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38
▣ 38화. 검마의 검으로 (1)
“카이트 님?”
“카이트 님이 돌아오셨어?!”
“세상에……!”
활짝 열려 있는 성문 안으로 발을 들이니, 수많은 기사가 모여 있었다.
“왜 이리 많이 모여 있는 거지?”
“큰형님!”
쿵 소리를 내면서 성벽 위에서 뛰어내린 헤스테인이 나를 얼싸안았다.
“살아 계셨군요!”
“그럼 살아 있지 죽어 있냐?”
나는 헤스테인을 바로 밀어냈다.
땀 냄새나는 남정네에게 안겨 있어 봤자 기분만 나쁘다.
“프리드레이프, 어떻게 된 거지?”
“카이트 형님…….”
마찬가지로 성벽 위에서 뛰어내려온 프리드레이프가 기뻐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카이트 형님이 드래곤들의 세력권에 혼자 남겨졌다는 걸 알고, 형님을 구출하러 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병력으로?”
“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많은 기사가 출진하면 드래곤들도 전면 공격이 시작된 줄 알 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들도 마음속으로는 카이트 형님이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있긴 했습니다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희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네?”
“내가 너희한테 약속했었잖아. 돌아오면 너희들에게 검술 가르쳐주겠다고.”
“아……!”
잊고 있었다는 듯이 프리드레이프가 숨을 삼키자, 옆에서 헤스테인이 내 손을 붙잡았다.
“큰형님! 저는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님은 죽지 않았을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아까 왜 ‘살아 계셨군요!’라고 환호한 거지?”
“그, 그건…….”
말꼬리를 흐리는 헤스테인에게서 시선을 돌리자, 우두커니 서 있는 모리안의 모습이 보였다.
“모리안 공녀도 있었군.”
“카이트 님, 정말로, 정말로…….”
모리안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 걸 알 수 있었다.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모리안 공녀야말로 왜 그렇게 감격하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나는 딱히 시간을 벌기 위해 희생양이 되겠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말이야. 놈들을 막는다고만 했지.”
“하, 하지만, 그때 모습이 너무 비장하셔서……!”
“딱히 비장한 분위기를 연출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흑……!”
결국 모리안은 울음을 터뜨렸고, 근처에 있던 그녀의 친위대가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줬다.
“아, 그러고 보니.”
“카, 카이트 님…….”
근처에 우두커니 서 있는 군나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군나르 지휘본부장,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습니다.”
“네, 네… 수고하셨습니다.”
“임무 수행 중에 계속 느꼈던 건데, 지휘본부장이 전해준 정보가 많이 부정확하더군요.”
“……!”
“저쪽 피어너 가문 사람들이 갖고 있던 정보와 대조해서 보완하지 않았다면 크게 고생할 뻔했습니다. 지휘본부장이 전해준 정보만 믿었다면 이렇게 무사히 생환하는 건 어려웠겠죠.”
군나르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저뿐만 아니라 기사대 전원이 전멸했을 테고, 잡혀간 사람들을 구해내지도 못했을 겁니다.”
“카, 카이트 님…….”
“아, 지휘본부장님을 비판하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에인헤랴르의 정보 분석 능력에 좀 문제가 있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할 뿐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군나르를 쳐다보는 시선이 따가워졌다.
군나르는 상당히 난처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노예 수용소의 위치는 정확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것까지 잘못된 정보였으면 저뿐만 아니라 여기 모리안 공녀도 큰 고생을 했겠죠.”
“네…….”
원래 군나르는 대공비인 프레데군다의 자식들을 위해 나를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건네줘 나를 사지(死地)로 보낸 것이었는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 돌아왔으니 상당히 난감할 것이다.
“그런데 큰형님.”
그때 헤스테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드래곤들의 부하들이 몰려 왔을 텐데, 대체 어떻게 이 정도로 금방 돌아오신 겁니까?”
“혼자 움직이는 거니까 이동 시간 자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 민간인들을 지키면서 행군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움직일 수 있었지.”
“아…….”
“드래곤들의 부하들이야 뭐, 적절히 쓰러뜨리면 되는 거고.”
“그 적절히가 궁금합니다만.”
“그냥 다리 하나를 막고 차례차례 덤벼드는 놈들을 상대했을 뿐이야.”
“다리 하나를 막고? 좀 더 자세히 부탁드립니다!”
“거참…….”
헤스테인 말고도 수많은 기사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휴식은 한참 뒤에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어쨌든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카이트 님.”
“너희야말로.”
고틀란드 시내의 술집에서 나는 기사대의 기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일종의 뒤풀이라 할 수 있었다.
“우리가 구출한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지?”
“고향 근처로 돌아가려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언제든지 또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일부는 여기 고틀란드에 남고, 일부는 피어너 가문 쪽으로 갈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었군…….”
어윈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을 때.
갑자기 술집 문이 열리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아, 저기 계시네!”
“카이트 공자님!”
그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공자님!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정말로 공자님에게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공자님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노예 수용소에서 구출된 사람들이었다.
다 함께 무릎을 꿇고 나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었다.
“카이트 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중에서 갓난아기를 안은 여인 한 명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역시 용살검가는 저희들을 지켜주시는군요! 저희가 목숨을 건진 건 전부 카이트 님 덕분입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앞으로의 일이 더 중요합니다. 고틀란드에 남든, 다른 삶의 터전을 찾든… 잘 헤쳐 나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카이트 님……!”
나는 감사를 표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응대해 줬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한테 감사 인사를 하러 온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하하, 역시 이럴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단 말이죠.”
뒤쪽에서 모르트가 코를 긁으면서 말했다.
“에인헤랴르의 기사로서 할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맞다.”
어윈도 고개를 끄덕이며 모르트의 말에 동의했다.
“앞으로도… 카이트 님 밑에서 최선을 다해 보자.”
“물론이죠! 그런 의미에서 다 같이 건배합시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술자리가 계속 진행되었다.
* * *
군나르는 착잡한 심정으로 술잔을 기울였다.
일부러 카이트를 위험한 곳으로 보냈던 건데, 멀쩡히 살아 돌아와 버렸다.
납치당한 사람들을 구출했을 뿐만 아니라, 혼자 남아 추격대를 막고 생환했다는 영웅적인 무용담까지 세워 버렸으니… 군나르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프레데군다 님이 화를 내실 텐데… 골치 아프군.”
지금은 부재중인 시구르드가 돌아오면 카이트에게 큰 포상을 내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카이트는 차기 북부대공 경쟁에서 유리해진다.
“그걸로 끝이 아니지. 아까 보니 나한테 원한을 갖고 있는 것 같았는데, 저러다가 나한테 보복이라도 하면…….”
“고민이 많은 모양이군요.”
“……!”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군나르는 흠칫했다.
어느새 검은 복면을 쓴 여자가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아, 와, 와 줬군!”
그녀는 산중교단의 ‘창구원’이다.
지난번에도 카이트 암살을 문의했었는데, 오늘 카이트가 돌아오고 나서 다시 불러들인 것이다.
“지난번에는 그냥 문의만 하고 끝냈는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서 말이다.”
군나르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1,200만 골드, 지불하겠다.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암살해 줬으면 한다.”
1,200만 골드.
그것이 지난번에 산중교단에서 책정한 카이트의 ‘가격’이었다.
이건 군나르의 전체 자산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다.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와도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카이트를 해치우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지난번에 자네가 말했었지. 낮은 금액으로 의뢰하려면 일찍 움직여야 한다고.”
“…….”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군. 이대로 내버려 두면 더 비싸질 거야.”
1만 골드도 안 되던 놈이 5만 골드, 100만 골드, 200만 골드, 1,200만 골드로 높아졌다.
앞으로 얼마나 더 높아질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일단 착수금부터 주지. 일이 끝나면 1,200만 골드는 확실히 지급할 테니, 최대한 신속하고 은밀하게…….”
“지휘본부장.”
창구원이 손을 치켜들었다.
“멋대로 진행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뭐라고?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1,200만 골드가 아니라 5,000만 골드를 준비해 줘야 하니까요.”
“……!”
군나르는 귀를 의심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분명 지난번에는 1,200만 골드라고 했잖아!”
“그새 올랐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30분 전에.”
“뭐, 뭐라고?”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무용담을 듣고 있었던 건 당신들뿐만이 아니었다는 얘기지요.”
“……!”
“지난번에 가격 갱신이 늦어져서 손해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 이후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가격은 최대한 신속하게 갱신하여 교단 전체에서 공유하고 있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5,000만 골드라니, 그 정도 금액이면…….”
“북부대공보다는 저렴하죠. 이 정도면 합리적인 가격일 겁니다.’
“젠장!”
군나르는 주먹을 꽉 쥐며 소리쳤다.
“됐다! 저리 꺼져라! 차라리 내가 직접 죽이는 게 낫지!”
“할 수 있으시면 해보시지요. 뒷일을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창구원이 비웃는 듯한 말투로 말한 뒤,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또 뭐냐?!”
“잊어버렸습니까? 우리한테 암살 문의를 하면 입막음 비용을 포함한 견적료를 줘야 한다는 것을.”
“……!”
“5,000만 골드이니, 1할만 주시면 됩니다.”
“500만 골드를 내놓으라고?”
군나르는 열이 받쳐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네놈들이 암살자 단체가 아니라 도둑놈 단체였구나! 뭐 하나 해 준 것도 없으면서 500만 골드를 내놓으라고?!”
“해 준 게 없다니요? 이렇게 상담도 해줬는데.”
“웃기지 마라! 너희한테는 더 이상 1골드도 줄 수 없다!”
“후회하게 될 텐데요.”
군나르는 근처에 두었던 검을 집어 들었다.
“내가 카이트 암살을 문의했다는 얘기를 퍼뜨리기라도 할 건가? 여기서 네 목이 달아나도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오러를 전개한 뒤, 군나르는 바로 창구원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직후.
“후회할 거라고 했습니다.”
“으윽!”
푹!
군나르는 날카로운 통증에 검을 떨어뜨렸다.
어느새… 군나르의 손등에 단검이 꽂혀 있었다.
“어, 어떻게, 의뢰 받는 심부름꾼 따위가…….”
“산중교단을 얕보지 마십시오.”
군나르는 베테랑 소드 엑스퍼트다.
그런 군나르의 눈에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속도였다.
“분명히 말했습니다. 500만, 빨리 준비해 주시길.”
“제, 젠장…….”
“만약 다른 마음을 먹을 경우… 당신이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암살을 문의했다가 산중교단에게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될 겁니다.”
“……!”
군나르는 뒤늦게 깨달았다.
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여, 자신이 어마어마하게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산중교단과 적대하게 되는 상황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
“500만 골드, 공금을 유용해서라도 준비해 주십시오.”
협박을 남기고, 창구원은 바로 자리를 떴다.
혼자 남은 군나르는 피가 철철 흐르는 손을 부여잡은 채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빌어먹을…….”
여기서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산중교단에 암살을 의뢰할 수 없다면, 결국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그래, 그놈이 더 이상 성장하기 전에… 빨리 손을 써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카이트를 죽인다.
군나르가 그렇게 결심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