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59
▣ 59화. 소드 마스터 (2)
이미 전세는 기울었다.
전략지도를 살피면서 니얼은 그렇게 생각했다.
루스베르그 후작을 중심으로 한 연합은 완전히 붕괴했다. 대부분의 중소 귀족들은 에인헤랴르에 굴복한 상태다.
물론, 루스베르그 후작 측에는 아직도 병력이 많이 남아 있다. 워낙 세력이 큰 대귀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 병력 차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쪽에는 카이트 공자님이 있으니까.’
카이트가 정예 부대를 이끌고 돌파하여 루스베르그 후작의 목을 치면 그걸로 끝이다.
루스베르그 측에 아무리 많은 병력이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카이트한테는 아무 문제가 안 된다.
니얼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루스베르그 후작도 이걸 모르지는 않을 터.’
원래 루스베르그 측은 카이트를 얕보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충돌해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을 것이다. 이제는 루스베르그 측도 카이트가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이해했을 게 분명하다.
‘어떻게든 대책을 세우려 할 거야.’
더 이상 다른 귀족들의 힘을 빌릴 수는 없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귀살마가 크레스니크가 루스베르그 측에 붙는다면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
‘흑랑기사단 말고 새로운 용병들을 고용할까? 아니면 산적 등을 끌어모아서…….’
그런 식으로 어중이떠중이를 끌어모아 봤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루스베르그 측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드래곤 세력과 손을 잡을 것 같지는 않다.
‘가만 있자.’
그때 니얼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루스베르그 측이 도움을 요청할 만한 세력이… 하나 있었어!’
전략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루스베르그의 영지와 가까운 곳에, 매우 위험한 세력이 은둔하고 있었다.
‘만약 궁지에 몰린 루스베르그 후작이 그쪽에 도움을 요청한다면…….’
니얼은 침을 삼켰다.
지금까지의 전략은 카이트를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무도 없다는 전제하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지금 우려하고 있는 세력이 루스베르그 측에 선다면,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거침없이 적들을 유린하고 다니던 카이트가… 하루아침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까.
‘카이트 님에게 알려야 해!’
불길한 예감을 느끼면서, 니얼은 다급히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 * *
“엘덴비움 백작 가문도 결국 공자님에게 굴복했군요.”
“더 이상 희생자를 내고 싶지 않았겠지.”
나는 유리부르크 백작 가문에 이어 엘덴비움 백작 가문까지 굴복시키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걸로 영주들 사이에 루스베르그 후작을 완전히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제 루스베르그 후작만 쓰러뜨리면 북부에서 에인헤랴르에 대적할 세력이 없겠군요.”
옆에 있던 슈데르츠가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까지 어윈 등의 기사들도 나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지만, 지금은 엘덴비움 백작가에서 사후 처리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내 주변에는 슈데르츠와 흑랑기사단의 정예 병력밖에 없었다.
“꼭 그렇지는 않지.”
“네?”
“북부에는 루스베르그 후작 같은 놈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혹시 귀살마가 크레스니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것도 있고…….”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고지대(高地帶)로 올라갔다.
루스베르그 후작의 영지를 직접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평지가 많군.”
“네, 북부에서 농사지을 땅이 가장 넓다고 하죠.”
“루스베르그 후작의 본거지는 어디지?”
“저쪽 산 너머입니다. 몇 번 들락날락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슈데르츠와 대화를 나누면서 정찰을 했다.
그러던 도중, 슈데르츠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배고프냐?”
“아닙니다.”
슈데르츠가 험상궂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하긴 오늘은 식사를 제대로 못 했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뭐 좀 먹고 갈까.”
“카이트 공자님, 정말로 괜찮…….”
그때 뒤에서 꼬르륵 소리가 또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슈데르츠의 부하 한 명이 겁먹은 표정으로 배를 가리고 있었다.
“다들 배고프냐?”
“아, 아닙니다!”
“그래? 나는 배고픈데.”
“……!”
내 말을 듣고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쪽에 마을이 있는 것 같은데, 거기서 식사나 하고 가자.”
“카, 카이트 공자님…….”
“어차피 내 기사대도 지금쯤 엘덴비움 가문의 저택에서 식사를 대접받고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나는 고지대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 수고 많았으니, 다들 든든하게 먹고 가자.”
* * *
내가 원래 있던 세계에서는 객잔이 숙소 겸 식당 겸 주점 역할을 했다.
이곳에서는 여관이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 작은 마을에도 술과 음식을 파는 여관 하나쯤은 있었다.
“조용히 먹고 갈 테니, 음식이나 잘 준비해 주십시오.”
“헉, 이렇게나 많이 주시다니……!”
여관 주인은 처음에 우리를 보고 난색을 표했지만, 금화를 건네주자 굽실거리면서 친절해졌다.
“너희들, 소란피우지 말고 얌전히 먹고 가.”
“가,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너희들은 얼굴이 험상궂으니까 말이야.”
“…….”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흑랑기사단 놈들은 대부분 험악하게 생긴 편이었다.
그런 놈들이 칼을 차고 우르르 몰려들어오면 주인장 입장에서는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너희들 보고 난색을 표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돈부터 건네준 뒤 얌전히 있다 가겠다고 약속을 해. 알겠냐?”
“하, 하지만 공자님, 저희 같은 놈들은 그렇게 행동하고 다니면 얕보이게 되어서…….”
“너희들이 아직도 용병 나부랭이인 줄 아냐?”
흑랑기사단은 이름만 기사단일 뿐이지 실제로는 여기저기서 함부로 힘을 쓰고 다니는 용병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너희는 에인헤랴르의 기사들이다. 거기에 걸맞게 행동해.”
“……!”
“밥이나 먹어라.”
이윽고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소박한 맛이 있는 요리들이었다.
“많이들 먹어.”
“네!”
우리는 식사를 즐겼다.
웬만큼 배가 채워지자 주인장이 술도 내왔다.
“목도 축이면서 드십시오.”
“주인장, 우리는 공무 수행 중이니 많이 마시지는 않을 거요.”
슈데르츠가 딱 한 잔만 마시겠다는 듯이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다른 녀석들도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공무 수행 중이라니, 어떤……?”
“그야 물론 여기 있는…….”
내 이름을 언급하려다가 슈데르츠가 입을 다물었다.
“그런 게 있소.”
“아, 알겠습니다.”
기사로서의 자각을 가지려는 걸까.
확실히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쁘지 않아.’
이 녀석들에게 맞춰 주기 위해, 나도 딱 한 잔만 했다.
어차피 나는 많이 마셔도 내공으로 술기운을 몰아내면 되지만 말이다.
“……?”
바로 그때.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바깥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숫자는 네 명 정도.
다들 상당한 실력을 지닌 강자가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여관 안으로 쳐들어올 것 같지는 않았기에, 나는 일단 남은 식사를 해치우기로 했다.
“주인장, 잘 먹었소.”
식사를 마친 뒤, 슈데르츠가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나는 슈데르츠를 제지했다.
“슈데르츠, 멈춰.”
“네?”
“바깥에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놈들이 있어.”
“……!”
내 말을 듣고, 슈데르츠가 주인을 노려봤다.
“설마 밀고를……!”
“히익!”
“주인장은 상관없어. 놈들이 알아서 찾아온 거야.”
아마 여관에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를 주목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먼저 나가지.”
겁먹은 주인을 내버려 두고, 나는 앞장서서 바깥으로 나갔다.
그 순간,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들렸다.
‘빠르군.’
척!
내 안면을 향해 날아온 날붙이를, 아슬아슬하게 낚아챘다.
정체를 확인해 보니 손가락보다 약간 긴 단검이었다. 생김새가 무림에서 쓰던 비수하고 비슷했다.
“누가 던진 거지?”
“…….”
여관 바깥에는 네 명의 남녀가 있었다.
각각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오른쪽부터 청색 옷의 남자, 적색 옷의 여자, 백색 옷의 남자, 흑색 옷의 여자 순으로 서 있었다.
‘청색은 목(木), 적색은 화(火), 백색은 금(金), 흑색은 수(水)… 토(土)의 노란 색만 있으면 오행(五行)이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단검에 독이 묻어 있지 않은지 확인했다.
“주인이 없으면 그냥 내가 가져도 되겠군.”
내가 단검을 품 안에 집어넣는 시늉을 하자, 백색 옷을 입은 남자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너냐?”
“……!”
파앗!
내공을 실어 날린 단검이 백색 옷의 남자의 어깨에 꽂혔다.
“윽……!”
“불만 있나? 단검 날리는 걸로 인사를 하는 놈인 것 같아서 나도 답해 줬을 뿐인데.”
그 순간.
청색 옷의 남자가 도끼를 치켜들었고, 적색 옷의 여자는 쌍검을 뽑아들었다. 흑색 옷의 여자는 철선(鐵扇) 같은 걸 꺼냈다.
“이놈들이……!”
흑랑기사단도 다급히 검을 뽑았다.
하지만 나는 손을 치켜들어 제지했다.
“기다려.”
“고, 공자님!”
“여기서 싸우면 여관에 피해가 갈 거다.”
“……!”
원래 객잔 같은 건 시도 때도 없이 박살 나는 법이지만.
이 여관이 그렇게 되는 건 피하고 싶었다.
흑랑기사단 녀석들이 기껏 얌전히 먹고 나왔는데… 여기서 또 소란을 피워서 여관에 피해를 입히면 녀석들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어 버린다.
“장소를 옮기지. 너희들도 그게 낫지 않겠나?”
“왜 그렇게 생각하지?”
“너희들 윗대가리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
네 사람이 동시에 흠칫했다.
“어떻게…….”
“그런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내가 여관 안에서 느낀 건 여기 있는 4인의 기척뿐이었다.
하지만 바깥으로 나와 보니 마을 외곽 쪽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상한 것은 여기 와서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특이한 기운이라는 점이었다.
“안내해. 어차피 너희들도 여기서 나하고 사생결단을 할 생각은 아니잖아.”
“…….”
그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봤다.
그러더니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청색 옷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따라와라.”
무기를 거둬들인 네 사람이 우리에게 등을 보였다.
그 뒷모습을 보고 슈데르츠가 슬그머니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관둬.”
“공자님, 하지만…….”
“별 의미 없을 거다.”
무수절맥공으로 확인해 보니, 놈들은 전원이 8서클의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슈데르츠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너희들, 여기서 대기해라.”
“네? 갑자기 무슨 소리십니까?”
“내가 일 보고 올 때까지, 여기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그, 그럴 수는 없습니다!”
슈데르츠가 다급히 소리쳤다.
“카이트 공자님이 가시는데, 저희만 여기 남아 있으라는 말씀이십니까? 뭐하는 놈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희도 따라가서 싸우겠습니다!”
“딱히 너희를 배려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해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
숨김없이 말했다.
흑랑기사단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슈데르츠조차 저기 있는 네 명에게 못 미친다.
윗대가리는 더 강할 테니… 이 녀석들이 주위에서 얼쩡거리고 있어 봤자 방해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따라오고 싶다면…….”
나는 슈데르츠를 내버려 둔 채 홀로 걸어갔다.
“더 힘을 길러라, 슈데르츠.”
“……!”
슈데르츠가 등 뒤에서 주먹을 꽉 쥐는 걸 알 수 있었다.
* * *
외곽에는 마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마차에 묶여 있는 말이 좀 이상했다.
시커먼 말 머리에 뿔이 두 개나 나있었던 것이다.
‘몬스터인가?’
신기한 동물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을 때.
네 명의 남녀가 마차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스승님, 용살검가의 장남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마차 문이 열리면서 ‘스승님’이라 불린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란색 옷을 입은, 피골이 상접한 노인이었다.
‘기도가 잘 느껴지지 않아.’
묘한 느낌이었다.
마치 두꺼운 옷 위에서 맥을 짚는 것처럼 불명확했다.
게다가 무수절맥공을 사용해도 어느 정도 마력을 지니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예 아무 마력도 없는 일반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반박귀진(返璞歸眞)?’
무공이 매우 높은 경지에 도달하면 무공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
이걸 반박귀진이라 하는데, 노인의 상태는 이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만일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힘을 숨기게 된 것이든, 의도적으로 힘을 감추고 있는 것이든… 이 노인은 제자들보다 훨씬 높은 단계에 있는 인물이다.
‘9서클의 소드 마스터……?’
그 가능성을 떠올리며 노인을 관찰하고 있었을 때.
노인이 지팡이에 의지한 채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디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거냐, 용살검가의 장남!”
갑자기 청색 옷의 남자가 나를 다그쳤다.
“네가 아무리 건방지다고 해도, 격상(格上)의 어른에게는 인사를 올려야하는 법이다! 용살검가에서도 분명 배웠을 텐데!”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
그렇게 대꾸하면서 나는 노인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래서, 대체 누군데?”
“이 녀석이……!”
“그만해라, 첫째야.”
노인이 손을 들어 청색 옷의 남자를 제지했다.
“아직 젊지 않느냐. 내 얼굴을 모를 수도 있지.”
“하, 하지만…….”
“차근차근 설명해 주면 된다. 괜히 화내지 마라.”
“아, 알겠습니다.”
청색 옷의 남자가 헛기침을 한 뒤 다시 나를 쳐다봤다.
“용살검가의 장남, 똑똑히 들어라.”
“…….”
“이분이 바로… 차르노보그 님이시다.”
“차르노보그.”
“그래, 그 차르노보그 님이시다.”
“…….”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누군데?”
“뭐라고?”
청색 옷의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다른 세 명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장난하지 마라, 카이트 에인헤랴르.”
“아니, 장난이 아니라.”
루스베르그 후작의 협력자가 누구누구인지는 니얼한테 들었다.
하지만 차르노보그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차르노보그가 대체 누구야?”
“……!”
네 명뿐만 아니라 노인까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놈… 감히 스승님을 모욕하는 거냐?!”
“역시 건방지기 그지없군! 소문대로였어!”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구나!”
“지금 당장 죽여 버리겠다!”
네 명 모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더니 무기를 치켜들었다.
“아니, 진짜 모르는데 어쩌라고.”
내 솔직한 발언에, 놈들의 살기가 극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