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70
▣ 70화. 귀살마가 (3)
‘8서클의 마법사인가.’
크레스니크의 차남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바이콘을 탄 채 가만히 그를 쳐다보고만 있었을 뿐이다.
“카이트 님,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옆에서 어윈이 속삭였다.
지금 우리는 관문 앞에서 대치하고 있다. 자칫하면 에인헤랴르와 크레스니크 사이의 정면충돌로 발전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저 녀석이 대놓고 나를 공격해 온다면 상대해 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나올까.’
크레스니크의 차남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기대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관문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르게이, 멈춰라.”
“……!”
크레스니크 측 사람들이 다급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관문 위에서 이지적인 외모를 지닌 남자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블라디미르 형님!”
“듣자하니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것 같군. 부상을 입은 드미트리를 데려와 준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거칠게 대할 필요는 없다.”
세르게이라 불린 차남이 형님이라 부르는 걸 보니, 저 남자가 크레스니크의 장남인 것 같았다.
‘크레스니크의 장남… 블라디미르 크레스니크.’
들어 본 적이 있다.
귀살마가 크레스니크에 태어난 천재로서, 30대의 나이로 9서클에 도달한 마법사.
북부에서 유일하게 ‘매직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다.
“카이트 공자, 드미트리가 신세를 진 것 같군.”
“…….”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지만 서로 거리가 너무 먼 것 같다. 계속 이 상태로 얘기를 하면 목이 아플 것 같으니, 안쪽에서 얘기를 하도록 하지.”
블라디미르가 손을 옆으로 움직이자, 쿠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들어오게.”
그렇게 우리는 예상보다 빨리 관문 너머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 * *
“그렇군. 적색 무뢰단 토벌 중에 드미트리와 충돌한 건가.”
“본의 아니게 말이지.”
블라디미르는 나를 자신의 집무실로 초대했다.
동생인 세르게이도 함께였는데, 계속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블라디미르 형님, 그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드미트리도 인정하지 않았나. 의심할 부분이 있을까?”
“드미트리의 말을 믿을 필요가 있을까요.”
“너는 막내를 조금 더 존중할 필요가 있어.”
세르게이를 나무란 뒤, 블라디미르는 다시 나를 쳐다봤다.
하얀 얼굴로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니, 흑사련에서 종종 마주쳤던 사마 군사(軍師)가 생각났다.
‘뱀처럼 교활한 놈이었지. 많이 닮았어.’
옛 지인을 떠올리고 있자, 블라디미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근 루스베르그 후작을 쓰러뜨리고 그 영지를 접수했다고 하더군. 북부대공이 새로 획득한 영지를 그대에게 통째로 줬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감찰기사로서 변방의 감독과 순찰을 맡았을 뿐이야. 딱히 내 소유가 된 건 아니지.”
“그렇군. 그래도 참으로 대단해. 아직 스물다섯 밖에 안 되었다고 아는데, 놀라운 업적이군.”
“블라디미르 공자는 나이가 어떻게 되지?”
“올해 서른여덟이지. 아, 연장자라고 해서 딱히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어. 그런 게 어울리는 성격도 아닌 것 같고.”
“고맙군.”
서른여덟이라고 해도, 겉모습은 상당히 젊어 보였다.
20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도 인연인 것 같은데 서로 친분을 쌓을 수 있으면 좋겠군. 우리 형제들은 여기 디나르 고개 방면을 담당하고 있으니, 그대가 루스베르그 후작령을 맡게 되었다면 앞으로도 교류할 기회가 많이 있을 거야.”
“의외인데.”
“뭐가 의외지?”
“크레스니크는 상당히 폐쇄적이라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하자 블라디미르는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크레스니크가 사실상 쇄국 상태인 건 사실이지만, 딱히 외부와의 교류 자체가 금지된 건 아니야. 적어도 나는 에인헤랴르 측과 교류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
“그런가?”
“그래, 저 멀리 고틀란드 방면과 연결되는 오비르 고개의 관문을 담당하고 있는 내 누이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말이야.”
“…….”
그쪽에는 이바르 에인헤랴르가 배치되어 있다.
이바르는 그쪽에 있는 크레스니크의 딸들과 어떤 교류를 하고 있을까.
“특히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대하고는 예전부터 얘기를 나누고 싶었어.”
“별일이군. 용살검가의 망나니하고 얘기를 나누고 싶었나?”
“하하, 미안하군. 예전이라고는 해도 몇 달 전부터야. 그대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후부터지.”
블라디미르가 웃으면서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대가 부러웠어. 우리는 가문의 방침 때문에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지만, 그대는 곳곳을 누비며 대활약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러면 가문의 방침을 바꿔야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야. 아버지가 워낙 완고하셔서 말이지.”
“그럼 어쩔 수 없군.”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세르게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뭐지?”
“대체 여기는 무슨 목적으로 온 건가?”
세르게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거칠었다.
“적색 무뢰단을 토벌하러 왔다고? 웃기지 마라. 북부에 그런 놈들이 한둘이냐? 많고 많은 무력 집단 중에서 굳이 그놈들을 잡으러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냐?”
“세르게이, 무례하게 굴지 마라.”
“형님, 이놈들은 다른 의도가 있어서 이쪽으로 나타난 게 분명합니다.”
블라디미르의 만류에도 세르게이는 계속 나한테 따지고 들었다.
“보나 마나 우리한테 시비를 걸려고 찾아온 거겠지. 안 그런가?”
“반박할 기분도 들지 않는군.”
당연하다.
세르게이의 말에 틀린 부분이 없었으니까.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렇게 우리한테 싸움을 걸고 싶으면 내가 상대해 주지.”
“세르게이, 그만하라니까.”
“상관없어.”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벼운 대련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이 녀석……!”
“둘 다 진정했으면 좋겠군. 내가 친분을 쌓고 싶다고 말한 것 듣지 못했나?”
블라디미르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블라디미르, 나는 상관없어.”
“카이트 공자…….”
“동생인 드미트리가 다쳤는데, 형으로서 그냥 넘어가기 힘든 거겠지.”
“…….”
물론, 세르게이는 동생의 복수를 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가문의 명예에 흠집을 낸 나를 혼내 주고 싶어서 이럴 뿐이다.
“나는 이런 것도 친분을 쌓기 위한 교류라 생각하는데.”
“알겠다.”
블라디미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게이, 카이트 공자와의 대련을 허가하겠다. 어디까지나 친목을 위한 대련이라는 걸 잊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블라디미르 형님.”
블라디미르의 허가를 받고, 세르게이의 눈빛이 불타올랐다.
* * *
훈련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공간에서, 나와 세르게이는 마주 보고 섰다.
거리가 상당히 멀다. 마법 전투를 위한 간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가깝게 해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 승부가 너무 일찍 끝날 게 뻔했으니까.
“카이트 에인헤랴르, 드미트리를 쓰러뜨렸다고 해서 너무 자만하지 마라. 그 녀석은 우리 크레스니크에서도 가장 열등생이다.”
“8서클의 마법사인 걸로 보였는데.”
“흥, 우리 형제자매는 전원이 8서클 이상이다.”
“우리 형제들보다 수준이 높군.”
헤스테인은 7서클, 프리드레이프는 6서클이다.
다만 그 녀석들은 아직 20대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당연하지. 북부 최고의 마법 명가 크레스니크를 얕보지 마라.”
으스대면서 세르게이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주위의 구경꾼들도 그걸 눈치 챘는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게 진짜 크레스니크의 마법이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파팟!
갑자기 허공에 얼음의 창이 출현했다.
사람 한 명쯤은 한꺼번에 꼬챙이로 만들 수 있을 듯한 빙창(氷槍)이었다.
“크레스니크를 상징하는 빙결 마법으로 너를 제압해 주마!”
드미트리는 쓰지 않았던 마법이다.
아무래도 이런 얼음 마법이 크레스니크의 주특기인 것 같았다.
‘빙공(氷功) 전문이었나. 혹시 드미트리는 이걸 제대로 쓰지 못해 구박받고 있는 건가?’
빙창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칼라드볼그를 휘둘러 얼음의 창을 떨어뜨렸지만, 곧바로 여러 개의 창이 계속해서 날아왔다.
‘처음부터 복수의 빙창을 동시에 날리는 마법을 준비했던 모양이군.’
나는 수라비룡검의 초식을 활용해 얼음 창을 모조리 격파했다.
그러자 주위에서 지켜보던 크레스니크 측의 병사들이 탄성을 질러 댔다.
“세르게이 님의 마법을 모조리 막아 내다니!”
“에인헤랴르의 검술이 저렇게 뛰어났다고?”
크레스니크는 워낙 폐쇄적인 분위기이다 보니, 말단 병사들은 내 소문을 제대로 들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반응을 보면서 우리쪽 기사들은 의기양양해했다.
“카이트 님이 저 정도 공격을 막지 못할 리가 없지.”
“그렇죠! 카이트 님 실력이면 저 정도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죠!”
“공자님! 빨리 제압해 버리십시오!”
본의 아니게 부하들에게 응원을 받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한편 공격이 모조리 막혀 버린 세르게이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세르게이가 다시금 손을 치켜들자, 이번에는 눈보라가 몰아쳤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수한 얼음 조각이 휘몰아친 것이었다.
‘하나하나 떨어뜨리기 어렵겠군.’
나는 칼라드볼그를 잡은 채 내공을 끌어올렸다.
상당한 양의 내공을 실어 검을 휘두르자, 맹렬한 검풍(劍風)이 발생했다.
가벼운 얼음 조각들은 검풍에 휘말려 순식간에 흩어지고 말았다.
“아니……!”
경악하는 세르게이.
다음에는 어떤 수를 써야할지 알 수 없어 머뭇거리는 녀석을 보면서, 나는 담담히 말했다.
“마법의 완성도는 동생보다 나은 듯하지만, 임기응변은 동생보다 못한 듯하군.”
“뭣……!”
세르게이가 숨을 삼킨 순간.
나는 경공을 활용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
갑자기 코앞에 나타난 세르게이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세르게이의 복부에 접촉시키고 힘을 줬다.
“헉……!”
쿵!
높이 튕겨져 올라간 세르게이.
마법을 사용했는지 공중에서 다급히 균형을 잡긴 했지만, 이미 나도 하늘로 뛰어오른 상태였다.
“이 정도로 하지.”
“……!”
꽝!
장법으로 어깨를 내리치자, 세르게이가 다시 지상으로 추락했다.
충격이 상당히 컸는지 지진 같은 소리가 들렸다.
“세, 세르게이 님!”
“어, 어서 들것을……!”
병사들이 다급히 세르게이한테 달려갔다.
한편 일부 병사들은 착지한 나를 향해 창을 들이댔다.
“어떻게 감히……!”
“세르게이 님을 죽일 생각이냐!”
“멈, 춰라!”
하지만, 세르게이가 가쁜 숨을 내쉬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 정당한 대련의 결과다! 무례한 짓을 하지 마라!”
“세르게이 님, 괜찮습니까?”
“호들갑 떨지 마라!”
세르게이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뼈 한두 군데는 부러졌을 줄 알았는데 제법 멀쩡해 보였다.
드미트리와는 달리 몸이 건장해서일까.
어쩌면 고통을 억지로 참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카이트, 공자.”
“…….”
“내 패배다. 무례하게 굴었던 것, 사과하도록 하지.”
세르게이는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네 마법도 훌륭했다. 얼음 창이 상당히 날카롭더군.”
“다 막아놓고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그때 옆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블라디미르가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마주치고 있었다.
“멋진 대련이었다. 다들 박수를 쳐 주도록.”
블라디미르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박수를 쳐 줬다.
얼핏 보기에는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
하지만 나는 블라디미르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저 남자가 나와 세르게이의 대련을 세밀히 관찰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내 역량을 파악하려고 했던 거겠지.’
그래서 세르게이를 상대할 때는 일부러 특별한 기술을 보여 주지 않았다.
굳이 내 정보를 블라디미르에게 알려 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이트 공자, 설마 이 정도 실력일 줄은 몰랐군. 정말로 놀라워.”
“칭찬해 줘서 고맙군.”
“에인헤랴르에 이 정도로 훌륭한 후계자가 있었다니, 이 사실을 알면 아버지도 놀라워하실 거야.”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블라디미르가 웃으면서 나한테 다가왔다.
“내가 좋은 생각이 하나 있는데, 어떤가?”
“뭔지 얘기를 해 줘야지 대답하지.”
“그대한테도 좋은 얘기야.”
블라디미르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하며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
“우리 본가(本家)에 방문하지 않겠나? 내 권한으로 그대를 아버지한테 소개시켜 드리고 싶군.”
그 순간.
나는 거대한 마귀가 나를 향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이게 순수한 초대가 아니라는 건 누가 봐도 뻔했다.
“영광이군.”
하지만.
나는 주저 없이 블라디미르의 손을 맞잡았다.
“나도 크레스니크 공작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안내해 준다면 고맙겠군.”
만약 크레스니크가 입을 벌리고 나를 집어삼키려 한다면.
내 검으로 그 입을 찢어발겨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