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50
▣ 50화. 아카샤니그두 (4)
“네놈……!”
먹이를 낚아채려는 맹금류처럼 아카샤니그두가 급강하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목소리만 들어도, 아카샤니그두가 혼란에 빠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비장의 무기였던 드래곤 브레스가 완전히 막힌 것에 당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소드 마스터도 아닌 네놈 따위가, 어떻게 내 브레스를……!”
“자존심이 많이 상한 모양이군.”
나는 칼라드볼그에 강기를 전개했다.
화경에 도달하면 강기의 위력도 크게 변화한다.
내공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내공으로도 훨씬 더 견고한 강기를 펼칠 수 있게 되니까.
“하지만, 내가 말했을 텐데.”
단번에 짓밟으려는 듯이 내민 아카샤니그두의 앞발.
그 거대한 발가락을 향해, 칼라드볼그를 휘둘렀다.
“이제는 내가 공격할 차례라고 말이야.”
“……!”
파앗!
서늘하게 빛나는 검강이 아카샤니그두의 발가락을 절단했다.
껍질이 단단했고, 그 속에 있는 뼈도 단단했지만… 내 검강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화경에 도달한 무인이 펼치는 검강이란 이렇게 절대적인 것이다.
“크아아악……!”
아카샤니그두가 비명을 질렀다.
고통스러운지 몸을 비틀어대서 주위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엄살이 심하군, 아카샤니그두.”
“네놈, 네놈……!”
“아니, 엄살이 아닌가? 원래 발가락을 다치면 많이 아픈 법이니까.”
절정 고수조차도.
딱딱한 모서리에 새끼발가락을 부딪치면 아픈 법이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 오러 블레이드는 대체 뭐냐……!”
아카샤니그두가 소리쳤다.
“지난번에는 그 정도 오러 블레이드를 전개하지는 못 했다……!”
“그랬었지.”
“혹시 칼라드볼그의 힘인가? 칼라드볼그에 그렇게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었던 건가? 아니, 그 정도는 아닐 텐데……!”
피가 떨어지는 앞발을 휘두르며 아카샤니그두가 떠들어 댔다.
“설마 네놈…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냐?!”
“글쎄, 애초에 나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가 어떤 건지 잘 몰라서 말이야.”
마지막으로 시구르드와 만났을 때는 무수절맥공을 쓰지 못하는 상태여서 시구르드의 내력(內力)을 파악하지 못했다.
무수절맥공 없이도 내 눈썰미면 상대방의 역량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긴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것도 쉽지 않았다.
어쩌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는 반박귀진(返璞歸眞)도 포함되어 있는 걸지도 모른다.
“크으윽……!”
아카샤니그두가 이를 갈면서 다시 나한테 달려들었다.
드레이크보다 커다란 몸집을 활용해 육탄전을 하려는 것 같았다.
“까불지 마라, 카이트 에인헤랴르! 네가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드래곤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짤막하게 말했다.
“내가 공격할 차례라고 했잖아.”
파앗.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화경에 도달하면서 경공 또한 수준이 높아졌다.
“……?!”
아카샤니그두는 나를 짓누르려 했지만, 어느새 나는 그 어깨 너머로 이동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등에 달린 거대한 날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크악……!”
촤악!
오른쪽 날개가 찢어졌다.
“이제는 날아오를 수 없겠지.”
“……!”
화경에 도달했다고 해도 능공허도(凌空虛道)는 불가능하다.
아카샤니그두가 다시금 하늘로 날아올라 공중전을 펼치면 좀 불리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날개부터 찢어발긴 것이다.
“흥분해서 나한테 직접 달려든 게 실수였어. 계속 날아다녔다면 좀 더 유리한 상황에서 전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
“물론, 그렇게 나와도 나름대로 대처법은 있지만.”
아카샤니그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인간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드래곤은 뱀이나 도마뱀들하고는 다르다고 느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네놈……!”
아카샤니그두가 다시 한번 소리친 순간.
그 몸에서 갑자기 오러가 솟구쳤다.
일부 용귀족들이 하던 것처럼 오러로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그래 봤자 내 검을 막을 수는 없을 텐데.”
“닥쳐라……!”
그 순간.
오러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붉은 색으로 물들더니, 타오르는 불꽃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크오오오……!”
아카샤니그두가 포효하자 열기가 주위에 확산되었다.
경공으로 피하긴 했지만, 이곳저곳에 불이 붙어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너무하는군. 피어너 가문 사람들이 안타까워할 텐데.”
“닥쳐라, 카이트 에인헤랴르……!”
주위에 열기를 흩뿌리면서 아카샤니그두가 소리쳤다.
“인정하겠다! 너는 드래곤의 적수가 되기에 충분한 존재! 내가 네 역량을 잘못 파악했다……!”
아까 아카샤니그두는 말했다.
나를 공격하는 건 전투가 아니라 교육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 모든 힘을 끌어내어… 너를 죽여 주마!”
불꽃에 휩싸인 채 아카샤니그두가 돌진해 왔다.
브레스처럼 강력한 화염을 뿜어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열기 자체는 상당히 강력하고, 아카샤니그두의 몸집이 워낙 크기 때문에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주위 피해가 너무 심하군.’
이대로 싸우다간 주위 건물이 다 불타고 무너지게 된다.
짧게나마 신세를 지었던 도시다. 이대로 폐허가 되는 건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순수한 물리적 힘이 아니라, 특정한 성질을 지닌 힘으로 변화시켰다.
하지만 수라홍련검이나 수라창뢰검을 쓸 때하고는 달랐다.
‘평소 양기(陽氣)를 제어할 때 쓰던 음기(陰氣)를 활용하자.’
불꽃을 다루는 수라홍련검이나 번개를 다루는 수라창뢰검은 양(陽)의 기운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건 음(陰)의 기운을 사용해야 한다.
‘화경의 경지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자연의 지기(地氣)를 받아들여 음기의 힘을 재조정했기 때문에… 이제는 쓸 수 있지.’
그동안 쓰지 못했던 또 다른 검법.
염검(炎劍)의 수라홍련검하고도 다르고, 뇌검(雷劍)의 수라창뢰검하고도 다른 검.
‘얼어붙어라.’
콰직.
칼라드볼그의 칼날이 얼어붙었다.
그 직후, 주위에 엄청난 냉기가 퍼져 나갔다.
“뭐냐……!”
아카샤니그두가 움찔했다.
움직임을 멈춘 채 주위를 둘러봤다.
“이건 또 뭐냔 말이냐……!”
아카샤니그두에게서 뿜어져 나와 주위를 불태우던 열기.
그것을 냉기가 모조리 집어삼켰다.
땅바닥에 살얼음이 생길 정도였다.
“칼라드볼그는 번개의 검이 아니었나?! 왜 얼음이 생기냔 말이다……!”
“칼라드볼그의 힘이 아니다, 아카샤니그두.”
담담히 말하며, 움직임을 멈춘 아카샤니그두에게 다가갔다.
“이것은 내 힘이다.”
“네 힘이라고……?”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라백상검(修羅白霜劍)이라고 한다.”
“……!”
수라백상검.
빙검(氷劍)을 펼칠 수 있게 해 주는 극한(極寒)의 무공이다.
사파의 일원이었던 북해빙궁(北海氷宮)의 빙공(氷功)을 해석하여 만든 무공으로, 수라홍련검이나 수라창뢰검보다 난이도가 더 높은 편이었다.
“그러면…….”
“머, 멈춰라……!”
내가 다가가자 아카샤니그두가 흠칫하며 뒷걸음쳤다.
아카샤니그두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멈추란 말이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이제야.”
수라백상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아카샤니그두의 비늘 위에 살얼음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아카샤니그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제야 오만함이 없어졌군.”
“……!”
아카샤니그두가 눈을 크게 뜬 순간.
나는 경공을 사용해 몸을 날렸다.
반사적으로 아카샤니그두가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수라백상검, 은화(銀華).’
파앗.
일직선의 횡(橫) 베기.
그것이 아카샤니그두의 목을 베었다.
두껍기 그지없는 드래곤의 목을 절단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얕은 상처였다.
하지만, 그 직후.
“……!”
파파팍!
목에 생긴 선을 중심으로, 얼음이 퍼져 나갔다.
마치 은색의 꽃이 피듯이, 아카샤니그두의 목이 얼음으로 뒤덮였다.
“…….”
그 모습을 확인한 뒤, 나는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그다지 힘도 주지 않고, 가볍게.
쩌적!
칼날이 부딪친 순간, 얼음에 균열이 생겼다.
균열은 순식간에 얼음 전체에 퍼졌고… 얼어붙어 있던 아카샤니그두의 목 전체가 산산조각 났다.
“아…….”
아카샤니그두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무하게 얼음조각이 흩어지는 소리와 함께.
* * *
“카이트 공자님!”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니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부상을 입었는지 여기저기서 피를 흘리고 있는 니얼이… 나한테로 달려오고 있었다.
“많이 다친 것 같은데, 괜찮나?”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숨을 헐떡이면서 니얼이 소리쳤다.
“바, 방금, 드래곤을, 아카샤니그두를…….”
“내가 쓰러뜨렸어.”
“……!”
말문이 막혔는지 니얼이 입을 뻐끔거렸다.
“말했잖아.”
“네?”
“사흘만 버텨 주면 내가 해결해 주겠다고.”
“……!”
니얼의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너, 내 말을 안 믿었던 거냐?”
“아, 아니요. 믿긴 믿었는데… 약간 의심도 했달까.”
“결국, 안 믿은 거네.”
“아, 아닙니다, 믿긴 믿었습니다!”
“변명하지 마라.”
“아윽.”
칼라드볼그 옆면으로 니얼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솔직히 나도 확신은 없었지만.’
드래곤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화경에 도달한다고 해서 드래곤을 이길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도전해 보고 싶었다.
내 무공으로 드래곤을 꺾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천룡(天龍)과 같은 경지에 도달해야 하니까.’
여기서 꽁무니를 빼고 도망친다면 나는 하늘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예감이 있었기에, 화경에 돌입하여 드래곤에게 맞선 것이다.
한정된 시간을 활용해, 나 자신을 몰아세우면서.
‘그래도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도시 전체가 완전히 초토화될 뻔했다.
솔직히 지금도 꽤 피해가 심한 편이었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흐억……!”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니얼이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땅에 떨어진 아카샤니그두의 머리에서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정말로 너는, 터무니없는 놈이구나…….”
“…….”
머리만 남은 상태에서도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역시 드래곤은 별격(別格)의 생명체인 것 같았다.
“어쨌든, 카이트 에인헤랴르…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땅을 굴러다니는 아카샤니그두의 입에서 힘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죽인 시점에서… 너는 다른 드래곤들에게 ‘사냥할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된다. 지금까지처럼 여유롭게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 아카샤니그두는 나를 직접 공격해오지 않았다. 심지어 근처에 있을 때도 그냥 무시하고 가 버렸다.
그건 나한테 그만한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밉다고 해도 자기가 직접 다가와서 싸움을 거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처럼 파프니르 폐하의 파벌에 속한 드래곤들이 너를 노리겠지. 독룡 니드호그 파벌도 너를 주목할 것이다…….”
“…….”
“어쩌면 너로 인해 인룡대전(人龍大戰)이 시작될지도 모르겠군…….”
아카샤니그두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수많은 드래곤들이 너를 짓밟으려 할 것이다.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으냐……?”
“걱정하지 마라, 아카샤니그두.”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어떤 드래곤들보다 높은 곳에 서줄 테니까.”
“하하… 하늘 꼭대기에 서겠다는 건가.”
아카샤니그두는 더 이상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재미있다는 듯이 힘없이 웃을 뿐이었다.
“그걸 직접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구나.”
그 말을 남기고.
흑색의 드래곤은 완전히 침묵했다.
그동안 에인헤랴르와 계속 충돌해 왔던 사악한 흑룡은 그렇게 숨이 끊어졌다.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용살검가의 일원으로서 첫 번째 실적을 올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