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43
▣ 43화. 신화병장 (1)
“세, 세상에…….”
지시한 대로 2시간 뒤에 도착한 모리안은 처참한 광경에 숨을 삼켰다.
나에게 설명을 듣고도 아직 믿기지 않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수장들이 당하니 잔챙이들은 다 도망쳤어. 에드르손과 군나르는 지혈을 해서 아직 살아 있는 상태라, 바로 피어너 가문으로 데려가고 싶은데.”
“아, 알겠습니다.”
군나르는 고틀란드로 끌고 가는 게 맞지만, 거리가 멀기 때문에 끌고 가는 도중에 숨을 거둘 가능성이 있었다.
피어너 가문으로 데려가는 편이 더 가깝기 때문에, 거기서 뒤처리를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설마 이 사람들이 다 손을 잡고 있었다니.”
“군나르는 그렇다 쳐도, 에드르손과 구시온, 유스발트가 동맹 관계였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건가?”
“네, 각기 다른 시기에 독립한 가신들이라…….”
모리안이 착잡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죄송합니다, 카이트 님.”
“뭐가 죄송하지?”
“저희 피어너 가문의 영지 근처에서, 피어너 가문 출신의 인물들이 벌인 일입니다. 저희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에인헤랴르에도 책임이 있겠지. 저쪽 군나르도 에인헤랴르 사람이고.”
한쪽 팔을 잃고 혼절해 있는 군나르를 쳐다보며 말했다.
“피어너 가문의 영지 근처라고 말하지만, 에인헤랴르 가문의 영지 근처이기도 해. 저런 놈들이 자기 세력을 키우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군.”
“카이트 님…….”
“좀 정리가 필요하겠어.”
에인헤랴르의 주인인 시구르드가 전쟁 때문에 정신이 없다면… 장남인 내가 나서야 할 것이다.
* * *
피어너 공작 가문의 본거지는 얼스터라는 이름의 지역이다.
중심부에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있으며, 그 주변에도 소소하게 민가가 있다.
다만 고틀란드보다는 살짝 남쪽에 있기 때문인지 농경지도 꽤 있었다.
“만나서 반갑소, 카이트 공자.”
나를 맞이해준 플란 피어너 공작… 즉, 모리안의 아버지는 소문대로 나약해 보이는 남자였다.
미안한 얘기지만 에드르손 등이 역심(逆心)을 품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리안을 도와줘서 고맙소.”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공작 전하.”
“평소라면 대대적으로 파티를 열어 환대해야 하겠지만, 솔직히 지금은 그러기가 어려울 것 같소. 에드르손과 구시온, 유트발트가 그런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니… 상당히 심란한 상황이오.”
플란 피어너는 한숨을 내쉰 뒤, 곁에 있던 남자에게 시선을 향했다.
“니얼 경, 뒷일은…….”
“제가 맡겠습니다. 들어가서 쉬시지요.”
“음, 부탁하겠네.”
니얼이라 불린 남자는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기사였다.
이목구비가 단정한 미남자라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니얼 경은 아버지가 가장 신뢰하는 기사입니다. 실력도 매우 뛰어나죠.”
옆에서 모리안이 귓속말로 니얼을 소개해 줬다.
“카이트 공자님,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공작님은 연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대대적인 환영 행사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딱히 연회를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시군요. 역시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듣던 소문?”
“유르고스 남작령에 찾아갔을 때는 다짜고짜 호화로운 연회를 열어달라고 요구했다고 들었습니다.”
“…….”
“역시 허황된 소문이었군요. 안심했습니다.”
아니, 그건 사실인데…….
“하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만…….”
“오늘 저녁의 만찬, 최대한 신경 써서 준비해 보겠습니다. 그때까지 휴식을 취해 주십시오.”
니얼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넘겨주신 포로들은 저희가 치료를 한 뒤 심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에인헤랴르 쪽에서 납득할 수 있는 성과를 내도록 할 테니, 안심하고 맡겨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우리가 데려온 민간인들도 피어너 측에 넘겼고,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없다.
니얼 말대로 휴식을 취하면서 대기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입을 다문 채 주위 공기를 살폈다.
고틀란드보다 온난한 편인 얼스터의 공기가… 왠지 모르게 서늘하게 느껴졌다.
* * *
“끄으…….”
지하 감옥.
큰 부상을 입은 채 신음하고 있던 에드르손은 조용한 발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오랜만이군요, 에드르손. 아니, 지금은 베스토르 백작이던가요.”
“니, 니얼……!”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미남자의 얼굴을 보고 에드르손은 숨을 삼켰다.
“그런데 정말 참혹한 모습이군요. 카이트 공자님에게 당했다던데, 사실입니까?”
“그, 그렇다. 그 녀석,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해서… 8서클의 실력자 네 명이서 덤벼들었는데 당했단 말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설마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걸까요.”
“그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소드 엑스퍼트로서는 최상급의 실력을 지닌 것 같았다. 검술이 변화무쌍했고… 아, 그래, 용귀족들처럼 화염의 오러를 썼다!”
“화염의 오러?”
“그래! 오러가 불타오르더니 내 오러 블레이드를 집어삼켰다!”
“그건 용귀족들이나 쓰는 것일 텐데…….”
“놀라운 게 뭔지 아느냐? 그 직후에는 오러가 번개처럼 변화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스타일의 오러였다!”
“…….”
“그놈… 뭔가 이상하다!”
부상을 입은 몸으로 너무 떠들어대서 숨이 찼다.
에드르손이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니얼이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에드르손, 혹시 카이트 공자님이 배룡주의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뭐? 그, 글쎄…….”
“카이트 공자님은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장남이고, 배룡주의자와 용귀족들을 처단해 왔습니다. 그래서 가능성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하긴 합니다만… 화염의 오러와 뇌전의 오러를 쓴다는 게 신경 쓰이는군요.”
“트, 특별한 비전서를 얻은 거 아닐까?”
“글쎄요…….”
니얼이 관자놀이에 손끝을 대며 중얼거렸다.
“그동안 카이트 공자님이 상대해 온 건 악룡 파프니르 파벌의 아카샤니그두를 따르는 자들이었죠. 어쩌면 그쪽 파벌과 적대하는 드래곤과 연결되어 있는 걸지도…….”
“니, 니얼, 그런 얘기는 됐으니까, 나부터 어떻게 좀 해 줘.”
에드르손은 신음하며 말했다.
“이대로 얼스터에 있든, 에인헤랴르 쪽으로 끌려가든, 나는 죽게 될 거야. 네 도움이 필요해.”
“어떻게 해달라는 말씀이신지?”
“탈출시켜다오. 베스토르 백작령으로만 도망칠 수 있게 해주면 돼.”
베스토르 백작령에는 에드르손의 병사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거기로 도망친다면 에인헤랴르나 피어너에서 보복을 하려고 해도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다.
정 안 되면 남쪽으로 도망가도 되는 거고 말이다.
“니얼, 부탁한다.”
에드르손은 헐떡이며 말했다.
“이대로 끝날 수는 없어.”
“아니요.”
하지만.
니얼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당신은 이걸로 끝입니다.”
“뭐……?”
에드르손이 흠칫하면서 고개를 치켜든 순간.
니얼의 손이 에드르손의 목으로 향했다.
“컥…….”
“당신을 살려 뒀다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곤란하니까 말입니다.”
“자, 잠깐…….”
숨이 막히는 걸 느끼면서 에드르손은 발버둥쳤다.
“니, 니얼, 무슨 짓이야.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목을 졸라대는 니얼의 손을 뿌리치려 하면서, 필사적으로 항의했다.
“우리는 함께 무능한 피어너 가문을 무너뜨리기로 약속한 사이 아닌가……!”
그렇다.
니얼은 에드르손의 협력자였다.
에드르손과 구시온, 유스발트 등은 외부에서, 니얼은 내부에서.
피어너 가문을 집어삼키기 위해 각자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 가지 착각하고 계시는군요, 에드르손 님.”
“뭐, 뭐라고?”
“저는 피어너 가문을 무너뜨리는 것에서 끝낼 생각이 없었습니다.”
니얼의 눈빛은 냉정했다.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어진 상대를 보는 눈빛이었다.
“제 목표는…… 북서부뿐만 아니라 북부 지방 전체를 하나로 만드는 거니까요.”
“……!”
니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부상을 입은 에드르손은 저항할 수 없었다.
비명을 지르는 것도, 불가능했다.
* * *
저녁 시간이 되어, 나는 만찬장으로 안내받았다.
만찬장이라고는 해도 참석 인원은 많지 않았다.
니얼과 그 측근들 몇 명만 있는 것 같았다.
“아, 공녀님이 오시는군요.”
“……?”
니얼이 쳐다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처음에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나타난 줄 알았다.
치맛자락이 바닥까지 내려오는 의상을 몸에 걸친, 정숙한 인상의 여자가 만찬장으로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 카이트 님?”
청색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으로, 모리안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왜 그렇게 쳐다보시는지…….”
“아니, 잠시 헷갈려서 말이야. 다른 사람인 줄 알았거든.”
“너, 너무하십니다.”
평소의 활동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지체 높은 귀족 가문의 영애다운 모습으로 바뀐 탓이다.
“하하, 이제 보니 서로 잘 어울리시는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무도회 준비를 해 둘 걸 그랬습니다.”
“니, 니얼 경! 놀리지 말아 주세요!”
“실례했습니다, 공녀님. 그래도 정말로 잘 어울리시긴 합니다.”
니얼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모리안이 얼굴을 붉혔다.
“이상한 소리를 하지 말아 주세요. 카이트 님도 곤란하실 거예요.”
“카이트 님, 곤란하십니까?”
“글쎄, 딱히.”
“곤란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공녀님.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계신 것 같군요.”
“카, 카이트 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모리안과 니얼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남매 같은 느낌이었다.
모리안의 아버지도 니얼을 신뢰하고 있는 것 같았고… 평범한 가신 이상의 존재인 것 같았다.
“하하, 그러면 식사를 시작하지요. 공녀님 자리는 카이트 공자님 옆자리로 준비했습니다.”
“그러니까 니얼, 자꾸 그런 말을…….”
모리안이 얼굴을 붉히면서 자리에 앉았고, 잠시 후 요리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카이트 공자님, 얼스터의 요리가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먹어 보는 음식들이지만, 다들 맛이 훌륭하군요.”
“다행입니다. 신경 쓴 보람이 있었군요.”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니얼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카이트 공자님, 식사 중에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뭡니까?”
“사실 방금 전에 감옥에서 에드르손이 사망했습니다.”
“그렇게 금방 죽을 부상은 아니었을 텐데요.”
내가 혈도를 짚어서 지혈도 해놓은 상태였다.
“저희 쪽에서 좀… 강하게 심문을 한 탓일 겁니다.”
“…….”
고문을 했다는 뜻일까.
“하지만 상당히 많은 정보를 털어놨습니다. 나중에 다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군나르 쪽은 아직 심문을 진행 중입니다. 이쪽도 결과가 나오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니얼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남자가 카이트 공자님을 암살하려 했다는 것, 에인헤랴르 측에 확실히 전달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면 저도 일처리가 편해지겠죠.”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문득 위화감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다소곳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모리안이… 어느새 의자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어이쿠, 공녀님이 피곤하셨나 보군요.”
니얼이 눈짓을 하자, 어디선가 시녀들이 나타나 모리안을 부축했다.
만찬장을 벗어날 때까지 모리안은 계속 잠들어 있었다.
“카이트 공자님도 종종 느끼셨겠지만, 모리안 공녀님은 아직 어린애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아직 열아홉이니 어쩔 수 없긴 합니다만…….”
“그랬던 거군.”
“네?”
나는 고기를 썰던 칼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좀 수상하다 싶었지만, 내 음식에는 딱히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는 것 같아서 안심하고 있었지.”
“카이트 공자님, 지금 무슨…….”
“그런데 내 음식이 아니라 모리안의 음식에 약을 탔던 건가.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
모리안은 그동안 나와 함께 움직이면서 한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아무리 집에 돌아와 마음이 편해진 상태라고 해도, 식사 자리에서 갑자기 잠들어 버린다는 건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약을 탄 술이나 음식을 대접받은 경험은 많지만, 내가 아니라 옆자리 사람이 표적이 된 건 오늘이 처음이라서 말이야. 신선해서 재미있군.”
니얼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그 주변의 측근들은 명백히 동요하는 눈빛이었다.
다들 한패라는 증거였다.
“너희들이 피어너 가문 내부에서 무슨 음모를 꾸미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지.”
나는 손가락을 깍지 끼며 니얼에게 시선을 향했다.
“하지만 거기에 나를 끌어들인다면… 너희들이 주도권을 잡는 건 불가능할 거다.”
이 녀석들이 내가 호락호락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오늘 밤, 그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