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56
▣ 56화. 몰려오는 적들 (3)
고틀란드에서 남쪽으로 내려간 곳에 펼쳐진 평야.
그곳에서는 산을 넘어온 여러 영주들의 부대가 속속 집결하고 있었다.
“도착하셨구려, 엘덴비움 백작.”
“유리부르크 백작, 일찍도 왔군!”
유리부르크 백작과 엘덴비움 백작은 웃는 얼굴로 악수를 나눴다.
두 사람은 예전부터 마음이 잘 맞는 사이였다.
“아무래도 여기서 연합군을 집결시킨 뒤 움직이게 될 것 같소.”
“그래야겠지. 산맥을 넘어오면 이쪽 평야에 도달하게 되니까.”
“저쪽에 슈트발드 남작도 있소.”
“그렇소? 그러면 나한테 빨리 인사를 하러 와야 하는 거 아닌가?”
자기보다 격하(格下)의 영주가 먼저 인사를 하러 오지 않아서 엘덴비움 백작은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험한 산길을 넘어 탁 트인 평야에 도달해서 좋긴 한데, 참 살풍경하군.”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이 주변은 토양도 별로 안 좋다고 하니까.”
평야에는 메마른 풀들만 잔뜩 깔려 있었다.
요즘은 건조한 날씨라 풀이 다 말라 있었다.
“에인헤랴르가 넓은 영지를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별로 영양가가 없소.”
“맞는 말이오. 눈 덮인 황야와 눈이 안 덮인 황야가 있을 뿐이지.”
“전쟁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결국 군사력뿐인 귀족이지.”
그렇게 에인헤랴르를 비하하고 있었을 때.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유리부르크 백작, 엘덴비움 백작.”
“누구냐?”
“처음 보는 얼굴인데.”
“흑랑기사단의 단장인 슈데르츠요.”
슈데르츠의 이름을 듣고 두 사람은 인상을 찡그렸다.
“아, 루스베르그 후작이 고용했다고 하는…….”
“흥, 용병 나부랭이가 무슨 볼일인가?”
“말조심하시오. 나는 당신들에게 협조를 요청할 권한이 있소. 루스베르그 후작이 부여한 권한이지.”
루스베르그 후작의 이름에 유리부르크 백작과 엘덴비움 백작이 움찔했다.
두 사람에게 루스베르그 후작은 윗사람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당신들에게 다른 할 말은 없소. 다만 이것만큼은 명심해 주길 바라오.”
“대체 뭔가?”
“카이트 에인헤랴르는 당신들을 노릴 것이오.”
“뭐, 뭐라고?”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서 적진을 돌파하여 윗대가리를 노리는 게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기본 전법인 것 같으니까.”
“…….”
얼굴이 굳어진 두 사람을 보고 슈데르크가 피식 웃었다.
“쓸 만한 호위병들을 항상 옆에 두고 있으시오.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습격해 왔을 때 잘 버텨 주기만 한다면…….”
슈데르크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우리가 움직여서 놈을 해치울 것이오.”
* * *
날이 어둑해졌다.
대부분의 병력이 합류한 상태였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야영을 하기로 했다.
아침이 되면 북진하여 고틀란드를 공격할 것이다.
“놈들이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고틀란드에서 농성전을 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이런 평지에서 전투를 벌이면 병력이 부족한 에인헤랴르 측이 불리하니까.”
슈데르츠는 부하들과 함께 모닥불 앞에서 대화를 나눴다.
“만약 놈들이 서쪽의 적룡기사단이나 동쪽의 청룡기사단을 불러들이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지금 서쪽과 동쪽에 배치되어 있는 아군들에게서는 별다른 연락이 없어.”
“이런 상황인데도 적룡기사단과 청룡기사단을 불러들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적룡기사단과 청룡기사단의 지휘관은 전부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배다른 형제들이지. 도움을 받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몰라.”
“아…….”
“결국 에인헤랴르 내부에서의 권력 싸움인 거지.”
에인헤랴르가 이렇게 틈을 보인 것도, 따지고 보면 카이트에 의한 내부 숙청이 원인이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실력은 대단한 듯하지만,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인물인 것 같군요.”
“그래, 아주 독선적이고 거만한 인물일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그런 놈일수록 방심하기 쉽죠.”
“그런 것이지.”
슈데르츠와 부하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지난번에 ‘용병왕’을 쓰러뜨렸을 때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한때 이름을 날리던 용병왕도, 방심을 하는 바람에 우리들에게 당했지.”
“네, 그 덕분에 우리도 자신감을 가졌죠.”
용병왕은 9서클의 소드 마스터였다.
자치도시 크란켈을 거점으로 하여 용병들을 이끌고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슈데르츠는 그 하위 조직을 맡고 있었는데, 아무리 실적을 쌓아도 용병왕에게 착취만 당할 뿐 처우가 나아지지 않았다.
불만을 품은 슈데르츠는 부하들과 함께 용병왕을 죽이기로 했고… 술에 취한 채 잠들어 있던 용병왕을 기습하였다.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무기도 없이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했었죠.”
“그래, 하지만 우리가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서 쓰러뜨릴 수 있었지. 카이트 에인헤랴르도 그렇게 해치울 수 있을 거야.”
그 이후 슈데르츠도 많이 성장했다.
카이트는 용병왕보다 격하(格下)의 상대인 것 같고, 충분히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슬슬 너희들도 자라. 불침번 서는 것도 잊지 말고.”
“네, 슈데르츠 단장님은…….”
“나는 한 바퀴 돌아보고 오겠다.”
그렇게 부하들에게 말을 건넨 뒤, 슈데르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카이트가 오늘밤 기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늘밤 기습해 와도… 내 입장에서는 별 상관이 없지.’
지금 카이트가 기습하면 연합군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하지만 슈데르츠는 별 상관없었다. 귀족들이 타격을 입든 말든 알 바 아니었으니까.
슈데르츠에게 중요한 것은 카이트를 격파하는 것뿐이었다.
‘그 실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발언력을 키워… 귀족님들조차 집어삼킬 수 있는 힘을 얻고야 말겠다.’
그렇게 다짐하면서 슈데르츠는 주변을 둘러봤다.
얼핏 보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잠깐.’
슈데르츠는 눈에 마력을 집중했다.
북쪽에서 풀숲이 이상하게 흔들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숨어 있는 놈들이 있다!’
야습을 하려는 특공대일까.
하지만 규모가 별로 많지 않아 보였다.
야습에 성공한다고 해도 저 정도 병력으로는 택도 없다.
‘단순한 정찰? 아니면…….’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슈데르츠가 움직이려 했을 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
휙! 휙! 휘익!
하늘을 가르는 불덩이를 보고, 슈데르츠는 뒤늦게 깨달았다.
“다들 일어나라!”
즉각 목소리를 높였다.
“화공(火功)이다……!”
불덩이의 정체는 불화살이었다.
야간을 틈타 다가온 놈들이 불화살을 날린 것이다.
“빨리 불을 꺼라!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주위는 메마른 풀밭이어서 불이 붙기 좋은 지형이다.
하지만 불화살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빠르게 대처한다면 전군이 불꽃에 휩싸이는 건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뭐, 뭐야?”
“왜 이리 불이 안 꺼져?!”
“불길이 너무 거세!”
이상한 일이었다.
병사들이 불을 끄려도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불화살 십여 개가 떨어졌을 뿐인데, 순식간에 넓은 범위에 불길이 퍼졌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혹시 미리 준비를 해 둔 걸까.
사전에 풀밭에 기름이라도 뿌려 둔 것일까.
‘아니, 그런 거라면 우리가 눈치챘을 거야. 그냥 평범한 풀밭이었어.’
바로 그때.
추가로 날아온 불화살이 슈데르츠의 눈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윽……!”
슈데르츠는 오러를 전개한 칼로 불화살을 공중에서 베어 버렸다.
그 순간, 불화살에서 기묘한 냄새가 풍기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냄새는 뭐지?’
기름 냄새인 것 같은데, 상당히 특이하다.
마치 향신료의 냄새처럼 자극적으로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잠깐, 이거 언젠가…….’
생각났다.
용병왕의 명령을 받아 이걸 운송한 적이 있었다.
이 기름은 바로…….
“이런 미치광이 놈들!”
슈데르츠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다급히 소리쳤다.
“이건 드래곤 기름을 쓴 불화살이다……!”
드래곤에서 채취한 기름.
상당한 양의 마력을 내포하고 있어, 원래는 마법 아이템을 제작할 때만 쓰는 기름이다.
적들은 이 귀중한 기름을… 불화살을 날리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 * *
“아주 잘 타는군.”
불타오르는 초원을 구경하면서 중얼거리자, 옆에서 니얼이 한숨을 내쉬었다.
“드래곤 기름을 불화살에 사용한 사람은 유사 이래 카이트 공자님이 처음일 겁니다.”
“며칠 전에 한번 시험해 봤더니 효과가 아주 좋더라고.”
“드래곤 기름이 얼마나 비싼지 알기나 하십니까?”
“어차피 지금 당장은 팔아치울 방법도 없잖아. 변질되기 전에 빨리 써버리는 게 좋지.”
아카샤니그두를 쓰러뜨린 뒤, 나는 다양한 드래곤 부산물들을 얻게 되었다.
원래 드래곤에서 얻은 것들은 고틀란드에서 가공해서 남쪽으로 유통시키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의 혼란으로 인해 고틀란드에 그냥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러면 니얼, 상황 봐가면서 대처해 줘. 적당한 시점에서 기사대를 전진시키고.”
“알겠습니다.”
후방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기사대가 대기하고 있다.
잠시 뒤 화공에 휩쓸려 우왕좌왕하는 놈들에게 직접 공격을 개시할 것이다.
“그러면 카이트 공자님은…….”
“슬슬 적진에 돌입해야지.”
“불길이 거셉니다.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걱정 안 해도 돼.”
“네?”
“이 정도 불은 이제 괜찮으니까.”
“……?”
불타는 들판을 향해 걸어 나갔다.
불길에서 벗어나려고 뛰쳐나오는 병사들을 한명씩 베어 넘기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확실히 불길이 거세군.’
기름에 포함되어 있던 마력이 주위에 퍼져 나가면서 불길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
태연한 표정으로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적들이 숨을 삼켰다.
“저, 저 자식 뭐야?”
“불 속으로 들어가고 있어!”
“뜨겁지도 않은 건가?!”
그들의 지적대로, 나는 전혀 뜨겁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몸이 새로운 경지에 도달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드래곤 하트 덕분이지.’
아카샤니그두를 쓰러뜨린 뒤.
나는 드래곤의 마석인 드래곤 하트를 손에 넣었다.
소문대로 드래곤 하트에는 막대한 양의 마력이 저장되어 있었고, 내공을 증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드래곤 하트의 기운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단전에 저장하는 내공으로 변환하는 것과는 별개로, 위기(衛氣)를 강화시키는 데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위기라는 것은 본래 우리 몸 표면을 순회하고 있는 기운인데, 평상시에는 풍한(風寒)을 막아 줘서 몸의 체온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한다. 의서(醫書)에 의하면 풍사(風邪)나 한사(寒邪)가 위기를 뚫고 들어오면 몸에 탈이 난다고 되어 있었다.
나는 드래곤 하트의 기운을 활용해 이 위기를 새로운 영역으로 끌어 올리려 한 것이다.
‘그 결과… 한서불침(寒暑不侵)조차 넘어선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지.’
한서불침이란 추위와 더위가 침범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위기를 강하게 만든 무인만이 달성 가능한 경지다.
하지만 그 위에는 추위와 더위뿐만 아니라 온갖 독액이나 화염 등도 침범하지 못하는 경지가 존재한다.
‘지금 나는 수화불침(水火不侵)의 존재다.’
수화불침.
이 경지에 도달한 이상, 나는 살을 녹이는 독액의 웅덩이에 빠져도 끄떡없다. 불타오르는 초원에 발을 들여도 태연하다.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활용해, 육체를 보호하는 위기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력을 응축하여 발사하는 드래곤 브레스까지 견딜 수는 없겠지만, 이런 불꽃 정도는 버틸 수 있지.’
위기를 새롭게 하고도 마력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나머지는 단전에 저장했다.
현재 내공은 6갑자를 넘어선 상태였다.
‘그러면…….’
불길을 가로질러 가면서, 손에 든 검을 휘둘렀다.
검풍(劍風)에 의해 불이 갈라지면서, 저 너머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너희들이냐?”
“헉……!”
눈이 마주친 순간, 놈들이 겁을 집어먹는 걸 알 수 있었다.
하긴 불길 속에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칼 든 남자를 보면 겁을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괜히 도망쳐서 귀찮게 하지 마라.”
“……!”
나는 성큼성큼 나아갔다.
살기를 숨긴 집단이 나에게로 접근해 오는 걸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