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74
▣ 74화. 골육상잔 (3)
블라디미르는 마치 얼음의 마인(魔人)이 된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마법에 관해서는 아직 아는 게 거의 없지만, 그가 체내의 마력을 일제히 분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군.’
무슨 원리인지는 금방 이해했다.
마법을 쓸 때는 일단 몸에서 마력을 끌어내서 마법적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공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마법사는 이게 상당히 느리다. 오러를 쓰는 검사들처럼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걸 단축시키기 위해, 마력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아마 저 상태에서는 마법적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공정 자체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힘을 끌어 쓰면 오래 버티지 못할 터.’
내공이 그냥 저절로 흘러나오고 있는 상태와 마찬가지다.
마력이 완전히 고갈되면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될까.
“으윽……!”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블라디미르의 주변이 냉기로 가득 찼다.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블라디미르가 손을 치켜들자, 마치 파도와 같은 냉기가 나를 향해 뿜어져 나왔다.
‘기파(氣波)?’
검막으로 막아 냈다.
차가운 기파에 의해 주위가 모조리 얼어붙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한빙지옥이 펼쳐진 것 같은 광경이었다.
“하아아압!”
블라디미르이 발생시킨 냉기가 마치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 수준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앞으로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거대한 기운이 배후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갈기갈기 찢겨진 얼굴에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 테트라샤크두가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드래곤 브레스가 올 것이다.
“…….”
나는 한 바퀴 몸을 움직였다.
수라백상검으로 발생시킨 냉기로 두터운 구체를 만들었다.
그렇게 모든 방향을 방어하자, 블라디미르가 날리는 냉기도 나를 침범할 수 없게 되었다.
“블라디미르 크레스니크와 함께 소멸하도록 해라……!”
콰콰콰쾅!
테트라샤크두의 입안에서 빛이 번쩍인 직후, 막강한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수라백상검의 냉기를 증폭시켰다. 내 몸을 보호하는 구체에서 지옥처럼 차가운 냉기의 기파가 뿜어져 나왔다.
그 순간, 블라디미르도 전력을 다해 냉기를 뿜어 대기 시작했다.
냉기와 냉기가 어우러지며 드래곤의 화염과 충돌했다.
본의 아니게 나와 블라디미르가 동시에 드래곤 브레스를 막아 내는 모양새가 되었다.
“크아아……!”
블라디미르가 이를 악물고 냉기를 뿜어내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기파를 조절했다.
그동안 봐 왔던 빙결 마법을 떠올리며, 냉기를 압축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모방할 대상은 블라디미르 등이 사용하던 빙창(氷槍)이었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파앗.
냉기 끄트머리가 압축되어 한 자루의 칼이 되었다.
얼음의 창이라기에는 좀 짧은 편이라, 얼음의 칼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블라디미르가 발생시킨 냉기를 등에 업은 채, 내가 만든 얼음의 칼날이 드래곤 브레스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브레스의 지속 시간이 끝난 순간.
“……!”
순간적으로 무방비해진 테트라샤크두의 입안으로, 블라디미르의 냉기를 등에 업은 얼음의 칼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목구멍에 박힌 얼음의 칼에서 냉기가 파고들면서… 테트라샤크두를 내부에서부터 얼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테트라샤크두를 뒤로한 채.
나는 돌아서서 다시 블라디미르와 대치했다.
블라디미르는 이미 온몸이 얼어붙어 있었다. 냉기를 뿜어내느라 자기 자신도 얼어 있었던 것이다.
‘과도하게 마법을 사용한 탓이군.’
아마도 블라디미르는 아직 이 정도의 마법을 펼칠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을 것이다.
9서클에 도달하기는 했지만 아직 초입에 불과할 터.
일리야처럼 원숙해진 다음에 이런 힘을 써야 했을 것이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아직도 투지를 잃지 않은 듯했다.
여기서 나를 꺾기 위해 자기 목숨을 불태울 각오가 되어 있는 듯했다.
“그게 낫다, 블라디미르.”
“……?”
“다른 사람을 이용하며 계략을 꾸미는 놈보다, 자기 목숨을 불태우며 한계까지 싸우는 놈이…….”
블라디미르를 향해, 나는 한 발 앞으로 걸어갔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법이다.”
“……!”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블라디미르가 흠칫했다.
그런 블라디미르를 향해, 나는 다시 한번 검을 치켜들었다.
“아아아……!”
블라디미르가 괴성을 지르며 마력을 폭발시켰다.
주위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아마 테트라샤크두에게서 뿜어져 나온 핏줄기도 얼어붙었을 것이다.
한빙지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광경 속에서, 나는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이미 내 몸은 냉기로 만든 구체가 보호해 주고 있는 상태였다.
“냉기로, 냉기를 막고 있다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블라디미르가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냉기라고 해서 똑같은 냉기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 빙결 마법으로 만드는 냉기는 마력을 원동력으로 하여 주위의 기운을 낮추는 것으로 보였다. 말하자면 일종의 자연 현상이다.
하지만 빙공(氷功)으로 만드는 냉기는 자연 현상과 다르다. 인간이 갖고 있는 음기의 성질을 극한까지 변질시켜 차가운 기운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래, 화염 마법도 마찬가지지.’
내가 수라홍련검으로 만드는 불꽃도 엄밀히는 진짜 불꽃이 아니다. 기(氣)가 불타고 있을 뿐이다. 화염 마법으로 만드는 진짜 불꽃하고는 성격이 다르다.
그렇기에 서로 섞이지 않고 별개의 기운으로서 양립할 수 있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네가 만든 이 냉기의 지옥은 확실히 대단하다. 하지만… 의(意)와 념(念)이 담겨 있지 않아.”
“의와, 념?”
“그래, 그러니 단순히 차가운 기운일 뿐이지.”
아무런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자연의 냉기일 뿐이다.
하지만 나한테서 비롯된 냉기에는 내 뜻이 담겨 있다.
내 의념(意念)이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무엇에도 침범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한다면… 이렇게 냉기로 냉기를 밀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으윽……!”
블라디미르가 손을 치켜들자, 냉기의 폭풍 속에서 수많은 빙창이 생성되었다.
내가 만든 냉기의 막을 뚫기 위해 빙창이 쏟아졌다.
하지만 내가 냉기 속에서 검을 휘두르자 얼음 같은 검풍이 발생해 빙창을 모조리 분쇄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대는, 대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면서도, 블라디미르는 냉기의 출력을 계속해서 끌어올렸다.
얼어붙은 블라디미르의 몸이 점차 핏빛으로 물들었다.
피부가 터지면서 피가 뿜어져 나와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블라디미르, 너는 잘못된 길을 택했다.”
“뭐, 라고……?”
“정말로 바깥세상에서 마음대로 뜻을 펼치고 싶었다면, 크레스니크의 영지를 뛰쳐나가서 너 혼자만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하면 되는 거였다. 9서클에 도달한 시점에서 너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테니까.”
“……!”
그렇다.
크레스니크의 가풍이 불만스러웠다면, 패륜적인 반역을 꿈꾸는 게 아니라 그냥 가출을 하면 되는 거였다.
강호를 유람하듯이 북부를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놈들하고 충돌하며 자신의 힘을 길렀다면, 언젠가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어 북부일통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크레스니크 가문의 힘을 등에 업고 세상에 나서고 싶어 했다. 선조들이 정해 놓은 방침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선조들이 쌓아 놓은 힘은 탐났던 거지.”
“…….”
“그 시점에서 이미 너는 자기 자신의 한계에 갇혀 버린 거다.”
그렇기에.
블라디미르는 아버지를 죽여서 크레스니크 가문을 가로채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런 생각에 갇혀 버린 이상, 블라디미르의 파멸은 확정적이었다.
만약 블라디미르가 이번에 나를 불러들이지 않았다고 해도… 언젠가 비슷한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카이트, 만약에 내가…….”
피로 물든 냉기 속에서, 블라디미르가 나를 응시했다.
“그대 말대로 크레스니크를 뛰쳐나가, 세상 속에서 부딪히며 싸워 나갔다면… 그대 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그건 알 수 없지. 하지만…….”
나는 천천히 검을 치켜들었다.
“적어도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는 있었을 거다.”
“…….”
어느새 블라디미르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냉기가 잦아들었다.
블라디미르 자신의 마력 혹은 체력이 고갈된 탓일 것이다.
피로 물든 채 얼어 있는 블라디미르의 모습은 한빙지옥에서 고통받는 죄인 같아 보였다.
“…….”
이 고통을 끝내 달라고 부탁하는 듯이, 블라디미르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휘둘렀고… 얼어붙은 블라디미르의 머리가, 조용히 땅으로 떨어졌다.
* * *
아직도 주위에 가득한 냉기 속에서, 나는 칼라드볼그에 묻은 얼음조각을 털어냈다.
‘이번에는 내 빙검이 빙결 마법을 꺾었다. 하지만… 명백히 우위에 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군.’
블라디미르와의 전투를 통해, 나는 마법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법은 의념이 실리지 않은 자연적 현상이다. 그렇기에 의념이 담긴 무공으로 대항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점과는 별개로 마법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 마음에 걸렸다.
‘마법은 자연의 기운을 사용해. 이론상으로는 한계가 없는 거지.’
인간에게 내재된 기운에는 한계가 있다.
내공이든 마력이든 결국 인간이라는 작은 생명체 안에 담아야 하는 거니까.
하지만 자연의 기운은 사실상 무한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마법은 무한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자연의 기운을 끌어낼 때 마법사의 마력을 활용하기 때문에, 결국 인간의 한계에 종속되긴 하지만… 그 부분만 해결된다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야.’
이런 부분에 관해서는 확실히 마법이 우월했다.
이건 앞으로 계속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았다.
앞으로 블라디미르를 능가하는 9서클 마법사와 부딪힐 가능성도 있고… 마법적 능력에 특화된 드래곤하고 싸울 수도 있으니까.
‘가만있자.’
바로 그때.
갑자기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무공으로 자연의 힘을 끌어낼 수는 없는 건가?’
무림에 있을 때는 한 번도 떠올린 적 없는 발상에,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하지만,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정체가 뭐냐.”
아직 근처에 머무르고 있었던 일리야 크레스니크였다.
우리가 벌인 삼파전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카이트, 자네가 사용한 그 힘은 대체 무엇이지?”
“…….”
“오러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군. 자네는 완전히 새로운 체계의 힘을 터득한 것인가?”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던 마법사여서인지, 일리야는 내가 쓰는 힘의 특수성을 제대로 꿰뚫어 본 듯했다.
하지만,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이봐, 일리야 크레스니크. 지금 그게 중요한가?”
“뭐, 뭐라고?”
“다급히 도망치지도 않고 계속 여기서 알짱거리고 있는 걸 보니,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군.”
“이, 이봐! 무슨 말버릇이…….”
이 상황에서 말버릇을 지적하는 걸 보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블라디미르도 죽고, 테트라샤크두도 죽었어. 설마 자기는 안 죽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건가?”
“뭐, 뭐라고?”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었군, 일리야 크레스니크.”
“자, 잠깐!”
일리야 크레스니크가 뒷걸음쳤다.
처음 만났을 때 보여 줬던 우아한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나는 북부 3가문 중 하나인 귀살마가 크레스니크의 수장이다! 시구르드의 아들에 불과한 네가 함부로 손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그는 다급히 손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시구르드와 직접 대화할 것이다! 가주끼리의 대화를 통해 해결할 일이란 말이다! 물러서!”
“착각하고 있군, 크레스니크 공작.”
“뭐, 뭐라고?”
“나는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장남이다. 시구르드가 직접 임명한 감찰기사장이기도 하지.”
“……!”
“시구르드가 없는 자리에서는 내가 시구르드를 대신한다.”
그렇기에.
내가 여기서 물러설 이유는 하나도 없다.
“애초에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 집안싸움에 드래곤을 끌어들인 시점에서… 시구르드가 당신을 용서할 리가 없다는 것을.”
“나, 나를 죽이면 내 자식들이 가만있을 것 같으냐? 그 녀석들은 너를 용서하지 않을…….”
일리야 크레스니크가 뭐라고 떠들어 대긴 했지만, 나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
칼라드볼그를 휘둘러 그 목숨을 빼앗고,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북부 3가문 중 하나인 귀살마가 크레스니크.
그 주인과 후계자가,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칼날에 동시에 숨통이 끊어진 밤이었다.