너 공작 가문을 가리키는 말이다.
용살검가라 불리는 에인헤랴르 대공 가문보다 위상은 떨어지지만, 예로부터 드래곤과 적대해 온 명문가다.
“광휘창가의 후계자들이 이 노예 수용소의 존재를 눈치채고 이 근방에서 알짱거리고 있지. 그놈들부터 잡아야 한다.”
테르코스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카샤니그두 님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우리는 광휘창가 쪽에 집중하도록 하겠다. 카이트 에인헤랴르와의 싸움은 그 뒤에 생각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테르코스 님.”
물론, 테르코스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이미… 테르코스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 * *
‘붉은 흙의 숲’은 이름대로 토양이 붉은색인 숲이었다.
그냥 갈색에 가까운 색이 아니라 정말로 뚜렷한 적색이어서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카이트 님.”
다른 기사들과 함께 뒤에서 따라오던 모르트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만약 드레이크가 나타나면 지난번에 말씀하신 그 ‘진법’이라는 걸 써서 대처하는 겁니까?”
“너희한테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쓰냐. 애초에 너희는 아직 그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어.”
계도나후진.
계도성과 나후성에서 이름을 따온 흑사련의 진법.
나는 이 녀석들에게 그 계도나후진을 습득시키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한참 멀었다.
“솔직히 좀 불안하긴 합니다.”
그때 옆에서 어윈이 속삭였다.
“드레이크는 드래곤에 근접한 육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마법적 능력이 없고, 지능도 몬스터 수준이지만… 그래도 위험한 괴물입니다.”
“걱정하지 마라.”
“네?”
나는 담담히 말했다.
“내가 있으니까.”
“…….”
어윈도 모르트도 할 말을 잃은 듯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너무 떠들지 마라.”
“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오는 법이라서 말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전방에서 나무가 크게 흔들렸다.
“드레이크가 나타났다. 전투 대형을 취해라.”
“아, 알겠습니다!”
쿵!
커다란 나무를 부러뜨리면서, 한 마리의 대형 도마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 생김새는 확실히 드래곤과 비슷했다.
하지만 날개가 없고, 도마뱀처럼 네 발로 땅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지성이 느껴지지 않는 눈빛이다. 어쩌면 리자드맨보다 멍청할지도.’
드레이크의 출현에 기사들이 신속히 움직였다.
실력이 뛰어난 어윈과 모르트 등의 기사들이 앞으로 나섰고, 나머지는 흩어져서 주위를 경계했다.
“드레이크 말고 다른 괴물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주위를 제대로 경계해라.”
“네!”
“내가 선두에 선다. 가자!”
앞으로 나서자 드레이크가 나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위협적인 적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이해했는지, 입을 크게 벌리고 나한테 달려들었다.
“캬아아아아!”
포효하면서 돌진해 오는 드레이크.
나를 물어뜯기 위해 턱을 벌렸지만, 내 반응이 더 빨랐다.
검강이 전개된 칼날이 드레이크의 입으로 향했다.
“캬아악!”
퍼걱!
드레이크의 송곳니가 여러 개 부러졌다.
반사적으로 드레이크가 움찔한 사이, 내 뒤를 따르던 기사들이 양옆으로 움직였다.
그들이 맡은 역할은 측면에서 드레이크를 견제하는 것이다.
“캬아아아!”
감히 어딜 덤비냐고 외치는 듯이 포효하며 드레이크가 몸을 비틀었다.
앞다리와 꼬리에 부딪혀서 나가떨어지는 기사들이 속출했다.
‘그래도, 치명상을 입은 사람은 없군.’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 기사들을 힐끔 쳐다본 뒤, 나는 계속 공격을 펼쳤다.
‘수라비룡검, 취우(驟雨).’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처럼, 빠르게 쏟아진 연속 공격이 드레이크의 머리를 덮쳤다.
단단한 가죽으로 뒤덮인 머리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캬아아악!”
그런 상태에서도 드레이크는 뒷걸음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상처는 그리 깊지 않고, 치명상에는 거리가 있었으니까.
‘확실히 육체 능력이 강한 건가.’
호신강기 같은 걸로 육체를 보호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육체 자체가 단단했다.
이쪽 세계에 와서 여러 괴물들과 싸워 봤지만, 이렇게 단단한 괴물은 처음이었다.
“캬아아아!”
드레이크가 몸부림치면서 주위의 기사들을 다 떨쳐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나만 공격하겠다는 듯이 온몸을 사용해 나에게 달려들었다.
강인하기 그지없는 턱, 앞다리, 꼬리를 전부 다 사용해 거친 공격을 펼쳤다.
‘이 정도 검강으로 안 된다면…….’
나는 숨을 들이마시면서 내공을 더 끌어 올렸다.
‘더 강하게 해야겠군.’
3갑자의 내공을 모조리 활용해, 최고 출력의 검강을 펼친다.
견고한 강기에 둘러싸인 무명의 검을 치켜들고, 땅을 박차며 움직였다.
“캬아악?!”
본능적으로 눈치챈 걸까.
드레이크가 몸을 움츠리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수라비룡검, 섬뢰.’
전광석화 같은 찌르기가 드레이크의 오른쪽 앞다리를 파고들었다.
가죽을 뚫고 뼈를 찔렀다. 이걸로 오른쪽 앞다리는 무력화되었을 것이다.
“크아아아아!”
격통에 괴성을 지르는 드레이크.
나는 칼을 비틀어 앞다리에 더 큰 상처를 남긴 뒤, 미끄러지듯이 그 아래쪽으로 움직였다.
‘몸집이 크니 이런 움직임에는 대응하기 어렵겠지.’
드레이크의 두꺼운 목.
그 앞쪽이 무방비하게 드러난 순간.
‘수라홍련검, 거염(鋸炎).’
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러 드레이크의 목을 찢었다. 갈라진 가죽 사이로 불꽃이 침투해, 마치 톱니로 긁듯이 드레이크의 목 내부를 유린했다.
“캬아아아악!”
격렬한 비명.
드레이크가 거체로 나를 깔아뭉개려 했지만, 나는 신속한 움직임으로 그 밑에서 빠져나왔다.
빠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드레이크의 목에 더 큰 상처를 입히면서.
“끄으으으…….”
신음소리를 내며 털썩 쓰러지는 드레이크.
그 상태로 드레이크는 잠시 경련했지만… 결국 움직임을 멈췄다.
“카, 카이트 님이 드레이크를 해치우셨다!”
“우오오오오!”
환호하는 기사들.
그들 앞에서 나는 몸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역시 카이트 님이십니다!”
“드레이크조차 쓰러뜨리다니, 이거 어쩌면……!”
지난번에 나는 헤스테인과의 대련을 마치고 선언했다.
아카샤니그두를 쓰러뜨리는 것이 이 기사대의 일차 목표라고.
“정말로 드래곤을… 아카샤니그두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 카이트 님이라면!”
흥분한 기사들 앞에서 나는 천천히 드레이크의 시체를 살펴봤다.
그리고 심장 근처에서 뚜렷한 마력이 느껴지는 걸 확인했다.
‘평범한 몬스터의 마석에서 흡수한 마력으로는 더 이상 내공이 늘어나지 않지만…….’
이놈은 드래곤에 가장 가까운 존재인 드레이크.
이 녀석의 마석이라면, 내 내공을 한 단계 더 늘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