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42
▣ 42화. 검마의 검으로 (5)
유트발트가 일격에 쓰러졌다.
그 사실에 놈들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저, 정신 차려라!”
가장 먼저 충격에서 벗어난 에드르손이 목소리를 높였다.
“계속 공격을 퍼부어야지, 뭐 하고 있는 거야!”
“하, 하지만, 유트발트의 오러 블레이드조차 맨몸으로 막아 냈는데…….”
“저 정도의 방어막을 온몸에 전개할 수 있을 리 없어! 오러 블레이드를 칼날 부위에만 전개할 수 있듯이, 육체의 일부분에만 전개할 수 있을 거야!”
“……!”
에드르손의 추측은 꽤 정확했다.
전신에 호신강기를 전개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8서클 마력의 오러 블레이드를 막을 수 있을 정도의 호신강기는 육체 일부분에만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나르의 말대로 어디선가 이상한 비전서를 손에 넣은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저 녀석은 평범한 인간이야! 몸 전체에 오러 블레이드 수준의 방어막을 전개할 수는 없어!”
“그, 그렇군!”
“어쨌든 녀석은 비장의 수를 보여 줬어! 그럼 그걸 감안하면서 몰아치면 돼! 유트발트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마!”
“아, 알겠다!”
에드르손의 설명을 들은 구시온이 다급히 앞으로 나섰다.
장검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내 빈틈을 노리려 했다.
내 손등의 호신강기를 의식한 움직임이었다.
‘변화가 많은 검이군.’
허초(虛招)가 많이 섞여 있다.
그냥 어설프게 눈속임을 하는 건 아니다. 제대로 검술을 단련한 자의 움직임이었다.
“어떠냐, 용살검가의 장남!”
자기 검술이 먹혀들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구시온이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굼뜬 유트발트 하나를 처리했다고 잘난 척 하지 마라! 내 검술로……!”
“질문이 하나 있는데.”
나는 구시온의 공격을 막아 내며 말했다.
“차륜전으로 바뀐 건가?”
“뭐라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나한테 덤비며 내 힘을 빼는 전략이냐고. 처음에는 다 함께 나한테 덤벼드는 분위기였잖아.”
“……!”
흠칫 놀라는 구시온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향했다.
에드르손이 창을 들고 자세만 취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열성적으로 달려들던 군나르도 에드르손의 태도를 봤기 때문인지 지금은 소극적으로 내 주위를 맴돌기만 하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너는 그냥 버리는 패가 된 것 같은데.”
“에, 에드르손, 군나르!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협공해야지!”
“음, 알겠다.”
“아, 알고 있다!”
에드르손이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소극적이었다.
군나르도 다시 공격을 개시했지만, 이쪽도 움직임이 영 시원치 않았다.
“협공도 호흡이 잘 맞아야 하는 거지. 이래서는 아무 소용없지.”
“자, 잠깐, 다시 태세를 정비해서…….”
“동료들이 의리가 없구나.”
파앗!
수라비룡검 섬뢰가 작렬했다.
동요하면서 빈틈이 생긴 구시온의 가슴을 찌른 뒤, 바로 물러섰다.
“이런, 젠장…….”
가슴에 피를 흘리면서 구시온이 쓰러졌다.
“에, 에드르손, 대체 왜…….”
“미안하게 됐군, 구시온.”
에드르손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힘을 온존하는 편이 더 승산이 높을 것 같아서 말이다.”
“아까하고, 말이, 다르잖아…….”
“그래도 네가 힘써 준 덕분에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수법은 거의 다 파악할 수 있었다.”
“크으…….”
신음하는 구시온을 내버려 둔 채, 에드르손이 군나르에게 시선을 향했다.
“군나르, 당신한테도 이 편이 좋을 거야.”
“에드르손…….”
“이곳은 고르단 자작의 영지 안이야. 고르단 자작의 기사단장인 구시온이 흑곰 용병단의 유트발트와 손을 잡고 카이트를 습격했다고 처리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우리가 구시온과 유트발트를 단죄했다고 처리하자고?”
“그래야 깔끔하지. 정체불명의 산적들에게 당했다는 것보다는 더 그럴듯하지 않나.”
“냉혹하군. 구시온도 유트발트도 당신 동료 아니었나?”
“언젠가는 연합의 주도권을 놓고 다퉈야 하는 사이지. 내 손을 더럽히지 않고 미리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잘된 일이야.”
“…….”
“물론, 우리 동맹은 계속 유지될 거야. 피어너 가문을 몰아낼 때까지, 당신하고는 앞으로 계속 돈독한 관계를 맺고 싶군. 일대일로 말이다.”
군나르에게 말을 건내는 에드르손을 보면서, 나는 차갑게 내뱉었다.
“정말로 보기 좋은 광경이군.”
“카이트 에인헤랴르…….”
“신의(信義)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어. 군나르, 정말 너하고 어울리는 놈하고 손을 잡았군.”
군나르를 쏘아보며 말하자, 에드르손이 코웃음을 쳤다.
“용살검가의 애송이, 현실은 비정한 거다. 너 같은 어린애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비정한 건 네 지능이겠지, 어리석은 놈.”
“뭐라고?”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도 군나르가 너한테 계속 협력할 것 같나? 어차피 너와 군나르 사이에 진정한 신뢰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적과 싸우는 도중에 아군의 뒤통수를 치는 모습은 보여 주지 말았어야지.”
“…….”
에드르손의 표정이 굳어졌다.
슬며시 군나르에게 시선을 향했지만, 군나르는 그 시선을 피했다.
“안 그래도 너희들은 언젠가 동맹을 파기할 사이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군나르는 에인헤랴르의 기사니까. 앞으로 네가 세력을 키워 나가면 프레데군다 대공비와 그 자식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지.”
“…….”
“결국 너희는 적대할 수밖에 없어.”
이런 건 에드르손도 군나르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파기될 동맹이라는 걸 이해한 상태에서 손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 내가 이 상황에서 대놓고 언급해 버리면…….
“…….”
“…….”
에드르손과 군나르 사이에서 불편한 시선이 오갔다.
서로에게 갖고 있던 불신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라, 참 이상하게 됐군.”
나는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 대 일로 나를 몰아세우려 했는데, 이거 아무래도 일대일을 반복하는 모양새가 된 것 같은데.”
“……!”
“군나르, 아마 에드르손은 다음에 너를 내세울 거야. 네가 쓰러진 다음에 마지막으로 자기가 나서려 하겠지.”
숨을 삼키는 군나르를 향해 손을 까닥였다.
“빨리 와라, 군나르. 에드르손의 승리를 위한 희생양이 되어 줘야지.”
“…….”
군나르의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에드르손이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군나르, 귀 기울일 필요 없다! 협공이다!”
“아, 알겠다!”
에드르손이 먼저 앞으로 나섰고, 군나르도 다급히 뛰어나왔다.
“우리 둘이서 협공하면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다! 흔들리지 마!”
파앗!
에드르손의 창이 공기를 가르며 나한테 쇄도했다.
처음부터 느꼈던 거지만, 에드르손의 실력은 유트발트나 구시온보다 한 단계 위였다.
“공격은 신속하고 방어는 탄탄하다! 그 점을 염두에 두면서 움직여!”
“알고 있다!”
그리고 군나르도 에드르손 못지않은 실력자였다.
검술 자체는 헤스테인 및 프리드레이프와 같은 계통인 것처럼 보였는데, 숙련도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역시 용살검가의 중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용살검가의 애송이! 용귀족들을 연달아 쓰러뜨리고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것 같은데… 본때를 보여 주마!”
에드르손의 날카로운 창끝이 연속해서 내 급소를 노렸다.
창날에 오러 블레이드가 전개되어 있기 때문에, 호신강기로 보호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이 명중하면 내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 것이다.
“군나르! 좌측으로 파고들어! 내가 우측에서 공격하겠다!”
“알겠다……!”
얼핏 보기에 에드르손은 전력을 다하는 것 같았다.
군나르를 희생시킬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의 협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표면화된 불신감이 서로의 호흡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군나르, 이것 참 큰일 났군.”
“뭐, 뭐가 말입니까?”
“에드르손이 슬쩍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어. 결국 너를 희생양으로 삼기로 결심한 것 같군.”
“……!”
군나르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그리고 에드르손이 자기보다 뒤쪽에 있다는 걸 확인했다.
‘에드르손은 긴 창을 들고 있으니까, 당연히 더 뒤에 있을 수밖에 없지.’
에드르손이 일부러 뒤로 물러선 건 아니다.
군나르도 침착하게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까부터 계속 찝찝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던 만큼 불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에, 에드르손, 제대로……!”
군나르가 에드르손을 질타하려고 한 순간.
수라비룡검의 초식 중 하나인 상연이 펼쳐졌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처럼, 아래쪽에서 솟구치는 검이 군나르의 오른쪽 어깨를 베었다.
“크억……!”
치명적인 빈틈을 보인 바람에 오른팔을 잃은 군나르.
비틀거리는 그 몸을… 에드르손을 향해 밀쳤다.
“……!”
흠칫하면서 에드르손이 군나르를 피했다.
사실 그게 최선이었다. 군나르를 부축해 주면 빈틈이 생기고, 그렇다고 해서 창으로 군나르를 꿰뚫으면서 나한테 공격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손도 내밀어 주지 않다니 정말 비정한 놈이군. 결국 동료 세 명을 제물로 바친 건가. 그렇게 승리가 고팠나?”
“닥쳐라……!”
땅에 쓰러지는 군나르를 내버려 둔 채 에드르손이 다시 창을 휘둘렀다.
내 공격을 차단하면서 나에게서 빈틈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공방일체의 움직임이었다.
“요, 용살검가의 애송이! 네 녀석의 검술은 이미 다 파악했다!”
“그런가?”
“용살검가의 스타일하고는 상당히 다른, 초고속의 검술! 빠르고 날카롭지만, 공격 하나하나는 그리 무겁지 않다! 그렇다면……!”
확실히 에드르손은 내 움직임에 잘 대응하고 있었다.
특히 방어적인 기술은 모리안보다 몇 수 위인 것으로 보였다.
창날에 전개되어 있는 오러 블레이드도 견고하고 육중해, 내 검강과 부딪칠 때마다 굉음이 발생했다.
“착각하고 있군, 에드르손.”
“뭐라고?”
“나는 쾌검(快劍)만 쓰지는 않는다.”
유트발트, 구시온, 군나르를 쓰러뜨릴 때는 수라비룡검만 썼다.
속도를 추구한 수라비룡검으로도 충분히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에드르손이 착각을 해버린 것이다.
내가 쾌검 위주로 싸우는 검사라고 말이다.
“예전에 나는 검마(劍魔)라고 불렸다. 딱히 마(魔)라 불릴 만한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불린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었지.”
“갑자기 뭔 이상한 소리를…….”
“그중 하나가… 전투 도중에 검법을 자꾸 바꾸는 게 영 사이(邪異)하다는 것이었다. 신념이 없는 검이라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나 뭐라나. 정말 개소리였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소리를 빽 지르는 에드르손.
그가 펼치는 맹렬한 창술에 대응해, 나는 강렬한 양기를 끌어 올렸다.
“지금까지 너한테 보여 준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염검(炎劍).
수라홍련검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한 검을 휘둘렀다.
빠른 속도로 적을 압도하기 위한 검이 아닌, 타오르는 불꽃으로 적을 집어삼키기 위한 검.
“……!”
쿠쿵!
창날과 충돌한 순간, 불꽃이 에드르손의 오러 블레이드를 집어삼켰다.
오러 블레이드 자체도 손상되었고, 철벽같았던 에드르손의 방어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내 검을 이해 못하는 건, 그놈들의 깊이가 형편없기 때문인데 말이다.”
이어서, 뇌검(雷劍).
수라창뢰검의 푸른 번개를 휘감은 검을 휘둘렀다.
전광석화처럼 파고든 검이 창자루를 부러뜨리고, 이어서 에드르손의 오른팔까지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크, 아아악……!”
“이것이…….”
절규하는 에드르손을 향해, 마지막으로 검을 휘둘렀다.
“나의 검이다.”
검마의 검.
그것이 에드르손을 완전히 제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