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52
▣ 52화. 숙청의 칼날 (2)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본거지인 고틀란드.
그곳에서는 지휘본부 소속의 중진 기사들이 모여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얼스터 방면에서는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건가?”
“적룡기사단에서도 피어너 가문에서도 연락이 없다니, 상황이 심각한 건가?”
“헤스테인 님이 전서구 정도는 보내 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들이 화제로 삼고 있는 건 얼마 전 드래곤의 습격을 받은 얼스터 방면의 얘기였다.
사실 그들은 별로 원군을 보내 주고 싶지 않았다. 얼스터 지역의 광휘창가 피어너하고는 그렇게 돈독한 사이도 아니고, 마침 카이트가 그쪽으로 가 있는 상태였으니까.
이 기회에 카이트가 드래곤의 습격을 받아서 죽어 버리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헤스테인 님과 프리드레이프 님이 원군으로 나서지만 않았어도 별 걱정을 안 했을 텐데 말일세.”
“그러게 말이야. 왜 그렇게 의욕들을 드러내신 건지.”
그들이 걱정하고 있는 건 원군으로 출발한 헤스테인과 프리드레이프였다.
하지만 매우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이 헤스테인이나 프리드레이프 개인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자기 안위가 최우선이며, 그렇기 때문에 차기 권력에 가까운 프레데군다 대공비의 아들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헤스테인이나 프리드레이프가 사망한다고 해도… 차남인 이바르가 건재하다면 별문제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군나르 본부장은 대체 어디 가서 안 보이는 건가?”
지휘본부장이자 이쪽 파벌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군나르는 벌써 열흘 넘게 자리를 비운 상태다.
무엇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지도 알려 주지 않고 떠났다.
“그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자리를 비울 사람이 아닌데.”
“대공비 전하의 특명이라도 받은 건가?”
“자리 비우기 전에 돈을 좀 끌어다 쓰던 것 같은데.”
파벌 내에서 특별히 상하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프레데군다 대공비와 가장 사이가 가까운 건 군나르다.
그렇기 때문에 군나르가 자리에 없는 상황에서는 뭔가를 결정하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지.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없고, 그냥 기다리고 있는 수밖에.”
“그래야겠어. 느긋하게 시간이나 보내고 있자고.”
“자, 복잡한 건 잊어버리고 술이나 마시자고.”
“이봐! 술을 가져와!”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을 부하들을 불러 술상을 차리려고 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뭐야? 왜 대답이 없지?”
“이것들이 어디서 농땡이를…….”
한 명이 일어서서 문 쪽으로 다가갔다.
바깥에 있을 부하들에게 호통을 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뭐 하고 있… 어?”
“뭐야?”
철컥.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기사들이 들어왔다.
대부분 젊은 기사들이었다.
“너희들 뭐야?”
“가만 있자, 혹시…….”
“카이트 공자의 기사대?”
다들 당혹스러웠다.
카이트를 따르는 기사들은 헤스테인 등과 함께 알스터 지방으로 갔다.
지금쯤 드래곤 세력과 전투 중일 텐데,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너희들, 왜…….”
“다들 모여 있군. 일망타진하기 쉽겠어.”
냉정한 목소리와 함께, 기사들 사이에서 가벼운 차림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카, 카이트 님?!”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카이트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 사실에 중진 기사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여, 여기는 어떻게…….”
“언제 돌아오신 겁니까? 연락도 없이…….”
“드래곤의 공격을 받은 거 아니었습니까? 전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당혹스러워하는 기사들 앞에서, 카이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래곤 아카샤니그두는 내가 해치웠고, 몬스터들도 다 격퇴했다. 이미 며칠 전에 다 끝났어.”
“…….”
중진 기사들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더니,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드래곤을 해치우셨다? 정말 재미있는 농담입니다!”
“드래곤이 무슨 드레이크도 아니고 말입니다, 하하!”
하지만.
웃어대던 그들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카이트는 물론이고 그 부하들의 얼굴에게서도 웃음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상상력이 부족하군.”
“네?”
“니얼, 보여 줘라.”
카이트의 말을 듣고, 단정한 외모의 미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가방에서…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의 보석을 꺼냈다.
“드, 드래곤 하트?!”
“저걸 어떻게……!”
드래곤 하트는 이름대로 드래곤의 심장에 존재하는 마석이다.
평범한 몬스터의 마석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자, 잠깐, 그러면 설마…….”
“정말로 드래곤을 해치운 건가?”
“피어너 가문 쪽에는 드래곤을 쓰러뜨릴 만한 전력이 없었는데…….”
“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이트 님이 드래곤을 쓰러뜨렸다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
동요하는 중진 기사들을 보면서 카이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멍청이들을 붙잡고 이런 얘기를 해봤자 시간 낭비겠지.”
“카, 카이트 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무 말이 심하시군요. 뭔가 착각하고 계신 거 아닙니까?”
“카이트 님이 대공 전하의 아드님이시긴 하지만, 기사로서의 직책이나 경력 등은 저희가 위입니다!”
카이트의 폭언에 다들 반발했다.
하지만 카이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옆에 있던 남자에게 다음 지시를 내렸다.
“니얼, 서류를 꺼내라.”
“네, 카이트 공자님.”
남자가 드래곤 하트를 집어넣고 두터운 서류뭉치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카이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일 전, 군나르 지휘본부장이 나를 암살하려 했다.”
“……!”
“외부 세력과 작당해서 벌인 일이었지.”
다들 동요했다.
하지만 군나르의 독단적인 행동이니만큼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연대 책임을 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서류를 손에 들고 툭툭 치면서, 카이트가 말했다.
“군나르를 데리고 ‘심층 조사’를 한 결과, 에인헤랴르 내부에서 특정 파벌이 똘똘 뭉쳐 이권을 독점하고 횡령 행위를 하는 등 각종 비리를 저질러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군나르는 파벌 내부의 상황에 대해 아주 자세히 파악하고 있더군. 아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주위 사람들 약점을 잡아놓고 있었던 거겠지.”
이어서 카이트는 옆에 있던 남자를 쳐다봤다.
“혹시나 해서 말해 두지만, 이 자료는 분명히 군나르의 증언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여기 있는 피어너 가문의 특사(特使)가 보증해 줄 테니, 신뢰성은 걱정 안 해도 좋아.”
“……!”
완전히 허를 찔린 중진 기사들 앞에서, 카이트가 천천히 검을 뽑았다.
“나는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장남으로서, 그동안 각종 비리를 저질러 온 기사들 전원을 신속히 체포하기로 하였다.”
* * *
“변명은 듣지 않겠다. 정 변명을 하고 싶다면 나중에 대공 전하 앞에서 말하도록.”
“……!”
손짓을 하자 내 부하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그 모습을 보고 중진 기사들도 다급히 검을 뽑았다. 이런 자리에서도 무기를 계속 휴대하고 있었다는 점은 칭찬할 만한 부분이었다.
“저항할 생각인가?”
“카이트 님! 이런 짓이 용납될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애초에 카이트 님에게 저희를 벌줄 권한은 없습니다!”
“그런 종잇조각 따위, 아무 의미 없습니다! 피어너 가문 측에서 보증해 준다고 해도 말입니다!”
중진 기사들은 완전히 당황한 상태였다.
내가 이런 방식으로 공격해 들어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듯했다.
“걱정 마라. 나도 군나르의 증언만으로 너희들을 숙청할 생각은 없다.”
“그러면……!”
“너희들을 전부 감옥에 처넣은 뒤,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
“대공 전하가 귀환하실 때쯤에는 충분한 증거를 갖춰 놓을 수 있겠지.”
아까 나온 얘기대로, 나한테 놈들을 처벌할 권한은 없다.
다들 에인헤랴르의 중진들이니, 시구르드의 승인 없이 놈들의 목을 치면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놈들을 다 가둬 놓은 뒤 조사를 진행한다면… 추가적인 증거와 증언 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는 저항 따위는 하지 말고, 나중에 대공 전하 앞에서 어떻게 목숨을 구걸할지나 생각해 두도록 해라.”
“크윽……!”
놈들의 눈빛이 무서워졌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고 적의(敵意)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카이트 님! 모든 걸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건장한 중년 기사 한 명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우르르 이쪽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카이트 님, 저희가……!”
“너희들은 기다려.”
어윈과 모르트 등이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손을 치켜들어 대기했다.
상대는 에인헤랴르의 중진들이다. 대부분 소드 엑스퍼트이기 때문에 내 부하들이 대적하기에는 버거운 상대였다.
“나 혼자서 처리하겠다.”
“……!”
가장 먼저 달려든 중견 기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신속하게 펼친 쾌검으로 오른쪽 손목을 잘라 버린 뒤, 다음 기사를 향해 움직였다.
“목숨까지 빼앗지는 않겠다. 다만 불구가 되는 것 정도는 각오해라.”
“크아악!”
푹! 촤악!
공간이 좁아서 그냥 이리저리 검을 휘두르기만 해도 피가 뿜어져 나왔다.
나를 향해 몰려들던 기사들이 한 명씩 심각한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뭐, 뭐야, 왜 이리 강해?!”
“카이트 님이 이렇게 강했나?!”
“우리 전원을 상대로 어떻게… 으악!”
한명씩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궁지에 몰리자 검을 내던지고 자진해서 무릎을 꿇는 놈도 있었다.
“카, 카이트 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애초에 저희는 군나르가 시키는 대로… 컥!”
“변명은 대공 전하 앞에서 하라고 했다.”
턱을 발로 걷어차자, 무릎을 꿇고 있던 놈이 뒤로 쓰러져서 기절했다.
“어윈, 기사대를 절반으로 나눠라. 절반은 이놈들을 모조리 밧줄로 묶어 감옥으로 끌고 가고, 나머지 절반은 계속 나를 따라온다.”
“알겠습니다!”
이 녀석들 말고도 군나르가 증언해 준 사람은 많다.
그놈들까지 한꺼번에 소탕해야 한다.
“하룻밤 사이 피바람이 불겠군요, 카이트 공자님.”
니얼이 나한테 다가와 속삭였다.
“이대로 계속 주도권을 잡고 몰아치면 될 겁니다.”
“그래야지.”
나는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중진 기사들을 뒤로 했다.
“북부대공이 귀환하기 전에 청소를 마쳐 놔야 하니까.”
에인헤랴르 내부에는 카이트를 적대하는 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나는 이번 기회에 놈들을 완전히 소탕할 예정이었다.
아카샤니그두를 쓰러뜨려 용살검가의 장남 자격이 있다는 것도 증명했으니… 더 이상 얌전히 있어 줄 이유가 없다.
“귀환하신 북부대공이 이런 상황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글쎄, 딱히 혼을 낼 것 같지는 않아.”
내 예상이지만… 시구르드는 오히려 이런 방식을 더 선호할 것이다.
아니면 어쩔 수 없고.
“그럼 오늘밤은 중진 기사들만 소탕하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대공비 전하도 만나러 가야 하니까.”
시구르드의 아내이자, 카이트의 새어머니.
군나르 뒤에 있던 그 여자와 대면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