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58
▣ 58화. 소드 마스터 (1)
“벌써 연합부대가 패배했다고?!”
“방금 도망쳐온 우리 쪽 병사가 알려 줬습니다.”
루스베르그 후작은 귀를 의심했다.
여러 영주들에게 요청하여 연합부대를 조성했다. 루스베르그 측에서도 상당한 병력을 보냈고, 흑랑기사단도 참가시켰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패배한단 말인가?
“들판에 불을 지르고, 지휘관들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으로 아군을 완전히 무력화시킨 듯합니다.”
“어떻게 그런…….”
“유리부르크 백작과 엘덴비움 백작을 비롯해 상당수의 영주들이 사망했거나 포로로 잡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뭐지?”
“흑랑기사단은 에인헤랴르 측에 투항한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루스베르그 후작은 마시고 있던 찻잔을 집어 던졌다.
“자기들이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죽일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하더니……!”
“후, 후작님…….”
“부끄러움도 모르는 놈들! 역시 그런 천한 것들을 믿는 게 아니었어!”
루스베르그 후작은 숨을 몰아쉬면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젠장! 이렇게 되면 정말로 남은 병력을 다 끌어모아서 일대 결전을…….”
“하,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또 뭐야?!”
부하가 송구하다는 듯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일부 영주들이… 연합에서 이탈해 에인헤랴르 측에 붙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뭐라고?!”
루스베르그 후작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 * *
“그러니까, 작전통제권이라는 것을 넘겨주면 살려주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슈트발드 남작.”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귀족 앞에서, 니얼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인헤랴르 측에서는 슈트발드 가문을 멸족시킬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오히려 남작님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지요.”
“으음…….”
“에인헤랴르는 북부 지방의 모든 사람들이 힘을 모아 드래곤과 몬스터들, 그리고 외부 세력과 맞서 싸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인헤랴르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일통(一統).
니얼은 그 개념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길러온 사병(私兵)들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에인헤랴르 측에서 소집하면 즉각 응하여 연합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해 줬으면 한다는 거지요.”
“그건 결국… 병사들을 육성하는 비용은 우리 쪽에서 부담하지만, 그 병력은 에인헤랴르에서 마음대로 쓰겠다는 얘기 아닌가?”
“맞습니다.”
“그럼 우리가 손해인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슈트발드 남작이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하군. 패전해서 포로로 잡힌 상태라는 걸 깜빡했어.”
“손해가 아닙니다, 남작님.”
“뭐라고?”
“에인헤랴르를 중심으로 한 군사 체제에 편입된다는 건, 에인헤랴르에게 보호받게 되었다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만약 슈트발드 남작령에 몬스터나 외부 세력이 쳐들어올 경우, 에인헤랴르의 정예 기사들이 파견되어 아무런 대가 없이 함께 싸워 줄 것입니다.”
“……!”
“슈트발드 남작 가문은 에인헤랴르의 비호 하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북부의 최강자인 에인헤랴르의 보호를 받는다.
그건 슈트발드 남작 같은 중소 영주에게는 무척 반가운 얘기였다.
“그, 그러면…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나?”
“일단, 곧 있을 작전에 협조해 주시면 됩니다.”
니얼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인헤랴르에 반기를 들고 북부를 혼란에 빠뜨린… 루스베르그 후작 토벌에 참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 * *
“슈트발드 남작도 우리 산하에 들어오기로 했습니다.”
“순조롭군. 수고했어.”
나는 니얼의 보고를 들으면서 전략지도에서 슈트발드 남작의 병력을 움직였다.
루스베르그 후작 측에 붙었던 귀족들 중 상당수가 이미 내 진영으로 넘어온 상태였다.
“지난번 싸움이 워낙 충격적이었나 봅니다. 다들 고분고분하더군요.”
“더 이상 에인헤랴르에 덤벼들 생각이 없어진 거겠지.”
“정확히는 카이트 공자님에게 덤벼들 생각이 없어진 것이죠. 다들 카이트 공자님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번에… 불길 속을 돌아다니며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악마 같았다는 평가더군요.”
“악마라.”
무림에서는 검마라 불렸으니,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 밑으로 들어오면 살려주겠다.’라고 협박하고 있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지.”
방금 전까지 에인헤랴르를 치려했던 귀족들을 아군으로 만들어, 루스베르그 후작 토벌에 투입한다.
그것이 이번에 우리가 생각한 작전이었다.
현재 내가 동원할 수 있는 기사들만으로는 루스베르그 후작령 전체를 제압한다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순순히 시키는 대로 할 겁니다. 여기서 다시 에인헤랴르를 배신하거나 하면, 그때는 정말로 카이트 공자님의 칼에 목이 날아간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 우리는 그런 공포심을 최대한 활용하는 거지.”
“하지만, 그들도 금방 깨닫게 될 겁니다. 에인헤랴르 님과 카이트 공자님을 중심으로 한 체제에 순응하는 게 자기들한테도 가장 이득이라는 걸 말입니다.”
공포만으로는 진정한 통합이 불가능하다.
이미 니얼은 그들에게 내 밑으로 들어오는 것의 장점을 설명해 줬다.
앞으로 그들은 그게 허황된 얘기가 아니었다는 걸 조금씩 실감하게 될 것이다.
“북부일통이라고는 해도, 중소 영주들을 다 죽여 버리고 에인헤랴르가 직접 통치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죠.”
“그렇지.”
“지금으로서는 모든 영주들을 에인헤랴르가 군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놓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여기서부터 차츰 지배력을 강화해 나가면 되는 겁니다.”
“그 이후는 차차 생각해야겠지.”
군사적인 부분은 그렇다 쳐도, 행정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내가 판단하기 어렵다.
이쪽은 니얼 등에게 전적으로 맡겨야 할 것이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앞으로 드래곤 등과 싸워 나갈 때 후방에서 칼을 들이대는 놈이 없도록 만드는 거지.’
북부에서 나에게 대들 놈이 없도록 만든다.
그것이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공자님, 슈데르츠입니다.”
“들어와.”
검은 옷을 입은 슈데르츠가 성큼성큼 들어와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유리부르크 백작령 및 엘덴비움 백작령으로 출진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알겠다.”
유리부르크 백작과 엘덴비움 백작은 지난번 전투에서 내가 직접 해치운 중견 귀족들이다.
영주 연합에서 루스베르그 후작 다음으로 세력이 컸기 때문에, 그쪽은 확실히 제압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쪽 사람들은 콧대가 높다고 하더군.”
“맞습니다. 카이트 님에게 순순히 복종할 놈들이 아닙니다.”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철저히 제압할 예정이다.”
“북부에서 카이트 공자님에게 대드는 놈이 없도록 만들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같이 가지.”
니얼에게 뒷일을 맡긴 뒤 바깥으로 향하자, 슈데르츠가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며 따라왔다.
“역시 카이트 공자님은 다른 귀족들하고는 다르시군요.”
“뭐가 다르지?”
“다른 귀족들은 웬만해서는 전방에 서지 않습니다. 하지만 카이트 공자님은 항상 누구보다 먼저 적진으로 달려가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지.”
이건 나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아랫놈들에게 먼저 나가서 싸우라고 하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았다.
“카이트 공자님은 역시… 뭔가 다른 것 같습니다.”
슈데르츠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뭔가 다릅니다.”
“아까부터 계속 그 소리군.”
“죄송합니다. 배운 게 부족해서 잘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카이트 공자님에게는 존경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일이 말할 필요는 없다.”
앞서나가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행동으로 보여라.”
“네……!”
내 밑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슈데르츠는 열렬한 충성심을 보여 주고 있었다.
* * *
험준한 산속.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을 듯한 깊은 곳에, 거대한 저택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 방문한 루스베르그 후작은 평소와는 달리 공손한 태도로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자네가 나를 찾아오다니, 별일도 다 있군.”
“자, 자주 인사를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루스베르그 후작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 상대는, 마치 옥좌 같은 의자 위에 앉아 있는 노인이었다.
마치 해골처럼 마른 몸이어서, 얼핏 보기에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인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루스베르그 후작은 알고 있었다.
저 노인이… 어쩌면 루스베르그 후작보다 오래 살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 에인헤랴르 때문이겠지.”
“아, 알고 계셨군요.”
“항상 귀는 열려 있으니까.”
노인이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으로 턱을 매만지며 웃었다.
“상당히 고전하고 있는 것 같더군. 다른 귀족들도 많이 돌아섰다고 하지?”
“네, 맞습니다.”
아직 태도를 명확히 하지 않은 귀족들도 많지만, 어쨌든 앞으로는 다른 귀족들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래도 자네 쪽 병력은 많이 남아 있지 않나? 영지를 지키는 건 가능할 텐데.”
“그건…….”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걱정되는 거로군?”
“마, 맞습니다.”
노인의 말대로, 루스베르그 후작에게는 아직도 병력이 많이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소 귀족들이 칼을 들이댄다고 해서 별로 걱정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카이트 에인헤랴르였다.
“그놈, 너무 강합니다. 아무도 당해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최근에는 드래곤도 죽였다고 하니까 말이야.”
“솔직히 저는 그 얘기를 믿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용살검가의 장남이니까, 그 정도 재능을 발휘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 어디서 특별한 비전서를 입수했을 수도 있고.”
“네…….”
“그래서,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노인이 얼굴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 녀석이… 9서클의 경지에 도달한 것 같은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흐음.”
루스베르그 후작의 대답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북부에는 9서클의 ‘마스터’에 도달한 사람이 다섯 명 있지.”
“…….”
“그중 세 명은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에 있고, 한 명은 귀살마가 크레스니크에 있지.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이…….”
노인이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미소 지었다.
“특별한 소속 없이 은둔하고 있는 이 차르노보그지.”
“맞습니다, 차르노보그 님.”
차르노보그.
그는 몇 년 전에 사망한 ‘용병왕’처럼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소드 마스터다.
북부의 음지(陰地)를 상징하는 인물로, 엄청난 실력과 잔혹함으로 암흑가를 지배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자치도시 크란켈의 모든 유흥업소가 그에게 상납금을 바치고 있었으며, 지금도 차르노보그의 이름을 들으면 벌벌 떠는 사람들이 많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 녀석이 나하고 비슷한 영역에 도달했는지… 궁금해지는군.”
“그, 그렇다면, 차르노보그 님!”
루스베르그 후작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와 한번 싸워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지. 다만…….”
차르노보그가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를 두드렸다.
“그동안 은둔해 있었던 내가 갑자기 바깥 활동을 하면… 좀 어색해질 것 같군.”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도 명분이 있어야지. 바깥 활동을 할 명분이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차르노보그가 미소를 지었다.
“나를 루스베르그 후작가의 고문으로 임명해 줄 수 있겠나?”
“고, 고문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고문 자리를 마련해 주게. 그러면 내가 카이트 에인헤랴르하고 싸우는 것도 자연스러워지겠지.”
“…….”
조금 이해가 안 되는 얘기였다.
그냥 밖으로 나와서 카이트를 죽이고 가면 되는 거지, 굳이 고문 자리에 앉을 필요가 있을까.
“그런 자리를 만들어 준다면… 내가 앞으로도 자네를 계속 도와줄 수 있겠지. 루스베르그 후작가의 고문으로 말이야.”
“……!”
루스베르그 후작은 뒤늦게 깨달았다.
차르노보그는 이번 일을 통해 루스베르그 후작가를 장악하려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정기적으로 상납금을 바치는 정도에서 끝날 수도 있겠지만… 최악의 경우 차르노보그에게 가문 전체를 송두리째 빼앗길 수도 있었다.
“차, 차르노보그 님, 그건…….”
“좋아.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지.”
루스베르그 후작을 무시하면서 차르노보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얘들아.”
“네, 스승님.”
아까부터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네 명의 남녀가 일제히 대답했다.
나이는 비교적 젊은 편이었지만, 차르노보그와 마찬가지로 음침한 분위기를 지닌 자들이었다.
“9서클을 능가하는 경지를 개척하는 걸 목표로 수행하고 있었는데… 세상이 나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구나.”
누런 이를 드러내면서, 차르노보그가 사악하게 웃었다.
“어쩔 수 없지. 다시 세상에 나서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